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에베소서 4:1-6 <부르심에 합당하게>

요나의길 2024. 7. 28. 17:53

에베소서 4:1-6  <부르심에 합당하게>

[에베소서 4:3]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3-6절에 '하나'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지체의 연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하나'가 되는 일곱 가지 요인을 말하고 있는데, 즉 , 성령, 소망, , 믿음, 세례, 하나님이 한 분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령입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분리의 영이 아니라 화평의 영이며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의 인도가 있었고, 제자들이 순종함으로 유대인 교회와 이방교회가 하나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성도는 한 소망 안에서 살아가며, 모든 성도는 한 주 예수를 머리로 섬기며, 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믿음이 서로 다르지 않으며, 같은 믿음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라 했을까요? ‘몸된 교회’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지체들의 연합이며, 교회는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실현해 가는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28]에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땅에 유일하게 남긴 것이 교회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당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예배드리고, 사회 봉사하는 곳입니까? 더 많은 역할이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아기를 낳고, 새신자가 복음 안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신학교가 있기 이전에, 선교기관이 있기 이전에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받은 수많은 고난은 ‘교회를 위한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갖기 위하여 나는 나, 내 가족, 내 나라, 내 지역, 내 교회만을 위해 관심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서로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1) “부름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우리 모두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마땅히 모든 겸손과 온유로 즉, '~을 가지고(with)' '서로 용납하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한 성도가 다른 성도를 용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성품으로,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강조되는 성품이 겸손입니다. 여기 보면 겸손이 온유나 오래 참음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겸손합니다. 어린이 앞에서도 배우고, 존중히 여깁니다.

[히브리서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가장 큰 겸손의 도들 보이신 모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 우리 구원 얻은 성도들 역시 자기의 옛 본성과 자아를 부인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 이 말은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없이 약하고. 부끄러운 자입니다.” 말하는 것입니다. (약 4:6)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했습니다. 낮은 곳에 샘물이 고이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을 때, 성도는 서로를 세워주게 되는 것이며, 하나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온유' 역시 서로를 용납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고전 13장]에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온유는 사랑의 특성이면서, (갈 5:22)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하나라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그런데 이 온유는 약하고 온순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강함을 절제함으로써 드러내는 부드러움(gentleness)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온유는 마치 거대한 화물선이 부두에 정박해 짐들을 내릴 때, 배의 측면에 달아 부두에 부딪히지 않도록 한 고무 타이어와 같은 것입니다. 상처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 예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무력한 죄인의 모습으로 빌라도에게 재판정에 세움을 입었고, 사람들의 조롱을 참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권세를 가지셨으면서도 온유함으로 죄인들을 참으셨습니다. 진정한 온유의 힘은 자신의 내부에는 그리스도의 강한 심장을 가지고 외부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과 행동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 부름을 받은 이는 “오래 참아야 한다”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는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방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떠한 환경, 어떠한 사건을 당하든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견딘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인관계에 있어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오래 참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고난을 참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사람을 참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나를 괴롭히고 부당한 대우를 하더라도 또 내가 보복을 하려면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으나 보복하지 않고 오래 참는 것, 이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주님은 악한 무리들에게 이유 없는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의 고난까지 당하였으나 보복하지 아니하시고,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참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 '미네소타 크리스챤 크로니클' 잡지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킴 푹 여인은 베트남 여인으로 월남전쟁 당시 살을 태우는 무서운 네이팜 폭탄이 떨어진 마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생존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유명인사가 된 것은 우연히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도망치는 모습이 찍혀 전 세계 여러 신문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1996년 워싱턴에선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킴 푹 여인이 초청되어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연설에서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죤 머플러라는 비행기 조종사가 참석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일로 인해 전 그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들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감격스런 장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기와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 그 당사자를 킴 푹 여인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냐 하면, 그녀가 월남전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비행기 조종사 역시 오래전부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는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자기를 내려놓고, 너를 위하는 것입니다. ○ 성부 하나님에게 아들은 지구 전체와 모든 인류보다도 귀한 존재이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를 죄인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용납한다.' 이는 큰 아픔과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연약함을 이해 해주고, 그의 단점을 받아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하나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하여 우리가 배워야 하는 예수님의 덕목은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으로 사람을 용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