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1-10 <지혜로운 청지기>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누가복음 16:2) 이 말 속에는 주인의 상당한 실망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은 그동안 이 청지기를 상당히 신뢰해 왔던 것입니다. 이 말은 실제로 순간순간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 볼 수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을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질책하신 하나님, 불의하고 무지한 인간들을 애통한 심정으로 깨우치셨던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16:2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셈하라’ 이 말은 청지기에게 지금까지 하던 일을 중단하고 회계 장부를 양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청지기의 직무 태만에 대하여 간단하면서도 단호하게 해고 조치합니다. 주인의 한마디에 청지기는 지금까지의 직책과 특권을 순식간에 박탈당하게 됩니다. 이는 심판 날에도 어떠한 선택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이 우리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결산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주인의 명령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청지기는 지체없이 바로 자신의 앞날을 궁리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판결이기 때문에 청지기는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거나 고발자가 누구냐 묻지도, 세상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구태의연하게 변명하였던 아담이나 가인과는 달리 아무런 저항 없이, 즉시 속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계를 걱정하며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 그는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자신이 닥친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행하는 그의 적극적인 조치를 볼 때 이 청지기는 이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하여 조금의 실수도 없이 신중하게 극복하는 것을 봅니다. 결국, 이 청지기는 쫓겨나면서도 후에 주인에게 그의 그의 빠른 판단과 결단을 칭찬을 받은(8절) 것입니다.

 

[16:3] “내가 무엇을 할꼬” 청지기는 해고당한 후를 대비하여 현재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행한 불의한 일에 대하여 미안해하거나 회개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앞날만을 걱정합니다. 본문 비유의 청지기는 실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꾀하는 이 세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16:3]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라는 말에서 보듯이, 생계를 위해 육체노동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해고당하여,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나, 지금까지 주인의 돈을 낭비하며 살아온 청지기는 이런 일을 거부합니다. 그는 아직도 무엇인가 쉽게 돈을 벌 방법을 찾는… 불의한 근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청지기는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빌어먹는 방법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러나 이런 일은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절박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결국, 그는 지혜를 짜내어 다른 묘안을 생각합니다. 위기 상황 속에서 그는 살길을 찾아, 자신이 할 일을 바로 생각해 낸 것입니다. 이것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 이 청지기가 얼마나 민첩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방법을 고안하고 자기가 앞으로 하게 될 일로 인하여 발생할 결과까지 계산하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입니다.

[16:4]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16:6]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쓰라” 여기서 ‘증서’란 ‘채무 증서’입니다. 청지기는 지금 그 채무 증서를 가지고 나와, 채무자에게 변조하여 다시 기록하라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매우 시급하게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빚진 자에게 기름 백 말에서 오십 말로 절반을 탕감해 주면서 선심을 씁니다. 또 다른 이 밀 백석의 빚이 있는 자에게 팔십이라 쓰라 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를 두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 칭찬합니다. 분명 청지기가 직분을 빼앗긴 이후에 주인의 재산으로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여 준 덕택으로 살길을 찾는다는 것을 바른 행위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청지기는 여전히 불의한 자였으며, 더 큰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의 불의한 행동을 칭찬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청지기가 자신의 앞날을 대비하여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16:4]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영접하리라” 하는 확신을 갖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준비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31]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 나에게 닥친 환란을 냉정하게 보아야 합니다. 장차 일어날 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80년대 청년기에 한국 땅에 있는 교회들이 병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고 한국의 교회가 살길은 선교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저 자신이 선교에 나가야 한다고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대만에 중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10년 후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20년 후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주계명 목사님 장로교 총회의 총무로 지내다가 은퇴하시고, 심양에서 28년 선교사로 수고하시며 많은 교회를 지원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총회에서 65세, 은퇴하기 1년 전부터, KBS 중국어 교재를 가지고 출근하시며 퇴근하시며 한 문장씩 외우면서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은퇴하자마자 바로 심양에 오시어, 어려움 없이 다니시면 선교 활동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 94세에 선교를 마치신 것입니다.

○ 예수님의 공생애는 우발적인 사건들의 나열이나, 일이 되는 데로 나아가신 길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고 인류 구원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철저히 계산된 '신적 로드맵'을 따르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말씀하시기를 많은 사람이 병 고침을 받으러 몰려왔을 때,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마가복음 1:38)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으로 공생애 사역을 마무리하시면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누가복음 9:51) 여기서 '기약이 차가매'라는 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늘의 시간표(God's Timing)를 정확히 읽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30세까지 목수로 사시면서 부모를 돕다가, 마지막 3년 공생애 기간에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마치신 것입니다. 

 

 

路加福音 16:1-10  <聪明的管家>

“我听见关于你的事,是怎么回事呢?” (路加福音 16:2)

这句话中包含了主人巨大的失望。在这段期间,主人一直非常信任这位管家。实际上,这句话可以說是对那些时刻辜负神期待的人神所发出的声音。这是神通过许多先知对犯罪的人类所发的责备,也是耶稣以哀恸的心情唤醒那些不义且无知的人的声音。16:2 “把你所经管的交代明白,你不能再作管家了。” “结算吧” 这句话的意思是要求管家停止至今为止工作,并拿出来会计账本。主人针对管家失职,下达了简短而坚决的解雇通知。因主人的一句话,管家瞬间便被剥夺了至今享有的职业与特权。这预示着在审判之日,我们将没有任何选择或辩解的余地,所有的一切都将被清晰地结账。

○ 主人的命令刚一落下,管家便毫不迟疑,立即开始筹划自己的未来。由于判决已无法挽回,管家既没有卑微地敷衍辩解,也没有询问举报者是谁,更没有怨天尤人。他不同于那些苟且偷生、百般推脱的亚当或该隐;他没有进行任何反抗,而是立即在心里盘算,为自己的生计担忧并发挥了智慧。

○ 他没有抱着 “总会有活路吧” 这种侥幸心理,也没有否定自己面临的现实。从他随后采取的积极行动来看,我们可以看到这位管家为了摆脱危机,没有丝毫失误,而是非常审慎地克服了困难。最终,这位管家虽然被辞退,却因他快快的判断与决断,得到了主人的称赞(第8节)。

[16:3] “我将来做什么呢?” 管家为了应对被解雇后的生活,苦恼于眼前“该准备什么”。这位管家对于向主人所犯下的不义行为,既没有表现出愧疚,也没有悔改的态度。他只是一心担忧自己的前途。通过本文的教导,我们可以看到,在这位管家能看得见彻底地只为自己的利益和自己的安全谋划的 “今時代之子”。

正如管家在 [16:3] 中所说的“锄地吧,无力”,他并不想为了生计而从事体力劳动。普通人如果被解雇,在无事可做的情况下,无论多么艰难辛苦的工作恐怕都不会推辞。然而,直到现在都在挥霍主人财物的这位管家,却拒绝了这种出路。他依然在寻找某种赚快钱的方法……由此可见,他那不义的本性依然根深蒂固。

管家在考虑那些不费力就能做的事情时,甚至想到了讨饭的方法。“讨饭吧,怕羞。” 然而,这是一种必须放下自尊心才能做的、令他无法想象的事。他陷入了进退维谷的境地,面临着 “四面楚歌”般的紧迫危机。

他想出了办法,并周密地计算着甚至因自己将要采取的行动而产生的后果,展现出了谨小慎微、周密地一面。

[16:4] “我知道怎么行,好叫人在我不用管家职分之后,接我到他们家里去。”

 

[16:5] “于是把欠他主人债的,一个一个地叫了来,问头一个说:‘你欠我主人多少?’”

[16:6] “他说:‘一百篓油。’管家说:‘拿你的账单,快坐下,写五十。’” 这里的“账单”是指“债务凭证”。管家现在拿着那些债务凭证,诱导债务人通过伪造的方式重新记录。而且,他正在非常紧迫地处理这件事。管家向欠债的人施恩,将一百篓油的债务减半,改为五十篓。接着,他又对另一个欠一百石麦子的人说,写八十。

然而主人却因这事称赞说 “用那不义的钱财结交朋友”。显然,管家在被免去职分之后,利用主人的财产减免欠债人的债务,以此寻找出路,这绝不能说是公义的行为。管家依然是不义的人,甚至犯下了更大的不义。难道主人是称赞了不义管家的不义行为吗?不是的。主人所称赞的是,管家为自己的将来做了准备。管家带着[16:4] “这样行,在我不作管家之后,他们能接我……” 有确信的行动了。他是一个准备的人。

[路加福音 14:31] “你们中间谁要盖一座楼,不先坐下算计花费,看能成不能成呢?恐怕安了地基,不能成功,看见的人都笑话他,说:‘这个人开了工,却不能完工。’

或是一个王出去和别的王打仗,岂不先坐下酌量,能用一万兵去敌那领二万兵来攻打他的吗?若是不能,就趁敌人还远的时候,派使者去求和的条款。”

我们要冷静地审视临到自己的患难,必须能够预见将来要发生的事。我在80年代青年时期,看到了韩国教会患病的样貌,并领悟到韩国教会的活路在于 “宣教”。只有宣教的教会才有生命力。当我为韩国教会成为宣教的教会而祷告时,神告诉我自己应该去宣教……于是我怀着顺服的心,为了学习中文去了台湾。我们必须能够预见10年后的自己,也必须能够预见20年后的自己。

○ 朱启明牧师曾担任长老教总会的总干事,退休后在沈阳做了28年的宣教士,资助了许多教会。他在总会工作的65岁那年,退休的一年前,就开始拿着KBS的中文教材,在上班下班途中坚持每天背诵一个句子。正因为有了这样的准备,他一退休就立刻前往沈阳,在宣教活动中没有沟通障碍活动。直到去年,他以94岁的高龄圆满结束了宣教事工。

○ 耶稣的公生涯并非偶然事件的堆砌,也不是随遇而安的过程,而是为了成就旧约的预言,并朝着拯救全人类这一最终目标,严格遵循 “神圣路线图(Divine Roadmap)” 的过程。○ 当许多人聚集在迦百农寻求医治时,耶稣并没有安于现状,而是说: “我们可以往别处去,到邻近的乡村,我也在那里传道,因为我是为这事出来的。”(马可1:38)○耶稣在结束加利利的事工时,“耶稣被接上升的日子将到,他就瑟然定意向耶路撒冷去”(路加福音 9:51)。这里所说的 “日子将到”,表明耶稣准确地掌握着上帝的时间表(God's Timing)。最终,他在十字架上宣告:“成了!”(约翰福音 19:30)。

○ 耶稣在30岁之前一直以木匠的身份生活,尽心扶助父母;而在最后的三年公生涯中,他完成了救赎全人类的事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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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11 <깊은 데로 가라> 

[누가복음 5:3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실새 시몬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 일행은 밤새 수고하였으나 고기잡이에 실패하고 허탈한 심정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4절]에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전문 어부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수십년 물고기 잡아 온, 경험과 노하우(know-how)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 물고기는 밤에 잘 잡힌다고 합니다. 그것도 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 잘 잡힌다고 합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명령이 얼마나 무지한 말처럼 들렸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아 이 말은 어부를 무시하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몇 시간에 걸쳐 그물을 다 씻고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밤새 물고기를 잡느라고 피곤합니다. 다시 그물을 던진다는 것은 너무 성가신(啰嗦) 헛수고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활 습관이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력이 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하고 실행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을 ‘선생이여’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방금 바닷가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들은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아직 훌륭한 ‘선생’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하심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5장]의 고기 잡는 사건에 앞서 앞장 [4:38절]을 보면 예수님이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집에 들어가신 일이 나옵니다.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4: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베드로는 아직 주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직접 예수님께 구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나와 구했던 것입니다. 그때 시몬은 장모의 열병이 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씀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순종한 것은 말씀을 듣는 자의 모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선생이다, 말을 잘한다. 오늘 설교는 좋다. 감동적이다. 예수님은 남다른 능력 있다’ 인정하고 동의하는 수준의 신앙으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이고 시도입니다.

