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삼상 6:1-12 <벧세메스로 간 두 암소>

요나의길 2024. 8. 4. 16:51

삼상 6:1-12  <벧세메스로 간 두 암소>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던 시기입니다. 사무엘은 아직 어렸습니다.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산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하였는데 이스라엘은 패하여 죽은 사람이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민수기 10:33,34]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언약궤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을 기억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강물이 끊어졌고,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도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장섰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함께 하는 곳에 항상 승리가 따랐습니다. 이번에도 그들은 그들이 언약궤를 기억하고 모셨으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전멸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 이스라엘 군사들은 홉니비느하스가 멘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들어오자 큰소리를 지르며 환영하는데 땅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 우리는 분명히 이긴다!" 그들은 큰 승리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 블레셋 군사들은 언약궤가 들어왔음을 알고 크게 두려웠습니다. 애굽인을 친 신이 진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우리는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될 수 없다.’ 블레셋은 더욱 분발하여 싸웠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쟁에서 참패하였습니다. 전에는 4천 명이 죽었으나 이번에는 삼만 명이 죽었습니다. 홉니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놀라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 또한 이 모든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하여 아들을 낳으며 죽었는데 그 이름을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 했습니다.

◯ 왜 언약궤와 함께하시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까? 언약궤에는 원래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계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에스겔 11: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언약궤는 너희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신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면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상징입니다. 집 책꽂이에 성경이 있고, 주일에 예배시간에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는 교인은 그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 패하고 블레셋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언약궤가 더 이상 아무런 효험도 없고, 하나님은 언약궤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상 6: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 있은 지 7개월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 아무도 언약궤를 찾을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찾을 이유도 찾을 욕망도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아 다곤의 전에 두었을 때, 다곤 우상은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어져 목이 부러져 있었고, 세워놓았더니 다음날 팔다리가 부러져 문지방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5:6,7]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아스돗 사람들은 그 궤를 가드로 보내고, 가드 사람들은 그 궤를 에그론으로 옮겼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복술가들을 불러 처리 방법을 물었을 때,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신이 우리에게 재앙을 불러왔도다. 문제 해결은 언약궤를 돌려주는 수밖에 없다. 돌려주되 정중하게 돌려주어야 한다." 결론지었습니다. 그들은 빈 수레로 언약궤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다섯 성읍의 사람들은 그들 대적의 신 여호와 앞에 최선의 제사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재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 그들 성읍의 숫자대로(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독종의 형상 다섯 개와 금쥐의 다섯 개를 만들어 상자에 담아 언약궤 옆에 놓았습니다. 그들은 쥐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독한 종기는 감염된 쥐로 인해 생기는 흑사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복술가(占卜)들은 이 질병의 또 다른 원인을 하나님을 대적한 데서 찾았습니다. 그들은 그 증거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사무엘상 6: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 그들은 상자를 그들이 사용하던 수레에 언약궤를 싣지 않았습니다. 새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왔습니다. 소에게 수레를 메었습니다.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 참으로 그들에게 미친 재앙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일어난 재앙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두 암소는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로 향한 대로를 울며 가는데 바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한 번도 수레를 멘 적이 없는 두 마리 암소입니다. 멍에를 벗으려고 뛰지 않았습니다. 그 암소들이 살던 집에서 송아지가 우는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젖 나는 두 암소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마 그 암소들은 가보지 않은 길이 마지막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 블레셋 방백들과 사람 중에는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를 바라보며. 이런 악조건하에서 과연 소들이 벧세메스로 갈 것이냐? 터무니없는 생각이라 말하며, 그들의 징계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암소들이 중간에 멈추어 서거나 엉뚱한 길로 들어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암소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 벧세메스에 당도하였습니다. ◯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은 인정하기 싫었던 하나님의 존재와 심판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닥친 재앙의 원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한 까닭임이 확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냥 확인했을 뿐입니다. ◯ 벧세메스 사람들은 밀을 베다가 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수레가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새 수레를 패어 땔나무를 하고 그 암소들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 암소들을 이끌어 간 분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헌신이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받쳐진 제물이 되었습니다. 여기 두 암소는 한낱 미물에 불과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먼저 이 암소들이 멍에를 진 것은 좋아서 기쁨으로 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암소는 젖을 먹여야 하는 새끼를 두고 마지못해 이끌려 왔습니다. ◯ 형제들과 부모를 구원한 요셉도 자의와는 상관없이 17세의 소년으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창 45:8) ◯ 바울은 제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차 환난이 기다린다. 가지 말라”는 예언자들의 말에도 그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행 20:22) 올라가야 했습니다. ◯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원치 않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하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원래 그런 것입니다.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때로는 직분도 없고, 명예도 없고, 대가도 없는 길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제물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알지도 못할 때, 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