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5

데살로니가전서 5:12-18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요나의길 2025. 3. 16. 18:05

데살로니가전서 5:12-18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12-15절은 교회 안에 성도들의 바람직한 상호 관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바울은 그 첫째로 교회 안에 영적 지도자들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말합니다. 교회 내의 영적 지도자들은 교회의 기둥이 되어 섬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영적 지도자의 하는 일은 주님의 맡기신 일이요,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입니다. 물론 모든 성도의 목자 되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셨고,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으로 주셨는데, 오늘날 신약의 시대에는 교회 안에 ‘영적 지도자’가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 성도는 영적 지도자들과 마음을 같이하며 그들의 수고로운 사역을 이해하고, 고맙게 귀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영적 지도자라고 모든 면에 언제나 옳고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 혹은 주님의 제자 베드로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단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들을 세우시고, 일을 맡기셨고, 하나님의 인정하신 지도자라는 점만으로도 존경과 사랑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 영적 지도자로 인정된 사람과 더불어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는 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들으며 믿음이 성장하고, 소망을 함께하는 까닭입니다.

○ 신자가 ‘당신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 , ‘당신은 당신 나는 나’ , ‘나는 나의 목적과 일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여 한마음, 한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모래알과 같은 만남이라 할 것입니다. 뭉쳐지지도 않고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한배를 타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행자와 같습니다. 지나가며 보이는 광경을 함께 보고, 즐거워하고, 인도하는 사람이 말하는 주의 사항을 듣고, 그 의미를 배우며, 향하는 목적지를 기대하여 나갈 때, 우리는 마지막까지 여정을 무사히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 예수를 믿는 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때 그는 생각했습니다. 과연 나를 교수라고 말하는 게, 맞는 대답일까? 조만간 나는 은퇴하고 교수직을 떠날 것이다. 사실 지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일도 교수직이라 할 수 없다. 나는 더 많을 시간을 손주를 돌보며, 사람을 만나고, 정원을 돌보는 일에 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봉사하는 일을 생각하여 “나는 교회 집사입니다.” 대답하였답니다. 주 예수를 한 주로 섬기는 신자에게는 목회자의 뜻과 신자의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 [13절] 바울은 “너희끼리 화목하라” 하였습니다. peacemaker가 되라. 관계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즉 영적 지도자를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화목하여야 합니다.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란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헌신하여, 주님의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의 큰 문제는 나와 함께 예배드리는 옆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의 부담 없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역,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목회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믿음 안에서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바울은 형제들에게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개역개정) 하였습니다. ‘규모 없는 자들’이란 마치 군대에서 대열을 지키지 않고 이탈한 병사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군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바, 규율을 지키지 않고 무질서하거나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화목과 질서를 허무는 사람’입니다. 책망하라 했습니다. 사랑이란 무조건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책망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주의할 것은) 공동체 내에 허물이 있는 자들에 대해 우리가 오래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이 생각이 그것밖에 안 되는가?” 하며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또 낙심한 자, 영적으로 연약한 자가 우리의 교회에 올 때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우리 공동체에 저런 연약한 자를 보내주셨는가?” 외면하기 쉽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는 우리 마음속에 판단과 정죄의 마음이 있는 까닭입니다. 내 안에 “나는 저들보다 더 거룩하다. 더 강하다.” 하는 우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의 허물 부족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12-15절이 공동체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성도 간에 교회 지도자와의 관계에 있어 바른 자세를 말하고 있다면 16-18절에서는 성도들 개인 일상 신앙생활을 위한 삼대 수칙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18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즉, 이 말씀은 바울의 권면이기에 앞서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제가 발견한 점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평범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결코 비일상적이거나 기이한 것, 특이한 것, 새로운 일을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일을 일상적인 삶을 내려놓고 열정적으로 주님께만 매달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 감당하기 무거운 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내게 기적이 일어나고, 내게 능력이 임하고, 영적인 깊이에 이르기 위하여 특별기도, 철야기도를 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특별기도를 드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10:6]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먼데 하나님도 아니요. 깊은 데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은혜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는 믿고 맡긴 자에게 오는 평강입니다. 믿고 맡긴 자에게는 평강이 찾아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믿고 맡겼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이루어질 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 바른 신앙생활을 위하여, 할 일은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우리는 Q.T라고 합니다. 30분의 시간이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돈과 시간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시간도 드리기를 아까워합니다. 우리는 전철 안에서, 혹은 틈만 나면, 잠자리에서도 너무 많은 시간을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잡다한 지식을 구하고, 무익한 만남으로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지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 선택의 문제, 습관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