○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리’입니다. 무리는 떡을 받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무리는 기적을 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리는 자신에게 감동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리는 방관하는 자입니다. 잘한다. 못한다. 평가할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듣고 따르는 자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 자리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의 기사가 나옵니다. 연회장은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하인들은 알더라 말합니다. 왜 연회장은 포도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고, 하인들은 알았던 것입니까? 이는 하인들이 직접 수고하여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인들이 말없이 불평하지 않고 순종하므로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을 본 것입니다. 행동하는 자,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열왕기상 17장]에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엘리야는 사르밧 성문에 이르러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에게 말합니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 엘리야가 또 그를 불러 말합니다.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一把)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참 염치가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16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 중요한 것은 인정하는 마음도, 감동도 아닙니다. 순종입니다. 기적은 듣고 순종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 자존심과 자신의 피곤함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의 지식, 나의 경험, 나의 자존심, 나의 습관, 이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말씀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시몬 베드로가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그러나 그는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깊은 데로 가라’ 말씀하십니다. ‘더 큰 꿈과 기대’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 꿈을 이루는 방식은 주님을 의지하고 따르며, 주님의 기쁘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보다 더 풍성하고, 더 힘이 있고, 의미 있는 곳에 이르려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6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자신 배에 넘치는 물고기를 잡고, 옆 친구의 배에도 넘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꿈을 아십니다. 그리고 더 풍성한 결과를 이루게 하십니다. 내 한평생 부족함 없이 살리라는 작은 꿈에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 미국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클린턴 대통령이 힐러리 여사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여행 중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힐러리 여사가 그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클린턴이 힐러리 여사에게 저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습니다. 기름을 다 넣고 길을 가던 중에 클린턴 대통령이 그 부인에게 하는 말이 당신이 저 사람과 결혼했다면 주유소 부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힐러리 여사가 말합니다. 내가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저 남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누구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우리의 인생과 영혼을 누구에게 맡기느냐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나의 인생을 작고 작은 나를 의지하여 일어서겠습니다. 세상 흐름에 맡기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주님 앞에 나의 인생을 부탁할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路加福音 5:1-11 《开到水深之处》

[路加福音 5:3] 耶稣上了一只船,是西门的,请他把船撑开,稍微离岸,就坐下,从船上教训众人。

耶稣在加利利湖边向众人传道时,上了西门彼得的船进行教导。当时,彼得一行人虽然整夜劳作,却一无所获,正带着虚脱和失落的心情在岸边洗网。耶稣讲完了话,在[第4节] 对西门说:“把船开到水深之处,下网打鱼。”彼得作为一名职业渔夫,是在加利利海打了几十年鱼、拥有丰富经验和诀窍(know-how)的人。对他来说,主命令他“开到水深之处打鱼”,从常识上来看是难以理解的话。据说鱼在晚上最容易捕捉,而且通常是在水不深的地方。对彼得来说,主的命令听起来是多么地无知啊?从人的角度来看,这话甚至听起来像是对渔夫的轻视。彼得已经花了好几个小时洗完并整理好了渔网,正准备回家。由于整夜打鱼,他已经疲惫力尽了。此时再次撒网,简直是极其啰嗦(麻烦), 且徒劳无功的行为。

然而,彼得还是决定 “依从你的话”去顺从。跟随耶稣的话语并不是一件容易的事。因为人有自己的生活习惯,有自己的知识,也有自己的经历。 [第5节] 彼得说:“夫子,我们整夜劳力,并没有打着什么。但依从你的话,我就下网。” 于是他便付诸行动。此时,彼得对耶稣的称呼还只是 "夫子"(老师)。彼得刚才在岸边洗网时,听到的这位夫子的教导确实非常精彩,令人感动。然而,对彼得来说,耶稣目前还仅仅不过是个 “老师”。尽管如此,彼得还是决定顺从耶稣的命令。

在[第5章]的打鱼事件之前,先看前面的[第4章38节],可以看到耶稣从会堂出来,进入了西门的家。当时西门的岳母正患着严重的病(热病),有人为了她向耶稣祈求……

[路加福音 4:38] “耶稣起来,开了会堂,进了西门的家。西门的岳母害热病甚重,有人为她求耶稣。”

○  彼得当时还不了解主的能力。并不是彼得直接向耶稣祈求,而是其他人出来代为祈求的。那时,西门亲眼目睹了岳母的热病痊愈。正因如此,彼得决定依从主的话去行。他所告白的 “依从你的话,我就下网”,这种顺从是从 “听道者” 的身份又向前迈进了一步。仅仅停留在耶稣是一位优秀的老师、口才很好、今天的讲道很棒、令人感动、"耶稣拥有非凡的能力" 这种认可和同意水平的信仰,是无法体验到主的能力的。最重要的是顺从与 试图。

○  那时在那里有很多人,也就是 “众人”。众人只求得到饼,只求看见神迹,只求让自己感动。众人是旁观者,只是在评价 “做得好” 或 “做得不好”。然而,门徒是听从并跟随的人。

 

[约翰福音 2章] 记载了在迦南婚宴上,水变酒的神迹。经上说,连管筵席尝了酒,都不知道是从哪里来的,“只有倒水的仆人知道”。为什么宴会负责人不知道酒是怎么来的,而仆人们却知道呢?这是因为仆人们亲身劳作,付出了从井里打水的辛劳。正因为仆人们默默地、毫无怨言地顺从,才见证了水变酒的神迹。○ 我们应当成为行动者、服侍者和奉献者。

 

◉ [列王纪上 17章] 记载,以利亚照着神的话语——“你起身往西顿的撒勒法去,住在那里”,到了撒勒法城门。他看见那里有一个寡妇在捡柴,便对她说:“请你用器皿取点水来给我喝。” 她去取水的时候,以利亚又呼叫她说:“请你手拿一点饼来给我。” 她回答说:“我指着永生耶和华你的神起誓,我没有饼,坛内只有一把面,瓶里只有一点油。我现在找两根柴,回家为我和我儿子做饼。我们吃了,死就死吧。” 以利亚对她说:“不要惧怕,可以照你所说的去做吧。只要先为我做一个小饼拿来给我,然后为你和你的儿子做。” 听起来这真是个恬不知耻(没良心)的要求。然而,那位寡妇还是照着以利亚的话去行了。结果如何呢?[第16节] 经上记着:“耶和华藉以利亚所说的话果然应验,坛内的面果不减少,瓶里的油也不缺短。”

○ 重要的是,既不是认可的心,也不是感动的泪,而是顺从。奇迹是在听道并顺从的过程中显现的。彼得放下了自尊心,也放下了身体的疲惫。如果不能放下我的知识、我的经验、我的自尊、我的习惯,就是不放下这个 “我”,就无法顺从神的话语。

[撒母耳记上 15:22] “撒母耳说:‘耶和华喜悦燔祭和平安祭,岂如喜悦人听从他的话呢?听命胜于献祭;顺从胜于公羊的脂油。’”

西门彼得对主这样说:“夫子,我们整夜劳力……”然而,他连一条鱼也没有打着。对这样的他,主说 “开到水深之处”。这是在告诉他要拥有 “更大的梦想与期待”。○ 而实现那个梦想的方式,就是依靠并跟随主,成就主的喜悦。如果我们想要到达比现在更丰盛、更有力量、更有意义的境地,就必须做出决断

彼得的顺从确实引发了惊人的神迹。[第6节]记着:“他们下了网,就圈住许多鱼,鱼网险些裂开。” 这是彼得顺从主的话语 “开到水深之处下网” 的结果。彼得因依靠主的话语并顺从,不仅让自己的船装满了鱼,甚至也让同伴的船装满了鱼。主深知我的梦想,并且会让我们成就更加丰盛的结果。请不要仅仅停留在 “让我一生衣食无忧” 这种渺小的梦想中。

 

◎ 关于美国克林顿总统有一个有趣的故事。有一次,克林顿总统与希拉里女士一同驾车旅行。旅途中,他们停在一家加油站加油,这时希拉里女士与那里的老板非常亲切地打招呼。加完油继续赶路时,克林顿问希拉里那个人是谁,希拉里回答说是她的高中同学。克林顿总统对夫人说:“如果你当初和那个人结婚,你现在加油站的老板娘了。” 那时希拉里女士回答说:“如果我当初和那个男人结婚,现在当上总统的人就是他了。”

○ 一对男女与谁结婚会改变一生,更何况是将我们的生命与灵魂托付给谁,这该是多么重要的事情啊?你是要依靠渺小的自我而立,还是要将人生听任于世界的潮流?当我们把人生托付给身为上帝之子的主时,才能过上充满恩典与真理的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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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1-10  <여호와 이레>

[11:3절] ‘주가 쓰시겠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최상의 높임말로 ‘주’(퀴리오스)‘라는 단순한 호칭일 수 있지만, 실제로 원문에서는 나귀의 주인을 지칭하는 ‘그’라는 말이 있어서 ‘그 나귀 새끼의 소유주이신 주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참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을 봅니다. 먼저, 왜 예수님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그 나귀의 주인이 쓰시겠다 하라.” 말하라 하셨을까요?

이는 주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다윗의 후손'으로 ‘왕’ 되신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주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며 세상의 모든 만물의 소유주입니다, 따라서 나귀 새끼 역시 창조물로 왕이신 예수님의 물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욥은 고백하기를

[욥기 1:21]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했던 것입니다.

○ 사람은 노력해서 재물을 얻고, “이것은 내 것이다.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이다.”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세상에서 잠시 하나님의 것을 빌어 사용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 나귀의 임자(눅19)가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물을 때, 제자들은 주님 말씀하신 그대로,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나귀의 주인이 쓰시겠다.” 말하니 나귀의 임자가 허락했습니다. 둘째는 주께서 [마가복음 11:2]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하셨는데,

과연 그곳에 나귀 새끼가 매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은 나귀의 존재를 알고 계셨을까요? 그리고 그 나귀의 임자는 허락했습니다. 마치 무슨 동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있는 그대로의 기록입니다. 사실 이는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 유튜브에 보면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하시다가 은퇴 후 유튜브를 하고 계신 유명한 박효진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 자신의 교회 목사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교회의 목회자가 되기 전에 집사님이실 때도 많은 청년이 좋아하고 따랐는데 그 목사님 집사님이실 때도 성령이 충만하셔서 예언, 치유, 환상 등 많은 은사를 갖고 계셨답니다.

하루는 청년들이 그 집사님의 집에 찾아가서 대화하는 중에 어느 다른 장로님에 대해 말이 나왔더랍니다. 그런데 그때 집사님 멍하니 위를 보시며 “그 장로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신다.” “장로님이 지금 수박을 사신다.” “장로님이 지금 참외를 사시네” “장로님이 우리 집 앞에 오셨다.” 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리고 들어오시는데 수박과 참외를 들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 성경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우리는 아람 나라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올 때마다 이스라엘의 병사들이 방비하고 있어 아람 왕이 자신의 주위에 내통한 자가 있다 근심했는데 한 신하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 왕이 궁전에서 말하는 모든 일을 알고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마다 방비하게 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는 중에 일어나는 일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자라면서 반드시 한가지 운동과 한가지 악기를 다루는 법을 익히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자립심과 사랑과 봉사의 정신입니다. 이는 '청지기 정신'으로 맡겨진 재능과 재물을 "주가 쓰시겠다"고 할 때 언제든 내어드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세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훈련하고, 장래를 예비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위하여 예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 [창 2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 그에게 귀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산을 향하여 가는데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답합니다. 제단을 만들고 이삭을 묶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내리치려 할 때, 주의 사자가 그를 멈춰 세웁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가져다 이삭을 대신하여 제사 드리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습니다. "여호와가 준비하신다." 뜻입니다.

◎ 요한 브랜츠는 마틴 루터의 친구로서 종교 개혁 운동의 동역자였습니다. 그 당시 스페인의 찰스 왕은 종교 개혁자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병대를 보내 요한 브랜츠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요한 브랜츠는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산너머 다른 마을로 피신을 했는데 자기를 숨겨 줄 집이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막다른 골목에 닿았습니다. 그 순간 눈을 들어 사방을 살피니 농가의 창고(库房)가 있는데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필경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창고의 짚더미(稻草堆) 속에 숨었습니다. 스페인의 기병대가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짚더미는 뒤지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그가 배가 고팠는데 매일 암탉 한 마리가 올라와서 알을 하나씩 낳아 주었습니다. 요한 브랜츠는 매일 계란 하나를 먹고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15일째 가서는 더 이상 닭이 올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오후 창고에서 나와 동네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방금 스페인의 기마 부대가 떠났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브랜츠는 이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임을 알았습니다.

◎ 한 영국인이 자기의 50회 생일을 맞이하여 50년 동안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시로 50파운드의 돈을 자선 사업에 자선(慈善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선할 방법과 대상을 모색하던 중, 10파운드를 죠지 뮬러가 경영하는 브리스톨 시의 고아원에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생일날에 기부금을 보내려고 했었으나 이상하게도 고아원 생각이 자꾸 들어, 생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10파운드의 수표를 고아원으로 우송했습니다. 며칠 후 그는 뮬러의 고아원으로부터 기부금이 접수되었다는 영수증을 받았고, 연말에 고아원의 회계 보고서와 독지가들의 명단, 일 년간의 간략한 고아원 운영보고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운영보고에는 그가 기부금을 우송한 날짜 바로 전날의 죠지 뮬러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돈도, 양식도 모두 바닥났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채워주실 것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죠지 뮬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방법으로 그의 쓸 것을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马可福音  11:1-10  耶和华以勒

[11:3] “主要用它”。这里的“主”既可以是对至高者的尊称(主,Kyrios),但在原文中,它带有指代驴驹主人的特定含义,即“那头驴驹拥有者主人”。在今天的经文中,我们看到了两件难以理解的事。首先,为什么耶稣要让门徒说出那句似乎谁都不会认可的话—“那头驴驹的主人要用它”呢?这表达了主是万物的创造主,是作为“大卫的后裔”而来的“王”。创造主是万物的主人,也是世上一切资产的所有者。因此,那匹小驴驹作为受造物,理所当然属于身为君王的耶稣。正因如此,约伯在苦难中告白道: [约伯记 1:21] “我赤身出于母胎,也必赤身归回。赏赐的是耶和华,收取的也是耶和华;耶和华的名是应当称颂的。”

这表达了人通过努力获得财富,并说:“这是我的,是我劳苦所得。”但实际上,在这个世界上,我们只是暂时借用神之物而存在的客体。○ 这表达了当驴驹的主人(路19)询问“解开驴驹要做什么”时,门徒们照着主所说的那句似乎不合常理的话回答说 “那驴驹的主人要用它”,结果主人竟然允许了。第二件难以理解的事是,主在 [马可福音11:2]中说:“你们往对面村子里去,一进去的时候,必看见一匹驴驹拴在那里,是从来没有人骑过的,可以解开牵来。” 

果然,那里确实拴着一匹驴驹。主是如何预先知道那匹驴驹在那里的呢?而且,驴驹的主人竟然允许了。这听起来简直像神话故事样子,但却是事实的记录。实际上,这并不是问题。

 

◎ 在 YouTube 上,有一位非常著名的朴孝津长老,他曾担任过狱警,退休后正在经营YouTube 频道。他说自己最尊敬的牧师就是他所在教会的牧师。据说这位牧师在成为教会里牧会之前,还是执事的时候,就有许多年轻人喜爱并追随他。在那位牧师还是执事期间,他就被圣灵充满,拥有预言、医治、异象等许多恩赐。有一天,一群年轻人去那位执事家里做客。在交谈中,提到了另一位长老。就在那时,执事呆呆地望着上方说:“那位长老正朝我家走来。” “长老现在买了西瓜。” “长老现在又买了香瓜。” “长老已经到我家门口了。” 话音刚落,门铃就响了。那位长老进来时,手里果然提着西瓜和香瓜。

○ 在圣经 [列王纪下6章]中,我们看到每当亚兰军队进攻以色列时,以色列士兵总是预先 防备。亚兰王因此忧虑,怀疑身边有内奸。这时一名臣仆告诉他,以色列有一位名叫伊利莎的先知,他甚至知道王在卧室里所说的一切话,并在亚兰每次进攻时都让以色列预先做好了防备。主在与门徒同行期间,就已预知将要发生的一切。对于全能的神来说,还有什么是祂不能成就的呢?

