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3

고린도전서 3:16-23 <하나님의 성전>

요나의길 2023. 12. 3. 17:57

고린도전서 3:16-23   <하나님의 성전>

○ 모세가 출애굽 할 당시에는 하나님은 성막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힌 자를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 구약 성경을 보면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징벌하셨는데,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율법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다른 불로 분향하였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들을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레위기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거룩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온전한 순종이 있는 곳이 거룩한 곳입니다.

○ 성막을 대신하여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했는데 이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었으며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열왕기상 8:33,34)

○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 평생의 소망이며 자랑이며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좌정하신 장소였습니다. [23: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일년 3차, 성전이 있는 곳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 그런데 어느날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19) 하시니 그들은 놀라 펄쩍 뛰었습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몸을 말한 것으로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모독하였다” 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성전제사는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제물이 되었을 그 때에  성전 성소 휘장(殿里的幔子)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15:38)” ○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 후로 그 분은 내 안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요일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 이제 주의 영이 계시는 곳은 성전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내 안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태초 이래로(自太初以来) 하나님은 돌로 된 성전 건물에 있기를 원하시지 않고 ‘나’라는 인격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 결국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없앨 것을 작정하시고 주후 70년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벽 위에 돌 위에 돌이 남지 않게 소멸하셨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이슬람교의 모스크(清真寺)만이 서 있을 뿐입니다. ○ 만약에 예루살렘 성전이 지금까지 그냥 남아 있었더라면,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에 빼앗겨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표에 불과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 복음에 걸림돌(绊脚石)이 되는 모든 장애물을 버리셨습니다.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멋진 외관을 가진 교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짓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 건축물도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장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면 다 허상이고 형식적인 외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곳을 하나님은 ‘강도의 소굴’이라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건물에서 예배 드린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찬송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성령의 임재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16절]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묻고 있습니다. ○ 우리가 무엇을 보고 이 땅에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하고 나의 주인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요? ○ 어떤 사람은 방언이나 예언,신유,혹은 귀신 쫓는 축사(驱鬼)나 이적을 행함,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예수를 믿는 것을 성령의 내주 하심의 증거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행하는 이적을 보고 나를 믿으라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37,38]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 그러나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간접적인 증거는 될 수 있으나 참된 증거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방언이나 신유 혹은 축사(赶逐邪灵)와 같은 표적은 분명 성령이 임재할 때 나타나지만 여타의 종교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히말라야나 티벳(西藏)의 밀교(密敎)에서도 그들 중에 이상한 방언이 행해지고 질병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 저는 실제로 중국 중의대학병원에서 기(氣)치료과가 있는 것을 보았고 氣로써 사람의 몸에 손을 대지 않고도 몸을 움직이고 따뜻하게 기운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는 방언이나 치유와 같은 일들이 성령 뿐만 아니라 귀신의 사역(使役)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런 유혹으로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까지도 이단 사교에 빠지는 일이 있습니다.

○ 우리는 출애굽 당신에 모세와 애굽의 마술사 간의 대결(较量)에서 애굽의 마술사들도 이적을 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애굽의 마술사들이 행한 이적들은 참 하나님의 이적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로 되어진 뱀이 마술사들의 지팡이로 된 뱀을 삼키니라” 했고 모세의 네 번째 이적인 지팡이로 땅을 치매 그 티끌이 땅에 이(虱子)가 되었다 했는데, 이런 생명을 만드는 이적은 마술사들은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이적은 세상의 악한 영들이 만드는 이적과 그 차원(维度)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진리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이적과 능력 풍성한 은혜만을 보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1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우리에게 귀중한 것은 이적과 표적들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이적의 목적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적 중에 가장 큰 이적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 아무나에게 가서 나의 남편이요. 당신은 나의 구세주요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는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하나님의 성전을 더럽게 한 사람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있고, 세상 탐심으로 가득찬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곳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