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6:19-34  <주 예수를 믿으라.>    2017. 12. 10

사도 바울이 길을 지나가다가 점을 치는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종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외쳐대는 통에 여간 괴로움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사도 바울은 이 귀신들린 여종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했습니다. 이에 귀신이 이 여종에게서 즉시 나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영적인 권세가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능력은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사도행전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미국에서 어느 젊은 부흥사가 교도소에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정식 예배가 아니고 여러 종교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토론식의 모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설교를 하기 이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강단에 서서 ‘여기 계신 이 목사님은 아마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갈거라고 말씀할 것입니다.’ 하면서 비웃더랍니다. 그러니까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해집니까. 그 재소자들이 저 목사가 나와서 무슨 말을 할까 지켜보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들을 리가 만무하죠. 그런데 이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를 좀 도와주세요. 내가 어떻게 하면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성령이 감동을 주셔서‘설교하기 전에 네가 먼저 찬양을 불러라.’ 그러더래요. 그래서 그 분이 찬양을 잘 부르기 때문에 직접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하나님의 눈이 참새를 바라보신다.」라는 유명한 찬양곡을 불렀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안 된다면 참새보다 더 귀한 너희를 하나님이 왜 돌보시지 않으랴') 라는 그런 찬송입니다. 그분이 피아노를 치면서 그 노래를 부르는데 열린 창문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오더래요. 그래서 한 바퀴 빙 돌고 나가더래요. 그래서 그 분이 찬양을 마치고 일어서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오늘 예수 믿으실 분 일어나세요.’그랬더니 거기 있던 재소자들이 다 일어났대요. 그 중의 일부는 눈물까지 흘리더래요. 이미 알고 있는 메시지, 사람들이 안 받아들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분이 그 메시지를 전하니까 사람들이 받아들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영적인 권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함께 하시는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말씀, 이미 사람들이 식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말씀이라도 그 목사님이 그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받아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권세를 하나님은 누구에게 주십니까?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의 주인은 그 동안 점치는 귀신들린 이 여종으로 인해 돈을 많이 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점치는 귀신이 나갔으니 더 이상 점을 칠 수도 없었고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이 사람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관원에게 끌고 가서 송사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과 실라는 이들에게 붙잡혀 옷을 찢기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죄 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환상 중에 불러 “와서 도우라.” 해서 왔는데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감옥에까지 갇히게 됩니다. 고소 사건이 있게 되면 보통 유태인이 감옥에 들어오는 경우, 물을 것도 없이 천부장은 매로 칩니다. 밤이 되어 간수장은 집으로 돌아가고 추운 감옥에 홀로 남았습니다. 죄수의 몸이 되었습니다. 도와 줄이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도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이사야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누구에게 나타나시고, 누구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십니까?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역경지수]라는 경제용어가 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지수를 말합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역경에 부딪힐 때 대처하는 반응을 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포기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무조건 포기하거나 절망하고 문제에서 도피하려 합니다. 둘째는 안주형입니다. 문제를 극복하기보다는 적당히 편안하게 살려고 무시합니다. 셋째는 정복형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역경을 헤쳐나가려고 몸부림칩니다. 이런 정복형의 사람들이 대개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할지라도 결단코 절망하지 않고 역경을 극복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인생은 절망하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어 놓은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이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와같이 기도와 찬양은 감옥 문을 열고 하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소리를 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모두 다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 찬송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매를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로 쑤시고 아픈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감동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진소리에 놀라 잠을 깬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는 열린 옥문을 통해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 것으로 짐작한 것입니다. 로마의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훈련된 그는 오직 자결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도망간 죄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간수는 사실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절망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바울은 깊은 감옥에서 불러 외칩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소리쳤습니다. 캄캄한 지하 감옥에서 들려오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자결하려던 간수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는 등불을 구해 가지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인격과 삶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은 내가 먼저 그의 말씀대로 살아야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는 방식은 나의 입이 아니고 나의 삶입니다. 상대방이 나 때문에 갖는 감동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에 확신과 그러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기뻐야 됩니다. ‘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좋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 이런 자신감이 있는 사람에게서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은 뭔가 내가 없는 것을 갖고 있다.’

◯ 사도 바울은 그 편지에서 ‘예수님을 본받으라.’라고 말하지 않고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단 교주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을 할 때 그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경직 목사님이나 테레사 수녀님 같은 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한경직 목사님은 그냥 어떤 모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한경직의 삶에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 분의 삶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존중히 여기고, 관심을 갖게 한 것입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그러니까 바울이 전도를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바울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바울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 이방인 간수가 바울에게 찾아와서 부복하고 엎드렸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며 예수를 전하며 간수와 온 가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매 맞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싸매주었으며 자신과 권속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 가족들과 함께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 간수의 가정과 루디아의 가정은 빌립보교회를 세워 부흥시키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에 통지가 왔습니다. 네가 감옥을 나가도 좋다. 그러나 바울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네가 와서 나에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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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30:1-8   <여호와를 바라라>

시130편은 말씀은 시편 중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 중에 한 곡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에는 성전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자들이라면 당연히 올라가야 하지만, 그것도 건강해야 가는 것이요, 제물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정말 큰 마음먹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요,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총이었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출발하면서부터 백성들은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노래를 부르며 올라가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대표적인 "탄식시"로 분류 되고 있습니다.

[시130: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깊은 곳에서의 기도는 바다 깊은 속에서의 기도하던 요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시인의 삶의 정황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탄식의 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의 고백입니다.

[시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고 지켜보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지켜보시고 있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감히 나가기에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일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지요? 동시에 죄를 사하신 주님 앞에 감사 제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적은 많든 죄로 인하여 상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내리고, 부끄러움을 씻는 날입니다. 부족함을 고하는 날입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렇게

[잠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 다 용서하신다.' 하면서 속죄의 제사와, 회개를 우습게 여긴다고 하면, 이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때에, 죄를 회개하고 용서하심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준비된 마음으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감사도 모르고 나오는 자세는 회개가 아닙니다.


[시편130: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편 1:2]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영성입니다. 비록 신비한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이 일상적인 경건생활을 멀리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 체험이 많은 사람이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말씀 뒤에 그 증거로 기적을 통한 구원을 보이셨습니다.

[마가복음 9;25]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 우리는 기적을 보고 싶어 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더 놀랍고 귀중한 것은 기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병자가 낫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을 새롭게 하고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말씀을 듣는 귀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을 보면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 채우라 하십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말씀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말씀을 채우면 주님이 그 말씀을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성령으로 바꾸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안에 내면적인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 그러므로 변화를 경험하기 원하는 분들, 죄를 이기고 거룩해지고 삶이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 운명을 바꾸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레마’입니다. ◯ 성령이 역사하시니 일상적인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바꾸고, 지식적인 말씀을 계시로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물이 변해서 포도주로 되는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을 만나 뵙는 신비한 경험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모습 속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음성을 들었습니다.

● 야곱은 돌을 베게로 하고 자고 있는데 꿈에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다리가 놓여 있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세나 야곱이나 바울이나 그들의 그러한 체험은 그들에게도 대단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되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십니까? 그 경험을 한 다음에 야곱이 그 장소를 ‘벧엘’이라 이름 했습니다.

● 엘리야 선지자가 동굴에 숨어있을 때 큰 바람이 지나가고 지진이 지나가고 불이 지나갔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느 것 속에도 계시지 않고 불이 지나간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 요한 웨슬리, 영국의 부흥사 요한 웨슬리가 회심한 경험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사까지 했습니다마는 그 마음속에는 구원의 확신이 없고 마음속에 평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올더스 게이트라는 곳의 어느 작은 교회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설교자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는 것을 듣는 순간에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면서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 어느 목사님은 유명한 목사님의 아들인데 한번은 누가 어떻게 목사가 되기로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라고 물어봤더니 이 분이 대답하시기를‘어느 날 그냥 성경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청산유수처럼 설교를 잘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관건은 하나님을 음성을 듣는 삶입니다. 큰 은혜 중에 은혜는 깨달아지는 은혜입니다.