○ 据说美国的父母在子女成长过程中,一定会让他们掌握一项体育运动和一种乐器。此外还有一点,就是培养他们的自立意识、爱心以及奉献精神。这便是一种“管家精神”,即当“主说要用它”时,能随时献出所托付的才能与财富的心志。因此,美国人并不觉得纳税是件可惜的事。父母为了子女进行训练,并预备未来。而神,则是为了子女预备一切的父神。

○ 在[创世记22章]中,神为了试验亚伯拉罕,命令他将心爱的儿子以撒在摩利亚山上献为燔祭。亚伯拉罕清早起来,备好燔祭用的柴,放在他儿子以撒身上,向山出发。途中儿子以撒问:“燔祭的羊羔在哪里呢?”亚伯拉罕回答说:“我儿,燔祭的羊羔神必为自己亲身预备。” 亚伯拉罕筑好了坛,捆绑了以撒。正当他举起刀要杀以撒时,主的使者拦阻了他:“亚伯拉罕!亚伯拉罕!不可在这 孩子身上下手,不可害他!现在我知道你是敬畏神的了,因为你没有将你的你独生的儿子,留下不给我。” 亚伯拉罕举目观看,见有一只公羊,两角扣在稠密的小树中。亚伯拉罕就取了那只公羊来,献为燔祭,代替他的儿子了。亚伯拉罕给那地方起名叫 “耶和华以勒”,意思就是“耶和华必预备”。

 

◎ 约翰·布兰茨是马丁·路德的朋友,也是宗教改革运动的同工。当时西班牙国王查理五世厌恶宗教改革者,于是派遣骑兵队下令逮捕约翰·布兰茨。听到消息后,约翰·布兰茨不得不四处躲避。他翻山越岭逃到另一个村庄,却找不到可以藏身的住所。他在祷告中走到了尽头的一条小巷,就在那一刻,他举目四望,发现一家农户的库房门正开着。他心想这必定是神为他开启的,于是躲进了库房的稻草堆中。西班牙骑兵队到处搜寻,却唯独没有搜查那稻草堆。傍晚时分,他感到饥饿,这时每天都有一只母鸡跳上来,为他产下一个蛋。约翰·布兰茨每天就靠吃这一个鸡蛋维持生命。然而到了第15天,母鸡不再上来了,他心里不免感到有些遗憾。那天下午,他走出库房,听到村民们议论说,西班牙骑兵队刚刚撤离了。约翰·布兰茨这才明白,这正是神的预备。

 

◎ 有一位英国人在庆祝自己50岁生日时,为了感谢神在过去50年里对他生命的保守,决定捐出50英镑用于慈善。在寻找捐赠方式和对象时,他决定将其中的10英镑寄给乔治·穆勒在布里斯托尔市经营的孤儿院。他本打算在生日当天寄出捐款,但奇怪的是,脑海中不断浮现出孤儿院的事,于是他没能等到生日那天,而是立即将10英镑的支票邮寄给了孤儿院。

几天后,他收到了穆勒孤儿院寄来的捐款收据。还收到了孤儿院的年底财务报告、捐赠者名单以及一年的简要运营报告。令他吃惊的是,在运营报告中记载着乔治·穆勒在他邮寄捐款的前一天所写下的话:“今天,金钱和粮食都已告罄。但我并不担心。正如神一直以来所做的那样,这次祂也必将填补我们的需要。”对于这样全然信靠神的乔治·穆勒,神以奇妙的方式预备了他所需的一切。

○ 神是先知道我们需要的。请不要为任何事忧虑,愿你们成为先求祂的国和祂的义而活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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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12  <주 앞에 나오면> 

중풍병은 현대말로 하면 뇌졸중이나 뇌경색(腦卒中, 腦梗塞)입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면 3시간 안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시간이 경과 하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중풍은 상태가 경하여 신체 일부만 마비가 와도 밖에 다니는 데 아주 불편합니다. 본문의 중풍 병자는 병세가 심하여 스스로 그 몸을 조금도 운신할 수 없었습니다.

 [3절]에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침상에 메고’ 왔다고 했습니다. 침상에 누운 환자를 데고 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상당한 수고가 필요합니다. 여기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그 중풍 병자를 아끼는 사람들, 그의 친구와 이웃들이었습니다. 그 중풍 병자는 평소에 이웃에게 덕과 사랑을 많이 베푸는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속담에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건강할 때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이웃이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간과한 것이 있으니… 이 사람이 돈이 있고 건강이 있을 때는 사람에게 잘하여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에게는 인색하고 멀리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

○ 친구들은 사람이 많아 현관으로 들어갈 수 없자, 중풍 병자를 지붕까지 끌어 올려 지붕에 구멍을 내고, 예수님 앞에 침상째 달아 내렸습니다. 집안에서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남의 집 지붕에 구멍을 내다니…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이렇게까지 주님 앞에 간절히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병자의 친구들은 주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절] ‘그들의 믿음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 저의 집은 80년대에 아버지가 직장을 수년 갖지 못했고, 집이 어려웠습니다. 형과 저는 아직 어렸습니다. 저의 집이 산 위에 있었는데 어머니는 힘들어서 숨을 헐떡이고, 시장에 가지 못해서 제가 시장 심부름을 했습니다. 국수를 사러 자주 가니 국수집 사장이 “너네 무슨 장사를 하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먹을 것이 없어 식사를 거를 때가 있었습니다. 집 구석구석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약병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가까운 교회에 등록하고 다니셨습니다, 아버지는 교회 다니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싫어하셨고, 자주 다투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1년 후에 집안에 약병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어머니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고 여러 가지 집의 일이 해결되면서 몸이 회복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그 중풍 병자입니다. 나를 고쳐주세요”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 주님은 이 사람에게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집 안에서 예수님의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참 당황했을 것입니다. 욕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중풍 병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요? 중풍병을 고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치유 선언 대신에 죄사함의 선언부터 하신 것입니다. 더구나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산 사람입니다.

○ 죄사함이 만병 치유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질병의 원인을 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시107:17) 라고 시편 기자도 말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특별히 남이 모르는 죄가 있어서 병이 든 것일까요?  실상은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태초에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안에 있었을 때, 그들은 병과 관계없이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거짓말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후로 인간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고난이 찾아오고, 병든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1-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내 언약을 깨뜨렸다’ 함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구원의 자격이 없는 자’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보여 주신 ‘새 언약’이 있었으니, 그것이 ‘죄사함을 통한 구원’입니다. 이는 구세주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분명히 <죄사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누구도 ‘새 언약<죄사함을 통한 구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율법의 회복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율법의 회복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죄사함을 통한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감추인 비밀이었습니다. 말세에 사는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다해라. 왜 부모를 나만 모셔야 하냐”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사촌이나 먼 친척들이 말했다면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가 이런 말을 한다면 참 견디기 어려운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부모에게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하는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나는 잘하고 있다.” “부모 모시는 수고를 왜 나 혼자 하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마다 부모를 모시는데 잘하는 면이 있는가 하면, 잘못하는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다 부족하고, 해도 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누구도 “나는 잘하고 있다” 말하지 못합니다. 자식은 각자 부모에게 자기 할 도리를 힘써 감당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율법으로 말하면 다 잘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비하신 구원의 길은 율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나의 율법적인 노력이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만들어 놓으신 구속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다윗은

[시편 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구약시대에 제사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의 예표입니다. 구약시대에 죄 있는 백성은 염소나 양을 끌고 와 안수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단 밑에 쏟은 다음 모두를 번제단에 불사릅니다. 이런 속죄제를 마치고 제사장은 속죄를 선포합니다. 자신의 죄를 죄 없는 어린 양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 제사의 ‘祭’ 이 글자는 月+又+示 이 세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자입니다. 月은 고기 육에 해당하는 글자이고 又는 화합과 교제를, 示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단과도 같습니다. 제사는 하나님 앞에 양을 제사하여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제사는 조상에게 혹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 제도는 오래전에 인류 존재하면서부터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어린양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함으로 구원하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톨스토이는 예수를 영접한 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은혜 뒤에 찾아온 놀라운 변화를 간증한 것입니다.

 

马可福音 2:1-12 <来到主面前>

中风在现代语言中是指脑卒中或脑梗塞。如果因脑卒中倒下,必须在3小时内接受治疗。如果时间过长,就很难恢复。中风即使病情较轻,只有身体的一部分麻痹,出门也会非常不便。本文中的中风患者病情严重,身体一点也无法动弹。

[3节] 提到人们 “抬着褥子” 把中风病人带了过来。抬着躺在褥子上的病人过来难道是一件容易的事吗?这需要付出相当大的努力。这里把中风病人带过来的人,是那些爱护他的人,也就是他的朋友和邻居。由此可见,那名中风病人平时过着对邻居施予很多德行与爱心的生活。俗话说:“积善之家,必有余庆”。我们在平时健康的时候,应当成为一个乐于向邻居施行爱心和分享的人。这样的話,当你陷入困境时,邻居才会伸手相助。然而,这个人忽略了一点… 虽然他有钱、有健康的时候对人很好,也得到了人们的称赞,但他对神却很吝啬,并且疏远了神。

○ 朋友们因为人多无法从正门进入,就将中风病人抬上房顶,在房顶挖了一个洞,连人带褥子放到了耶稣面前。在屋里听道的人该有多么惊讶啊?竟然在别人的房顶上挖洞…… 那是多么地迫切啊?我们应当如此迫切地来到主面前。就这样,那个病人的朋友们得到了主的认可。[第5节] 圣经说:“耶稣见他们的信心”。

◎ 在80年代,我父亲有几年没有工作,家里生活很困难。哥哥和我当时还小。我家住在山上,母亲身体虚弱,总是气喘吁吁,无法去菜市场,于是我就负责跑腿去买菜。因为经常去买面条,面馆老板还问我:“你们家是做生意的吗?” 即使那样,有时还是因为没有吃的而挨饿。屋里角落到处都堆满了不知道是什么的药瓶。

母亲因为无处依靠,便在附近的教会注册并开始参加聚会。父亲却很反感,常说:“信教能当饭吃吗?能出钱吗?” 两人因此经常争吵。令人惊讶的是,一年后,家里的药瓶全都消失了。随着母亲心中找回了平安,家里的各种问题也一个一个解决了,母亲的身体也康复了。我们应当以迫切的心来到主面前。我们应当呼求:“我就是那个中风病人,请医治我吧。” 这样的人才是蒙福的人。

○ 主对这个人说:“你的罪赦免了”。在屋里听耶稣说这话的人一定非常困惑,甚至可能有人在心里暗骂人。现在对中风病人来说最紧迫的事情是什么?难道不是医治中风吗?然而,主并没有先宣告医治,而是先宣告了罪得赦免。难道这个人平时不是个被人们称赞的不是吗?。

○ 很少有人知道,罪得赦免是治愈万病的根源。犹太人认为疾病的原因是罪。正如诗篇作者所说:“愚妄人因自己的过犯和罪孽便受苦楚。”(诗107:17)。那么,这个人是因为有别人不知道的罪才生病的吗?实际上,世人都是罪人。

太初,当第一对人类亚当和夏娃在神里面时,他们与疾病无关,过着健康和平安的生活。然而,自从亚当和夏娃撒谎并离开神之后,人类便背负了沉重的负担,苦难随之而来,成为了患病的存在。

[耶利米书 31:31-32] 耶和华说:“日子将到,我要与以色列家和犹大家另立新约。不像我拉着他们祖宗的手,领他们出埃及地的时候,与他们所立的约。我虽作他们的丈夫,他们却背了我的约。”这是耶和华说的。

○ “背了我的约”是指没有遵守律法。这意味着任何人都成了 “没有资格得救的人”。

因此,神通过旧约先知展现了“新的约”,那就是 “通过赦罪得救”。这随着救主降临世间而得成就。早先耶利米先知明确提到了关于“赦罪”,但在耶稣降临之前,没有人想到过 “新的约(通过赦罪得救)”

以色列的教师们只关心律法的恢复。施洗约翰也关心律法的恢复。“通过赦罪而得救”是对所有人隐藏的奥秘。这是向生活在末世的我们所揭示的。

◎ 有时人们会说:“要尽到做人的本分。为什么只有我一个人供养父母?” 如果这类话是由堂兄弟或远亲说的话,还能听听就过去。但如果亲兄弟姐妹说出这种说的话,实在令人难以忍受。因为“我对父母尽孝,你为什么做不到?” 这个意思,其实是在评判而已。做子女的,谁能对父母说“我做得很好”,或者说“为什么只有我一个人辛苦供养父母”呢?每个人在供养父母这件事上,总会有做得好的方面,也难免有做得不足的方面。人都是不完美的,无论做得再多也总觉得不够。谁也不能说“我做得很好”。子女只需各自竭力尽到自己的本分而已,不能评判他人。

○ 在神面前也是如此一样。从律法的角度来看,人人都是有过错的。父神所预备的救赎是并非律法,而是通过相信基督使罪得赦免。救恩不是靠我个人的律法努力或行为来获得的,而是通过神亲自设立的救赎方式而得的,即 “通过耶稣基督十字架的赦罪” 来实现的。关于这一点,大卫曾说:

[诗篇 32:1,2] 得赦免其过、遮盖其罪的,这人是有福的!凡心里没有诡诈、耶和华不算为有罪的,这人是有福的!

