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데살로니가전서 1:1-5 <성령의 능력으로>

요나의길 2024. 8. 11. 16:08

데살로니가전서 1:1-5  <성령의 능력으로>

[데살로니가전서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아 택하심을 입었다” 말합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어떤 이는 큰 안도감을 얻는가 하면, 어떤 이는 사람의 의지와 행동과 무관함이라는 사실에 낙심하게 됩니다.

[로마서 9:11] “에서와 야곱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일이 되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고,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대하며, “하나님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 정해졌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독재자 아닌가? 노력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9:14]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로마서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 사람들은 [21절]의 말씀을 대하면서 다시 한번 외칠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니냐?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다 소용없다. 똑같은 흙 한 덩어리 인생인데 누구는 귀히 쓸 그릇으로 누구는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든다는 말인가? 이것이 운명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 어찌보면 똑같은 진흙 한 덩어리인데 어떤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부자집에서 태어나고,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불공평하다.’ 하는 말이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 똑같은 진흙 한 덩어리인데 어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북한 땅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 6.25전쟁 시기에 태어나기도 하잖아요? 이것이 하나님의 독단 아닌가요?”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결정이고 불공정이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절대로 불공평하지 않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소돔 땅에서 고통을 당하는 의로운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지고, 주후 66년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저항하여 전쟁하는 중에 죽임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펠라’라는 지역으로 한동안 피신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보호할 자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원하는 마음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후서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로마서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이 독단 독재하시는 분이고, 우리의 운명은 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신 분이시며, 자원하는 자의 수고에 상응하는 보답으로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인해, 우리의 간절함과 기도가 무위로 돌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헌신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 일제 식민지를 거치고, 6.25 전쟁을 지나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습니다. 도저히 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없었고, 경제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상에 우뚝 섰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흩어져 2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 1948년도에 나라를 그 자리에 다시 세웠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 어떤 이는 혹시 구원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내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 ‘내가 선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구원을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요 그릇된 생각입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고, 두뇌가 있고, 배경이 있어도, 아무리 세상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였어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에는 추호(一丝一毫)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어떤 가능성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조건 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사람이 그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고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는가?’ 알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믿게 된 데에는 바울이 수고한 전도 외에 그 이상의 다른 힘이 작용하였음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결정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능력과 내적인 확신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능력이란 이적과 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닌,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임무는 우리에게 있으나 복음을 믿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전할지라도, 복음을 듣는 사람 모두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갖은 미사여구와 달변(雄辩)으로 복음을 이해시키고 감동시키려 해도 믿지 않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냥 '예수 천당' 만 외쳐도 감동하며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왜 있습니까? 바로 성령의 역사(役事) 有無에 있습니다. 그것을 믿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역사(役事)만이 복음을 듣는 자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으며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말하기를 “나는 나의 이성이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라고 믿고 그를 따를 수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은 마음이 어두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도, 자신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이성으로 역사상(歷史上)의 한 인물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유일한 구주임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도록 하며, 거듭난 사람이 되게 하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려면 영안(靈眼)이 열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얻는 사람, 사랑을 입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