● 저는 기도할 때 가장 좋은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령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제가 하나님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 하나님의 뜻을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 담대해지고 기도가 쉽습니다.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구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탐욕의 기도는 무익합니다.


[시130:5,6]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파숫군이 언제 파수를 섭니까. 밤에 섭니다. 어둡고 추운 밤에 파수를 서면서 빨리 동이 트기를 기다립니다. 이 말은 지금 내 삶속에 어두움이 있습니다. 밤이 있어요. 문제가 있어요, 아픔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주실 때에는 동녘이 터오는 것처럼 어두운 내 현실 속에 빛이 한 줄기 비치기를 시작합니다. 내 삶속에 풍랑이 잠잠해 지는 것입니다. 한 마디 말씀, 하나님의 주시는 한 마디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 아픔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 모세가 산에 올라가 6일을 구름 가운데 있었습니다. 제 칠일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40일을 묶었습니다. 기다리는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시130: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 하시리로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 말은 "이스라엘아 여호와만을 의지하여라."는 말입니다. 구원하심과 큰 능력은 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세상 의지하지 말고, 물질 의지하지 말고, 세상사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에게 의탁하고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품에 안길 때에는 완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100% 신뢰하고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절규입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기도의 시간. 생명을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절규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뱉어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그 구덩이에 빠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원을 갚겠나이다.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시기 기다리십시오. 그 분이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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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9-16  <주의 율례를 지킴>    2017. 11. 26 

●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 가운데 들려질 수 있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성서를 읽음으로 들려집니다.

[시편 119:15-16]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말씀을 떠나지 말고 마음에 두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다윗은 말씀을 떠나지 않고 마음에 두고 즐거워했습니다.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의 길을 갈 때 함께 하였던 구름기둥 불기둥과 같이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기쁨, 평안, 형통, 담대함.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순종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시편119: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만큼만 하나님을 섬기라." 그런 뜻입니다.

[시19:10]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로마서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말씀을 기뻐하고, 숨기지 않고, 늘 가까이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활력을 얻으려면 절대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며, 신앙이 온전해지고,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족하며, 기쁨이 있고 힘을 얻습니다. 이 말씀의 역사가 점점 왕성할 때 교회는 성장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됩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으므로 사람은 말씀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말씀의 생명은 우리 인간의 능력이 되어, 인간을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포로 된 이스라엘이 절망 중에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 이 뼈들이 살겠느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에스겔 37:4-6]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시편 119:9] 청년으로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청년들 마음에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가치관이 다양합니다. 애정과 성취와 향락일 수도 있습니다. 최고의 가치, 삶의 운선 순위가 잘못 결정되면 인생은 허무하게 마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은 삶의 목표가 설정되는 시기입니다.

● 고목나무에서는 꽃이 필수 없고 열매가 달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순종하므로 영혼이 만족한 젊은 가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젊은 가지로 살아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젊은 가지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가득합니까? 근심, 걱정, 염려, 미움, 증오, 저주입니까? 아니면 기쁨, 감사, 사랑, 즐거움, 소망으로 충만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다 버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거나 부족하면 삶이 흔들리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케 되면 든든한 반석과 같은 삶이 됩니다.


● 1837년 6월 불과 18세의 나이로 영국의 왕이 된 엘리자베스는 곧 바로 무릎을 꿇고 "주님 제가 영국의 왕이 되었는데 너무 떨립니다. 너무도 떨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게 도와주세요." 기도했습니다. 이후 그녀가 다스리는 영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어느 날, 접견을 온 인도의 왕자로부터 영국이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그녀는 환한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 비결입니다."

[욥기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시편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잊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말씀대로 본토 친척집을 떠났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모세의 사후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할 줄 몰라 망설이던 여호수아에게 거듭해서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고 읽고, 새기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평생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은 영혼을 치료하고 마음과 육신의 질병까지 치유하는 약 중의 약입니다. 심령의 한약과 양약과 보약입니다. 성경의 신약과 구약을 잘 처방하면 부작용이 전혀 없는 신비로운 만병통치약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23: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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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0:14-15 <감사의 제사>                2017. 11.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세 차례의 절기 즉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출 23:14~16). 무교절은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면서 출애굽의 역사를 기념하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요, 맥추절은 무교절을 지나 50일째 되는 날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처음 거둔 보리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키는 절기이며, 수장절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수확물을 저장한 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지키는 절기로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이 모든 절기의 특징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제일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전 세계 73억 인구 중에서 기독교인이 5억, 천주교인이 12억, 무슬림이 17억 정도입니다. 레바논이 1943년 국가를 건립할 당시에는 기독교 인구의 67%에서 지금은 이슬람교가 70%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과거에 팔레스타인 인구 중에서 기독교인이 적지 않았는데 하마스에 의해서 핍박을 받아 찾기 힘든 정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아랍의 각지에서는 기독교인으로 개종을 하면 돌 맞아 죽기 때문에 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 땅에는 20만의 기독교인이 있으나 발각되면 정치법 수용소에 끌려가고 핵실험 장에 끌려가서 동굴을 파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 땅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중국에서 중국인이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린 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디도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시107:4-7]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한 화가가 마을을 그리는데 동네 사람들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한 청소부를 정해서 모델이 되어 달라고 했지요. 그에 맞게 배경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 청소부는 잠시 후 그림 그리는 장소에 다시 찾았으나 돌아가야 했습니다. 청소부가 말끔한 옷을 입고 수염도 깍고,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지식이 있고 똑똑해서?, 착해서?

[신명기8:12~17]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놔라.” 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나의 생명을 구원하셨건만 감사를 모르고, 날마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 미국의 큰 회사 사장님이 “사람들이 너무나 감사할 줄을 모른다.”라고 하며 자기가 61년 동안 사업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베푸는 일을 했는데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176명에게 칠면조를 보냈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한 사람은 꼭 4명이 있었는데 그것도 2명은 길 가다가 마주쳐서 한마디 했고 다른 2명은 조그만 쪽지에 한마디 적어 보낸 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 좋은 형편에는 감사하고, 형편이 좋지 않으면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 기뻐하고 좋지 않은 일에 불평하는 것은 그저 본능대로 사는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불평도 하고, 감사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를 열 마디 하다가도 불평 한마디를 할 때 그가 어떠한 사람의 수준이 어떤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이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 감사도 훈련이고, 불평도 훈련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감사하는 사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나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가 지금 땅에 올라와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산의 뿌리 물속 깊은 곳에서 드리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감사의 기도는 내가 지금 얻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또 앞으로 인도하실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약속을 합니다. 구원을 이루시옶서....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고린도후서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우리 인생에는 고통과 근심이 바뀌어 하나님을 만나고 더 귀한 것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군대와 홍해 사이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위대한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불레셋의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이스라엘을 무섭게 위협하지 않았더라면 소년 다윗과 이스라엘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요일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지금도 시시때때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 스펄젼 목사님은 “캄캄한 밤하늘에도 자세히 보면 별빛이 보일 것이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점점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입술로 감사하고, 찬송과 기도로 감사하고, 물질로 감사하는 자에게 점점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 예수님이 열 문둥이를 고쳐주셨을 때 겨우 한 명만 와서 엎드려 절할 때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8) 하시며 섭섭한 마음을 보이셨습니다. ◯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제일의 목적은 우리 인간을 통하여 영광 받는 것입니다. 감사치 않는 것은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입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세계적인 신앙명저 ⌜기도⌟의 작가 오 할레스비(Ole Halleby)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두 명의 성도를 오랫동안 관찰했습니다. 두 사람 간에 놀라운 차이를 발견하였는데, 한사람은 늘 평안하고 기쁨이 넘쳐나는 반면, 다른 사람은 늘 걱정에 젖어 있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이 열정적으로 기도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을까? 그녀는 묵상하는 중에 발견한 것은 기도의 질에 차이가 있음을 알았답니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 內村鑑三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다.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것, 둘째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 세째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믿음으로 기도한 사람은 이루어진 줄 믿으니까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평강이 찾아옵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 남아있습니다. 내게 맡겨진 십자가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시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세계비전성취는 내 자신이 구원의 은혜를 참으로 깨닫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지체의 역학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환란날에 지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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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24-30  <가난한 자에게>         2017. 10. 29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기록상 예수의 첫 설교로 공생애 첫 출발의 설교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는 예수님은 집 안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 (눅1:35)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 (눅3:22) 세례 받으실 때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고, - (누가복음4:1)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눅4:14)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한결같이 성령에 이끌리어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 그 후 예수님은 자라나신 곳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이 회당에 가서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회당장이 예배 전에 성경을 읽고 말씀해 줄 것을 요청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성경 가운데 한 부분을 찾으셔서 읽으셨습니다. [사61:1~2]의 말씀을 읽으신 것입니다.

