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1

사도행전 10:36-43 <죄사함을 통한 구원>

요나의길 2021. 6. 19. 21:16

사도행전 10:36-43   <죄사함을 통한 구원>

◉ 알파과정의 창시자인 니키의 아버지가 믿음에 대한 의심을 갖고 사망하였습니다. 니키는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마음에 걸렸는데.... 아버지가 사망하고 10일 후에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니키에게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걸 느꼈다 합니다. 그 때 로마서를 읽다가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믿음이 없이 하늘로 가신 아버지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니키에게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건너방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니키를 부르며 같은 말씀을 말하더랍니다.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아내도 같은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본문은 성경 여기 두곳에서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일 뒤 성경공부 모임에서 똑같은 [3:10]말씀을 읽고 나누게 하셨고 그래도 혹시나 우연인가? 하는 니키가 아침에 출근 길에 지하도에서 나오는 데 앞에 있는 큰 건물의 전광판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절의 보았답니다. 니키는 이를 통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구원하신 확신과 기쁨을 얻었다 합니다.

○ 저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이 말이 로마서와 사도행전 성경 두 곳에만 쓰이고 있음이 흥미로웠습니다. 로마서는 아는대로 사도바울이 그 저자이고, 그리고 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이 두 사람이 공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외의 구약에서 인용구를 찾을 수 없어서 유사본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열왕기상 18: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 이 구약의 말씀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출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독창적인 어구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성경이 <주의 이름의 능력>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병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주의 이름의 능력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사도행전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 사도행전 10장에서 말하는 <죄사함의 구원>에 대하여 말한 모든 선지자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상응하는 구약의 본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이라는 이 말은 어디서 유래한 말인가? 언제부터 율법이 변하여 예수그리스도가 된 것인가? ○ 사가랴와 다윗 이 두 사람은 모두 죄사함의 복을 말했습니다.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그리고 최초로 말한 사람은 사가랴가 처음이라 할 것입니다. 사가랴는 이 말을 하면서도 ‘선지자가 말한’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시편 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편에서 우리는 다윗이 <죄가 가려진 자의 복>을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가랴가 말하는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다윗이 말하는 <죄가 가려진 자의 복>은  그 무게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가랴가 말하는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실패 이후에 오시는 예수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구약 시대 다윗이 말하는 <죄가 가려진 자의 복>이란 율법 이행을 통한 것일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정하지 않은 하나님의 주권적 자비일 수도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제시하는 율법이 아닌 죄사함의 근거가  될만한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예레미야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에 선지자를 통해 보여 주신 것은 여호와의 구원의 날에 있을 새언약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분명히  <죄사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의 누구도 새 언약으로서 <죄사함을 통한 구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율법의 회복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율법의 회복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죄사함을 통한 구원>은 감추인 비밀이었습니다. 이제 말세에 사는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에베소서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제사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의 예표입니다.

[레위기 4/30,31]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 헌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니라. 또 그는 그 모든 기름을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기름을 취하는 것같이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 주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용서받으리라.

구약시대에는 죄 있는 백성은 염소나 양을 끌고와 안수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단 밑에 쏟은 다음 모두를 번제단에 불사릅니다. 이런 속죄제를 마치고 제사장은 속죄를 선포합니다. 자신의 죄를 죄 없는 어린 양에게 전가한 것입니다.

◉ 제사의 ‘祭’ 이 글자는 月+又+示 이 세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자입니다. 月은 고기육에 해당하는 글자이고 又 는 화합과 교제를, 示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단과도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양을 제사하여 화목을 이루는 것이 제사입니다. 제사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인류 존재하면서부터 하나님은 제사라는 방식을 통해 구원을 가르치고 계셨고, 마지막 날에 그 어린양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 성육신은 넌센스나 황당무개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작정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간의 대표 되심>과 <무죄한 존재>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인간이 되어 오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죄하신 인간의 대표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갈라디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 하나님 아버지가 예비하신 구원의 길은 제사도 아니요 율법도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결국 구원은 나의 율법적인 노력이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만들어 놓으신 구속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톨스토이는 예수를 영접한 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은혜 뒤에 찾아온 놀라운 변화를 간증한 것입니다.

 

○ 인류는 온갖 과학 문명과 정치적 이념과 사회적 이론으로써 유토피아를 꿈꾸고 노력하지만 그 종국은 결국 파멸과 파괴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죄 중에 태어낳기 때문입니다. ○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 처하였습니다. 이 땅의 인생에 남은 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의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열, 다툼, 미움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은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해결의 단초이며,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