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3

요한복음 15:1-11 <포도나무 예수님>

요나의길 2023. 10. 15. 18:41

요한복음 15:1-11  <포도나무 예수님>

[요한복음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로 비유하는 표현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사야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좋은 재목을 얻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조경수로 사용하기 위함입니까? 포도나무는 좋은 건축재로도 조경수로도 쓸 수 없는, 별 용도가 없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그 나무가 만들어 내는 열매만큼은 기가 막힙니다. 포도 열매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농부는 봄부터 여름 내내 포도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는 것입니다.

○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은 세상 민족 가운데 가장 힘없고 볼품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어떤 문명이나 학문도 갖지 못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그들을 택하시고, 복을 주시고,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 그러나 주의해야 합니다. 복은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있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5절]에 보면 ‘너희는 가지라’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말은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말하지만 열매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포도나무에서 제하여 버리시고,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깨끗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 교회 안에 잎만 무성하여 열매 맺지 않는 교인, 어제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에 변화가 없는 교인이 있다면, 이런 교인은 새신자를 실족하게 하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라는 이름 뿐인 성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 주 예수님은 늘 공생애 기간, 가시는 길의 목적이 분명하였고 제자들에게 믿음의 성장을 기대하셨습니다. 성도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그러면 신앙의 열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①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향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의 믿음이 좋아지고,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가치관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구리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고 불확실하던 것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하여 보는 것처럼 분명해져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보다 더 담대해지고 확신에 찬 기도를 할 수 있는 큰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② 두 번째로 자신을 향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로 좋은 품성을 덧입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회개함으로 얻어지는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 했습니다. 이는 지난날 허무한데 굴복하여 시간과 재물을 낭비하며, 방종한 삶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죄지은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 5:22.23]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열매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던 사람이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인내하지 못하던 사람이 인내하고, 고집스럽고 사나운 사람이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절제하지 못하던 사람이 절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게으름과 불성실함 무관심과 분노를 자신의 성격이라, 타고난 것이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바로 사탄 마귀가 주는 생각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회개의 기도를 하며 성화의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란 죄를 뉘우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전의 삶에서 180도 돌아서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세 번째로 이웃을 향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 혼자 구원 받는 사람이 아니고 또 하나의 생명을 구원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며 부르시던 주님의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세상을 향하여 사랑의 손길을 베풀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 내 민족, 국가만을 생각하고 배타적이고 차별적으로 살던 삶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며,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저는 중국 가정교회 새로 나온 한 50대의성도를 기억합니다. 그녀는 이혼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한 없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못난 지난날의 남편이 한없이 불쌍해지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복혼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예수님은 [1절]에 "내가 참 포도나무" 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생명을 얻을 다른 나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한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가지의 양분은 나무로부터 얻어집니다. 가지는 전적으로 나무에게 속하여야 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제대로 붙어있지 않거나, 따로 놀면 가지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말라 쓸데없어 버리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잘 붙어 있다.' 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생활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라는 말을 먼저 하셨음을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여신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즉 모든 사람을 위하여 문을 열어놓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의 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님의 품에 거하기를 거부합니다. 맑은 시원한 시냇물이 있어 목마른 말을 인도하려 할지라도 말이 따르기를 거역한다면 그 말은 해갈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품 안에 거하는 것에 덧붙여 반듯이 필요한 것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입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 함은 ‘주의 말씀에 확신을 갖는 것,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100% 받아들이는 것, 그 말씀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했습니다. 왜 갑자기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기도의 열매, 믿음의 열매, 성숙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또 다시 주님은 [9절]에서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하나 된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거하라’로 번역된 ‘메노’(μένω) 이는 ’머물러 있으라‘ 혹은 ’살라‘는 뜻입니다. ○ 자신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주일은 주님의 날이다. 거룩한 날이다.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할지라도 이런 일 저런 일로 바쁘면, 일이 생기면, 혹은 기분에 따라 집에서 쉬기도 할 것입니다.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기쁨도 있어야 합니다. 경제적 손실이 있기도 합니다.

○ 이런 노력도 기쁨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 주신 사랑이며,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잊지 않는 사람,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