[이사야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누가복음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어 주의 영이 기름부음으로 임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영으로 오는 자입니다.


[18절] 시작하는 말씀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성령으로 기름 부으시어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실 때는 혼자 집 안에 앉아 있으라고 성령께서 기름부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부활 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나아갔습니다.

[요한복음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②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③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네 개의 본문은 모두 부정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부정사구는, 예수의 사역은 선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선포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난한 자를 위해 보내심을 받은 그 사역은 "오늘"에까지 성취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주의 은혜의 해"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가난한 자'에 해당하는 단어는 대략 10번 나타납니다.

[눅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4: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16:20]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21: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그 외에도 탕감 받은 두 사람의 빚진 자의 비유(눅7:41-43)도 있습니다.

◯ 세례요한은 세례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눅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 중에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백부장' `제자 요한'‘예수를 청한 바리새인,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보는데, 그중에 구원받은 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가진 것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선을 행하였습니다. 누가는 현실 있는 그대로의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 참 회개는 실질적인 관심을 보입니다. 나눔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 진정한 헌신은 마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고, 재물의 헌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는 소년관원에게 영적인 것만 말했나요? 먼저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1. 다음에 할 말이 중요한 것이고, 그냥해본 말씀입니까? 2. 아니면 영생을 얻는 길에 꼭 필요한 사항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보여야 합니다. ◯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지 않으면서 어찌 하나님 앞에 나의 충성을 보이겠습니까?


◯ 예수님은 마태복음에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사람은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무론하고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 주님은 이런 가난한 자에게 파송을 받으셨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에게는 복음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문제도 해결하고, 자기의 힘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교만한 자에게는 복음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원래 이 말씀의 1차적인 대상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서 주후 586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고,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포로생활은 현실입니다. 지금은 로마의 식민지배 아래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시켜주신다그러나 주님은 정치적인 자유를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의 세력에 포로 된 온 인류를 해방시켜주시고, 영적인 자유 함을 주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렘29: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태복음12:11]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부르신다는 말씀입니다. 죄와 죽음의 법아래 놓여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의 포로가 되어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끌려가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2.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요한복음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죄악에 눈이 어두워 빛 되신 주님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을 밝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스스로를 의롭게 여깁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보지 못합니다. 디메오가 눈을 떴듯이…


3.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이 부분은 히브리 성경에도 없고, 70인역 성경에도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추가한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누가는 이 말씀을 덧붙이고 있는 것일까요? ○ 하나님을 알지만 우리는 많은 얽매임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책감에 눌려 지내고, 세상의 근심과 염려에 눌림을 당하고,어떤 사람은 마약과 노름의 유혹에 얽매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의 억압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많은 상처들로, 인간에 대한 미움과 분노와 좌절에 두려움에 눌려 살아갑니다.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9절]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바로 하나님의 임재 날에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18절에 보여진 일련의 사건이 바로 은혜의 시기에 자신의 백성에세 주어지는 <기쁨과 환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은혜의 해는 구약에 나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이란 7년마다 지키는 안식년을 7번 지낸 다음의 해인 그러니까 50년째가 되는 해를 말합니다. 이 50년째가 되면 가난 때문에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던 자들이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난으로 남의 손에 들어간 땅도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습니다. 그래서 이날은 기쁨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었습니다.

◯ 구약의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해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고린도후서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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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46-52   <길에서 따르니라>    2017. 10. 21

인생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짐을 지고가는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아픔이 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죄인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소득이 없고, 거지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10:46]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란 말은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마지막 길이었음을 말합니다. 다시 여리고성을 찾을 일이 없으신 때입니다.

◯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부르짖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제지했습니다.(48절). 그러나 바디매오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은 생사를 걸만큼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심히" 소리 질렀습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은 환경과 핍박을 초월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예레미아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제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리리라. 열리는 겁니다. 구하는 것마다 주시는 겁니다.

 

[고린도후서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기회는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은혜가 될 때는 단비가 내리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는 겁니다. ●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 됩니다. 은혜를 우습게 여기며, 주신 은혜를 자꾸 쏟으면, 있던 은혜도 거두어 가십니다. 뿐만 아니라, 열려 있던 은혜의 문도 자주 닫히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거지 바디메오가 은혜의 기회를 놓쳤더라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까? 몰라서? 알고도 찾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함을 아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 모세를 보십시오. 그의 손에는 마른 나무 지팡이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이도 많습니다. 군대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와 싸워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승리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백성을 홍해를 건너게 하고 광야를 다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한 것은, 모세의 능력 모세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인 겁니다. ◯ 재능이 있고 많이 배워서, 설교를 잘해서 목회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함께 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기독교인이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기도만 하냐?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지~" 맞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 자체가 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참 빛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은 단지 그 빛의 전달자입니다. 사람은 먼저 교회 안에서 등불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소금도 빛도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을 뵈옵고 얼굴에 광채가 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부드러워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됩니다. 선행을 하고, 봉사를 행하는 것도 귀중한데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바디매오는 부르짖을 때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호소했습니다(47절).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며, 병자들을 고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능력의 주님이… 귀신을 쫓아내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분이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믿은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구원자로 믿었습니다. 조금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잘 받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슬람이 알라신을 찾듯이 우리의 조상들의 하늘을 찾듯이 찾으면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교량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부르짖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를 질렀더니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 주십니다. 애타게 부르던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소리에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막10:50)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 겉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거지 바디매오가 겉옷을 벗었다는 말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거추장스러운 것을 던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유대지방에서는 겉옷을 담요처럼 비슷하게 만들어서 추위를 피하는 긴요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겉옷은 비록 냄새나고 더럽지만 바디매오가 가지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빨리 만나기 위해 던져버렸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우리는 무엇인가 포기합니다.

◯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벗어 던진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 따르기 때문에 벗어 던진 것이 있습니까?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는 순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버려야 했을 것입니다. 주일에 낙시가고 등산가는 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 말씀에 따른 새로운 인생의 변화를 위하여, 천국 백성으로 살기 위하여 던진 것이 있습니까? 없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겉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한 사람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따를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2:1~2]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 주일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되는 겉옷,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겉옷, 예배드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겉옷,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 벗어야 할 것은 벗어 던져야 합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자기의 꽃잎을 떨굽니다. 씨앗은 새 생명을 위해 자신은 죽습니다.

- 어떤 사람은 <자존심의 겉옷>, <자기 만족의 겉옷>, <체면의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많이 가졌다고 교만의 옷을 입고 있다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10:47-48]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했습니다. ◯ 무엇이 그에게 그런 확신의 믿음을 준 것일까요? 그가 의지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 왜 중국에 귀신이 쫓겨나는 이적이 많고 병을 치유하는 이적이 많은 줄 아십니까? 아무것도 의지할 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 찾는 사람, 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는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쉽게 절망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누가복음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시편9: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시편10: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계시록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바디매오가 드디어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그렇게 소리 질러 불렀던 예수님의 앞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10:51)

◯ 거지 바디매오에게 필요한 것은 구걸해서 살던 사람이니 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일반으로 사람들로부터 받는 멸시와 조롱으로 굳어진 사람은 자존감이 없어 사람이 욕해도, 사람들이 발로 차도, 그러려니 오래 전에 자포자기로 살아갔을 것 같습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명을 극복하고 바꾸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 바디매오가 자신의 눈을 뜨기를 원했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막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예수께서는 이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그의 믿음이 그의 인생의 새로운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첫째, 열정의 믿음입니다. ◯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세례요한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두고 말하기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심령이 무엇입니까? 열정입니다. ◯ 창피함과 사람들의 만류 부끄러움을 무릎 쓴 열정이 있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생활의 열정입니다.

