누가복음 5:1-11  <깊은 데로 가서>       2011. 9. 4

사람은 꿈을 꿉니다.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이냐를 생각하고, 그 일의 결과를 생각합니다. 마음이란 인생의 화판입니다. 사람은 소원하는 것이 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꿈이 없으면 망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꿈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식물이 봄을 그리며 꽃을 피우기 바라고 가을의 결실을 기다리듯이 사람은 소망이 있음으로 삶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늙지 않는다. 사람은 꿈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늙는다.”

지도자도 꿈이 있으니까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희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지도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은 꿈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업국가, 공업국가로 만들고 많은 직업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직장과 직업을 주고 잘살게 하려고 노력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거지 디메오와 바디메오는 눈앞에 몇푼 돈을 바라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였습니다.

○ 베드로는 자신의 작은 배를 버려두고 자식과 처자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출발하였습니다. 꿈은 바라봄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꿈이라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기의 경험을 믿고 자신의 지식을 믿고 자신의 힘과 과학을 믿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를 최고의 힘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일은 좀처럼 믿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늘 새롭게 하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우리는 남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영적인 능력 하늘의 도우심을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예수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꿈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2:28]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가복음5:4]


네 가지 복음서가 있지만 누가만이 특별히 이 갈릴리 바다에서의 기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깊은 데로 가라’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놀라운 세계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과거에 베드로는 늘 실패와 좌절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존재입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해도 잡은 것이 하나도 없는 빈 배, 텅 빈 배를 바라보았습니다. 없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배에 가득히 잡힌 고기를 바라보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주님은 이미 이 많은 군중이 배 불리 먹고 집으로 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현실의 아픔과 현실의 가능성을 보고 낙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5:5]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 고기잡이라면 제가 바로 도사입니다. 도사인 제가 밤새도록 애썼어도 못 잡았는데, 깊은 데로 가라시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기들은 본래 좀 얕은데 많이 모여드는 법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잡으라니요?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밤에만 잡히지 해가 뜨고 난 다음에는 고기가 안 잡힙니다. 해가 뜨면 물고기들도 바다 깊은 데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는 지금까지 물이 얕은 곳에서 적지만 일정량의 고기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깊은 곳에는 큰 고기를 잡을 수 있겠지만  베드로의 배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작은 배로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찾아 잡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지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말하십니다. 도저히 상식에 어긋난 사실인 것입니다. 생각건대 베드로의 판단이 옳았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식과 이성에 반대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사람들은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인간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따라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적인 감각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뛰어넘어 믿음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삶, 새로운 세계를 향한 결단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했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겁이 나기도 합니다. 베드로도 꼭 그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사야 55:8,9]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일도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안 될 때는 하나님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물에 그물을 던지는 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결정은 勇者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 그는 말하기를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내 생각대로 행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7:21-22]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황성주 박사는 건강방면에 전문가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생식회사를 만들어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늘 C.E.O 로서 강연을 다녔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중국선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중국에 생식회사를 만들어 그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각 지역에 선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조사를 하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북경에 와서 김하중 대사를 만났습니다. 김하중이 대사이지만 실로 더 많은 사업의 경험과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황성주 박사입니다. 성령님은 김하중 대사를 통하여 황성주 박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일을 기뻐하지 않는다. 결국 황성주는 마지막 이 일을 포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라 말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이 앞서는 결정과 행동들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일을 시작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사람을 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황성주 박사의 이성과 야심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능력들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많은 것들이 실은 자신의 마음속에 신념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바른 계시의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과연 내가 받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내가 만든 나의 신념인가 알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


◇ 어느 새 신자가 성경을 3독하고 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한다.”처음이었답니다. 너무 놀랍고 스스로도 믿기 힘든 너무 귀한 경험입니다. 우리가 꼭 직접적인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은 방법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 말씀으로, 때로는 마음의 감동으로, 양심을 통해서, 주의 일꾼이나 사람의 충고와 상식을 통해서, 혹은 우리의 환경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과, 환경과 세상으로부터 온 음성입니다. 나의 간절한 소망, 내가 해낼 수 있는 가능성, 내 주위에서 말하는 하십시오! 가능합니다! 당신은 분명히 승리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유혹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 했고 능력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아합 왕은 400명의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전쟁에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죽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이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 진정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환경과 사람의 말은 그저 참고할 따름입니다. 모든 진정한 말씀의 근원은 말씀에 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1)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2) 계시의 성문화된 성경, 3)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말씀 자체가 되시고 근원이 되시는 분은 예수님이고, 말씀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쓰여진 것이 성경이며, 이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는 것은 목사의 설교입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세상은 그 말씀을 따라서 지어졌습니다. 살리는 것은 말씀입니다. 저는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마음 속으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리라”

여기서 중요한 강조점은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께서 저를 일으키리라”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이 약속의 말씀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말씀인 성경은 굉장히 귀합니다. 우리의 일생을 바꿔 놓을 수 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된 성경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고, 믿고 나가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대로 됩니다. 말씀에 기초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감각에 두고 환경에 두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나의 것이 되기 위하여, 겸손한 하나님과의 진정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은 잡음이 있습니다. 잠잠히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끊임없이 추구하십시오.그래야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즉각 분별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기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했습니다. 선지자만, 사역자만, 특별한 은사자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위기를 겪을 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칠 때 주님은 우리 곁에서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바로 당신 곁에서 눈물 흘리시며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내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하십니다. ▷ 어떤 분은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함께 춤을 추자고 해서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한없이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많이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순종하였습니다. 

[눅 5:6,7]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예수님은 우리를 깊은 신앙의 세계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에게 더 놀라운 세계,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열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축복은 주님의 부르심에 용기 있게 자신을 드리는 자 용기 있게 자신의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굴러오는 은혜를 기다리는 자는 많은 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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