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마태복음 4:1-11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요나의길 2024. 10. 20. 16:10

마태복음 4:1-11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본격적인 구속 사역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뒤에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면서 연단과 시험을 통과한 뒤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연단하십니다. 마가복음에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사건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당할 때, 고난에 처할 때 “세상에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혹은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 라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40년의 광야 시험과 예수님의 광야 시험, 이 두 사건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은 광야 시험에서 거듭 실패하였으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금식 기도와 시험에 승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로 마귀는 시험을 시작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인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됨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데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죄짓게 하는 것이죠.

○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마주칠 때, 혹은 새로운 결단의 순간에, 마귀는 늘 우리에게 정체성을 묻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냐?” 그리고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방해 공작을 합니다. 그리고 유혹을 합니다. 교회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친구가 찾아오고, 새 일거리가 생깁니다. ⓵ 마귀는 하와에게 “정말로 하나님이 네게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라 하더냐?” 물었습니다. ⓶ 베드로가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그리하지 마소서” 대항하며 화를 냈던 것입니다.

○ 우리는 고난의 때에, 그리고 매 순간, 하나님이 지금 내게 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인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질문해야 합니다.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에 예수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말할 것도 없이 주님은 능히 돌들로 떡이 되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이 일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하면 ⓵ 자신의 배고픔이 해결되고 ⓶ 세상의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쉽게 해결되겠습니까? ⓷ 이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주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배고품을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식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당장의 떡에 연연(执迷)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말씀은 매사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매사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4:5]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거룩한 성’이란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구약 [시편 91:11]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하여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시편9 1:11]은 하나님이 성도의 가는 길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경건한 신자들을 보호하신다는 말씀인데, 마귀는 하나님을 시험하여도 되는 것처럼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뛰어내렸는데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받들어 구원한다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신으로 여기며 추종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마태복음 4:7]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또 기록하였으되’ 즉, 마귀가 인용한 구절 외에 다른 구절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어느 한 구절만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제시하신 구절은 [신 6:16]의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원하는 일을 벌여놓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좋은 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조차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맡기신 구속 사역을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마귀는 예수에게 천하만국의 모든 나라와 권세, 사람들, 그들이 향유 하는 모든 사치품들, 그 외 만민이 갖고 싶어 하는 영광스러운 업적들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중에 있는 죄와 질병과 가난, 비참한 인간 세상의 모습들은 보여 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예수 앞에 화려한 영광만을 보여 주었지, 결코 그 영광을 얻기까지의 수고와 고통, 인간의 숨겨진 죄악은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우리에게도 화려한 것, 겉모습만 보이며 유혹하는 악한 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시험의 실패로 인해 10일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40년 광야에서 방황한 뒤에 그 후손만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세번째 시험에서는 예수에게 직접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라 요구합니다. 처음의 두 시험 떡덩이의 시험과 거룩한 성에서의 시험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마귀가 인정한 가운데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을 말하였는데, 세 번째 시험에서는 직접적으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거래하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마땅히 경배를 받아야 할 분임을 무시한 것이고, 하나님의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과연 이 세상과 천하 만물이 사탄에게 속한 것인가요? 성경에서 마귀를 ‘이 세상 임금’(요 12:31)이라고 말하거나,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잠시 잠간 세상과 만물이 사단 마귀의 지배에 속하였다는 말이지~ 하나님이 마귀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넘겨주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은 다 하나님께 속하였다 밝히고 있습니다.

[역대상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이로보아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확실합니다.

주님은 [8절]에 무엇을 말씀하시나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탐심의 종이 되어 세상의 천하만국의 영광을 취하기 위하여 사탄 마귀가 인도하는 대로 끌려가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세례받기 전에 문답을 진행합니다. 소요리 문답 제1문에서 사람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주요한 목적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신자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과 똑같이 세상의 명예와 부, 영광을 취하려 수고합니다. 더 나아가 마귀의 유혹,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지 않고 세상의 영광을 얻으라고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