둘째는, 그의 믿음입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셋째, 그 다음 그의 행동은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그는 길에서 즉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것을 봅니다. 초대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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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3:10-17  <고난을 통한 믿음>   2017. 10. 15

이 세상 누구를 보아도 욥과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욥의 가까운 친구들은 욥이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 위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남다른 뜻이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욥1:1]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자녀들이 혹시나 하나님께 범죄치 않았나 하여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만큼 악에서 떠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악인이 형벌을 받으며 죄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욥은 의인으로서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이 때문에 욥의 고난은 더 쓰라린 고통이 되었습니다.


● 사람들이 왜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약해지고 넘어집니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간증을 하며 ‘나는 신앙이 좋은 사람이다.’스스로 생각합니다. 욥은 보세요. 그는 물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욥 1:2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찬송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임을 인정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욥의 신앙이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까? 욥의 신앙에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의 신앙도 검증 되어야 하고, 견고한 신앙이 되기 위하여 통과 해야 할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을 담대히 번제 드리는 것을 보면서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말씀으로 극복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하나님은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하나님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으로…, 많이 배워서… 신앙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 어떤 사람은 큰 확신으로, 조금도 의심이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신앙생활 하다가 보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정말 천국은 있는가? 의혹이 생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한 신앙과 머리로 인정하는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욥의 신앙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확신의 믿음, 경외하는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 안드레가 최초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고백했습니다. 

[마태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고백함으로 신앙의 출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검정되어야 합니다. 그의 고백이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까!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에 앞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했지만나 그는 닭이 두 번째 울기도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는 칭찬을 듣고 싶었습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그는 스스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는 축복된 사람으로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께서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그는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 이 한마디에 자신이 얼마나 재물을 사랑하고, 얼마나 내려놓지 못한 사람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하고 마음 편하게 살았을 텐데요. ~


● 성도에게도 고난은 필요 합니다. 그 고난의 형태는 다양할 것입니다.

[시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후 4:17] 우리의 잠서 밭는 환난의 경한 것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욥의 무능 무지한 존재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 나는 내일 살아 있을 것인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알지 못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찌 쓰실까? 나는 얼마나 살겠으며, 나의 가족들은 대대로 축복된 삶을 살 것인가?

◯ 그는 믿을 뿐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욥이 믿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최종적으로 좋은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재물의 회복도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정금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정금이라 함은 가장 귀한 것, 변하지 않는 것입다.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99.9%의 신앙을 말합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고, 믿는 신앙, <정금 같은 신앙>을 얻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출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고난 중에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부귀와 존귀가 모든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지위가 다 위에서 오는 것입니다. ◯ 광야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것은 하나님의 공급하심, 도우심, 인도하심,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구나 알아야 합니다. ◯ 아골 골짜기, 메마른 사막을 건넌다 해도 아무 가진 것 없고, 내일의 보장이 없어도 기뻐하는 신앙,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에게도 광야를 지나는 동안 고통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질병, 시험, 아픔, 배신, 실패일수 있습니다. 물론 그 연단이 다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로 훈련하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훈련하고, 어떤 사람은 배우자로 훈련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로 훈련합니다.

◯ 하나님은 나를 여러 모양으로 훈련하십니다. 뜨거운 용광로의 제련을 통하여 금이 만들어지듯 인생의 여러 가지 단련을 통하여 정금 같은 믿음의 성도가 됩니다. ◯ 정금과 같은 신앙은 고난 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얻고자 하시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 사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도 다 그런 연단과정을 거쳤습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아름답게 극복할 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축복도 고난을 통과하고 얻어진 축복이 진짜 축복입니다.


● 욥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이 광야를 지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내게 정금 같은 신앙을 원하시고 정금 같은 신앙을 주시려 하시는데 나의 관심은 물질, 명예, 세상에 출세를 구하고 있다면 <정금 같은 신앙>을 영영히 얻지 못할 것입니다. ◯ 내 손으로 수고하여 행복을 사려한다면…, 나는 여전히 애굽의 과일과 고기 불가마 앞을 생각하면서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연연하면… 절대로 <정금 같은 신앙>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욥기 23:11-12]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 23:13-14]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애매한 고난을 말하면서도 마음에 많은 섭섭함이 있었어도 욥은 자신의 입술을 지켰습니다.

◯ 욥은 '일정한 음식'보다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특출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듣고, 믿고, 묵상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13절]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말씀을 보면 욥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무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우리의 생은 비참해 집니다. 더 큰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성도는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까닭 없는 재앙들을 주셨던 모든 고난이 자기를 정금처럼 만들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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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5-13  <큰 믿음>    2017. 9. 24

[마태복음 8: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나옵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나와 하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와서 간절하게 빌었다는 것은 좀 이례적입니다. 그것도‘주여’라는 존칭을 사용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유대인 장로들이 찾아와 이 백부장은 장로들에게도‘합당한 자’라고 증언 받았습니다. [눅 7: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나 유대인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자선을 하며 회당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드물게 유대인의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을 [경건한 이방인]이라 부릅니다.

● 백부장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의 겸손은 다른 민족의 신앙에 귀를 기울여 이해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좋은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백부장은 ‘형제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경과 계급을 넘은 사랑을 봅니다. 주님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곧 당신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이다.’ 주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 믿는 자 안 믿는 자를 포함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에 나의 일, 나의 가족, 나의 사업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 백부장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하인을 하대하지 않고 고통 받는 그를 소망의 주께 연결하는 중보의 사랑을 행하였습니다.

◯ 예수님은 그들의 부탁을 들으신 후 더 이상 세세히 묻지 않으시고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하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백부장의 집에 들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하인을 향한 지극한 사랑에 감동하셨던 모양입니다.

백부장은 

[마태복음 8:8]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당시의 유대인의 통념상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죄인 취급되었고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과는 별로 인간관계도 없는 이방인의 집에 찾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예수님이 좋습니다. ◯ 세리 마태의 집에 손가락질을 받으실 줄 알면서도 들어가 식사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돌아올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비판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로 말미암아 당하신 고난과 인내를 받아 주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 예수님을 더욱더 놀라게 한 것은 단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는 다만 말 한 마디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는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정말 치료하실 수 있을까?”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말씀 한마디로 능히 병자를 고치시는 분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 한마디]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 세상이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있고, ”하늘이 있어라“고 하시니 하늘이 있었고, ”땅이 있어라“고 하시니 땅이 있게 되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 이미 나흘이나 무덤에 놓여 있던,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일도 문둥병자가 치료받은 것도,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이루어졌습니다.


