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10-17  <고난을 통한 믿음>   2017. 10. 15

이 세상 누구를 보아도 욥과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욥의 가까운 친구들은 욥이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 위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남다른 뜻이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욥1:1]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자녀들이 혹시나 하나님께 범죄치 않았나 하여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만큼 악에서 떠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악인이 형벌을 받으며 죄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욥은 의인으로서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이 때문에 욥의 고난은 더 쓰라린 고통이 되었습니다.


● 사람들이 왜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약해지고 넘어집니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간증을 하며 ‘나는 신앙이 좋은 사람이다.’스스로 생각합니다. 욥은 보세요. 그는 물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욥 1:2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찬송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임을 인정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욥의 신앙이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까? 욥의 신앙에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의 신앙도 검증 되어야 하고, 견고한 신앙이 되기 위하여 통과 해야 할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을 담대히 번제 드리는 것을 보면서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말씀으로 극복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하나님은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하나님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으로…, 많이 배워서… 신앙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 어떤 사람은 큰 확신으로, 조금도 의심이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신앙생활 하다가 보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정말 천국은 있는가? 의혹이 생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한 신앙과 머리로 인정하는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욥의 신앙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확신의 믿음, 경외하는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 안드레가 최초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고백했습니다. 

[마태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고백함으로 신앙의 출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검정되어야 합니다. 그의 고백이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까!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에 앞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했지만나 그는 닭이 두 번째 울기도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는 칭찬을 듣고 싶었습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그는 스스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는 축복된 사람으로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께서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그는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 이 한마디에 자신이 얼마나 재물을 사랑하고, 얼마나 내려놓지 못한 사람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하고 마음 편하게 살았을 텐데요. ~


● 성도에게도 고난은 필요 합니다. 그 고난의 형태는 다양할 것입니다.

[시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후 4:17] 우리의 잠서 밭는 환난의 경한 것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욥의 무능 무지한 존재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 나는 내일 살아 있을 것인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알지 못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찌 쓰실까? 나는 얼마나 살겠으며, 나의 가족들은 대대로 축복된 삶을 살 것인가?

◯ 그는 믿을 뿐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욥이 믿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최종적으로 좋은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재물의 회복도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정금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정금이라 함은 가장 귀한 것, 변하지 않는 것입다.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99.9%의 신앙을 말합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고, 믿는 신앙, <정금 같은 신앙>을 얻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출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고난 중에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부귀와 존귀가 모든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지위가 다 위에서 오는 것입니다. ◯ 광야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것은 하나님의 공급하심, 도우심, 인도하심,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구나 알아야 합니다. ◯ 아골 골짜기, 메마른 사막을 건넌다 해도 아무 가진 것 없고, 내일의 보장이 없어도 기뻐하는 신앙,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에게도 광야를 지나는 동안 고통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질병, 시험, 아픔, 배신, 실패일수 있습니다. 물론 그 연단이 다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로 훈련하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훈련하고, 어떤 사람은 배우자로 훈련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로 훈련합니다.

◯ 하나님은 나를 여러 모양으로 훈련하십니다. 뜨거운 용광로의 제련을 통하여 금이 만들어지듯 인생의 여러 가지 단련을 통하여 정금 같은 믿음의 성도가 됩니다. ◯ 정금과 같은 신앙은 고난 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얻고자 하시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 사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도 다 그런 연단과정을 거쳤습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아름답게 극복할 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축복도 고난을 통과하고 얻어진 축복이 진짜 축복입니다.


● 욥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이 광야를 지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내게 정금 같은 신앙을 원하시고 정금 같은 신앙을 주시려 하시는데 나의 관심은 물질, 명예, 세상에 출세를 구하고 있다면 <정금 같은 신앙>을 영영히 얻지 못할 것입니다. ◯ 내 손으로 수고하여 행복을 사려한다면…, 나는 여전히 애굽의 과일과 고기 불가마 앞을 생각하면서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연연하면… 절대로 <정금 같은 신앙>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욥기 23:11-12]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 23:13-14]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애매한 고난을 말하면서도 마음에 많은 섭섭함이 있었어도 욥은 자신의 입술을 지켰습니다.

◯ 욥은 '일정한 음식'보다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특출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듣고, 믿고, 묵상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13절]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말씀을 보면 욥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무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우리의 생은 비참해 집니다. 더 큰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성도는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까닭 없는 재앙들을 주셨던 모든 고난이 자기를 정금처럼 만들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