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1-6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6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오늘 본문은 특별히 자유를 말합니다. 성경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헌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의 본질은 영적 자유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의 말씀에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나사렛 회당에서 하신 말씀에 포인트는 포로된 자에게 열쇠를 주고, 눈먼 자의 눈을 치료하고, 눌린 자에게 자유의 신분을 준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모든 고통은 성령이 임하실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는 가난에서 해방되고, 전쟁과 속박에서 해방되고, 질병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의회에서 4가지 자유를 말했습니다.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재난의 문제, 전쟁의 문제, 기근의 문제, 질병의 문제 등등을 해결하려 합니다.
○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멸망한 것이 그냥 자연재해입니까? ○ 세상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고 무서운 태풍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우연의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사야 29: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 세상에 전염병의 유행이 우연입니까? 재수 없어서 걸리는 것입니까? 신명기에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그러면
[신명기 7:15]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 세상에 임하는 재난들 즉, 모든 전쟁과 죽음 가난과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과의 단절에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의 사람들은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온갖 무지와 미신에서 오는 공포, 귀신에 대한 공포, 질병에 대한 공포, 노년에 죽음의 공포, 핵전쟁의 공포, 지구의 온난화 등, 공포에 매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최후는 사망입니다.
○ 세상은 영으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성령과 악령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 이전에는 죄의 종 마귀의 뜻에 따라, 술의 종, 악한 습관의 종, 정욕의 종, 돈의 종이 되어 그 아래서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안에서 ‘자유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 모든 억압의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3서: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가 무엇일까요? ○ 예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구약의 의식적 율법과 할례와 안식일 규례, 제사와 모든 절기 행사, 그 외에 유대인들이 율법에 덧붙여 만든 수많은 규례와 종교적 인습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일입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말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의인 되면 율법을 다 행하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지요. 이 말은 율법이 이루고자 했던 정신, 목적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십계명의 율법 외에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613개입니다. 그 계명 중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마술을 행하는 여자를 살려 두지 말라.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 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 동물의 기름을 먹지 말라. 구레나룻 수염을 밀지 말라. 50년째 되는 해(희년)를 거룩히 지키라. 하는 계명이 있습니다. 어떤 계명은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 베드로는 이를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 중에 아직도 계명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 요즘, 이로 인해 생긴 오해가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요즈음 교회가 미신으로 가득 차 있다.”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도록 재물을 부어주시냐? 목회자를 대적하면 저주가 임하냐?” 말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탐욕으로 구할 때도 있고, 잘못 구할 때도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우연이고, 자연재해는 누구나 당하는 것, 신자도 당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부자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헌금하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인내하시며, 때로는 시험해 보라 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神이십니다. ○ 문제는 기복주의 신앙, 형식적인 신앙으로… 신앙이 바른 믿음의 터전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입니다. 율법과 형식, 외모만 있는 신앙입니다.
[갈라디아서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갈라디아 교인 중에는 할례라는 의식적인 행위를 통하여 구원에 확신을 가지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어떤 공로도 어떤 행위로도 대신하거나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옳다’ , ‘의롭다’ 인정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대하여 “전체 율법을 다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3절) 했습니다. ○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가?’ 아니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생활을 하는가?’ 오늘날도 ‘믿는다’ 말하는 사람 중에도 나는 예배를 드리니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구원받은 자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도 모르고, 구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주일 예배에 참여하였으니, 헌금하였으니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 형식적인 예배, 헌금, 찬송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똑같이 감동도, 감사 기쁨도 없는 건조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요즈음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생긴 구원에 대한 많은 논란거리가 있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에베소서 1:4]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 했으니… ‘나는 믿는다’ , ‘나는 구원 받았다.’ 말하는데, 여전히 아무런 신앙의 열매도, 감사의 체험도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머리로는 믿는데, 삶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 그 원인이 바로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닌다. 나는 헌금을 한다. 나는 찬양을 한다. 나는 예배드렸다. 고로 나는 믿는 자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고,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아니고,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도 아닌데… 외모로써 자신을 믿는 자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영을 따르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