● 그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것은 바로 그의 믿음입니다. ◯ 세상 사람들은 자선과 선행은 권면하고, 칭찬하지만…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막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히브리서 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늙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이삭을 얻었습니다. 또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습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는 백부장에게 ‘이만한 믿음을’본적이 없다.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그 백부장의 믿음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군인생활에서 얻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권세를 아는 사람,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군인 백부장은 부하들에게 늘 명령하고, 자신도 역시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령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관이 명령하면 그것은 그대로 실행됩니다. ◯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 하시면 병이 순종하여 물러나가리라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의 권위를 믿었습니다. ◯ 백부장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었습니다. 백부장의 이 믿음의 말이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 권위를 알고 상사의 권위를 알고 권위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부모의 권위를 알고 국가의 권위를 알아야 합니다. 권위가 어디 있는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권위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世上萬事는 주님이 원하심에 따라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주님이 원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한다.’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의 뜻과 시기, 하나님의 권능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날 모든 일이 겨울의 두터운 눈도 봄에 봄눈 녹듯이 풀어질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주님이 허락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눅 17:7~10]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으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예수님은 믿음을 더해 달라는 사도들에게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 다른 감정들이 개입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어떤 며느리가 친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답니다 자기가 보기엔 친정 가족들이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고 부지런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시댁이 더 잘되더라는 겁니다 시댁은 한번은 다른 종교를 믿기도 했고 신앙생활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거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시댁은 하나님께 더 축복을 받는다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헌데 이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가 시댁과 친정 가족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시댁 식구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에게 잘못을 했을때 빨리 빨리 용서를 하고 하나님이 이게 아니다 하시면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거 같습니다. 반면에 친정 식구들은 신앙생활은 열심히들 하시지만 무언가 마음에 미움이 있을때 그걸 빨리 풀어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들려올때도 자세를 빨리 바꾸지 않는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목사님께 정말 목사님의 말씀이 맞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 사울왕은 제사를 드리려고 소를 안 죽이고 데려왔지만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마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백부장의 믿음은 결국 주님의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내게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있는가를 돌아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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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34:14-21 < 요시야의 신앙개혁 > 2017. 9. 17

[대하 34:3-4]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 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요시야왕은 여덟 살에 남쪽 유다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유다의 3대 왕 중의 한 왕입니다. ◯ 팔년 곧 (16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바알의 단을 훼파했다 했습니다. ◯ [산당]은 원래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 없어 임시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쓰이던 곳이 결국 바알 신을 경배하는 장소로 변질되었습니다. ◯ 참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고, 사람들에게는 농사와 비의 신 풍요의 神으로 바알과 아세라 이 우상은 그들의 조상의 신 여호와의 신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이 찾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 하나님이 아닌 가나안의 신 바알을 섬기는 산당이 된 것입니다. 이 바알신이 오늘날로 말하면 무슨 神이겠습니까? 바로 맘몬신입니다. 황금만능주의입니다.


[대하 34:11]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1)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18년(26세)에는 히스기야 왕 이후로 돌보지 않던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였는데 성전 수리는 단지 낡은 건물을 손질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리는 대대적인 수리였습니다.

◯ 사람들은 ‘교회가 소망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초대 이후로 교회는 끊임없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낙망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의 특징은 개혁이고, 교회는 개혁함으로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성전을 깨끗케 하신 것으로 나와 있고, 그리고 복음서는 공생애 말기에 다시 깨끗케 하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라 하십니다.

◯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이 상업에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장사꾼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사장들이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받았습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팔았습니다.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물질주의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물질적인 탐욕이 자리합니다. 주님은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대하 34:17] 또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돈을 쏟아서 감독자들과 일꾼들에게 주었나이다 하고 18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19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2)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요시야 개혁의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제사장 힐기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요시야 왕에게 가지고 나와서 그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시야 왕은 자기 옷을 찢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귀중한 유산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시야 왕은 그 말씀을 진지하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은 율법책을 읽을 때,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기쁨보다도. 그는 통회하는 마음을 보입니다. 그리고 옷을 찢었습니다. 이것이 개혁의 출발입니다.


[대하 34:22]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대하 34:25]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3) 그는 자기 나름대로 율법책의 내용은 이해했지만, 스스로 더 나아가 참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요사야 왕은 그 여선지자 훌다의 말을 듣기를 원했고 신뢰했습니다. 여선지자 훌다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에 적힌 말씀의 뜻을 풀어 줍니다. 그 심판을 진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고는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대하 34:29-30]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대하34: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32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 진정한 개혁은 외적인 성전의 수리만이 아닙니다. ◯ 여선지자 훌다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확실히 알게 된 요시야 왕은 모든 예루살렘의 거민을 불러 모아 그 내용을 알리고 온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을 세우게 합니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여, 묻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 요시야가 성전을 진정 소제하고 수리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께서 요시야에게 주신 것은 말씀이었습니다말씀을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는 감동이 없이는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성전은 말씀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우리 각 사람의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아름다운 성전이 되기를 원하시고 원하십니다. 마음의 개혁 이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진정한 성전개혁은 먼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과감히 고치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태해 지고 둔감해져서, 구하지 아니하고, 읽지 아니하고, 배우지 아니하고, 드리지 아니한 성전 정화 되고 수리 되어야 할 바로 우리 마음의 성전입니다.


● 순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를 단절하고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견고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의 방식을 고치지 않으면 성경을 읽지도 못하고 성경공부시간을 가질 수도, 기도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도 못합니다.

◯ 마음을 드린 사람은 모든 것을 드린 사람입니다. "제 5복음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는 말씀은 있는데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는 말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개혁은 나 자신의 개혁에서 시작합니다.

● “세상이 타락했다. 사회가 타락했다.”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부패의 출발은 교회가 자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패는 한사람 한사람, 한가정 한가정의 부패에서 시작합니다. 교회개혁에 앞서 필요한 개혁은 나 자신의 성전청결입니다. 목사가 왜 그러냐? 신학교를 마친 사람이 왜 그러냐? 말하지만 실은 그 사람은 교회에서 배출한 사람이고 가정에서 양육받은 사람입니다. 엄마 아빠가 교회를 중시하고 헌금 생활을 하고, 예배를 잘 드린 가정의 자녀는 교회를 사랑하고 헌금을 구별하고, 예배에 전심을 다할 것입니다.

개혁은 나에게서 시작하고, 나의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5:17]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바리새인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십일조에 감사헌금, 구제헌금을 하고 성경을 외우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전도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한도 주님도 ‘독사의 자식들아’ 하셨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3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향한 열매입니다 ② 사람을 향한 열매입니다. ③ 나 자신을 향한 열매입니다. 나 자신의 내적인 열매는 [갈5:22]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온유, 절제 …

◯ 내가 얼마나 열심이고 봉사를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기도를 많이 했는가가 그 사람의 신앙이 좋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10년 20년 신앙생활 해도 여전히 세상의 명예와 지위 성공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고, 여전히 분내고 초조하고… ●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받은 이유는 자신의 열매를 드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 사두개인이 더 정직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대하34: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이 언약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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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4:17-5:5 <세상을 이기는 믿음>     2017. 8. 27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어떤 환경도 이길 수 있고, 고달픈 인생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면 다시 일의 의욕을 가지게 되고,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받는 사람은 견디어 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은 지옥도 천국으로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하면 키 작은 것도 보이지 않고, 인물이나 학력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이란 세월을 봉사하는데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사랑하면 짐이 되지 않습니다.


○ 꼭 알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이 왜 두려워합니까? 얼굴에 왜 기쁨이 없고, 감동과 감사가 없습니까?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없고, 의심하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겨집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주위를 돌보기에 여력이 없습니다. 사랑이 다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합리화, 자기 만족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아가페)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행하는 이웃사랑은 자랑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2:36-40]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1.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요한1서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다른 형제들과 형제 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즉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근본적으로 나의 믿음을 의심해야 합니다. 혹 마음에 안 드는 형제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형제도 사랑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 믿음의 형제들에게 잘해야 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오기전에 가족과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몽고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마치고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2. 계명을 지킵니다. ‘계명들을’ '모든 계명을'입니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신 10: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 거룩한 계명들, 더 높은 수준의 계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합니다. 십계명만 아니라 더한 계명들도 주의 사랑이 강권합니다.