○ 旧约时代的祭祀制度是耶稣基督通过赦罪带来救恩的预表。在旧约时代,有罪的百姓带着山羊或绵羊来,按手在祭牲头上。随后,祭司宰杀母山羊或羔羊,将血抹在燔祭坛的四角上,把剩下的血倒在坛脚,并将祭物全部在燔祭坛上焚烧。完成这样的赎罪祭后,祭司宣告赎罪。这是将自己的罪转嫁给那无罪的羔羊。

◉ “祭”这个字是由 “月”、“又”、“示” 这三个部分组合而成的。其中 “月”代表肉(肉月旁),“又”象征着和睦与交往,“示”则代表向神献祭的祭坛。祭祀的本意是通过向神献上羔羊为祭,从而达成和好。祭祀的对象不是祖先或鬼神,而对象是神。祭祀制度是人类存在很久以前就已经存在的,它预表了神在末后的日子,将通过牺牲羔羊——独生子耶稣来拯救世人。

◉ 俄罗斯文学家托尔斯泰在《我的回心》)一书中写道:“五年前,我真正接受了耶稣基督作为我的主。随后,我的整个生命都发生了改变。我不再追求以前所欲望的东西,反而开始渴求以前从未寻找过的东西。以前觉得好的现在觉得不好了,以前觉得微不足道的现在变得重要了。我曾追逐所谓的‘幸运彩虹’,如今却明白了那是虚无的。无论是用谎言装饰自己、与女性的堕落生活,还是醉酒后的快快乐,都再也无法让我感到幸福。”

托尔斯泰在接纳耶稣之后,体验到了上帝所赐予的奇妙的罪得赦免之恩。他也由此见证了在罪得赦免的恩典之后,生命中所发生的惊人变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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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장8절-22절 <욥의 신앙> 

[욥1장8절]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순전하다(blameness)’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았음을 말합니다. ‘정직하다(upright)’는 말은 모든 일에 표리부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믿음은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기 전에는 자신의 믿음이 좋은지 나쁜지 알지 못합니다. 욥에게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 스바 사람이 갑자기 쳐들어와 밭을 갈고 풀을 뜯는 소와 나귀를 뺏어가고 종사하던 종들이 떼죽음 당했으며 ○ 갈대아 사람이 와서 약대를 빼앗고 종들을 죽였으며 ○ 거친 들에서 태풍이 불어 형제들이 한 집에서 식사하는데 집이 무너져 몰사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자녀가 열남매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습니다. 욥은 매일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죽었습니다. 이유 없이 사랑하는 아이가 죽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인생의 고난 속에서 신앙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르는 것은, 이것이 그 사람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욥 1장20절-21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 너무도 비인간적이고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사실은 욥은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자신의 죄에 기인하였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 많은 사람이 재난이 임할 때는 “내가 무슨 죄가 있는가?”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내가 죄가 많아서…” 하며 한탄합니다. 그러나 욥은 지금 자신에게 닥친 환란이 자신의 어떤 죄에서 온 것도 아니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일어난 일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21절]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난과 축복의 근원을 권선징악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고 일률적으로 해석합니다.

 

◎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녀가 교회에 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교회가 잘 가르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자녀는 장성하여서 부모의 곁을 떠나고 나서 교회 생활을 멀리합니다. 부모의 요구에 따라 교회를 다닌 것뿐입니다. 교회는 청년예배를 따로 드리고, 아이들 예배를 따로 드리고, 중고생 예배를 따로 드립니다. 또래끼리 친하여 교회에 다니면 교회를 잘 다닐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녀의 신앙교육의 큰 실패는 가정예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와 아이들 가운데 큰 구덩이(鸿沟)가 형성되어 있어 교제가 없습니다. 교회 예배시간에 가족이 함께 앉아 예배드리는 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 가정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중요합니다. 은혜의 문, 축복의 문은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나의 가정이 축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의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정예배입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고, 교회의 출발입니다.

◯ 유대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저렇게 놀라운 민족이 되었습니까? 많은 사람이 유대인의 가정교육을 말합니다. 유대인의 자녀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첫째, 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둘째, 여호와의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셋째, 왜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인?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의무는 무엇인가? 넸째, 성경에서 말하는 자녀의 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어머니는 왜 남편을 돕는 배필인가? 다섯째, 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여섯째, 왜 고난의 역사 교육이 그렇게 중요한가? 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의 광야 길을 걷게 하셨는가? 이런 내용을 유대인은 가정 안에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이는 교회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 가정예배는 축복의 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중국에 있을 때, 아이들이 아침에 부랴사랴 학교에 간다. 돌아와서 숙제한다. 주말에는 저는 “설교 준비를 한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가정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하기 싫은 성경 읽기를 검사했을 뿐입니다. 억지로 하던 성경 읽기를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성장하면서, 집을 떠나면서 해방되었지요. 저는 그때 좀 더 즐거움으로 가정을 돌보고, 간절함으로 예배드리지 않은 것이 부끄럽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가를 나의 자녀는 다 압니다.

○ 사무엘은 주의 일을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평생에 형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사무엘의 노년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의 자녀들이 사무엘과 같지 않았으므로 실망했습니다. ○ 제사장 엘리는 자녀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부로 제단의 제물을 빼앗아 가져가고 제단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 법궤를 메고 나갔다가 법궤는 빼앗기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왕이 쳐들어왔을 때 겸손히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100% 믿고, 믿음으로 구하여, 이스라엘을 구합니다. 이때 죽은 앗수르의 군사가 십팔만 오천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는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니, 하나님은 그의 수명을 십오년을 연장하여 주었습니다. 그 후 바벨론의 신하들이 먼 곳에서부터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영화를 자랑하여 자신의 무기고와 궁중의 모든 소유를 자랑합니다. 이를 기뻐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예언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다 끌려가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을 들을 때 히스기야의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 히스기야 왕은 자녀들에게 대한 영적인 열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좋아했습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 나이 십이세라 하였습니다. 차라리 히스기야기 십오년의 연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 감사하는 신앙, 하나님의 절대주권,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는 가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욥은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였습니다. 감사에는 상대적인 감사가 있고, 절대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감사입니다. 절대적인 감사는 나쁜 일에도 하는 감사입니다. 평안 중에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생 감사, 무론 감사, 이는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절대 감사, 하나님 절대주권의 신앙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约伯记 1:8-22 <约伯的信仰>

[约伯记 1:8] “耶和华问撒旦说:你曾用心察看我的仆人约伯没有?地上再没有人像他完全正直,敬畏神,远离恶事。”

 “完全(blameless)”指的是神和人面前生活得无愧的心意思;“正直(upright)”指的是所有事情上表里如一,不虚伪的意思。● 人的信心必须经过验证。 在遭受考验之前,人无法了解自己的信心是好是坏。约伯遭遇了极限的寒风:示巴人忽然闯来,抢走了正在耕田的牛和吃草的驴,并用刀杀了仆人。迦勒底人闯来,把骆驼抢去,也用刀杀了仆人。狂风从旷野刮来,击打房屋的四角,房屋倒塌在正在一同吃饭的儿女身上,导致他们全部遇难。

他心爱的十个子女全都遇难,一个也没有留下。约伯曾每天为孩子们献祭,然而孩子们还是死去了。如果没有理由地失去心爱的孩子,那痛苦是常人难以忍受的。也许很多人在人生的苦难中,信仰会动摇。但是许多人并不知道,这正是对一个人信心的考验。

[约伯记 1:20-21] 约伯便起来,撕裂外袍,剃了头,伏在地下拜,说:“我赤身出于母胎,也必赤身归回。赏赐的是耶和华,收取的也是耶和华;耶和华的名是应当称颂的。”

○ 这听起来难道不觉得太不近人情、太不切实际了吗?但我们还必须注意一个事实:约伯并没有将临到自己的苦难归因于自己的罪。○ 许多人在遭遇灾难时,要么埋怨神说“我到底犯了什么罪?”,要么感叹说 “是因为我罪孽深重……”。然而,约伯深知此刻临到自己的患难并非源于他的某种罪行,而是在神那无法测度的主权之中发生的事。

约伯在 [21节]说:“我赤身出于母胎,也必赤身归回。赏赐的是耶和华,收取的也是耶和华;耶和华的名是应当称颂的。” 在这一切事上,约伯并不犯罪,也不向神发怨言。许多人将苦难与祝福的根源解释为“劝善惩恶”。由于不了解神的作为,往往会进行一律化、片面的解釋。

◎  今代许多父母仅仅满足于孩子去教会,并期待教会能把孩子好好教育。然而,孩子们长大离开父母后,往往会远离教会生活。这是因为他们当初只是为了顺从父母的要求才去教会的。教会有专门的青年崇拜、有儿童门礼拜和有中学生礼拜。父母们原以为只要让孩子和同龄人相处得好,就可能坚持参加教会活动。然而,我韓國子女信仰教育最大的失败在于缺乏家庭礼拜。在父母与子女之间存在着巨大的鸿沟,缺乏属灵的交流。孩子们没有学会在教会礼拜时间与家人坐在一起共同礼拜。

● 在家中向神献上的礼拜至关重要。恩典之门和祝福之门都是从家庭开始的。为了让我的家庭蒙受祝福,比教会崇拜更重要的就是家庭礼拜。家庭是一个微型教会,也是教会的起点。

◯ 犹太人究竟是怎样的人,竟然能成为如此了不起的民族?许多人都归于犹太人的家庭教育。犹太人的子女教育始于家庭,其核心内容如下:

第一,人为什么要敬拜神?

第二,耶和华的律法对我们意味着什么?

第三,为什么父亲是家庭的祭司? 作为家庭祭司,父亲的义务是什么?

第四,圣经所说的子女应有的态度是什么? 母亲为什么是丈夫贤德的帮手?

第五,为什么要孝敬父母?

第六,为什么苦难的历史教育如此重要? 为什么神让祂所爱的以色列百姓行走苦难的旷野之路?

这些内容犹太人都是在家庭中从父母那里学到的。这不是在教会里学习的,而是在家庭中学习的。

● 家庭礼拜是祝福之门。我以前孩子们在中国时候,早晨总是匆匆忙忙去上学,回来又要赶做作业。而我当时也常以“要准备讲道”等各种理由,没能好好举行家庭礼拜。那时,我只是每天强迫孩子们读圣经,并进行检查。如今他们长大了,离开了家,也从这种强迫性的读经中“解放”了出来。我现在感到很惭愧,后悔当时没有以更喜乐的心去照顾家庭,没有以更切慕的心去领受礼拜。礼拜必须是以心灵和诚实献上的。我是否在真心实意地敬拜,孩子们其实都看在眼里。

○ 撒母耳是成就主工的人,一生亨通。然而,他在教导子女方面却失败了。到了撒母耳晚年,以色列的长老们因他的儿子们不像撒母耳那样正直而感到失望。

○ 祭司以利没有好好教导子女。他的儿子们不敬畏神,任意抢夺祭坛上的祭物,并在祭坛前犯罪。最终,在与非利士人的战争中,他们虽寄希望于神的帮助而抬出约柜,结果约柜被夺,两个儿子何弗尼和非尼哈也惨死在戰場。

 

○ 当亚述王入侵时,希西家谦卑地在神面前哀求,并百分之百相信先知以赛亚的预言。因着他的信心,神拯救了以色列。圣经记载,在那一夜,亚述军队中死去的士兵达十八万五千人。随后,当希西家患上必死的重病时,他禁食并恳切地向神祈祷。神垂听了他的祷告,增加了他十五年的寿数。然而,当巴比伦的使者从远方慕名而来时,希西家炫耀自己的荣耀,向他们展示了宝库、军械库以及宫中所有的财富。神对此并不喜悦,通过以赛亚预言道:“你家中的一切都将被掳到巴比伦去。” 听到这个预言后,希西家的回答令人震惊:“你所说耶和华的话甚好。因为在我的年日中,必有太平和稳固的景况,这难道不好吗?”

○ 希西家王对子女的属灵状况完全没有热心。他仅仅满足于自己的问题得到了解决。圣经记载,玛拿西登基时年仅十二岁。这意味着玛拿西是在希西家增加的十五年寿数期间出生的。如果希西家没有延长那十五年的生命,或许情况会更好了。玛拿西成为以色列历史上最邪恶的君主。由于玛拿西所犯下的滔天罪行,以色列最终走向了无法挽回的毁灭之路

“赏赐的是耶和华,收取的也是耶和华;耶和华的名是应当称颂的。”

○ 感谢的信仰、神的绝对主权以及人生中真正重要的价值,这些都是在家庭中学到的。约伯在无法感谢的情况下依然感谢了。感谢分为 “相对的感谢”和 “绝对的感谢”。仅在遇到好事时才献上的感谢。即使在遇到恶事和苦难时依然献上的感谢。在平安中感恩,人人都能做到;但我们应当成为在苦难中依然感谢的人。一生感谢、无论如何感谢,这是一种承认神是万物之主、是全能者的信仰。这种绝对感谢和神绝对主权的信仰,正是开启天国大门的钥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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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15-20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닌다.' 할 때, “모든 종교는 다 좋은 것이다. 믿음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다.” 하며 기독교를 많은 종교의 하나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예로부터 동방은 ‘상제’(上帝)라 하여 온 우주를 창조하고 주관하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는 신을 절대 신으로 모셨습니다. 이 '상제'는 여러 신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만물과 인간을 다스리는 유일한 최고 권위자였습니다. 북경에는 천단이 있습니다. 이 제단에는 불상이나 신상이 없고 오직 '황천상제(皇天上帝)'라는 하나의 신패만 모셔졌는데 이는 유일신을 섬긴 신앙의 흔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유일신 신앙이 사라졌을까요? 고대에는 명확했던 유일신 신앙이 유교의 ‘조상 숭배’, 도교의 ‘범신론’, 불교의 다신교적인 신앙과 섞이면서 그 원형이 점차 희미해진 것입니다. 세상에 도교가 있기 이전에. 유교가 있기 이전에, 불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유일신이 계셨습니다. 세상은 많든 신을 만들지만.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 앗수르 산헤립 왕의 신하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며 항복할 것을 말하자, 히스기야는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이사야 37:3). 그는 심한 무력감과 공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이사야 37: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앗수르 십 팔만 오천이라는 군대를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습니다. 

