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9:1-13 <므비보셋>
사무엘하 9:1-13 <므비보셋>
⒈ 새로 왕이 된 다윗은 자신의 친구였던 요나단을 기억하고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사울의 집에 아직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리라!”(3) 그때 사울의 집에 종으로 있던 시바가 말합니다. [사무엘하 9:3]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그냥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살아남아 있다고 해도 될 텐데 굳이 ‘다리 저는 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로드발(罗底巴)에 마길이 데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도, 다윗이 신하들이 그의 집에 이르기까지 이름도 알지 못한 듯합니다.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다 절었습니다. 그때 그가 아직 20세 전후인데 그에게 미가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했습니다. 장차 미가를 통해 후대가 번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왕가에 대가 끊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사무엘하 9: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므비보셋은 잊혀진 왕가의 사람으로 아무런 노동력도 없고, 짐만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자신의 식탁에 늘 함께하자고 합니다. 사울에게 속했던 밭은 다 그에게 주도록 했습니다. 분명 엄청난 재산일 것입니다. 다윗왕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므비보셋은 절하며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다윗의 상에서 함께 앉아 먹을 수 있습니까?,”(8) 말합니다. 어찌보면 다윗 왕은 자신의 가문을 멸망시킨 사람입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로, 다윗이 없었더라면 요나단을 이어 자신이 왕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허망한 꿈에 불과합니다.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할아버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한 후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그의 유모가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려 그는 두 발을 다 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왕손이라는 이유로, 혹시 있을 다윗의 칼을 피해 요르단강 동쪽 로드발(罗底巴) 마길의 집에서 숨어 살았던 것입니다. 므비보셋에게는 더이상 자신이 왕의 가문이라는 사실이 무의미한 과거, 허무하고 저주받은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다윗왕 앞에서 자신을 ‘죽은 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요나단의 친구 다윗은 지금 온 백성의 추앙받는 왕이고, 조상의 청지기 시바는 아들이 15, 부리는 종만 20명입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현실을 알았습니다. 평상시 자신을 ‘죽은 개’와 같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 일찍이 그의 아버지 요나단은 다윗의 좋은 벗으로 그를 죽음에서 구하고, 자신의 신앙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왕위를 생각했더라면 왕위의 대적자 다윗을 미워하고,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자신의 왕위 계승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안다.’ 하며,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요나단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진실함이 사울의 계보를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단을 불쌍히 여기셨고, 므비보셋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무엘하 9:11-13]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 이러한 축복은 므비보셋이 자격이 있고, 재능이 있고, 잘나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다윗이 그의 아버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려 주신 은혜입니다.
○ 이는 한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다스리던 아담이 그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추방당하였고,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던, 아무런 자격도 볼품도 없는 부끄러운 인간이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과 만남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앉게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구원에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내가 구원을 얻는 것은 내가 잘나고, 자격이 있고, 노력하고 수고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입니다.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왕은 이전에 사울 왕에게 받은 수많은 죽음의 위협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만을 기억했습니다. 므비보셋은 은혜를 입을 만한 어떤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므비보셋이 한 일은 다만 왕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온 것입니다.
○ 오늘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 탕자가 한동안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못한 것은 “자신의 죄를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오해와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⒉ 그후 므비보셋에게 생각지 않은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느날 갑자기 예루살렘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장악하였고, 다윗 왕은 도망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므비보셋도 주어졌던 모든 축복이 사라지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다윗이 망명길에 올랐을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혼자 다윗을 만나러 나옵니다.
[사무엘하 16: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다윗왕이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물으니 말하기를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므비보셋을 모함(陷害)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그의 말을 믿고 화가 나서 므비보셋에 속하였던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건네줍니다.
○ 훗날 다윗왕이 압살롬의 반역을 물리치고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온 날 므비보셋이 나옵니다. 왕이 돌아와 므비보셋에게 자신과 같이 가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그는 다리를 절어 종의 도움을 얻어 나귀를 타고 왕에게 가려고 했지만, 종이었던 시바가 자신을 속이고 왕에게 자신을 모함했노라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사무엘하 19: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므비보셋의 이런 행동은 당시 유대인들이 부모님이 돌아가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쫓겨 간 후에 그가 잠시나마 얻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억울한 누명을 썼으나 이제 그는 다시 다윗왕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왕은 므비보셋의 말이 진실임을 알았습니다. 안장 지운 나귀(备好了的驴)가 그 증거입니다.
[사무엘하 19:28,30]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30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므비보셋은 세상의 재물이나 이전의 영화에 미련(留恋)을 두지 않습니다.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말합니다. 이는 ‘시바에게 모든 것이 돌아간다.’ 하더라도 므비보셋 자신은 ‘다윗이 반란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 궁에 평안히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한다.’ 말입니다.
◉ 김창옥의 강연(讲演) 중에 한 여자 청년이 물었습니다. 내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는데 헤어져야 할까요? 그때 김창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굉장히 좋은 기회입니다. ‘당신이 그 남자를 좋은 남자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좋은 남자처럼 보였는지…’ 분별할 좋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진실로 은혜를 은혜로 아는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