[신 30:11-14]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아담과 하와는 탐욕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겼지만 성도는 율법을 기쁨으로 지키는 사람입니다. ●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지켰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축복을 위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남이 하라고 해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 지키는 계명은 무겁습니다. 내 마음에서 스스로 지키는 계명이 무겁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맘이 있어서 하는 짐은 짐 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그 구절에서 사랑의 열매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이 희락의 열매, 즉 기쁨의 열매입니다. 기쁨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것입니다. 기쁨 없는 찬송과 기도도 허무한 것입니다. 이 기쁨은 근본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과 기쁨은 따로 떼어 놓아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3. 세상을 이기는 힘은 아들에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요일 5:4-5]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 여기 '세상을 이긴다.'고 했는데 세상이란 말은 이 불신의 세상 의미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사람이 왜 약해지고 넘어집니까? 왜 기쁨이 없습니까?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 두렵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 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5절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

13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

믿음이 우리를 이기게 합니다. 믿음이란 처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요일 5:1-11,1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믿음은 오래 믿었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이적과 기사를 많이 보아서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 고백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하십니다.

4.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따릅니다.

[막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으로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넜고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점령하였습니다. ● 라합이 정탐꾼을 숨긴 것은 믿음으로 그렇게~

● 아브라함은 그가 늘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다메섹엘리에셀이 후계자가 될 것이다.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보았습니다. 


● 믿는 자에게는 믿음의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내게 증거가 없다 함은 거짓말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것만이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나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압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담대함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소망이 자라고, 꿈이 이루어지고, 변화가 있습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짐이 무겁고, 힘들고, 풍파가 닥쳐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 전도자 죠지뮬러는 30명 정도의 고아들을 키우는 고아원을 운영했는데 돈이 많아서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 시킨데 아닙니다.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고아원을 운영한는 돈은 그때 그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받아서 사용한 것이지요,

하루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점심 양식이 없습니다. 어쪄지요? 뮬러는 평소와 똑같은 침착한 태도로 말합니다. 평소대로 식사준비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요리사는 식당으로 가서 빵을 담을 접시를 식탁에 일렬로 놓았습니다. 어린이용 30개의 접시와 물 컵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이렇게 식사준비를 끝낸 요리사는 다시 초조한 얼굴로 뮬러에게 와서 식사시간이 15분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요리사는 식당으로 돌아가고 뮬러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뮬러는 하나님께서 틀림 없이 어린이들에게 빵을 먹여 주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선생님 5분전입니다. 다시 요리사가 와서 말을 하였습니다. 뮬러는 대답대신 기도를 합니다. 이를 본 요리사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문 밖에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요리사가 나가보니 트럭 한 가득 빵이 실려 있었습니다. 식료품회사에서 고아원에 기증하기 위하여 빵을 가져왔던 겁니다.

● 믿음은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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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7-11   <종말 신앙>     2017. 8. 20

[마태복음 24:6-8]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만물의 마지막의 종말 징조 중의 하나가 난리의 소문입니다. 그리고 지진과 자연 재해의 발생입니다. 징조에는 영적인 징조도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4:11). 불법이 성해진다고 말씀하셨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마태 24:12).

갈수록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범죄가 증가합니다. 미국 사회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범죄의 문제입니다. 한국도 갈수록 범죄가 많아집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악을 밥 먹듯 범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1. 기도하는 삶; 무엇보다 먼저 그 날이 가까워질 때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이 다가오면 세상은 더욱 혼란해 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하고,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큰 환란이 닥쳐오는 순간에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이 참으로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이 정말 내가 해야 할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 그리스도인 가운데 발견되는 이상스런 일들 중 하나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게 구하라 네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고 말 하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믿고 기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축복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능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빠서 기도한다] 하는 책이 있습니다. 루터는“나는 너무나도 일이 많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3시간씩 기도했고, 요한 웨슬리는 매일 2시간씩 기도했다. 버어마의 선교사 저드슨“기도를 큰 결심으로 하여라, 기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슨 희생이든지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자정에 기도했고 새벽에 기도하고 아침 9시에, 12시에, 3시, 6시 그리고 밤 9시에 기도하였다.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지붕에서 내려오지 말라. 산으로 도망해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붕은 기도의 장소입니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시험의 때는 곤란의 때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근신하여”란 자신을 살핀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살피면 자신의 부족한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노, 탐심, 시기심, 허영심, 조급함, 게으름 한도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살펴 부족한 것을, 기도 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 회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몸을 씻는 회개입니다. 2. 발을 씻는 회개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내 발을 씻길 수 없나이다. 했습니다. 주님은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나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이 많은 세상이고, 무서운 일,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집니다. 마귀에게 패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떠나 육적 생활을 면치 못합니다.

● 우리는 서로를 세우기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8-9]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

2. 사랑하는 삶 ; 종말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뜨거운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뜨겁게”사랑해야 한다 말합니다. 힘을 다해 사랑하여야 합니다. 말세의 징조 중의 현상으로 사람들은 극도의 이기심에 빠져 모두가 자기이기적인 일에만 빠져 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극단의 이기주의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속이고 다투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1) 허물을 덮어주는 삶 ; 먼저는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즉 우리는 서로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룩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준다.

● 우리의 눈에는 참기 어려운 남의 허물과 죄가 쉽게 보입니다. ◯ 허물을 가린다는 말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이 죄를 덮는 말은 범죄의 사실을 은폐해 버린다는 말은 아닙니다. 죄는 은폐할 것이 아니라.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죄는 미워하나 죄를 지은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드러내기는 쉬운 일입니다. 죄를 드러내기에 앞서 더 많은 사랑과 이해와 포용과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 즉 아가페의 사랑의 화신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저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 1가지 허물을 말하기 전에 10가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왜 미움이 가득하고 다툼이 있고 범죄가 만연해 있습니까? 자살합니까?

[잠10: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2) 본문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라는 말씀 다음으로 서로 대접하라. 용납하라. 말씀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 대접하는 가운데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야합니다. 성경은 너희가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본문에 ‘서로’라는 단어가 세 번에 걸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8), 서로 대접하라(9), 서로 봉사하라(10)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모두 더불어 살도록 부부를 허락하시고, 자녀를 주시고, 이웃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삶을 얻으려 각 사람은 너무 급하고 이기적입니다. 사람은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 서툽니다. 그래서 부부가 다투고 형제가 원수가 되고, 이웃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과 개와 고양이가 친구가 되고 식물을 벗 삶아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나만의 꿈을 가지고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려합니다. 혼술, 혼밥, 1인 가족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나 혼자 하고 나 혼자 몰래 예배 하… 혼자 살면 편하고 자유롭게 살 것 같지만 실제로


●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하고 준비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종말신앙입니다. 사람이 한 세상 오래 오래 누리며 자랑하며 살겠노라 말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메마른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은 … 말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의 의식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데는 함께 모여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고,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3. 선한 청지기로 봉사하는 삶;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사에 따라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직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교회의 천정 벽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래에서는 높은 천정의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천정에 가까이 붙어서 선 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바라보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그리고 내려오게나.”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친구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자네겠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을 다하여 그릴 수밖에 없다네.”

◯ 청지기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일은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감당해야 됩니다. 우리의 생명, 시간, 재능, 능력, 재산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선한 일에 쓸 수 있는 돈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할 수 있는 기회와 건강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선한 청지기는 나의 소유, 만족, 나의 목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로 봉사하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 선한 청지기는 말을 할 때도 내 하고 싶은 소리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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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6:1-12]  <하나님의 언약궤>    2017. 7. 9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던 시기입니다. 사무엘은 아직 어렸습니다.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산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하였는데 이스라엘이 패하여 죽은 사람이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했습니다.


◯ 백성은 광야 길에서 언약궤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기억합니다.

[민10:33-36]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강물이 끊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도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장섰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함께 하는 곳에는 항상 승리가 따랐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그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전멸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이때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이제야 생각이 나서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들어오자 이스라엘 군사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환영하는데 땅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마음이 붕~ 떠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 우리는 분명히 이긴다!" 그들에게는 큰 믿음과 승리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 블레셋 군사들은 언약궤가 들어왔다는 말에 크게 두려웠습니다. 애굽인을 친 신이 진에 이르렀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독려하여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될 수 없다.’ 블레셋은 더욱 분발하여 싸웠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싸웠으나 결과는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전쟁에서 참패하였습니다. 전에는 4천 명이 죽었으나 이번에는 삼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제사장도 놀라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 또한 이 모든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하여 아들을 낳으며 죽었는데 그 이름을‘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 했습니다.

