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13

신명기 32:9-14 <너를 지키시는 자라>

요나의길 2013. 11. 3. 20:51

 신명기32:9-14   <너를 지키시는 자라>   2013.11. 3

일본의 아동문학가 노베찌는 "너의 둥지는 너무 낮았었다."라는 시를 써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어느 날 자기 집 뜰에 있는 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면서였다고 합니다. 새가 자기 집을 짓고 있는 것을 구경하던 그의 마음에  "둥지의 위치가 너무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의 습격을 받을 만큼 낮은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에게 충고할 방법도 없고 거의 완성된 둥지를 헐어버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얼마 후 둥지에 새끼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미새는 어디선가 부지런히 먹이를 구해다가 새끼들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노베찌는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예감했던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둥지를 비운 사이, 고양이가 새끼들을 습격하여 훔쳐간 것입니다. 먹이를 가지고 돌아온 어미새는 새끼를 찾을 길이 없어 오랫동안 그 둥지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서 시인 노베찌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너의 둥지는 너무 낮았었다."라는 제목의 시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원하고 노력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이 생각지도 않은 인생의 덧에 걸려 살아갑니다. 광야의 삶은 인생 역정을 말해주는 곳입니다. ○ 그곳은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습니다. 광야 길에는 구덩이가 있기도 하고, 낭떠러지가 있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광야에는 도처에 뱀과 전갈이 있고,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광야요 황무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역사 이래 끊이지 않는 전쟁과 질병, 크고 작은 재난, 요동치는 경제 속에 실패와 좌절. 단 한순간도 사람을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습니다.


[신명기 32:9-10]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주목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수한 무리들이 있었지만 주님의 최종적인 관심은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은 세상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최종적인 시선은 자신의 뜻을 따른 노아의 8식구에게 있었습니다. ○ 세상이 홍수로 산이 무너져 마을이 쓸려가고, 사라질지라도아니면 세상의 유력한 자가 세상의 모든 재물을 차지하여 부자가 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녀가 자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지 않으시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킨다. 하셨습니다. 눈은 아주 미세하고 예민한 신경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물질이 들어가면 금방 반응을 하기 때문에 눈동자에 위험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눈썹과 눈꺼풀과 눈물샘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눈동자를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그의 눈길이 따르십니다.


◎ 한 개구쟁이 어린이가 새를 잡기 위해 숲속으로 나갔답니다. 벼랑을 타고 올라 독수리의 알을 한 개 훔쳤어요. 그리고 그 알을 가져다 닭장에 가져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곳에 놓았데요. 사실 조금 컸지만 닭은 알을 잘 품었지요. 병아리들은 21일 만에 부화하여 나왔건만 이놈은 25일 만에 나온 것입니다. 엄마 닭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 다른 병아리들은 나오자마자 삐약 거리면서 잘도 돌아다니는데 나중에 나온 이놈은 잘 걷지도 못하잖아요. ○ 거기다 생기기도 참 못생겨서 머리가 몸통보다 더 큰 겁니다. 또 ○ 눈은 멀어서 모이를 잘 주어먹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닭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병아리들도 모두 이 머리만 큰 놈이라 놀려댔습니다. “이 바보야! 너는 언제나 병아리 될래?” 

○ 이 머리 큰 놈은 늘 다른 병아리들이 부러웠습니다. 자신도 다른 병아리처럼 멋진 병아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좇아다니고 열심히 삐약 거렸습니다. 어느 날 다른 병아리가 물었습니다. “너의 꿈은 무어냐?”응 나는 저 하늘 높은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될 거야!” “뭐라고? 잘 걷지도 못하는 놈이 하늘을 날아다니겠다고?” “야 주제를 알아라. 병아리 주제에‥ 우리 엄마 닭도 못 날거든~ 불쌍한 놈!” 병아리들은 늘 이 머리만 큰 새를 놀려주었어요. 

 어느 날 조용하고 따뜻한 초여름 엄마가 큰 소리고 부르는 거예요. “독수리 떴다. 병아리들아 빨리 숨어라”이 소리를 듣는 순간에 모든 병아리들은 재 빨리 곡식단 속으로, 엄마 품으로, 마루 밑으로 숨었어요. 그런데 이 머리 큰 놈은 마당 한 가운데서 하늘의 독수리를 보면서 “야 멋있다. 나도 저렇게 날아보았으면‥” 다른 병아리들이 외칩니다. “야! 빨리 숨어 너 죽고 싶어?” 그러나 이 머리 큰 놈은 다른 병아리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다가 쏜살처럼 내려온 독수리에게 잡혀가고 말았지요. 다른 병아리들은 서로 슬퍼하며 말했어요. “불쌍한 놈 우리말을 안 듣더니 결국 죽었구나!”

