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17:1-11 <아론의 지팡이>
민수기17:1-11 <아론의 지팡이>
고라는 레위 자손입니다. 고라를 중심으로 250 명의 족장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민수기 16:3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모세와 아론의 지도권을 정면으로 부인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14700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오늘 17장은 모든 지파 중에서 왜 모세와 아론이 종교, 정치의 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과 자격을 말하면서 지도권에 대한 부정과 불순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12지파의 족장의 두령에게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지팡이에 족장들의 이름을 각각 썼습니다. 레위 지파의 대표자로서 아론의 이름도 지팡이에 기록하였습니다.
[민17: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민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12개의 지팡이 가운데 레위 지파를 대표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난 것입니다. 바싹 말라 버린 나무 막대기에서 하루 만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리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하셨고 열매 맺는 신앙으로 인정하셨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아론에게 대한 권위의 인치심입니다.
● 하나님은 하루 사이에 이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오 창조자이십니다. 생명과 사망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생명이 있으므로 소망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따르고 그 곳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있고 많은 일을 할지라도 나의 삶에 기쁨이 없고 변화가 없고 활력이 없다면 마른 나무지팡이와 같은 신앙이라 할 것입니다.
나는 마른 지팡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지팡이인가? 여러분은 생명이 꽃피는 나무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정받을 만한 사람인가요? 내가 마른 지팡이를 들고 이것이 하나님의 지팡이다 하나님의 지팡이다 외친다고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므로 생명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겨울이 지나고 봄철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살구꽃입니다. 살구꽃은 <부활의 생명>을 예표 합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한 자에게,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생명이 있고, 변화가 있고,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믿음이 있다 말하지만 실제로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정받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날 때는 믿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지신은 믿음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믿음으로 살리라!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말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잠자고, 배반하고, 내 뜻대로 하는 때가 많습니다. 반석 같은 믿음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뿌리 없는 믿음 열매 없는 믿음입니다.
고라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쓸 만한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는 제 욕심대로 행하는 사람이었고 머리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고 발람이 그랬습니다. 억지로 시키는 대로 하였지만 잘난 그가 결국에는 물질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지식과 열심히 있었으나 하나가 되지 못했고 열매 맺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믿음이 되려면 자기 안에 < 쬐깐한 믿음이 있다고, 은사가 있다고, 내가 하나님을 좀 안다고 >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이 있고, 결실까지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일군 쓰임 받는 일군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전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모두에게 존경받을 만한 흠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 부부가 함께 가족의 지지를 받는 가정이라야 할 것입니다. ○ 거기다가 하나님의 세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쓰임 받지 못한다면 소용없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왕과 제사장 선지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는 누구나 <만민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각자 기도하고 예배하며 봉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만민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고, 자유인이 되어 시대에 살고 있는데 슬픈 사실은 자신을 주장하고 자기 스스로를 추천하고, 제 마음대로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문제는 나아닌 아무도 다른 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고 내가 노력한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권위에 속하여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왕이고 제사장이고 선지자이지만 동시에 이 조직 사회 안에는 질서가 있고 권위가 있습니다. 나라에는 위정자가 있고, 가정에는 부모가, 학교에는 교사가 있습니다. 이는 모두 위로부터 온 권위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의 권위가 상실된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모, 교사, 지도자, 어른, 모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권위 있는 일꾼이 되려면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 정치하는 자의 권위, 부모의 권위,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진정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지, 국가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는지,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 내가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할 때 자식이 나를 공경하듯이 교회 지도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정과 권위를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교회 안에도 직분이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목회를 하자면 교인들 가운데 세상에서 존경받고 더 많은 학식을 가지고 지위를 가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모든 사람에게 설교를 시키고 교회의 직무를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 있다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직무를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택정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 초대교회는 12번째 제자로 맛디아를 기도하고 제비뽑았고
●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 7제자를 선출하여 봉사의 직무를 맡겼습니다.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고 가르쳤습니다. 배나 존경하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 권위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공경의 갑절로 공경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라의 법을 존중하고 위정자를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교회의 질서를 알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존중했습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바닷가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행20:18-19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눈물과 겸손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진정한 권위는 자기 스스로를 세우고 높여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이고 낮추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나니 라고 했습니다. 등불을 켜서 높이 매다는 것은 주인이 하는 일입니다. 내가 밝은 등불이 되어 빛을 발할 때 주인이 나를 등경위에 매달 것입니다.
◎ 한국에서는 장로를 선출할 때마다 교회가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장로로 뽑힌 사람은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되지 못한 사람은 부끄럽게 여기고 교회를 떠나버린다든가 아니면 무수한 원망과 많은 이유를 들어 교회분규를 일으킵니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금산교회를 최초에 세웠던 조덕삼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이자익은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김제에 도착하여 최고 부자였던 조덕삼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머슴에게도 쌀밥 주는 것을 보고 감동한 그는 머슴으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이자익은 자신보다 15살이 많은 주인 조덕삼의 마부(馬夫)가 되어 성심성의껏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테이트(L.B.Tate)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주인과 함께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조덕삼과 이자익은 함께 집사로 임명받아 섬기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여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머슴 이자익이 선출되었습니다. 사실 조덕삼은 지역의 부자일뿐 아니라 금산교회의 설립자요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흠이 없고 존경받는 자였으며, 더구나 이자익을 키워준 사람이나 다름없고 나이도 더 많았습니다. 당시 교인들 가운데 여인이나 천민들이 많았기에 머슴 이자익에게 더 표를 주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장로는 교회를 책임질 뿐 아니라 설교도 하는 자였기에, 집사 조덕삼은 장로 이자익에게 함부로 하대할 수가 없고 그의 설교를 들어야 하며 머슴을 도와 교회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투표결과가 발표되자 교인들은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걱정하며 술렁거렸습니다. 그 때 조덕삼 집사가 일어나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조덕삼 집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오히려 이자익 장로를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머슴이 먼저 장로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첫째가 되었습니다. 후에 장로가 된 조덕삼은 이자익 장로를 평양으로 보내 목사가 되게 하였고, 1915년 금산교회로 청빙하여 담임목사로 깍듯이 섬겼습니다. 후손들이 계속하여 장로가 되어 그 교회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그이 손자가 바로 국회의원을 지냈던 조세형장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실족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그의 누이를 알고 아버지를 안다. 그가 난 곳을 알고 어떻게 살았는가도 다 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듣는 말씀으로 그리 중요하게 귀담아 듣지 않지는 않았는지, 마땅히 공경 받아야 할 사람 목회자의 말을 소홀히 지나치지는 않는가? 부모님의 말을 귀담아 들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왕이면 진정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비비안이 일화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일을 시킵니다. “얘야, 쓰레기 내놓았니?” 매주 어머니는 꼭 프로가 한창 재미있을 때 들어와서는 물으시는 거 같았다.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아직요.” “지금 당장 일어나 버리고 와라.” “예, 엄마.”나는 이렇게 대답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속에서는 불만이 끓어올랐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순종했지만 즐겨 순종하지는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네 태도는 옳지 않았다. 네가 섬기는 교회에서 네게 공급(供应)이 없는 이유는 네가 순종하긴 하지만 즐겨 하는 태도가 없기 때문이다!”그 후 나는 회개하고 새로이 마음을 먹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 고라의 사건을 알아보자
2.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싹이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은 일이 내포하는 의미는?
3. 나는 어떤 면에서 권위에 순종하지 않았던가?
4. 내가 마땅히 존경하여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