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2:1-13 <생수의 근원>
예레미야2:1-13 생수의 근원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자신이 전하는 바가 어떤 개인적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계시로부터 받은 말씀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2절]말씀에“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하라.”
여기서 특별히 “귀에 외쳐 말하라”라 고 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변명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전달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 오늘날 법원이 중요한 내용을 확실하게 전달하고자 할 때, 배달증명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는 요시야시대로 남 유다가 멸망 직전까지인데 그 시기, 유다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해져 있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의 마지막 선정을 베푼 왕인데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킬 마지막 기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소망이 없게 될 것입니다.
◯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우리와도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을 잊은 시대입니다. 지금 젊은이의 5% 만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거짓과 음란, 탐욕과 미혹되어 막혀 있습니다. 이 나라의 풍요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고 살아갑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빛 되시며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분명하게 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소로 전해져야 합니다. 부패한 심령, 어둡고 혼탁한 삶, 멸망으로 치닫는 이 세대가 정결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2절]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 신약과 구약은 일관되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결혼을 통한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사 54:5 ; 호 2:19-20 ; 요 3:29).
◯ 곧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갈 때 신부가 신랑을 좇듯 사랑과 인애로 하나님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사실 출애굽기부터 민수기까지를 보면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믿음과 신뢰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동안의 과정을 첫사랑과 결혼 때처럼 인애와 사랑이 넘치는 시기로 그들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크신 권능으로 끌어 내사 목자처럼 친히 앞서 가시며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안전하게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 낮의 햇볕이 그들을 상할까 구름으로 덮으시고 밤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 하늘에서 만나 양식을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고,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그들이 수고하지 않았음에도 풍족한 양식과 보화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 이러한 은혜는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변함없어 계속되었습니다.
◉ 이러한 점에서 신랑 되신 주님은 모든 점에서 완벽하게 우리에 대한 사랑과 존중, 헌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세상과 짝한다면 그것은 신부가 외간 남자를 좇는 것과 같이 가증스런 일업니다. 이는 신랑 되신 주님은 물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도 원수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입니다.다.
◯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처럼 아름답고도 귀한 하나님과의 혼인관계를 망각하고 저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신랑이요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좋으며 이방풍속을 따라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짓밟았던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떠났음으로 해서 그들은 축복으로 받은 가나안 땅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일까지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 하나님은 자신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자, 감사하며 예배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 축복된 미래를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2:7,8]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선물로 받은 땅을 더럽혔다 말씀하시며, ◯ 그중에 제사장과 율법을 다루는 자들, 관리와 선지자들을 먼저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제사장, 선지자는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목사와 신학교수들을 말하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직분자들입니다. 관리들은 정치가들로 하나님을 거역했다. 이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았다 했고,
◯ 이들이 “바알(巴力)의 이름으로 예언했다”, “무익한 것을 따랐다.” 라는 말은 세상의 ‘풍요의 신’ 을 섬기고 바알을 따랐다. 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안위와 행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의지하고 힘썼다는 말입니다. ◯ 물론 모든 목회자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 하나님의 축복을 아는 사람은 생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외쳐야 합니다.
[10절]에“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깃딤’이란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을 가리키는 것으로 서편세계를 상징합니다. ‘게달’은 이스라엘 동쪽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하는 유목민족으로 동편세계를 상징합니다. 이 둘은 이스라엘 밖의 이방세계를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도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방족속들도 헛된 자기 신들을 배신하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살아계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 섬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느냐? 하는 책망입니다.
[11절]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여기서 또 다시‘무익한 것’이란 말을 하는데 ‘바알(巴力)’ 과 같은 이방의 우상을 ‘풍요의 신’가리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섬기는데, 어느 순간 이를 이방의 헛된 우상들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한 번도 하나님을 버린 적은 없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기까지 성전을 유지하며 외형적으로나마 지속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한다고 했는데 어느새 그들의 제단에는 바알신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비와 바람의 신‘풍요의 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를 우리는 혼합주의(混合主意)라고 부롭니다.
◯ 우리는 십계명의 첫 계명에 유의해야 합니다. “너희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물질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때로는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숭상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시기 나게 할 정도로 물질의 신을 섬깁니다.
[1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두 가지 죄와 실수가 지적되어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 그렇다면 여기서‘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중동지방에서 물을 가두기 위하여 웅덩이를 파고 역청을 바르는데, 때로는 지진으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웅덩이가 터져 물이 새고 말라버립니다. 사람은 힘들여 풍요를 꿈꾸며 웅덩이를 파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실수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