 어미 독수리는 아가독수리를 낚아채 올라가면서 말했습니다. “애야 너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엄마가 너를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아가독수리는 그제야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아가독수리를 데리고 독수리둥지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시가 많고, 닭장처럼 푹신하지도 않네?” 아가독수리는 날마다 엄마 독수리가 물어다 주는 고기를 먹으며 무럭무럭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독수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예야 이제 밖에 나가서 한 번 날아보아라.” “아니요! 엄마 나는 여기가 좋아요” 그러자 엄마독수리가 날개를 새끼 위에 너풀거립니다.


[신 32:11-12]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엄마 솔개가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새끼 위에 너풀거립니다. “알았어 알았어! 날아 볼께!” “아가야 힘껏 날아보아라 너는 할 수 있다.” 아가 독수리는 힘껏 날아 보려 했지만 얼마 날지 못하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집니다. 땅에 추락하기 직전 어느새 어미새가 날아와서 힘 있는 날개로 탁 받아서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거 봐 나는 날지 못한다고 했잖아!” “아가야 그래도 한 번 더 해 보거라!” 엄마독수리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가 아가 독수리를 떨어뜨립니다. “ 아 엄마가 나 죽인다.~~”  또다시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데리고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서 사정없이 땅바닥으로 떨어뜨립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합니다. 새끼가 제 힘으로 날 때까지 이런 훈련은 계속 됩니다. 이렇게 해서 독수리는 창공의 왕의 되는 겁니다. 


 우리들이 때로는 "이제는 다 죽었다. 다 틀렸다."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사람이 절망의 순간에, 더 이상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되지 않음을 선언할 때 하나님은 그때 새로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은 땅에 떨어진 모이나 주워 먹는 이나, 부둣가에 버려진 생선 조각에만 몰두하는 갈매기, 뒷골목 담장아래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 날아다니는 참새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땅의 작은 일들에 올인 하지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작은 어려움에 무릎 꿇지 않고 당당히 극복하며 푸른 하늘 창공을 나는 독수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람 부는 인생, 그것도 거센 역풍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바람이 필요하다고 보실 때가 있습니다.


♥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로 192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34년을 프린스턴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영감과 권위≫와 같은 그의 책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다수는 1876년에 그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시 스물다섯이던 그는 애니와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맹렬한 풍랑 속에서 애니는 번개에 맞았고, 영구적 불구가 되었습니다. 워필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 동안 간호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결혼 생활 내내 두 시간 이상 집을 비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39년 동안 인내와 성실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워필드는 [로마서8:28]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그 분이 통치하시므로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로부터 오로지 선한 것들만을 수확해야 한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 상황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최선입니다. 여기서 나에게 복을 선택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안락한 곳, 편한 곳, 아무런 간섭이 없는 곳을 소원합니다. 누구도 나를 흔들어 깨우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과 고통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원했지만  이 땅에 그런 곳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세상이 싫어 수녀가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사람 만나지 않고 고요한 묵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으나 거기도 사람이 있었고, 문제가 있더랍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우리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어디에도 내 뜻을 이해해 주고, 맞추어주고, 받들어 주는 곳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금자리를 찾지 마세요.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고 세상을 극복해야 하고,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 산헤드린의 공회원으로 당대 최고의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의 보금자리를 헌신짝처럼 내 던졌습니다. ○ 베드로에게 그의 작은 배와 그물은 그리고 그의 고향은 그의 보금자리였습니다. ○ 모세에게 바로의 궁전에서의 부귀, 영화, 권세는 그의 보금자리였습니다. ○ 예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나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면, 자신의 보금자리를 고집하고 안주하려 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삶은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히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1)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창공을 나는 새입니다. 폭풍이 밀려올 때, 대부분의 새들은 대피하든가 움츠리지만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폭풍을 향해 난다고 합니다. 거센 폭풍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폭풍을 맛서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독수리는 사람이 갈 수 없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새입니다. 독수리는 상승기류를 이용할 줄 압니다. 이것이 독수리의 비행을 거의 무한대로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2m가 넘는 날개를 활짝 펴고, 상승기류를 타고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어떤 독수리는 6,000m 무중력 상태까지 날아 오른 답니다. 그리고 그 긴 비행시간 동안 거의 날갯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여 캄캄하고 비가 몰아쳐도 비행기를 타고 그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맑고 파란 하늘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면 우리 인간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창공을 날아 올라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신 32:13-14]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이 모든 복이 나의 복이 되기 위하여 그 분의 품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계명과 율례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를 결단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아름다운 일꾼으로 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