○ 주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을 때, 베드로는 [마 1616]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기 어려운 고백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을 어찌 신이라 말하는가? 그러나 이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입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요 20:31]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 어떤 이는 예수를 단지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다. 종교의 창시자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람의 견해일 뿐입니다. 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빠진다면 그것은 절대로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건 많은 종교 단체들이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혹은 어떤 사람은 예수는 단지 위대한 선지자일 뿐, 하나님과 동등한 신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을 가진 분으로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1+1+1=1> 이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삼위 하나님은 각각의 위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한 분이십니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말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El)’은 하나님, ‘엘로힘(Elohim)’은 ‘엘(El)’의 복수형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일하신 한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말했다면 유대인들은 굳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할 때,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라 말하고, ○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지만,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시니 말씀에 순종하여 두 배에 가득차게 끌어올렸고,

○ 베드로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고치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 또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영광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있어, 증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베드로는주(主)는 그리스도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백한 것입니다.

○ '살아계시다' 란 표현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거나 멀리 떨어져 방관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높이 하늘에 계시지만, 여전히 지금 나의 언행을 보시며,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세상의 사람들은 생명이 없고, 귀도 눈도 없는, 돌과 나무로 형상을 만들어 놓고 향을 피우고 기도하지만, 주님은 지정의(知情意)를 가지신 분. 곧, 지적인 판단을 하시고, 눈물이 있고, 감동하시며, 결정하는 의지를 가지신, 나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이 순간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고, 자기 백성의 고통에 응답하시며,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기독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땅 위의 공동체입니다. 천주교는 로마의 교황을 베드로의 계승자라 하여 교황와 교회의 권위를 말하지만, 주님은 베드로라는 인물을 말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 믿음의 토대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한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공동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입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에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그것을 곧 교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7절] 주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즉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던 것은, 그 지적인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고, 아는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세상에 지식이 있고, 스스로 ‘총명하다’ 말하고, 지위가 있고, 재산이 있는 사람이, 원한다고 배운다고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 그리스도를 아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马太福音 16:15-20  <永生的儿子>

现今许多人说“去教会”时,持有 “所有宗教都是好的,有信仰总比没有好” 的态度,将基督教仅仅视为众多宗教之一。

 自古以来,东方尊称创造并主管全宇宙、主宰人类生死祸福的神为“上帝”,将其视为绝对的神。这位上帝并非众神之一,而是统治万物与人类的唯一最高权威者。北京有天坛。此祭坛内并无佛像或神像,仅供奉着 “皇天上帝” 这一块神牌,这便是供奉唯有一神的信仰痕迹。那么,为什么这种唯一的神信仰会消失了呢?古代曾如此明确的唯一神信仰,随着与儒教的 “祖先崇拜”、道教的 “泛神论” 以及佛教的 “多神教”信仰相混合,其原貌逐渐变得模糊了。在道教存在之前,在儒教發生之前,在佛教创立之前,唯一的神就已经存在了。虽然世人创造出來的神有很多,但创造世界的神只有一位。

○ 当亚述王西拿基立的臣仆拉伯沙基围困耶路撒冷,侮辱神并要求投降时,希西家撕裂衣服,披上麻布,进入耶和华的殿祷告。 (以赛亚书 37:3) 他哀叹说:“今日是难产、责备、凌辱的日子,就如妇人将要临产,却没有力量生产。”。他陷入了极度的无力感与恐惧之中。然而,他听从并相信了先知以赛亚的预言后上圣殿,祷告 [以赛亚书 37:16] “坐在二基路伯上万军之耶和华以色列的神阿,你,惟有你是天下万国的神。你曾创造天地。” 했습니다. 

针对希西家的祷告,神使亚述十八万五千人的大军在一夜之间全部变成了尸体。我们信仰的是这位唯一的真神。

○ 当主询问“你们说我是谁”时,彼得在[马太福音 16:16]中回答说:“你是基督,是永生神的儿子。” 这是一个确实难以说的告白。拥有肉身的人类,怎能被称为神呢?然而,这正是基督教的核心真理。使徒约翰在他所记录的福音书中,阐明其写作目的是

[约翰福音 20:31] “但记这些事是要叫你们信耶稣是基督,是上帝的儿子,并且叫你们信了他,就可以因他的名得生命。” 하였습니다.

○ 有些人认为耶稣仅仅是 “人类伟大的老师、宗教的创始人”。然而,这种想法不过是人的见解。福音的核心是:耶稣是基督,是神的儿子。如果缺失了这一事实,那就绝不是福音。许多以基督教之名的宗教团体,正在否认耶稣是人类的救主, 还有神的儿子。或者有些人说,耶稣只是一个伟大的先知,并非与神同等的存在。

圣经明确指出,耶稣是三位一体神中一个位格。三位一体的神并非人类大脑所能完全理解的概念。<1+1+1=1>,这该如何解释呢?三位一体的神拥有各自的位格,然而,祂们是一位神。

[창세기 1:26] 神说,我们要照着我们的形像,按着我们的样式造人,使他们管理海里的鱼,空中的鸟,地上的牲畜,和全地,并地上所爬的一切昆虫。

圣经在《创世记》中提到神时说:“我们要照着我们的形像……”这里的 “我们” 反映了神的复数性。在希伯来语中,“伊勒(El)”指的是神,而“伊罗兴(Elohim)” 是 “伊勒”的复数形式。然而,这位神却是独一的真神

[요한복음 5:18]  所以犹太人越发想要杀他。因他不但犯了安息日,并且称神为他的父,将自己和神当作平等。

○ 如果耶稣曾亲口说 “我不是神”,那么犹太人就不必非要将他钉死在十字架上。○ 天使加百列在马利亚怀上婴孩耶稣时,称他为 “要将自己的百姓从罪恶里救出来的人”。○ 彼得在加利利海劳力整夜,连一条鱼也没有打着,但当主说 “把船开到水深之处,下网打鱼”时,他顺从这话语,打上的鱼装满了整整两只船。○ 彼得在与主同行期间,亲眼目睹了主治愈 “那些患病的、受各种痛苦煎熬的、被鬼附的、癫痫的以及瘫痪的人”。 ○ 彼得还在变化山上,见证了摩西和以利亚在荣光中与耶稣同在并为他作见证。主正是神所差遣的那位。目睹了这一切的彼得,最终告白說:“主是基督,是永生神的儿子。” ○ “永生” 这一表达意味着神并非只停留在过去,也不是远离、事外旁观者。“永生神” 虽然已复活升天、高坐在天上,但祂至今依然察看我的言行,垂听我的祷告,并且时刻引领着我。

[로마서 8:34] 谁能定他们的罪呢。有基督耶稣已经死了,而且从死里复活,现今在神的右边,也替我们祈求。

○ 世上的人们用没有生命、没有耳目的木头和石头雕刻成形像,向其焚香祷告;但主是拥有 “知、情、意” 的一位。也就是说,祂是拥有智力判断、流眼泪、会感动、并拥有决断意志的,与我建立人格关系的。主在此时此刻也是作工的神,是主宰历史、回应属自己百姓的痛苦并施行救赎的那神。

[사도행전 4:12] 除他以外,别无拯救。因为在天下人间,没有赐下别的名,我们可以靠着得救。

○ 基督教是建立在彼得的 “信仰告白” 之上的地上共同体。天主教认为罗马教皇是彼得的继承者,以此强调教会和敎皇的权威;但主所指的是并非彼得这一人物本身,而是指教会将建立在 “彼得的信仰告白”、即信仰的根基之上。教会是由 信耶稣是 '永生上帝之子' 的人们所组成的共同体。这就是信仰共同体——“埃克西亚”(ἐκκλησία)。这不能仅仅因为人们聚集在有十字架的建筑里,其称之为教会。

[17절] “西门巴约拿,你是有福的!因为这不是属血肉的指示你的,乃是我在天上的父指示的。”

也就是说,彼得能认出耶稣是神所差遣的救赎主的、是神的儿子,并非通过他智力上的努力所获得,而是神的 “恩宠之礼物”。没错,信心就是礼物。我认识他,与主相遇、这就是恩典,也是祝福。在世上拥有知识、自说 “聪明”、拥有地位和财产的人,想拥有就能获得信心的吗。断乎不可!

使徒保罗曾说:

[腓立比书 3:8] “不但如此,我也将万事当作有损的,因我以认识我主基督耶稣为至高。我为他已经丢弃万事,看作粪土,为要得着基督。” 我们应当明白,认识基督是这世间最大的福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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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25-34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예수께서는 세상의 사람들이 육신인 삶, 의식주 문제에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추종하는 제자들도 실제로 그 마음속에 동일한 근심과 염려에 가득 차 있음을 아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하에서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불안하였고, 극심한 빈부차가 있었고, 각종 세금. 무거운 세금으로 일반 평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당하며, 근심과 염려가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 ‘염려하다’는 헬라어 ‘메림나오’(μεριμνάω)는 원래 ‘나누어지다’ , ‘분열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분열되는 것이 바로 ‘염려’ 인 것입니다.

○ 예수의 가르침은 산과 바다, 길을 가며 현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는 말에서 보듯,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있는 산에서 주어졌습니다(5:1).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하나님이 자녀 삼지도 않은 공중의 날짐승에 불과한 새도 먹이시고 돌보시는데, 하물며 친히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서 ‘너희’를 보호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인도하시건만 사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더 채워주지 않는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 여기서 ‘키’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키가 커진다는 의미에서 ‘수명’이란 의미와도 같습니다. 요즈음은 ‘키’ 크는 약을 먹고, 수명을 늘리기 위해 잘 먹고, 신장을 이식하면서 ‘수명’을 늘이지만 그렇게 얻은 ‘키’와 ‘수명’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 하지 않습니다.

[28]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백합화는 실제로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백합화는 단지 백합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들국화, 아네모네, 붓꽃 등 다양한 야생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모든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말에도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모든 것이 충족하여 만족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 야곱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레아와 라헬은 언니 동생의 관계입니다. 레아의 아버지 라반의 속임수로 야곱과 먼저 결혼했지만, 야곱의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레아는 평생을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며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겠지"라는 희망과 탄식 속에 살았습니다. 동생 라헬은 야곱이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총 14년을 봉사했으며,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녀의 아들들(요셉, 베냐민)을 편애할 만큼 끝까지 라헬만을 아꼈습니다. 그러나 라헬이 모든 것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겨 많은 자녀를 낳아, 이스라엘 6개 지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특히 메시아의 계보인 유다와 제사장 가문인 레위가 모두 레아의 소생입니다. 반면에 라헬은 오랫동안 아기를 낳지 못해 고통받다가 뒤늦게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게다가 둘째 베냐민을 낳던 중, 베들레헴 가는 길에서 산고로 죽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이 있으면 부족한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제가 보기에, 모든 사람에게 고난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사랑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어디 온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이 자신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람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족하게 태어난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부족을 발견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 안요한 목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요한으로 이름을 짓고 목회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어릴 때 자라면서 교회 안에 되어지는 일들로 마음에 상처가 있었고, 그는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부정하며 37년 동안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겠노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실명하기 전에는 카투사에서 근무할 정도로 영어 실력도 뛰어났고, 제대 후에는 서울 유명 학원에서 불어를 가르치는 강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37살에 그만 원인을 모르게,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실명 직후, 시력을 되찾기 위해 전국에 용하다는 병원과 기도원을 전전했습니다. 아내도 떠나 버리고, 서울역에서 구걸하던 시절, 남의 도움을 받으며 비참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자살을 하려고 산에 올랐습니다. 그때 환청처럼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아! 요한아!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여호수아 1:5-6)” 그 후로 그는 하나님을 부인한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어느 날, 간절히 기도하던 중 환상 속에서 눈앞에 아주 밝은 빛이 보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하나님이 내 눈을 고쳐주시는구나!"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육신의 눈을 뜨는 빛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뜨는 빛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구걸하며 연명하던 시절의 일화입니다. 당시 그는 절망하여,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때 이름 모를 동료 거지가 깡통에 담긴 라면 국물을 그에게 건넸습니다.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그는 따뜻한 국물을 마시는 순간,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사랑이 있구나" "내가 높은 곳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사랑을, 가장 낮은 곳에서 눈이 먼 채로 발견하였다."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의 눈은 뜨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간증합니다. “저는 장님이 되어 수지맞은 사람입니다. 저는 눈으로 보는 37년보다 앞 못 보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온 천하를 다 가져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만족과 기쁨과 감사가 없기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말합니다.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 는 하나님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시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도는 나의 뜻과 나의 만족, 성공을 위하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 필라델피아의 재벌이었던 스티븐 지라드는 어느 토요일에 직원들에게 주일에도 나와서 방금 들어온 선박의 짐을 내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한 청년이 지라드씨 앞으로 공손히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내일이 주일이라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와 헤어지는 수 밖에 없겠군" "그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형편이지만 주일에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총무과로 가 보시오 그동안 일한 급료를 지불해 줄 것이요" 그 후 청년은 근 한 달 동안이나 발이 부르트도록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으니 직장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필라델피아 시의 한 은행장이 선박회사 사장 지라드에게 전화를 걸어, 은행을 하나 열게 되었는데 혹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이를 듣고 지라드는 자신이 해고했던 그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그 청년을 해고하지 않았나?" "그렇지. 그 청년이 일요일에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했네. 하지만 함부로 자신의 신념과 뜻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네가 열겠다는 그 은행의 돈을 맡길 수 있지 않겠나?" 그 청년은 지라드의 친구인 은행장에게 발탁되어 전보다 훨씬 저 좋은 조건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马太福音 6:25-34 <先求他的国和他的义>

