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2:1-11 <당신은 왕이십니다>
요한복음12:1-11 <당신은 왕이십니다> 2018. 7. 1
어느 날 농부는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하여 길 떠나기를 결심하였습니다. 아내에게 말합니다. “나는 항상 당신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을 거요. 당신도 약속해 주겠소?” “네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 농부는 집을 떠나 작은 마을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자신의 모든 월급을 저축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자기가 돌아가기까지. 주인은 정직하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고, 착한 사람이었고, 남이 갖지 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20년이 되어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번 돈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자네는 열심히 일했고 많은 돈을 저축했지~ 그런데 제안하나 하겠네! 자네의 돈을 가져가든지 나에게 3가지 조언을 듣던지 생각해 보게”남자는 고민하다가 상사의 조언을 듣기로 했습니다. 주인은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첫째로 인생에서 지름길을 택하지 말게 그러면 대가를 크게 치르고 어쩌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네~” “둘째로 과하게 호기심을 가지지 말게 과한 호기심은 죽음을 가져 온다네” “마지막으로 화가 났을 때 절대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네” 그리고 상사는 빵 3덩어리를 주며 말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빵은 가는 길에 먹고 세 번째 빵은 집에 가서 먹게나!”
농부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묻는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농부는 말했습니다. “20년의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가는 길이 20일이나 걸린답니다.”여행자는 말했습니다. “제가 5일 걸리는 지름길을 알려 주겠습니다.” 농부는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가다가 상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농부는 지름길 대신 긴 여정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상강도의 위험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농부는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자고 있는데 큰 울음소리가 들려 잠이 깨었습니다. 궁금해서 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하지만 상사의 말이 생각나서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집주인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에는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오지요. 그래서 집집마다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있지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농부는 20일이 걸려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집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부푼 마음에 창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에 충격과 분노가 일었습니다. 아내가 다른 남자를 껴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증오심으로 달려가서 둘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 때 상사의 세 번째 조언을 기억했고 자신을 억제하고 그 밤을 헛간에서 잠을 잤습니다. 해가 떠오르자 진정하고 생각했습니다. 상사에게 돌아가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고 아내와 그 남자를 죽이지 말자. 하지만 돌아가지 전에 아내에게 나는 항상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말해야겠다. 문을 두드렸을 때 아내가 나와서 반갑게 그를 안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칠게 밀어내며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당신을 믿었는데 당신은 나를 배신했다.” “아니예요!” “나는 어제 밤에 당신이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보았소.~ ” “그 남자는 우리의 아들이예요. 당신이 떠날 때 나는 임신 중이었고 우리 아들은 지금 20살이 됐어요.”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아내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빵을 먹으려고 세 번째 빵을 쪼갰을 때 그 안에는 그가 번 돈과 이자가 들어있었습니다. 인생은 고난과 유혹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안전하게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믿음과 절제입니다.
◯ 지금 제주도에 많은 예멘也门의 난민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이 순순한 난민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불법 취업을 위해 들어온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문제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저는 facebook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인권을 말하고, 차별 없이 대하라. 사랑과 자비를 말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아마 이들에게 자신의 돈을 조금이라도 들여야 한다고 하면 闹翻天 난리부르스를 칠 것입니다. 의를 말하고, 평등을 말하고, 인권을 말하는데 국가의 세금으로 좋은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자신에게는 조금도 해가 될까. 짐이 될까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사람은 크게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참 이중적입니다. 사람들은 돈에 관심이 많습니다. 민감합니다.
◯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을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을 때, 가룟 유다는 화를 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는 단지 유다만의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데….”약 인민폐 10만원입니다. 이런 귀한 재물을 많을 사람을 돕는데 쓰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가룟 유다는‘왜 이렇게 낭비하느냐?’올바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견해를 묻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녀를 가만 두어라. 그녀가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하나? 도무지 이해가??
◯ 또 하나의 인물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님의 계신 곳을 알고 몰려왔습니다. 예수님만 보려고 온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계신 곳이 알려졌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했습니다. (10,11) 이제는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 대제사장들은 왜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의 사건]에 놀라지 않는 걸까요? 왜 그들은 믿지 않는 것일까요? 아마 그들에게‘나사로가 살아났다. 예수님이 이런 능력이 있다 없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던 모양입니다. ◯ 그들의 관심은 안식일을 범하는 예수님, 하나님의 율법이 경홀히 여김을 받음에 대한 분노, ‘그 결과 하나님이 또 다시 이스라엘에 노하실 것이다.’ 라는 확신, 자신들에게서 멀어지는 군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짓선지자이고, 백성을 미혹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자이며, 국가를 위태하게 하는 자’였습니다. ◯ 이런 생각들을 우리는 [독단]이라고 합습니다. ◯ 사람들은 단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어 하는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다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 회심이전의 바울이 그랬습니다.