▶ 왜 늘 언약궤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까? 언약궤에는 원래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수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 하나님 동행과 임재가 없는 언약궤는 단지 나무궤짝에 불과한 것입니다.

 

◯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니고, 자신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외면과 명분과거의 업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는 언약궤가 있고, 성전이 있고, 예배가 있으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승리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은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고 그의 계명과 뜻을 행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제아무리 구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 부부 사이의 문제, 형제와의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합니다. 목자와 나와 관계가 해결되지 않고는 말씀이 들어오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사무엘상 5:1∼6]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궤가 더 이상 아무런 효험도 없었고, 하나님은 언약궤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숭배 하는 이방민족들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효험이 없다고 버린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두려움의 대상으로 능력을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삼상 6: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 있은지 7개월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잊혀져가는 물건에 불과하였습니다. 언약궤가 왜 그리 아무도 찾지 않는 천한 존재가 된 것입니까?

 

●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을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책회의를 합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자기들의 제사장과 술법사들에게 묻습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신이 우리에게 재앙을 불러왔도다. 이 문제 해결은 언약궤를 돌려주는 수밖에 없다. 돌려주되 정중하게 돌려주어야 한다." 결론짓고 이스라엘 지경으로 옮기는 벧세메스로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 여호와의 궤를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돌려보내되 <두렵고 강한 신> 앞에 분노를 샀으니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제사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성읍의 숫자대로(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독종의 형상 다섯 개와 쥐의 모양 다섯 개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재물이 들어갔습니다.

◯ 그리고 새 수레를 구했습니다. 거기에 언약궤를 싣고,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 왔습니다. 멍에를 처음 메는 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 정말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지 점검하고 싶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두 암소는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대로를 가는데 바로 행하여 갑니다. 그리고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한 번도 수레를 끌어 본적이 없는 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는 벗어버리려고 펄쩍 뛰지 않았습니다. 송아지가 '음매, 음매'하고 부르는데 그것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갑니다. 그렇게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며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 벧세메스 사람들이 밀을 베다가 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수레가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를 패어 땔나무를 하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 우리는 여기 짐승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이 소들을 선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이 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들은 그 땅의 地理를 잘 아는 소가 아닙니다. 그 멀고 먼 거리인 블레셋 땅에서 벧세메스 땅까지 곧장 갈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힘으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함에 따라 간 것입니다. 헌신이란 인도하시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송아지가 울고 있어도, 처음 끌어보는 무거운 수레에도, 벧세메스로 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도 순종했습니다.

◯ 이 소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억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은 감정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분노의 감정, 연민의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옳음과 다르기에 성내서도 안 되고, 초조해서도 안 됩니다. 항상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내 마음에 화가 있으면 절대로 성령이 그곳에 역사하지 않습니다. 분노와 미움이 있는 곳에 성령은 소멸됩니다. 온유와 겸손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배운 것이 없어서, 경험도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여러분과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학습하고 배웠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 우리의 문제는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자존심, 많은 이유들, 나의 경험, 나의 소망이 더욱 귀합니다. ◯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여, 나를 날 보내소서.” 하고 자신을 드릴 때 하나님은 기쁘게 그를 쓰셨습니다. ◯ 사무엘도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아브라함도, 바울도, 모세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나의 삶이 있고, 나의 욕망과 탐심이 있어서 듣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늘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나의 문제를 풀어 주소서.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헌금하고, 구제하고, 금식하였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귀한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 T.V 보다가 주일날 예배시간에 졸음에 빠진다면 온전히 드려진 마음이 아닙니다.

 

◯ 동행자는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됩니다. 목표가 일치되어야 됩니다. 한 사람은 우로 가고, 한 사람은 좌로 가자고 하면, 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땀을 흘리면 가는데 다른 한 사람은 다른 길을 간다면 그 집안은 평화가 없는 집입니다.

◯ 이 소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받쳐진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억지로 제물이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제물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알지도 못할 때에 주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었습니다.

 

[로마서 12:1,2]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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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2-7   <항상 기뻐하라>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신앙인은 반드시 좋은 것이 있을 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주어져서 얻어서 횡재해서 행복해 하고 기뻐하는 것은 어쩌면 유치원생의 기쁨일 수 있습니다.

진짜 신앙은 경제적으로 아직 문제가 있고, 몸에 병이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도 지금,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을 내가 알고, 나를 인정해 주시는 것을 알면 내 마음이 기쁩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늘 힘이 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늘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 외국 선교사가 한국 목사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둡습니까? 교회 오기 전까지는 바깥에서 명랑하게 얘기하고 웃다가도 교회에 들어서기만 하면 왜 갑자기 어둡고 우울해집니까?" 목사님은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자 ”한국 교인들은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랬더니 그 선교사는 웃으면서, “그러면 그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잊어 버렸나 보군요” 하더랍니다.

 

내게 주어진 무거운 십자가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구원을 베풀어주실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종국적인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일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가족의 문제 이런 일들이 해결 되면 참 기쁩니다.

 

어떤 사람은“기뻐할 것이 있어야 기뻐하지.”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고 싶어했습니다. 먹은 결과 벗었음을 부끄러워했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게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보면 부끄러운 것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로 기뻐하지 마세요. 

 

● 어떤 사람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 합니다. 그러나 박사학위도 받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장관에 오르면, 국회의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고 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고 고민이 많은지 말로 다 하지 못합니다. 또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근심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소중해 보이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눈을 감는 순간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해도 두렵지 않은 것이 우리 기독인의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서, 재물이 생기는 일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뻐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새사람 되는 것입니다.

[빌2: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빌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너희도 나와 함께 기뻐하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에 항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 했습니다. 10 재앙이 마칠 때 즈음에 애굽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 위대한 백성으로 보였습니다. 때가 되면 갚아 주십니다. 주님의 일로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성숙한 믿음의 사람일 것입니다.

 

[빌4:5,6]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관용'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에이케스'는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가리킨다(Calvin). '호의적인' '다정한' '친절한' '참을성 있는' '관대한' 등의 의미를 갖는다(Simpson).

◯ 관용은 내게 손해가 있고, 역경이 있고, 많은 도전과 대적이 있으나 흔들림이 없음을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모든 사람, 즉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 자신을 핍박(逼迫)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이라 말합니다. 이제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자가 되지 말라. ‘믿음에 굳게 서서’ 환경을 이긴 변함없는 신앙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여러 종류의 감정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감정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염려일 것입니다. 사람의 염려는 다양한 이유다양한 원인 때문에 생겨나게 되지요.

그 염려의 결과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기쁨과 평강과 감사와 만족을 빼앗아 가는 것만이 아니고, 무서운 암적 존재와 같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바로 염려가 뿜어내는 독소로 인해, 육체와 마음의 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같은 염려는, 현대인들에게 각종 질병을 야기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질병 가운데 약 70%정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염려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인간이 염려를 다스리며, 제거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70%정도의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염려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면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는 구나! 기도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죽고 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회복됩니다. 아무리 세상에 전염병이 있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병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벤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염려는 인간의 마음속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각종 염려는 자신이 원치 않는 외부적 환경이나 조건 때문에, 밖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사건을 앞에 놓고서도, 어떤 이는 크게 염려하며,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가하면, 또 다른 사람은, 초연하게 잘 극복해 나간단 말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이 하는 것

[빌 4:6,7]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6절]에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독소와 같은 염려를 몰아낼 수 있는 특효약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 전제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늘 평강을 달라 평강을 달라. 기도하지만 평강은 믿고 맡긴 사람에게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믿고 기도했으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평강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 한번은 어느 부인이, 매일 밤마다 술이 취해 들어오는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도무지 감사의 조건이 생각나지를 않고, 온갖 불평과 염려만 마음속에 가득 찰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솔직히 말해서, 내 남편에 대해서는, 감사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함으로 아뢰라 하시니, 좌우지간 무조건 감사드립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굳이 감사거리를 찾아보라면,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감사하고,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밤늦게라도 제 집이라고, 찾아오니 감사하며, 아무리 술에 취해서도, 절대로 부인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니 감사하고, 비록 지금은 저 모양이지만, 언젠가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니 감사했습니다. 술 취한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을 앞에 놓고서, 억지로라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자는 줄 알았던 남편이, 슬며시 눈을 뜨더니만, “여보 미안해. 다음 주일부터 나도 교회 나가 줄께"라며, 부인의 손을 슬며시 잡더라는 것입니다.

