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5:1-7   <잃은 양의 비유>    2016. 1. 24

[누가복음 7:18-19]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세례요한은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묻습니다. 자신이 세례를 준 예수라는 사람이 메시야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와 지금 진행되어지는 상태가 너무 달라 보였습니다. 그는 그가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루어지기를 바랬는데, 지금 예수님은 몇 사람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는 것에 빠져 지내는 듯이 보입니다. 죄 많고 어리석은 군중에 둘러싸여 세월을 보낸다고 보였습니다. ◯ 세례요한에게는 고난 받는 인간에 대한 관심 보다는 자신의 더 큰 다른 기대로 말미암아 그는 시험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주를 위한 대단한 열정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로인해 시험에 들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실망하고 주님을 떠나는 많은 이유가 제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입니다. ◯ 여러분은 혹시 교회가 크고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라서 실망하셨습니까? 내가 바라는 교회, 내가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서 실망하셨나요?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는 않으십니까? 

◯ 예수님에게는 수많은 군중보다는 12제자가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양보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세상에서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재물에 사람은 유혹을 받지만 구원 받을 생명보다 귀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앞설 때, 이로 인해서 우리는 실망하고 넘어집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유와 겸손이 아닐까 합니다.

[누가복음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5: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5장]에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세리 레위가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다른 죄인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고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따집니다.

◯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세리와 죄인들은 죄 많은 무리들에 불과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고, 무가치한 사람들입니다. ◯ 세례요한이 실망한 것도 당연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누가복음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에 내버려 두고 어떻게 한 마리 양을 찾느냐? 어리석은 생각이다. 아흔 아홉 마리를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것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지나친 해석입니다.

◯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①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온 데 대한 기쁨과 ② 자신의 백성을 찾기까지 찾는 분의 목자의 마음과 수고입니다.

◯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여기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이는 아흔 아홉 마리 양이 누구입니까? 바로 스스로 회개할 것 없다고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 주님은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양은 회개하고 돌아온 잃은 양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한 것은 회개하는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면”입니다. ◯ 주님은 죄인을 기뻐하고 세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 실로 죄인들, 거만한 자들, 세속적인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습니다. 아무 말이나 하고, 욕하고, 날마다 한숨 쉬는 사람들, 한푼 두푼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시편 1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했습니다.

◯ 솔직히 말해 저는 좋은 사람들, 부자들, 재능 있고, 지식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편하고 그런 사람이 더 예의 바릅니다. ◯ 주님은 세리와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왔으므로 기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6:21]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왔으니 복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 이 말은 구원받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지는 말씀입니다.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누가복음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 회개하라고 할 때, 물론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하여 “당신은 죄인이야” 말한다면 누구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당신은 죄인이야" 말하지 못합니다. 죄를 판단한다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이 용서하고 받아 주셨는데, "당신은 죄인이야" 말할까 두렵습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 없이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죄 있는 사람입니다. ◯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허물 많고 고침을 받아야 하는 죄인입니다. ◯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것입니다.


▷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분명히 회개하고 돌아온 것은 죄인 스스로 돌아온 것인데 왜 ‘찾아내기까지 찾았다.’고 할까?

● 저는 누가복음 15장에서도 탕자의 비유에서 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외국 땅 멀리에 찾아오시지 않으셨을까? 오라고 전갈을 하지 않으셨을까? 왜 집에 다 돌아 와서야 맨발로 달려 나왔을까?

◯ 그렇지 않습니다. 실상은 주님이 내게 기회를 주시고, 아버지는 늘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셨으므로 나는 주님의 품에 돌아온 것입니다. ◯ 주님이 나의 집문 앞에 기다리셨고, 나의 앞에 와 계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찾으셨듯이, 주님이 찾으셨고 기다리셨습니다. 회개란~

◯ 우리는 늘 내가 내 발로 주님 앞에 나왔고, 내가 주님 앞에 봉사하고 , 내가 봉사한다. 능력을 행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에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기쁨에 차고 또 살아가는 것 또한 행복하였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그가 걸어온 날들이 혼자가 아닌 둘임이 분명하였다.

네 개의 발자국, 즉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모래위에 남겨져있었다.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 또 하나는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인생에 고통이 시작되었다. 힘들고 괴로워서 견디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막상 뒤를 돌아보니 같이 걸어오던 주님은 온데 간 데 없어지고 그 혼자만의 발자국이 모래위에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은 그를 더욱 괴롭게하여 그는 결국 주님께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는 따르기만 하면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는 왜 저를 버려두셨습니까?"

주님이 대답하였다. "나의 귀하고 착한 아들아!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너를 결코 버려둔 적이 없단다. "그런데 왜 발자국이 한 사람 것이었나요?" "그것은 네가 시련과 고통의 순간을 당할 때에 내가 너를 업고 다녔기 때문이란다."


[누가복음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본문 5-6절을 보면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즐기자”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찾으십니다.

◯ 우리도 가서 우리의 이웃 가운데 잃어버린 생명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으셨을 때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가서 잃은 생명을 찾아낼 때의 큰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교회에 새 가족이 들어왔을 때 우리의 모임은 잔칫집 분위기가 됩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았을 때처럼 기쁜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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