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히스기야 11:1-6 <믿음은 실상>

요나의길 2024. 9. 8. 17:43

히스기야 11:1-6   <믿음은 실상>

○ 1절에서 언급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장차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성취에 대한 믿음이 몽상이 되지 않을 것, 현재에도 미래의 성취를 기뻐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도의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의 삶은 확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을 믿는 자와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을 믿지 않는 자의 삶이 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며, 나의 수고와 행위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사람 앞에서도 거짓말이나 불의한 행동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이 있기 때문이지요.

○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이 말씀은 모든 신자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가 이 말씀을 자기만족과 성취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한 성도가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매일 열심히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마다 나와 ‘하나님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또 한 남자 청년은 ‘저 자매와 반드시 결혼할 줄 믿습니다’라고 매일 한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또 한 권사는 ‘우리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할 줄 믿습니다’라고 백일기도, 특별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 기도의 결과를 보았습니다. 사업하던 성도는 극심한 경제 침체로 공장 문을 닫았고, 청년이 기도하던 그 자매는 다른 형제와 결혼했고, 권사는 아들이 서울대 입학을 바라 기도했건만 아들은 컴퓨터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수능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간절한 기도에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을까요?

○ 기복적인 신앙은 세상의 만족을 구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섬겼으니,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것을 해주실 것이다.’ 기대하는 신앙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욕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탐욕입니다.

○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비이성적이고 비지식적인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과학적인 근거와 경험으로 검증된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믿는다’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똑같이 눈에 보이는 이익과 당장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내일을 보고,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감동, 도우심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의 정예부대 30만 명이 프랑스 북쪽 해변 던커크에서 독일군에게 완전포위 되었습니다. 만일 이 30만 명이 다 죽는다면 영국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군에 패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영국수상 처어칠은 아침 일찍 웨스트민스트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 영국을 구원하옵소서!” 그의 기도는 저녁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저녁에 그는 교회를 나와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모든 교회들이여, 기도해 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여,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어린이로 시작하여 노인까지 심지어 안 믿는 사람들도 교회를 찾았습니다. 밤새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는 다음날 아침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는 폭풍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영국군이 고립되어있는 던커크 해안만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영국군은 필사적인 탈출을 하였고 당시 독일군이 자랑하던 전차는 진흙에 빠져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이후에 전열을 정비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자기 신념이나 자기 확신과는 다른 것입니다. 신념이나 자기 확신의 중심에는 ‘내’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곧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동의와 감동, 긍휼을 얻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 동의, 약속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아이가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병들었을 때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일주일을 그랬습니다. 그러나 죽고 말았습니다. ○ 모세는 간절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했으나 비스가 산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확신을 동반함으로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약속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기대, 나의 바람이 아닐까?"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에 기초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반드시 생각하여야 할 것이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기쁘심을 이루는 기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의 기도라면, 하나님은 내게 좋은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기도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눈물과 간절함 애통함입니다. 나의 눈물과 간절함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 히스기야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이때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심히 통곡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이사야의 발길을 돌이켜 그에게 돌아와 말합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열왕기하 20:5,6) 하나님은 그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네 기도와 눈물을 보았다.” 했습니다. 의심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증거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평탄한 길이나 눈에 보이는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⓵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결코 풍요한 땅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⓶ 라합이 천상천하의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면 라합은 목숨을 걸고 감히 이스라엘의 정탐들을 숨겨 줄 수 없었고, ⓷ 여호수아와 제사장 백성들이 믿음이 없었더라면 흐르는 요단강 물에 발을 내딛지 못했을 것입니다. ⓸ 여호사밧 왕과 남유다의 백성들은 모압 암몬 연합군의 침공이라는 국가적인 위기를 맞이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 검증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하셨고 백성은 두려운 적군 앞에 마주 나아가며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나의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를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듣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백성들의 믿음이 진실한지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고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