[马太福音 6:25] "所以我告诉你们不要为生命忧虑吃什么喝什么为身体忧虑穿什么生命不胜于饮食麽身体不胜于衣裳麽"

○ 耶稣知道,正如世俗的人忧虑肉体的生活和衣食住行问题, 一样追随自己的门徒们心中实际上也充满了同样的挂虑和忧虑,于是说了这番话。当时以色列在罗马的压迫下,在政治、经济、社会、宗教上都遇到动荡不安的状态,贫富差距极度地悬殊。由于各种沉重的税收,普通平民的生存受到危险,终日生活在愁苦与忧虑之中。○ “忧虑”一词在希腊语中是 “메림나오”(μεριμνάω),其原意包含 “被分割”的意思。心陷入分裂, 在工作上无法集中的,这正是所谓的“忧虑”。 ○ 耶稣的教导是在山间、海边和路上等生活现场进行的。正如 “看那空中的飞鸟” 那样。这些话语是在加利利海附近的山上说的的(5:1)。那些无人看重、甚至算不上神儿女的空中飞鸟,也是神养活并看顾它们,何况是亲身成为你们父亲,神呢,又怎么不保护 “你们”呢?神知道我们的需要并引导着我们,但人却往往因为事情不合自己的意愿、觉得没有得到更多充足、或者认为神没有垂听自己的祷。

[27] "你们那一个能用思虑使寿数多加一刻呢"

○ 这里的 “身量”与人随着年龄增长身量也会增长的含义相同,也等同于 “寿命”。如今,人们通过服用增高药物、为了长寿而好好地吃饮食、甚至通过器官移植来延长 “寿命”,但如此获得的 “身高”与 “寿命”并不能使人生变得更加美丽。 ○ 百合花确实是很美的花。但这里的 “百合花”并不单指百合,而是泛指 野菊花、银莲花、鸢尾花[yuānwěihuā] 等各种野花。每种花都有其独特的美丽。常言道“美人薄命”,在中文里也有 “佳人薄命”的说法。神在创造人时,并没有让人在所有方面都完美无缺、尽善尽美。

[28] "何必为衣裳忧虑呢你想野地里的百合花怎样长起来他也不劳苦也不纺线"

◎ 雅各有两个妻子。利亚和拉结是亲姐妹关系。虽然利亚因父亲拉班的诡计先与雅各结婚,却未能赢得雅各的心。利亚一生都在渴求丈夫的爱,生活在“现在丈夫该爱我了吧”的希望与叹息之中。而妹妹拉结则是雅各真心爱恋的女人。 雅各为了赢得拉结,总共服事了十四年;甚至在拉结死后,他依然深爱着她,以至于偏爱她的儿子们(约瑟和便雅悯)。然而,拉结并非拥有了一切。神怜悯失宠的利亚,使她生下许多儿女,成为了以色列六个支派的母亲。特别是弥赛亚谱系的犹大和祭司家族的利未,都是利亚所生的。 另一方面,拉结因长期无法生育而备受痛苦,直到后来才生下了约瑟和便雅悯。而且,在生第二个儿子便雅悯的过程中,她在前往伯利恒的路上因难产而死,遭遇了悲剧性的结局。

○ 每个人都有优点,也必然会有不足之处。我看来,每个人都有苦难,都有缺失,也都是需要爱的存在。我们应当学会彼此怜悯。这世上哪有完美的人呢?当一个人不尊重、不珍视自己,而是总盯着别人看时,人就会变得不幸。 人的不足是为了让我们仰望上帝

◎ 安约翰牧师出生于牧师家庭,父亲为他取名“约翰”,希望他能成为一名牧者。然而,他在成长过程中因教会内发生的一些事情心存伤痕,甚至否定神的存在,作为无神论者生活了37年。他曾经想过靠自己的力量奋斗努力获得成功。他在大学时主修法文,失明前在卡图萨(KATUSA)服役,英语水平极佳,退伍后曾经在首尔著名的学院担任法语讲师。 ○ 就在那时,37岁的他因不明原因突然失明了。失明后,为了恢复视力,他走遍了全国各地有名的医院和祈祷院。妻子离婚而去,在首尔站乞讨的日子里,他觉得与其靠别人的施舍悲惨地活着,不如一死了之,于是上山准备自杀。就在那时,他听到了神如幻听般传来的声音:“约翰!约翰!我必不撇下你,也不丢弃你。你当刚强壮胆!(约书亚记 1:5-6)”此后,他彻底悔改了否定神的罪。 ○ 有一天,在切切祷告中,他在幻象中看到了眼前亮起极其灿烂的光。他欣喜若狂地想:“神终于要医治我的眼睛了!”然而,那光并不是为了让他肉眼复明,而是为了开启他的心眼。○ 这是他在首尔站前靠乞求度日时期的一段往事。当时,他深陷绝望,因饥饿而瘫倒在地。就在那时,一位不知名的流浪同伴将一只铁罐里的拉面递給了他面前。 在看不见的黑暗中,喝下那口暖汤的瞬间,他明白了:“原来在这世上最低微的地方,依然存有爱。”他感叹說:“当我身处高时未能看见的爱,如今在这最底层、双目失明的情况下,我却找到了。” 虽然肉体失去了视力,但他的灵眼却被开启,随后他进入神学院学习并成为了一名牧师。如今他见证说:“我成了盲人,却是个赚了大的人。比起能看见的那37年,现在的我更加幸福、更有成就感。即使拥有全世界,若生命中没有神,就没有真正的满足、没有喜悦和感恩的人,也就可以说, 还没找到幸福的人。”

○ 在神的眼中,每个人都是值得被爱的。神现在正深爱着我们。

[6:33] "你们要先求他的国和他的义这些东西都要加给你们了"

“神的国”是指神行使绝对权力进行统治的领域。圣徒不是为了自己的意愿、满足或成功而活,而是追求神的国和神的义的人。圣经承诺说:“这些东西都要加给你们了。”

 

▣ 费城的富豪斯蒂芬·吉拉德在一个周六指示员工们,周日也要来上班,卸下刚到港的货船上的货物。这时,一名年轻人恭敬地走到吉拉德先生面前,这样说道:“老板,因为明天是主日,我必须去教堂,所以无法工作。” “是吗?既然这样,看来你只能离开公司了。” “我已经心理准备了。虽然我还需要供养年迈的母亲,但在主日我不能工作。” “那你去财务科吧,他们会结算这段时间的工资给你。” 那之后,青年近一个月都在全城奔波寻找工作,脚都磨出了泡,但依然没能轻易找到新的事。有一天,费城市的一位银行长给船舶公司老板吉拉德打电话,他说要开一家新银行,请他推荐一位合适的人吧。吉拉德听后,向他推荐了那名被自己解雇的青年。“那个人不是解雇了那青年吗?” “没错。因为他坚持主日绝对不能工作,所以我解雇了他。但只有像他这样绝不轻易改变信念和初心的人,才能让你放心把银行的资金托付给他,不是吗?” 最终,那青年得到了银行行长的重用,在比以前优越的条件下开始了新的工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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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12 <동방박사의 방문> 

한국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에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건국한 사람이 단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일한 단군신화를 갖는 나라가 있으니 카자흐스탄입니다. 그리고 초기 한자를 만든 상(商)나라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한자 안에는 성경의 내용을 포함한 글자가 많습니다.

○ 금지하다 금(禁)은 어떻게 해서 금하다 뜻을 갖게 된 것일까요? 수풀 림(林) 자는 나무 목(木) 자가 두 개 나란히 있는 형상입니다.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에덴동산 중앙에는 두 그루의 특별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바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창세기 2:9) 이 두 나무가 에덴동산의 중앙에 서 있었습니다. 보일 시(示) 자는 한자에서 주로 하나님, 신(神), 제단, 계시를 말할 때 쓰는 글자입니다. 하나님이 두 나무를 보이시며 먹지 말라. 금하신다는 의미에서 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 간사할 간(奸)은 계집 녀(女) 자와 방패 간(干) 자가 합쳐진 형태입니다. 간(干) 자는 단순히 무기를 막는 방패라는 뜻도 있지만, 고대에는 “범하다, 어기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한 여인 하와를 뱀이 간교한 거짓말로 속여 범죄 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한자 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의미하는 글자가 있을까요? 그 대표적인 글자가 옳을 의(義) 자입니다. 이 글자는 양(羊)과 나 아(我)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의(我) 머리 위에 어린 양(羊)을 놓았을 때, "나의 죄를 덮는 어린 양" 이 있으므로 비로소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 인정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내 공로가 아니라 어린 양의 희생으로 내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양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바로 나를 위해 죽은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말합니다.

◎ 예로부터 동방 여러 나라는 상제(上帝)라 하여 온 우주를 창조하고 주관하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는 신을 절대 신으로 모셨습니다. 이 상제는 여러 신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만물과 인간을 다스리는 유일한 최고 권위자였습니다. 북경에는 천단이 있습니다. 이 제단에는 불상이나 신상이 없고 오직 '황천상제(皇天上帝)'라는 하나의 신패만 모셔졌는데 이는 유일신을 섬긴 신앙의 흔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유일신 신앙이 사라졌을까요? 고대에는 명확했던 유일신 신앙이 유교의 ‘조상 숭배’, 도교의 ‘범신론’, 불교의 다신교적인 신앙과 섞이면서 그 원형이 점차 희미해진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욕단이 동쪽으로 갔다고 했는데… 

[창세기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결론으로 동방에도 오래전부터 유일신에 신앙이 있었고, 인류는 오랫동안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벨렉의 후손 중에 하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성경에 기록되었고, 다른 한 후손은 동방으로 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동방에서 구세주의 나신 소식을 자세히 알기 위해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马太福音 2:1-12 〈东方博士的拜访〉

○  根据韩国的建国神话,在高句丽、百济、新罗之前,曾有一个名为“古朝鲜”的国家,其开国始祖是檀君。令人惊叹的是,哈萨克斯坦也拥有与此极为相似的檀君神话。与此同时,创造早期汉字的商朝也处于这一时期。在汉字中,许多字包含着圣经的内容.  

○  “禁”字是如何拥有 “禁止”之意的呢? “林”字是两个 “木”字并排在一起的形状。根据圣经《创世记》的记载,伊甸园中央有两棵特殊的树,一个是 “生命树” 和一个是 “知善恶树” (创2:9)。这两棵树就立在伊甸园的中央。而在汉字中,“示”字主要用于表示上帝、神、祭坛或启示。因此,“禁”字传达了这样的含义:上帝在两棵树(林)前显示(示)并告诫人们“不可吃”,即上帝颁布了禁令。这就是 “禁” 字被创造出来的背景。

○  “奸”字中蕴含的圣经含义 “奸” 字是由 “女” 字和 “干” 字组成的。“干” 字不仅有武器 “盾牌”的意思,在古代还内含 “犯”、“违背”之意。这反映了人类历史上最初犯罪的女人夏娃的故事:蛇用奸诈的谎言欺骗了夏娃,使她违背(干)了上帝的禁令而陷入犯罪。这个字展现了那段因奸诈的诱惑而导致堕落的历史。

○  汉字中是否有预表上帝之子耶稣的文字呢?其代表性的文字就是“义”字。这个字的繁体形式是 ‘義’,由‘羊’ 和‘我’ 组成。其深含义是:当(我)的头顶上放着一只(羔羊)时,由于这只 “遮盖我的罪”,上帝才最终认可我为 “义”。也就是说,并非靠着我自己的功劳,而是靠着羔羊的牺牲,我才得以被称为义。 这里的“羔羊”意味着什么呢?正是指为了我而牺牲的耶稣。在圣经中,耶稣被称为 “除去世人罪孽的上帝的羔羊”。

◎  自古以来,东方各国就尊崇 “上帝”,认为他是创造并主宰宇宙、掌管人类生死祸福的人格化绝对神。这位 “上帝” 并非众神之一,而是统治万物与人类的唯一最高高权威者。在北京有一座 “天坛”。在这座祭坛里,没有摆了放任何佛像或神像,唯独供奉着一块写有 “皇天上帝” 的神位牌。这正是古人崇拜唯一真神的信仰痕迹。 那么,为什么这种唯一神信仰消失了呢?古代曾经有了清晰的唯一神信仰,但自那以后随着与儒家的 ‘祖先崇拜’、道教的 ‘泛神论’ 以及佛教的 ‘多神教’ 信仰相混合,其原貌逐渐变得模糊了。

查阅圣经《创世记》记载着(约坍)往东方迁移了。

[창세기 10:25] 希伯生了两个儿子,一个名叫法勒,因为那时人就分地居住。法勒的兄弟名叫约坍。他们所住的地方,是从米沙直到西发东边的山。

结论说,东方自古以来就存在着对唯一真神的信仰,人类长久以来一直在等待着救世主的降临。在法勒的后裔中,亚伯拉罕成为了信心之父并记载于圣经中,而另一支后裔则迁往了东方。今天经文中所提到的,为了详细知道救世主降生的消息而遥远的地方东方,博士们来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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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1-10  <마귀를 대적하라>

[에스라 4: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을 시작합니다. 이 소식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들었다 했습니다. ‘대적’이란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의 대적’이라 하지 않고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 했을까요?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귀환한 사람의 대부분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에 속한 자들도 귀환한 자들이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할 때, 그들은 이미 여호와 신앙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포로 귀환에 소극적이었던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유다의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대거 귀환하여 이스라엘 성전건축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뒤에도 여호와 신앙을 계속 유지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려보내실 것이라’ 확고한 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 한국 땅에 초기 복음이 번영하던 지역은 북쪽, 특히 평안북도입니다. 당시 남쪽에는 교세가 다소 약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 남북이 갈라지고 북쪽에 소련 공산주의가 들어서면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남쪽으로 월남하여 남쪽에 교회가 많아지고 하나님의 진리가 가득한 남쪽 땅이 결국, 경제부국이 된 것입니다. ‘부를 공평하게 나누라’ 말하며,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는 이북은 처음에 잘 사는 것 같았으나 결국,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후 앗수르 왕은 북이스라엘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고 대신 다른 바벨론 지역의 사람들을 그곳에 이주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과 혼혈하여 이루어진 민족이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와서 [4:2]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우리가 이 땅에 온 이후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말합니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요청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이들이 참 하나님을 구한 것은 아닙니다. 저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원해서가 아니고, 방해하려는 목적이 있던 것입니다. 저들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이후에 그 지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것을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 이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거절을 당하자, 저들은 이제 돌이켜 성전건축을 방해하고, 바벨론(페르시아)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제재(制裁)하도록 합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건축을 중단하였고, 성전건축은 점차 관심이 멀어지고, 이제는 다만 자신의 부를 늘이고 자신의 집을 짓고 돌보는 일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는 무려 16년간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시고, 당대 유력한 사람들을 보내사, 유다 백성들을 격려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습니다. 성경 학개서의 저자 학개는 당시의 선지자였습니다.

