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024

마가복음 7:24-30 <부스러기라도>

요나의길 2024. 11. 10. 17:44

마가복음 7:24-30  <부스러기라도>

[24절] 주 예수님이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했습니다. ○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을 벗어나서 이방 지역에 왜 들어가셨는지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피하여 조용하게 쉬시며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예수께서 일찍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이방으로 가지 말 것을 명하셨고, [마태복음 15:24]에서는 예수님 스스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세계 복음화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때로 유대인들이 지나다니기를 꺼리던 사마리아 지경에 들어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예수님은 스스로 이방의 갈릴리를 넘어 두로과 시돈 먼 지역까지도 다니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은 구체적으로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말해줍니다. 수로보니게란 수리아와 페니키아의 합성어로, 팔레스타인 북부 시리아에 사는 페니키아 지금의 레바논 지역입니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과거 지중해 해상무역을 독점하였고, 지중해 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였던 자부심을 가진 종족입니다.

○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를 ‘주’ 라 불렀습니다. 헬라어 (κυρίε)는 ‘주’라는 말로 ‘퀴리오스’(κύριος)의 호격입니다. 마가복음에 ‘주’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호격으로 사용한 (κυρίε)는 유일합니다. 이는 주종의 사회 속에서 자신은 ‘종(둘로스)’이고 상대는 자신의 생사 권한을 가진 주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이와 더불어 ‘다윗의 자손’이라 했는데 이는 예언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제자들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의식하여 감히 사용하지 못하던 호칭입니다. 무엇이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로 메시야로 고백하게 한 믿음을 갖게 한 것일까요? 그녀가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고 결단의 행동을 한 것은 고난을 통해 얻어진 眼目일 것입니다. ○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4]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가부다~” 하는 라오디게아인의 뜨뜬 미지근한 믿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 ‘그 지경에서 나와서’라는 표현에서 그녀가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은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먼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 수로보니게 족속은 이스라엘 사람과는 원수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웃들은 왜 원수의 나라 사람을 찾느냐? ‘예수가 귀신을 쫓았다는 말은 다 헛소문이다. 가지 말라’ 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하든 여인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바라,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 문제가 없는 사람은 주님 앞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나라가 풍전등화에 있고, 죄악의 길을 가는데도 무사안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영화만을 꿈꾸며 다가오는 환란에 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 누군가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를 우리는 도고라 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우리가 남을 위하여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도고입니다. 자녀를 위한 가장 큰 유산은 재물이나 명석한 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자녀가 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입니다. 그녀의 딸은 그녀의 유일한 삶의 이유이며 희망입니다. 그녀 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고, 딸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은 다른 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원문을 보면 반복하여 외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민망한 제자들이 나와서 예수께 나아와 말합니다. 이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제자들이 그 여인을 보내라 하는 이유가 계속하여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나안 여인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보내소서’하는 말은 빨리 기도를 해주고 보내든지~ 아니면 거절하든지 응답을 하라~ 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런데 예수님의 이 대답은 제자들을 향하여 한 말씀입니다. 이는 여인의 귀에 들리도록 거절한 말씀이며, 여인을 무시한 태도입니다. 옆에서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계속하여 예수님 앞에 절하며 말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그런데 이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 심하셨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동안 자신의 종족에게 무시를 당해온 그녀인데 이제 원수의 민족에게 절까지 하며 구하는데 무시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 하는 말이

[마가복음 7:28]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부스러기”라도 구하는 여인에게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말은 너무도 침착하고, 말에 지혜가 느껴집니다. 그녀는 자신을 개로 부르신 예수님의 말씀에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이방인을 ‘개’라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종족이 자신을 “귀신들린 딸의 엄마라고” 손가락질하고, 자신의 종족에게 많은 고난을 받을 때도 그녀는 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 종족의 ‘반유대인 정서’와 ‘이방 신을 섬기는 일’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神을 선택하고, 확신을 갖고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그녀는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개들’은 집에서 기르는 ‘작은 강아지’ , ‘부스러기’는 ‘작은 조각’ , ‘아이들’은 ‘어른’과 대조하여 ‘어린 작은 아이’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세 개의 단어들은 모두 매우 작은 것들로 유대인의 식탁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과 비교하여 지극히 작은 것들입니다.

◯ 자신은 큰 은혜를 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는 큰 은혜에 비교하여 작은 은혜라고 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큰 믿음>을 갖고자 하면, 먼저 작은 것에 감사하는 <부스러기라도 감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스러기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교만하고 무지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본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구원의 길을 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 바울의 본명은 사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한 이후에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어 바울(작은 자)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작은 존재임을 고백할 때,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에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이 말씀을 원본에 따라 다시 보면 “오 네 믿음이 메가톤이다.” ‘오’란 감탄사가 나오고, ‘메가톤’이라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 직역하면 ‘네 믿음대로 네 소원이 이루어져라’ 입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딸이 나음을 입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