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3

열왕기하 5:1-14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요나의길 2023. 6. 25. 23:07

열왕기하 5:1-14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열왕기하 5: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이나 나병환자라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집에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잡은 여종, 어린 소녀의 말에 이스라엘 땅에 능력이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직접 이스라엘로 가기로 작정합니다. 나아만이 피부병 치유를 위하여 북이스라엘 땅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를 보내 잘 대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왕은 이런 친서를 받고 탄식합니다.

[열왕기하 5:7]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이에 북이스라엘 왕은 크게 낙담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은 이를 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람 왕이 북이스라엘을 침략할 구실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왕이 이렇게 해석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 왕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능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은 그의 나라 안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음도 알지 못했습니다. 외국에 포로로 잡혀간 어린 소녀도 다 아는 사실을 궁궐에 사는 왕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모르니, 발생할 지도 모르는 전쟁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찟으며 근심 중에 있다는 말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왕에게 글을 써서 보냅니다.

[열왕기하 5:8]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는 줄’ 이는 곧 세상의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계신다’란 의미입니다.

[열왕기하 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나아만은 많은 말과 병거. 많은 종들을 데리고 엘리사의 집 문에 섰습니다. 5절에 보면 나아만은 아람에서 올 때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출발했다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말과 병거를 대동한 것은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막강한 자신의 권력과 위용을 과시하는 것이고, 엘리사에세 이렇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가면 자신을 지극히 환대하고 특별한 치유를 해줄 것으로 여겼습니다.

○ 그러나 나아만의 이같은 결정은 하나님 앞에 복을 구하는 자의 자세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력, 성취를 드러내는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제아무리 아람의 군대장관이고 재물과 권력을 가진 자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연약한 자이고 무지한 존재일 뿐입니다.

○ 이에 엘리사가 직접 나서지 않고 사자를 밖에 보내어 말합니다.

[열왕기하 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 나아만을 향한 엘리사의 명령에서 ‘일곱’ 이란 숫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중종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의 만물을 창조하는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 여리고성을 칠일째 되는 날, 일곱 번 돌았을 때 무너져 내렸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별, 일곱 촛대, 일곱 사자,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창 29:18]에서 야곱이 이방 땅에서 라반의 딸 라헬과 레아를 얻기 위해 라반을 섬겨야 했던 기간은 각각 7년씩이었습니다. 이로 볼 때 일곱 번 요단강에 몸을 담그라는 명령은 나아만에게 ‘완전한 인내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도, 지위도, 재물도 자랑하지 말고 완전한 인내와 순종만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에 나아만은 분노했습니다.

[열왕기하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대국 아람의 군대 장관입니다. 소국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고개를 숙이고 나와 자신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집 밖으로 나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성대한 주술적인 치료 의식을 행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놀라운 치료가 있기를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군대장관을 무시하고, 손님으로 접대하지도 않았습니다.

○ 나아만은 많은 예물을 가지고 자신이 친히 엘리사를 찾아왔건만, 엘리사의 행동은 나아만을 분노케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판단하여, 엘리사의 지시는 문둥병 치유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여종의 “선지자 엘리사라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을텐데” 이런 말을 믿고 이스라엘까지 찾아온 자신이 한심했을 것입니다.

[열왕기하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바르발’은 다메섹의 남쪽에 흐르는 강이고, 아바나강은 대단히 맑고 깨끗한 강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요단강은 수심도 깊지 않고 흙이 섞여 혼탁한 강입니다. 나아만이 보기에 “효험이 있다면, 맑은 다메섹 강물이 더 큰 효험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여 마음이 심히 상하였습니다. 나아만의 이런 생각은 누가 보아도 매우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이 때 그의 종들이 나와 말합니다.

[열왕기하 5:13]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 나아만은 종들의 말을 듣고, 종들의 앞에서 옷을 벗고, 요단강에 들어갑니다. 한 번만 물에 몸을 담근 것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 그러나 그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간이 찼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늘 눈에 보이게, 놀라운 사건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까지 아무런 징조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나아만이 마지막 일곱 번째,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의 피부가 깨끗해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 그는 평생 윗사람과 아랫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사람됨이 자신을 불치병에서 구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성품은 그가 엘리사 앞에까지 오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더 중요한 것,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나아만에게 원하신 것은 많은 재물도, 전쟁터에서 많은 공로도 충성도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아만에게 요구하시는 것, 엘리사를 통하여 전하신 것은 단지 ‘말씀에 순종’ 이었습니다. ○ 이스라엘의 평안을 위하여 엘리사가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표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가요?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친절하고, 최대한의 성의로 접대하였더라면 나아만이 감동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은혜는 나아만처럼 스스로 ‘말씀에 순종할 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 구원이란 축복을 얻기 위하여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구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쉽다는 이유로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구원의 소식을 원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요단강에 들어가 물로 씻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듣고 순종함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나아만처럼 일곱 번 요단강의 물에 몸을 씻는 자세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