[학개 1:4-6]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 사람이 자기의 부와 집을 세우는데 몰두한다고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내 가정, 내 나라의 이익에 집중할 때, 내 힘으로 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와 귀는 나만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내 가정과 나라에 가득하고,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함께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대적하고, 성전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도 방치하는 나라를 벌하십니다. 유럽이 ‘부강한 나라’라고 교만해지고, 배가 불렀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멀리하고, 무슬림을 사랑, 평화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이때, 교회당은 무도회장으로 팔려나가고, 극장으로 바뀌면서 유럽은 이제 각종 테러와 무질서 가난으로 기울어지는 유럽이 된 것입니다.

◎  김치선 목사는 자기 집의 기와를 직접 벗겨다가 교회 지붕을 고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새는데 내 집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유물사상은 신의 존재와 영(靈)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물질관계로 설명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존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기독교를 공산혁명의 암적 존재로 여깁니다. 그래서 문화혁명 당시 많은 기독교인을 죽이고, 교회당을 허물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자들이 광화문에서 김일성을 찬양해도 잡아가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 ‘좌파’ 사상은 사회주의를 지향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하고, 자본가와 기업을 규제합니다. 노동자, 약자,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동성애를 지지하기도 합니다. 결과 이 나라에 많은 기업과 부자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있습니다.

[에스라 5: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다시 공사가 시작되자, 당시에 사마리아인들보다 더 강한 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3절) 위협하며 그들의 이름을 묻고, 바벨론 다리오 왕에게 글을 올립니다. 다리오 왕의 판결만이 남았습니다. 다리오왕 때, 고레스(Cyrus) 왕의 칙서(居鲁士 敕令)의 조사가 다시 이루어지고, 다리오 왕은

[에스라 6장] "성전건축을 방해하지 말고 왕의 창고에서 비용을 지불하여 도와주라" 이를 어길 시 "그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 달라."는 엄중한 처벌 규칙까지 세워집니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신 것입니다. 유다의 장로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하여 대적을 막아섰고, 건축을 독려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의 관리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였다 했습니다.

[야고보서 4:7]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사탄 마귀의 계궤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진리를 분별해야 합니다. 진리를 붙잡고 담대하여야 합니다.

 

 

以斯拉记 4:1-10  < 抵挡魔鬼 >

[以斯拉 4:1]  犹大和便雅悯的敌人听说被掳归回的人为耶和华以色列的神建造殿宇

○ 从俘虏之地归回的犹大人开始建筑圣殿。据说 “犹大和便雅悯的敌人” 听到了这个消息。这里的 “敌人” 指的是撒马利亚人。为什么不称他们 “以色列的敌人”,而称 “犹大和便雅悯的敌人” 呢? 这样表現的理由是 因为回归的人中绝大多数是属于犹大和便雅悯支派的人。○ 虽然北以色列的十个支派中也有人归回,但当北以色列被亚述灭亡时,他们已经丧失了耶和华的信仰,因此对回归之事上他们十分消极性的。但是南犹大的 “犹大和便雅悯支派”的人们呢? 大规模归回了,并参与了以色列圣殿的建造。他们即使在被俘之后,始终保持着对耶和华的信仰,而且坚定地相信神必 “带领他们重返应许之地”,心中充满着坚定的相信, 又盼望。

◎ 早期福音在韩国蓬勃发展的地区是北韓,特别是平安北道。当时南韓的教势比较弱一點。然而,解放后南韓北韓分裂,随着苏联共产主义进入北韓,所以大部分基督徒选择南韓下来了。这导致南韓的教会日益增多,神的真理充满南韓,最终使南韓成就了经济强国。相比之下,北韩主张“公平分配财富”并由国家管理控制经济,虽然起初看起来生活不错,但最终成为了世界上最贫穷的国家之一

○ 北以色列被亚述灭亡后,亚述王将原住民赶出,并把巴比伦等其他地区的人移民到那里。于是,这些人和留在当地的以色列人通婚、混血,由此形成的民族就是撒马利亚人

他们說 [4:2] “因为我们寻求你们的神与你们一样自从亚述王以撒哈顿带我们上这地以来我们常祭祀神”  请容我们与你们一同建造。

○ 但是说真相,撒马利亚人并不像以色列子民那样寻求真神。他们并非真心想要建造神的圣殿,而是有阻挠的目的。他们担心在波斯王居鲁士颁布敕令、犹太人重建耶路撒冷圣殿之后, 自己会在该地区失去主导权

○ 对此,以色列的领袖们果断拒绝说 “建造我们神的圣殿,与你们无干的事。”  遭拒绝后,他们便转而阻挠圣殿的建造,并向波斯的官员行贿赂进行了制裁。最终,犹太人停止了建造,对圣殿建筑的关注也逐渐淡化,转而只顾了增加个人财富、建造并修整自己的房屋。结果,耶路撒冷圣殿的重建工程竟然中断了整整16年。

就在这时,神差遣先知和当时有影响力的人物来鼓励犹大百姓。耶和华的话临到先知哈该。圣经《哈该书》的作者哈该,正是当年的先知

[哈该 1:4-6] 这殿仍然荒凉,你们自己还住天花板的房屋麽。现在万军之耶和华如此说,你们要省察自己的行为。你们撒的种多,收的却少。你们吃,却不得饱。喝,却不得足。穿衣服,却不得暖。得工钱的,将工钱装在破漏的囊中。

○ 我们要明白,人并不是只顾自己的财富和家园就能获得福分。许多人认为 “只要专注于我, 我家和我国的利益,靠我的力量就能变得富足。” 然而,富足与尊贵并非只靠个人的力量就能获得。那怎么办?我们当神的真理充满我的家与我国,并且我参与到令神喜悦的事情时,才能真正得着这一切。○ 神会惩罚那些掩耳不听神的话语、抵挡神,并且眼看着圣殿荒凉却放弃的国家。当欧洲因成为 “富强国家” 而变得骄傲、生活优渥时,他们开始远离礼拜神的事情,并以爱与和平的名义下接纳了穆斯林。然而,穆斯林那里并没有真理。结果,教堂建筑被变卖为舞厅或改建成剧院,如今的欧洲已陷入各种恐怖袭击的、无序与贫困之中,正在走向衰落 

○ 金致善牧师 曾经 亲手拆下自己家屋顶的瓦片去修理教堂的屋顶,并这样说 “神的殿在漏雨,我的家怎能完好呢?”

○ 共产主义与基督教是无法并存的关系。唯物主义思想否定神的存在, 灵魂存在,将一切都解释为物质的关系。在这种思想中,不可能存在对人的尊重。共产主义思想将基督教视为共产革命中的“毒素”。因此,在文化大革命时期,他们杀了许多基督徒,并拆毁了教堂。而如今在这个大韓民國,那些赞美共产主义的人即使在光化门公然称颂金日成,国家也不再抓捕他们了。○ “左派”思想呢. 趋向于社会主义。他们批判资本主义经济,并对比资本家和企业进行规制。在保护劳动者、弱势群体及少数群体权益的名义下,甚至支持同性恋。结果,社会陷入混乱, 在这个国家,许多企业和富人正在选择离开。

 

[以斯拉 5:2]  于是撒拉铁的儿子所罗巴伯,和约萨达的儿子耶书亚,都起来动手建造耶路撒冷神的殿,有神的先知在那里帮助他们。

工程再次启动后,当时比撒马利亚人更有权势的人—幼发拉底河西边的总督达乃、斯他波斯乃及其同僚都来到他们面前,威胁说:谁降旨命你们建造这殿修成这墙呢”(3)他们不仅这样威胁,还询问建造人的名字,并上书给波斯王大利乌。现在,只剩下大利乌王的判决了。在大利乌王时期,再次对“居鲁士敕令”展开了调查,大利乌王随后该如何判决?…

[以斯拉记 第6章] 大利乌王下旨道:“不要阻碍圣殿的建造,要从王室宝库中拨出经费资助他们。” 甚至还制定了严厉的处罚条例,“规定若有人违背此令,必从他房屋中拆出一根梁木,将他举起悬在其上”。

这是因为神在看顾犹大的长老们。犹大的长老们大有胆量,依靠神并冒着生命危险,勇敢地挺身而出阻挡仇敌,并监督建筑工程的进行。经上记着说,无论是撒马利亚人还是幼发拉底河西边的官员们,都无法阻挡这项工程。

[雅各书 4:7] 故此,你们要顺服神。务要抵挡魔鬼,魔鬼就必离开你们逃跑了。

我们绝不能畏惧撒旦魔鬼的诡计。要明辨真理,紧紧抓住真理,并保持刚强壮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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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0:14-24  <네 믿음을 보이라> 

초기 여호사밧 왕은 왕이 되어, 다윗의 길로 행하며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겼다 했습니다. 유다 땅 곳곳에 바알을 섬기는 "산당"을 제거하였고, 유다 각 성읍에 지도자, 레위인, 제사장들을 보내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여호사밧 왕 2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유대 땅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 통치 말기인 B.C. 853년경에 왕은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동맹을 맺고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합니다. 아합왕은 여호와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왕이었는데, 여호사밧이 아합왕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 전쟁에 참여한 것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이때 [19장]에 선지자 예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리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예후 선지가 이렇게 말하는 일이 쉬운 일일까요? 나라가 20여년을 태평하게 지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후선지가 하나님에게 받은 말씀입니다.

○ 본문[20장]은 요단강 동편 지역에 거주하던 모압 연합군의 남유다 침입으로 시작됩니다. [20:3]에 보면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여호사밧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길르앗 라못의 전투 이후에 여호사밧은 전쟁에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사람은 죄 많은 존재이고,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하는 자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해결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역대하 20:14]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 야하시엘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둠의 시대에, 국난의 때에 필요한 것은 길을 밝게 비추는 사람입니다. 야하시엘의 조상 아삽은 다윗 때, 3대 악사 중 하나로 레위인 찬양단을 지도하는 집안이 되어 대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조상 아삽처럼 신실하고 거룩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 앞에서 신실한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 한 나라의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 세례요한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서 나왔고, 보아스는 다윗의 후손으로 출애굽 당시 유다 지파의 두목 살몬과 믿음의 여인 라합의 소생입니다. ○ 아담 한 사람으로 해서 온 인류가 죄로 죽음당 하였고, 한 사람 예수님으로 해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 북한에 김일성과 같은 지도자는 교회를 문 닫게 하고, 인민을 노예와 죽음의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이승만과 같은 지도자가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귀한 믿음은 내가 갖고자 해서,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밭이란 부식토(腐叶土)가 긴 세월에 걸쳐 쌓여 만들어지는 것처럼, 좋은 믿음은 부모의 기도와 믿음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야하시엘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전하는 소임을 감당하게 하셨는데, 그리고 온 유다 사람들이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그를 따랐습니다. 모든 백성이 따랐다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이 야하시엘을 도우신 것입니다.

[역대하 20:15]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야하시엘에게 주신 말씀은 이번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수행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전쟁은 이미 그들의 손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갔는바, 저들과는 무관한 전쟁이 된 것입니다. 비록 모압, 암몬 연합군이 그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하나님이라는 완벽한 산성이 버티고 있으므로 두려워하거나 놀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역대하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우리는 야하시엘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남유다 백성들에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하시고 백성들에게는 "마주 내려가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하셨는데, 남유다 백성들은 안전하게 예루살렘 성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압 연합군은 그 수가 많아 여호사밧왕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은 왜 올라오는 모압, 암몬 연합군을 향해 "마주 내려가라" 하시는 것입니까?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입니까? 전쟁을 앞두고 찬양대가 앞서 나간다는 말입니까? 당장 사람의 눈에 보이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것은 그들이 순종하는지 믿음을 보기 원하셨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며, 그들의 믿음을 배가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과 남유다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이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분명 이전에는, 백성들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 원한다면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과연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진실로 믿음을 가졌는지 보기를 원하십니다.

