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마태복음 12:38-42 <표적을 보이라>

요나의길 2024. 10. 27. 22:54

마태복음 12:38-42   <표적을 보이라>

[마태복음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표적’은 어떤 인격이나 사물을 다른 것으로부터 두드러지게 구별해 주는 표시를 말합니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이들을 책망하시는데 이는 그들이 표적을 구하는 이유가 순수한 동기에서가 아니라 예수를 시험코자 하는 불순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진짜 메시야일지도 모른다는 궁금증 때문이 아니라, 메시야가 아닐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에게 표적을 구했던 것입니다.

유튜브에 어떤 산중 암자에 혼자 사는 비구니 여승이 있는데 그 암자 주위를 너무 아름답게 꾸미고, 그 여승이 너무 착하고 선하다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때로 목사와 신부 기독교인들도 찾아와 대화도 하고, 힐링하고 돌아간다 합니다. 목사 기독교인들이 쉬었다 가는 것은 좋은데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

○ 요즈음 기독교인들이 어디가도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부딪치기 싫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믿음이 있다는 많은 기독교인에게도 떨치기 힘든 의혹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육체로 오신 예수가 어찌 신이란 말인가? 혹시 ‘아닌 것’은 아닌가? 의혹입니다.

[마태복음 12:39]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 여기서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행한 표적’이 아니라 ‘예표가 된 요나’를 의미합니다. 즉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옴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셨음을 증명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요나의 사건’이 죽음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에 예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구약성경이 증거하고 부활이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규정하십니다. 여기에서 ‘음란하다’란 말은 ‘간음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단어를 사용하신 것일까요? 저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간음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믿음이 연약해지면 눈에 보이는 이적을 찾습니다. 눈에 보이는 표적으로 자신들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하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유치원 신앙’이라 합니다. ○ 많은 유대인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음에도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

[마태복음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한글 개역성경에 ‘니느웨 사람들’이라는 문구에는 ‘이 세대와 함께’라는 문구가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여기 ‘이 세대와 함께’는 예수님 당시 세대의 사람, 즉 예수 이후 회개하여 자녀 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심판 때, 종말 부활의 때에는 ‘니느웨 사람들’이 ‘예수님 이후 회개한 사람들’과 함께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하리라는 말씀입니다.

○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는 이스라엘에서 먼 북방의 나라입니다. 그들은 역사상 너무도 잔학한 종족들이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다고 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영적으로 회개한 이방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 때에 세상을 정죄하는 ‘니느웨 사람들’이 누구인가? 너무 문자적인 해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한 유대인들과 함께 심판하는 영광의 보좌에 앉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했을 때

[마태복음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주님은 우리를 세례 요한보다 큰 자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을 확인하고 부활의 증거를 확실히 본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태복음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이는 [열왕기상 10:1-13]에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 방문한 사건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스바’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hepus)에 의하면 지금의 (埃塞俄比亚)에디오피아라고 합니다. [창세기 10:7]에는 민족의 분포를 보면 ‘스바’라는 인물은 ‘구스’의 아들로 나오는데, 구스는 오늘날 에디오피아의 조상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솔로몬에게 왔던 스바 여왕은 에디오피아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본문에서 ‘지혜’라는 말 ‘소피아’를 ‘지식(knowledge)’과 구별하여 단순히 ‘지혜로운 말’로 번역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 ‘소피아’의 본래의 넓은 의미를 고려할 때, 본문을 더 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즉, 스바에서 온 여왕은 단순히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만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모든 지혜를 듣고, 보고, 배우기 위해서 그에게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남방의 여왕’이 왔을까요? 이들은 유대 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얻으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최상의 축복을 누리는 이스라엘을 보고 자신들의 나라에 그 문명을 전파하였을 것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仿佛是主抓住并把它扔下去的这个地方。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现在什么都看不见。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看到的只是固执地斑驳的黑暗。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只有被黑暗、贫穷、陋习所束缚的朝鲜人。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모르고

他们不知道为什么会被捆绑,

묶여 있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也不知道被捆绑就是痛苦。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给不知道痛苦地人剥去痛苦地话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先怀疑再发火。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看不出朝鲜男人们的心思。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也看不出这个国家朝廷的内心。

장옷을 쓰고 다니거나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穿着长披风衣或坐轿子的女人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我也在想,如果永远没有机会,该怎么办。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看不到朝鲜的心意。

 

○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이 시는 사실 2010년 김옥춘 시인이 쓴 시가 ‘누군가의 기도’로 세상에 퍼진 것입니다. 이렇게 여인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어린아이가 천대받고, 인구의 절반이 노비로 살았던 이 땅에 광명이 찾아온 것은 선교사들이 전한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 지금도 세상의 사람들은 솔로몬을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왕, 지혜의 소유자로 칭송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천상천하 지혜의 원천이시며, 우리를 죽음에서 구속하신 사랑이십니다. 예수 당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나보다도 솔로몬보다도 더 위대한 선지자, 지혜자, 수천 년 역사 이래 기다려온 메시야이건만 그를 눈 앞에 두고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