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11 <하나님과 화평을>
로마서 5:1-11 <하나님과 화평을>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바울이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 바울을 포함하여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룬 하나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2절]에는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했습니다. [1-11절] 전문은 称义의 결과로써 성도들이 누리는 화평과 소망과 희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화평을 누리자” 이 말은 어떤 권유라고 보기도 하지만 달리 해석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누리는 백성이다’라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로 죄가 사하심을 얻어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백성이 되었구나.”라는 의미입니다.
○ ‘화평’이란 어떤 화평을 의미할까요? 고대 헬라 문헌에서는 ‘에이레네’(Εἰρήνη)가 ‘전쟁의 종식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에이레네’는 히브리어 ‘샬롬’의 번역어로 일반으로 나라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불안한 상태, 전쟁과 기근 질병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이레네’ 화평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오직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에이레네’ 화평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더불어’라는 표현이나 본문에 그리스도 예수가 평화의 중재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 평화를 우리에게 가져오신 분은 주 예수이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에 노출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에이레네’는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결코 맛보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신 분이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바다와도 같습니다. 평안한 중에 있다가도 생각지 않은 폭풍이 닥치기도 합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인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생각하지 않은 폭풍과 파도에 평안을 얻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평안을 얻는 길은 하나 안전한 항구에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환란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한 사회적인 압박, 믿음을 지킴으로 인해 당했던 가난과 궁핍, 배척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불신자들과 힘 있는 자들로부터 많은 고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큰 고난을 받는 중에도 여전히 즐거워하며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환란’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코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환란’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본 것입니다.
[행 14:22]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로마서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초대 교회 당시 이교도 사회인 로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곧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중에도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곧 소망의 견고함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이 말은 즉, 우리의 소망이 헛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을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성령의 보증이 있으므로 우리의 소망은 견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 성령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 했습니다. ○ 성령은 야곱의 12 아들 중 하나, 요셉과 함께하셨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출애굽 할 때 함께 하셨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 가운데 함께 하신 분이십니다. ○ 아기 예수가 마리아에게 잉태하게 하신 이는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시어(행 10:38). 선한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롬 8:11)에는 성령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라 말합니다. ○ 우리 역시 지금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돕는 힘과 위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믿음에 확신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롬 5:5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었다.”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롬 5:6-11]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보이신 대표적인 하나님 사랑의 확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확증입니다.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는 ‘우리가 아직 도덕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가 전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을 때’ 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롬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는데, 인간은 영원한 멸망을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2:1)에서 바울은 인간의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 했고, (엡 2:3)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 말하고 있습니다.
○ 세상에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보고 싶지 않고, 생각하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7절]에 무엇을 말합니까?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다’ 말합니다. 세상에 의를 위하여 자신을 불사르고, 세상에 의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한 사람, 분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지 않습니다.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라를 위하여 몸 바쳐 생명을 드리는 사람, 가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생명을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형상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거하시는 천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