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15

요일2:7-17 <성숙한 신앙으로>

요나의길 2015. 12. 3. 08:21

요일2:7-17      <성숙한 신앙으로>      2015. 4. 19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지속적으로 성숙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12절에 <자녀> 13절에는 <아비> 다음에 <청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신앙의 가지 연령, 영적 연령을 가리킨다고 수가 있겠습니다.


1. 먼저 `자녀들아' 이는 아이의 단계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아무나를 향해서나 아버지라고 부를 있습니까? 더구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자녀가 되었다고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아이의 신앙입니다. 예수를 믿어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의 믿음이 아이의 신앙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지식이 부족하고 분별력이 없고, 자제력이 결핍 되어 있습니다. 쉽게 함정에 빠지고, 유혹에 넘어집니다. 아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신앙이 견고하지 못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를 알아가는 삶입니다.

10 20년을 중국에서 생활해도 시간을 내서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없습니다. 중국에서 정상적으로 적응하여 살기 힘이 듭니다. 잘 배우고 신뢰가 쌓이고 확신이 생김으로 말을 해도 확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숙하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와 갈등으로 가득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같이 너희에게 말할 없어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들을 대함같이 하노라

[고린도전서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린 아이같은 신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기와 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인 사실은 알지만 이기심과 명예욕, 자기중심의 생각이라는 껍질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유치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 그리고 다음이 아비들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순서상 청년의 단계가 아닌 아비의 신앙을 말합니다. 성숙한 어른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비들의 특성은 어떻습니까?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 말은 믿음이 감정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막연한 하나님 누구나 의미 없이 부르는 하나님이 아닌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주관하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으로 안는 것입니다. 남들이 전달해 하나님이 아니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앎이란 보통으로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를 알듯이 깊은 교제의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어른과 같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확실한 변치 않는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니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바울은 내가 의뢰한 그분을 내가 안다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이 영적인 면에서 아비들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성숙한 삶의 자리에까지 이르기를 바랍니다.

 

3. 번째 단계가 청년들아입니다. 청년은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무한한 변화와 성취의 기회가 주어져 있는 시기입니다.

[13b]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청년의 신앙은 죄와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신앙입니다, 아름다운 청년의 신앙은 영적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항상 말씀을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고 말씀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 삶에 적용할 줄을 알고, 마침내 말씀의 인도를 통해서 신앙의 영적인 승리를 거둘 아는 신앙입니다.

 

현대의 많은 청년들이 삶은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자아를 상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는 인간의 인격보다 물질이 더욱 숭상 받는 시대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평생을 밤새도록 시험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십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취직을 하였는데, 고작 돈을 세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청년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남들처럼 어디가면 월급이 많더라 어디가면 편하더라. 어찌하면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겠더라. 세상에 성공과 즐거움에 마음을 두고 살겠습니까? 이런 시대에 청년과 같은 신앙인은 무엇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결국 청년이 바른 뜻을 품지 않으면, 인생의 무의미로 시간을 허비하고 후회하는 삶을 것입니다.

 

[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 좇아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것이라

[요한복음13:34]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제일의 뜻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권면이 아니라 계명입니다. 계명은 해도 되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핵심 요지는 마음을 사랑에 두라는 것입니다.

계명의 대표인 십계명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하라 것입니다. 다섯째부터 열째까지는 이웃을 이렇게 사랑하라 했습니다.

한번은 서기관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그때 예수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마음을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계명이 없느니라 대답 하셨습니다.


[17]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나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열심을 갖기 원하나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의 삶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기보다는 날마다 기분 마음을 맞추어 주지 않는다고 마음을 상하여 때가 많은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적 단계는 어떤 단계에 있습니까? 영적인 신앙의 나이는 살쯤 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