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3

갈라디아서 5:22-26 <성령의 열매>

요나의길 2023. 12. 17. 19:45

갈라디아서 5:22-26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그 중 첫번째로 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전통적으로 ‘사랑’이라는 말에는 헬라어에 세분화하여 네 가지의 상이한 용어와 의미가 있습니다. 즉 남녀 사이의 끌리는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친구 사이의 우정을 의미하는 ‘필리아’, 가족 간의 사랑을 말하는 ‘스톨게’,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가 있습니다. 이 중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배워야 하는 사랑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5:44-4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는 아가페 사랑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내게 잘해 주는 사람,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까? 마음은 죽이고 싶고, 멀리하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자연스런 감정의 결과이거나 단순히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나의 자존심, 나의 생각, 나의 형편을 생각해서는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이란 조건을 내걸고 하는 사랑이 아니고 오직 너를 위한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 코리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이입니다.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 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독일에서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한 노신사를 보고,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 하고, 자신의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었습니다. 그가 아직도 살아있지 않은가?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그와 용서의 악수를 하는 순간 그녀의 생애에 가장 기쁨이 찾아왔다 고백하였습니다.

○ 구약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복수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잔인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왜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르고, 거역하고 우상숭배하는 그 백성을 여전히 참으셨습니다. 마침내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 종은 울리기 전까지는 종이 아니라 했고,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까지 사랑이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고 따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성령의 두번째 열매는 ‘희락’입니다. ‘희락’이라는 말을 더 쉬운 말로 하면 ‘기쁨’입니다. 기쁨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맺는 열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기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변함 없으신 주님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 4:4) 했습니다. ○ 우리가 기쁨을 조건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둔다면 우리는 절망과 우울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인도자 되시고, 주님이 나의 보장되시기 때문에 나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 성령의 셋째 열매는 ‘화평’입니다. ‘화평’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그리고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가 온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14 에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지금 사람들의 마음은 시기, 질투,분쟁으로 가득합니다. 너와 나를 구분하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미움, 싸움을 부추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악마의 궤계입니다.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나님의 자녀는 평화를 만드는 자(peace maker)가 되어야 합니다. 남의 불행을 보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성령의 넷째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은 ‘인내’입니다. 이 인내는 하나님의 속성(屬性)으로 죄인된 인류를 향해 구원자 되신 하나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얻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미 다 망하여 죽은 자였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라 하십니다.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붙잡기 위해 병사들이 모여들 때 베드로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들에게 분을 내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내리쳐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눅 22:47-51). ○ 예수님이 군중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친 일도 없고, 늘 그들을 치유하고 사랑으로 대하였건만 저들은 지금 예수를 향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 엘리야가 와서 도와주나 보자” 조롱을 하였지요.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 살면서 분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툼과 미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방식을 취해하 할 것입니다.

[야고보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인내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인내는 사람을 향하여 오래 참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방치하는 것이 아니고 돌보는 것입니다.

○ 성령의 다섯째 열매는 ‘자비’입니다. ‘자비’를 다른 용어로 ‘친절(kindness)’이라 표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편하게 해주려는 부드러움과 관심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7:12]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하기 “인간을 신답게 만드는 것,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닮은 모습을 갖게 하는 것이 자비이며 친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자비를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 중 하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사람들이 햇빛과 비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 햇빛과 비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리석고 생각이 없어서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는 구원의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바라십니다.

[누가복음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의보다 더 나은 의이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천국의 윤리인 것입니다(마 5 :2 0 ). 하나님께서 자비하신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도 자비하라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