 

[빌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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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11-18   <큰 용사>                                                                                                             2017.  6.  25

[사사기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사사기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하나님이 지금 구원자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기드온은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왜 포도주틀 안에 숨어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까? 적에게 들켜서 다 빼앗기지 않으려 숨어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향하여 “큰 용사여!”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용사가 아니라 농부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디안을 대항해 싸울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를 향하여 ‘큰 용사여!’ 부르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기드온이 자신의 말을 따라 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자신의 일을 감당해 주리라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보다도 ‘나’를 더 잘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요1: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 즉 베드로는 바위,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리고 베드로 자신도 자신이 반석과 같은 일꾼이 될 것이라는 말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급하고,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라 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하셨습니다. ◯ 주님께서 조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베드로 안에 새로운 인격,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믿음을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 주께서는 자신 위해서 일할 사람에게 큰 재능, 많은 소유를 가졌느냐? 지식인이냐?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약한 사람, 실패한 사람, 못난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큰 용사, 사랑을 입은 자, 존귀한 자라고 말하십니다.

[예레미야 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혈기 왕성하던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80세 노년, 용기도 모든 것도 다 상실한, 자포자기의 상태일 때, 주님은 가장 낮아지고 낮아진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시고, 그를 세우시고,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할 수 있다. 자격이 있다." 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가장 깊이 고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주께서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 불렀지만 기드온은 아직 자신을 힘들게 하는 하나님에 대한 의혹들이 있었습니다.

[사사기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

◯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왜 나는 고난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함께 하신다 하시는데 어찌 우리를 대적의 손에 두십니까?” 말합니다. 기드온은 자신들의 고난이 마치 하나님의 책임인양 하나님께 불평하고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바로에게 무슨 책임이 있냐고 말합니다. ◯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 나에게 있고 나의 선택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는가 말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에게 동시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와가 그 열매를 먹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마귀는 하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사사기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네 힘을 의지하고 가라 말씀하십니다. 마치 다메섹 성문 앞에 엎어진 바울에게 ‘네 발로 일어서서’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사사기 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 말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니 너도 네 믿음을 보이라. 믿음을 의지하고 나아가 믿음을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는 무한한 역량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람을 택하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고, 또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에게 있습니다.

[출애굽기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13절]에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떨렸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자신에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를 믿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머리로 아는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믿음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머뭇거리고 힘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 믿음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는 모세가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드니 하나님이 동풍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이 마른 땅으로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물에 발을 내 딛였을 때 물이 상류에서 그치고 백성이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권세를 주셨는데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 우리가 이 능력을 사용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구원을 이루는 큰 용사가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은 믿음 가지고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순종함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귀감이 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진 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높은 지위의 집에서 나시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시던 주님께서도‘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받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유일한 한 가지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그의 환경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전에는 두렵고,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는 순종을 통하여 용기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큰 용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큰 용사’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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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4:6-15   <갈렙의 믿음>          2017. 6. 18

[민13:27-29]“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일찍이 모세는 가나안을 탐지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뽑고 그들에게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했습니다.

[민수기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여호수아도 물론 같은 의견이었으나,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진하자고 주장한 사람은‘갈렙’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는 후계자로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지명하였습니다. 갈렙은 모세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섭섭한 마음이 들만도 했습니다. 그런 말은 전혀 없습니다. 갈렙은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말없는 모세의 충성스러운 동지요 친구였습니다. ◯ 여호수아와를 동역자로서 그를 변함없이 도와주었습니다.

◯ 신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어떤 유명한 축구선수가 많은 골을 넣었다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돕는 자'가 되기 전에는 그는 결코 유명 축구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 구제할 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봉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봉사를 해도 빛이 나지 않는 봉사보다는 빛나는 봉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봉사 칭찬받는 봉사, 큰 열매가 나는 봉사, 효과 있는 봉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구제와 봉사가 자기 공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 하셨는데, 소금과 빛이 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서는 스스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과 주를 위하여 봉사하고 남는 것이 나의 영광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 모든 봉사에 앞서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내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것보다 귀중한 일이 없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나의 가정을 돌보고 나의 아내를 돌보고 나의 아이들을 돌보고, 나의 교회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면서 밖의 일에 전념하는 것은 장차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열매 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목사님이 예언하는 가운데 통역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주고 은혜를 끼치지 못하고 낙심할까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특별히 무슨 봉사를 하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4:4,5]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유다 족속의 말없는 지도자였습니다.

[민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믿으라. 가능성을 믿으라. 긍정의 힘을 말합니다. ◯ 과연 긍정의 힘은 크고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실패했을 때 그 결과는 비참한 것입니다. ◯ 우리 믿는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능한 자, 연약한 자임을 압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나는 약하다. 그러나 주를 힘입어 나는 강하다.”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 길을 걸어올 때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는 것만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할 것 같이 불신앙으로 보고 했으니 이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열 명을 징계하셔서 열 명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그들 전부를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다시 광야에서 들어가야 했고, 그들은 40년을 유리방황하여 살다가 죽게 하셨습니다.

● [불신앙]이라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분노케 하는 행동입니다. 갈렙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본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뜻과 능력과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리 보이고 달리 해석됩니다. 교회 안에 불신앙이 있고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 속에도 불신앙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불신앙의 눈으로 사건을 보면 그 사건은 부정적으로 보이고,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사건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약을 붙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창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창 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 이삭은 평생 우물 파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물을 파서 남이 빼앗으면 또 주고 파서 남이 빼앗으면 또 주고, 우물 파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그 우물 파가지고 남 주고 남 주고, ● 요셉은 형제들이 애굽으로 팔아버렸음으로 해서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주인 보디발을 위해서 죽어라 수고하고 집을 돌봐 준 댓가는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가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감사하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합니다우리는 사명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가 감옥에 간 것도 애굽에 팔린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불평, 원망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갈렙의‘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여호수아14:12] 이 탄원은 노인의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 있었습니다. ◯ 갈렙이 이런 말을 할 당시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정복하고 각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 땅 분배를 마칠 때였습니다. ◯ 갈렙은 모세의 신임을 받은 이스라엘의 어른입니다. 그는 지금 비옥한 땅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 땅은 강대한 아낙 자손이 점령하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땅이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온전히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용기와 믿음을 가진 자의 것입니다.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된 것은 갈렙의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마태복음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는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민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쫓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 모세로부터 받은 약속을 근거로 갈렙은 자신이 원하는 땅을 여호수아에게 당당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가 헤브론 산지를 원한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14:10-1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 갈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여전히 강건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85세면 노인입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싸움도 할 수 있고 칼도 쓸 수 있다고 하나 역시 노인은 노인인 것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려면 아낙 자손과의 싸움이 불가피합니다. ◯ 남은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도 있는 갈렙이 다시 힘든 일을 자처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자신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아낙자손을 무찌르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강하다거나 그 성이 견고한 것은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가 문제일 뿐입니다.

 

◯ 여호수와는 그를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주어 기업으로 삼게 했습니다.

[여호수아14: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그 땅을 허락했습니다. 갈렙은 신장이 크고 강한 아르바 족을 쫓아 내어 헤브론 성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 성은 나중에 다윗 왕이 유대 나라를 통치할 때 7년 동안 왕도로 사용하던 성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성령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착한 일이란 산지요, 목표입니다. 당신 안에 두신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당신은 행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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