◉ 연변지역에 간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교회 건축에 매달렸습니다. 10~20명만 되어도 작은 교회를 10만원씩 들여 300여 건축했습니다.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 ‘나는 이런 교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많은 교회를 짓겠다. 자신의 온 재산을 드리고, 자신의 온 재능을 드리고, 온 힘을 다하여 교회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남다른 열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지금 주의 일을 하고 있으므로 나의 일은 거룩한 것이고 좋은 일이다.”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자신의 독단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 사탄은 때때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유혹을 합니다. “네가 천하만국을 얻기를 바라는가?”그리고 무엇을 요구하였습니까? “나에게 경배하라.”입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 우리는 늘 주님의 뜻을 위하여 라고 하지만, 자신을 속입니다. 내 마음 내 뜻대로 합니다. 이것은 自欺欺人입니다.
◯ 주님은 많은 방해자가 있고 시험하는 자가 있었으나 여전히 주님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이 세상의 창조자이심을 믿습니다. 그 분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일의 시작도 끝도 주님께 있고,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정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상징으로, 잔치의 사건, 기름부음의 사건, 어린나귀를 타심으로, 여러가지 말씀으로 자신이 만왕의 왕이심을 보이시고, 자신에게 있을 십자가를 말씀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되어지는 모든 상황을 보고 계셨고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의 잘못된 행동을 이용하셨습니다.
● 그리스도 대관식 : 호산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 사건을 신학자들은 흔히 [그리스도 대관식]이라고 부릅니다. ◯ 오늘 나사로의 집에서는 큰 잔치를 벌어졌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잔칫집에 가신 기록이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가셨고, 바리새인의 식사초청에 가셨고, 마태가 자신의 집에서 베푼 잔치자리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잔치는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한 잔치 자리에 손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오늘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 구약의 시대에 왕들이 왕으로 등극하며 성에 입성할 때 겸손의 왕을 상징하여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였습니다. ◯ 구약시대에서는 제사장, 선지자, 왕을 임명할 때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 그 직무를 여기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이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이미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영적으로)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써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현장에서 한 여인을 통해 기름부음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마가복음의 기록과 요한의 기록에 다소 차이가 있는데, 마가의 기록에는 마리아가 향유병을 깨뜨려 전부를 부은 것처럼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남은 그 것을 간직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향유는 두 가지로 쓰일 것인데 ◊하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하여 쓰인 것이고, 다른 또 다른 용도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남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향유를 붓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장차 자신의 죽음과 장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향유를 잘 보관하여 남겨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 그녀는 결심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옥합을 열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향유를 부었습니다. (마태14:3) ◯ 지금 마리아는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고백입니다. ◯ 마리아는 주님의 큰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정과 자신의 인생에 생명을 가져다주신 분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 어떤 것을 주님께 드려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경배,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 주님이 방문했을 때 언니 마르다는 늘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마리아는 주님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인 여인이었습니다. ◯ 그녀는 모든 것에 감사했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었습니다. ◯ 저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고난을 직감直感하여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시험 산에서 주 예수께서 사단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4:10]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주님의 길에 동참하는 작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 주님은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많은 일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시는 길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 마리아에게는 자기부정이 있었습니다. ◎ 마리아는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오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욕을 먹는다 할지라도 자신을 드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쁘심을 얻고 만대에 기억하심을 얻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사람이 다른 사람을 높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두들 손가락질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 여인이 자신의 머리털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은 모습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을 낮추는 행동은 어느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 마음은 주님만이 아셨을 뿐입니다.
◯ 내게 원한을 가진 자와 동행할 때 하나 되는 길은 내가 스스로 나의 것을 비우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 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남편은 아내에게 지는 것이고, 아내는 남편에게 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죽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것처럼 나 자신을 깨뜨릴 때, 자신의 가장 귀한 자존심을 깨뜨릴 때에야 남을 높일 수 있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렸더니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베드로는 입으로 고백했지만 이 여인은 행동으로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