[역대상 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 하나님의 자녀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여호사밧과 남유다 백성은 아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찬양대를 구성하여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초기 상해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19세기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꺼리던 중국 내륙 깊숙한 곳에 선교의 문을 열고자 했지만, 재정, 인력이 부족했고, 그를 지원하던 중국 복음 선교회(CES)의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그때 그는 중국 복음 선교회(CES)와 단절하고 '오직 믿음으로' 행하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결성한 것이 1865년, ‘내지 선교회(CIM)’입니다. 현재 OMF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해외 선교 동역회)입니다. 그러나 당시 ’내지 선교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허드슨 테일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  저희 부부가 2019년 중국에서 나와서 개척교회를 할 때는 교회당 예배장소가 없어 6개월은 하루 2만 원에 스터디카페 (Study Cafe)를 빌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때 친구선교사님의 소개로 만난 분이 지금의 이사장님 새문안교회 장로님입니다. 이분이 지금의 복지회를 인수하시고, 도울 사람을 찾는 중에 저희를 만났고 이곳에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지금까지 예배를 드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历代志下 20:14-24 《显明你的信心》

早年,约沙法王登基后,行大卫所行的道,一心事奉耶和华。他除掉了犹大地各处的事奉巴力的“邱坛”,又差派领袖、利未人、祭司到犹大各城教导百姓耶和华的律法。约沙法作王长达二十五年,犹大国境太平安宁。 然而,在约沙法王统治末期,大约公元前 853 年,王与北以色列的亚哈王结盟,并参加了基列·拉末之战。亚哈王是违背耶和华旨意的恶王,约沙法与他结盟并一同参与基列·拉末之战的行为,激怒了上帝。就在此时,在《历代志下》 第19章中,先知耶户传达了“神的震怒必临到你” 的预言。[第20章] 始于居住在约旦河东部地区的摩押联军对南犹大的入侵。[20:3]记载:“约沙法惧怕,定意向耶和华寻求,在犹大全地宣告禁食。” 约沙法心里非常惧怕。在基列·拉末之战后,约沙法尚未做好战争的准备。


  人是有罪的,是可羞愧的存在。然而,神绝不会离弃那些向祂寻求帮助和依靠祂的人。神是有怜悯的,是充满丰盛恩慈的上帝。而且,神是没有祂解决不了的事的。

[역대하 20:14] “ 那时,耶和华的灵在会中临到利未人亚萨的后裔玛探雅的玄孙,耶利的曾孙,比拿雅的孙子,撒迦利雅的儿子雅哈悉。 ”

雅哈悉听到了神的声音。在黑暗的时代,在国家危难的时刻,最需要的是能照亮道路的人。雅哈悉的祖先亚萨,是大卫时期三位首席乐师之一,是指导利未人唱诗班的家族,世世代代事奉神。 他就像他的祖先亚萨一样,在神面前是忠诚且圣洁的有信仰之人。由此可见,上帝总是藉着在祂面前忠心耿耿的人来成就祂的事工。

○ 一个国家的领袖由谁担任是至关重要的。一位领袖,可以拯救一个国家,也可以毁灭一个国家。○ 施洗约翰是撒迦利亚和伊利莎白所生。波阿斯是大卫的后裔,是出埃及时犹大支派的领袖撒门和有信心的女子喇合所生。○ 因着一人亚当,全人类被罪恶带来死亡。因着一人耶稣基督,全人类才得以开启救赎的道路。

○ 在北韩,像金日成那样的领袖关闭了教会,并将人民推入了奴役和死亡的境地。在大韩民国,像李承晚那样的领袖奠定了自由民主主义的基础。宝贵的信仰并非你想要拥有、愿意得到就能获得的。○ 正如一块肥沃的土壤是经过漫长岁月腐叶土堆积而成一样,美好的信仰也是通过父母的祷告和信仰的积累而形成的

神的灵降临在雅哈悉身上,使他能够明白并传达神的旨意。当他传达完神的话语之后,全犹大百姓都同心同德,跟随了他。

[역대하 20:15] “ 耶和华对你们如此说,不要因这大军恐惧惊惶。因为胜败不在乎你们,乃在乎神。” 

神藉着雅哈悉所说的话是:这场战争属于神。这是说,神将亲自执行这次争战。这场战争已经从他们的手中转移到了神的手中,因此,这场战争已经与他们无关了。尽管摩押、亚扪联军正朝他们安营扎寨,但他们有神这座完美的山寨作为依靠,因此毫无理由去恐惧或惊慌。

然而,我们对藉着雅哈悉传达的神的话语感到困惑。因为神告诉南犹大百姓不要惧怕,也不要惊惶,但祂却吩咐百姓要 “面对敌人而下”。既然这场战争是属于神的,南犹大百姓似乎应该安全地待在耶路撒冷城内。 神吩咐 “不要惧怕”的同时,又为何要百姓 “面对敌人而下” 正上来的摩押、亚扪联军呢?这在人看来,是多么鲁莽和危险的举动啊!难道说,在战争临近时,诗班要走在军队的最前面吗? 单凭人的肉眼来看,根本没有任何成功的可能性。 神这样吩咐的是想要看百姓是否顺服,显明他们的信心;同时也是为了让人知晓神是活着的,并让他们的信心得以加倍。约沙法和南犹大百姓在面临国家危机时,宣告禁食,并向神恳切地祈求。这种场面在以前的百姓中是很难见到的。 如果我们渴望尝到神的恩典,我们就必须显明我们的信心。我们应当祷告着向前迈进。神渴望看到祂的百姓是否真的依靠祂,是否拥有真实的信心。

[역대상 20:21] 约沙法既与民商议了,就设立歌唱的人,颂赞耶和华,使他们穿上圣洁的礼服,走在军前赞美耶和华说,当称谢耶和华,因他的慈爱永远长存。

当神的儿女顺服时,他们就会看到神的作为。约沙法王和南犹大百姓当时仅仅依靠神的应许向前迈进。他们相信神的应许,就组建了赞美队走在队伍前面。这是在人看来,是绝不可能的事情

◎   戴德生早期以上海为中心展开宣教活动。此后,他立志要在十九世纪西方传教士所避讳的中国内陆深处打开宣教之门。然而,他面临着财力和人力的短缺,并且遭到了当时支持他的中华传道会(CES)的反对。 那时,他经历过许多的挣扎 最终决定与中华传道会(CES)断绝关系,下定决心 “唯独凭着信心”行事。于是,他在1865年成立了 “内地宣教会(CIM)”。该组织现在被称为海外宣教团契 (OMF)。然而,当时的 “内地宣教会” 是一无所有的状态。

◎   我们夫妇于 2019 年从中国出来,开始建立教会时,没有固定的礼拜场所。有六个月的时间,我们一周一次花费两万元租用自习咖啡馆 (Study Cafe),四处辗转举行礼拜。当时也没有什么信徒。那时,我所认识的宣教士朋友介绍,我们见面了现任理事长 西门安教会(새문안교회)的长老。这位长老在重新开始了现在的福利会,正在寻找可以帮助的人,于是就认识了我们。他为我们提供了这个场所,我们才得以在此进行礼拜直到今日。这是神的引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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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상 29장 10-17  <주의 손에 있나이다>

[역대기상 29: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권능'이란 '힘'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즉, 이는 이스라엘과 열방의 통치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영광'이란 세상에서 ‘아름다움’, ‘화려함'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창조주의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함의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김'이라는 말은 종국적인 '승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엄'이라는 단어는 거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단어로서 창조물에서 느껴지는 위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타나는 위엄을 나타냅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이는 인간만이 아니고,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들, 바람과 태양과 파도, 인간의 역사까지도, 모든 것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에서 좁게는 ‘주권’은 ‘왕권’ 이스라엘의 왕의 통치권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비롯한 이 세상의 왕들을 세워 이스라엘과 열방 모든 이방 족속들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본 이스라엘의 운명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 세상에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두고 "미치려면 고이 미쳐라"를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말하면 “교회 다니더라도 너무 심하게 신앙생활 하지 마라.” “적당히 하라”는 말입니다. 要疯也别太过分 이죠.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계산하면서 믿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도우심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믿는다’라는 말 안에는 ‘내 생각을 내려놓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동쪽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처음에는 발목까지 차오르고 점점 물이 많아져서 무릎까지 차오르더니 창일하여 넘쳐서 헤엄칠 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이 넘쳐서 강으로 흘러 들어가니 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강가의 나무가 무성해져서 많은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는 약재료로 쓰이고 그 물이 더욱 넘쳐서 바다로 들어가니 소성함을 얻었다고 했다.

○ 사람에는 신앙의 수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발목 신앙입니다. 이는 신앙의 초보 단계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신앙생활 하는 단계입니다. 강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릎 신앙입니다.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다는 것은 깊은 물의 힘을 조금은 체험하는 단계입니다. 강물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언제든지 나오고자 하면 나오는 단계입니다. 셋째는, 허리 신앙입니다. 깊은 물에 잠기어 내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 아닌, 나를 내주어 겸손과 봉사의 신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자기 의지가 있어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넷째는, 온몸 신앙입니다. 온몸이 물에 잠기는 성령 충만의 단계라고 할 것입니다. 물이 머리까지 차오르면 내 발로 지탱해서 서 있지 못합니다. 물에 의지하여 떠 있어야 합니다. 물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가장 축복 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 원종수는 자신이 복 받은 것은 어머니 때문이라고 간증합니다. 어릴 때 원종수의 집은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거지, 시각 장애인, 할아버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밥을 차려 드리고 하룻밤을 주무시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이 먹을 밥마저 거지에게,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자신에게 할아버지를 목욕까지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라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서 정말 괴로웠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세계적인 석학이 되었고 유학생들을 위한 집회에 초청받았습니다. 강연을 앞두고 기도하는 중에 그에게 슬라이드처럼 무언가가 펼쳐지는데 그것은 어릴 적 할아버지를 돌봐드렸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게 나였다. 내가 얼마나 춥고 배고팠는지 몰라. 네가 나를 먹였기 때문에 네 먹는 것을 책임져주마. 네가 나를 입혀줬기 때문에 내가 너 입을 것을 책임져주마.” 했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바닷속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가 있었다.’ 말합니다. 축복과 은혜는 하나님에게서 임하는 것입니다.

그가 고등학생 때, 공부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고, 이것저것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도 그는 늘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을 한없이 좋아했습니다. 67년 초겨울의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비몽사몽 간에 분명하고 우렁찬 음성이 들려와 “종수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깜짝 놀라 멍한 가운데… 이 음성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을 생각하고 지혜를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에 그는 어린 마음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무엇인가 자신에게 신체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그의 학교성적은 동급생 480 명 중 350등 정도였습니다. 그는 매일 철야 예배에 새벽기도를 다녔고, 밴드부를 한답시고 시간을 빼앗겼고, 건강도 좋지 않아 병도 자주 걸렸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네가 성적이 이게 뭐니,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원종수는 하나님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때부터 학업에 매달렸습니다. 그 후로 그는 몇 개월 만에 전교 석차가 350등에서 5등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그는 길을 가며, 그가 읽은 성경 로마서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가 공부했던 책이며 노트필기가 고스란히 눈만 감으면 머리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했고,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 서울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에서 세계적은 암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 은혜의 깊은 강물에 들어가는 것은, 자원하여 자신을 드릴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억지로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원하는 심령’입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보고, 체면을 세우려 하지만 이는 다 무익하고 헛된 행동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마치면서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은혜’란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에게 준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14절]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다.” 

이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历代志上 29:10-17 〈都在耶和华手中〉

[역대기상 29:11] 耶和华阿,尊大,能力,荣耀,强胜,威严都是你的。凡天上地下的都是你的。国度也是你的,并且你为至高,为万有之首。

○  “权能” 意为 “力量” 和 “能力”。这是告白以色列和万国的统治权在于神。“荣耀” 在世上意味着 “美丽” 和 “华丽”,但在宗教语境中,这是表示超越一切受造物的、创造主那无法說明的奥秘和完全。 此外,“得胜”是指最终的“胜利” 属于耶和华神。最后,“威严” 一词几乎是专用于神的,这表示从受造萬物中感受到的威严,以及神临在时所显现的威严。 “天上地下所有的一切都是你的。”  这不仅指示人类,还是指天上和地上所包含的一切,风、太阳、海浪,甚至人类历史,所有的一切都归于耶和华。“主权也属于你” 在这 “主权” 狭义上說 “王权”,以色列君王的统治权,但在更广的意义上,說是作为万王之王的耶和华,他设立大卫王以及世上的君王。通过他们来治理以色列和列邦所有的外族。由此可见 大卫看以色列的命运唯独在于神

○  世上的人有时会对基督徒说:“要疯就好好地疯”,带有负面含义来说:“虽然信教,但信仰生活别太极端。” 也就是 “适可而止”的意思,正如 “要疯也别太过分”。但如果一个人在上神前, 带着这种计算的心态来信上帝,那他绝不会经历上帝的活泼, 同在和帮助。“相信” 一词内含着 “放下自己的想法” 的意义

 

  在《以西结书》第47章中记载 ,有水从圣殿的东门流出,一开始水深及脚踝,然后水势逐渐增大,漫到膝盖,最后涨溢成河,成了可以洑水的深水 水流溢出汇入江河,鱼就非常多,沿岸的树木也枝繁叶茂,结出许多果子,其叶子可作药材;这水继续漫溢流入大海,使海水得到医治(或苏醒)。 人有信仰的层次。首先是 “脚踝信仰”。这可以说是信仰的初级阶段。这一阶段,信徒虽然去教会,但仍以自我为中心思考、判断,不受圣灵的支配,自由自在地过信仰生活。就像在河水里自由进出一样。第二是 “膝盖信仰”。水漫到膝盖,意味着稍微体验到深水力量的阶段。是在河水中享受乐趣,但随时想出来就能出来的阶段。 第三是 “腰部信仰”。被深水淹没,不再是凭着自己的意志生活的人,而是将自己献出,以谦卑和服侍的态度进行信仰生活的人。然而,这个阶段仍带有自己的意志,会按照自己的想法生活。第四是 “全身信仰”。这可说是全身浸入水中的圣灵充满的阶段。水漫到头顶时,人就无法靠自己的双脚站立,必须依靠水漂浮,将自己完全交托给水。这样的人不再受自己支配,而是受圣灵支配而生活。因为上帝最了解我们,跟随上帝的生活才是最有福气的。

 

◎ 元钟洙见证说,他之所以蒙福,是因为他的母亲。元钟洙小时候家里非常贫穷 ,连饭都吃不饱。可是有一天,他的母亲把乞丐、盲人和一位老人带回家,给他们做了饭,让他们住了一晚。不仅如此,她甚至把原留给儿子吃的饭也给了乞丐和那位老人。她还让元钟洙给那位老人洗澡、换衣服。他当时无法理解母亲的做法,感到非常难受。 岁月流逝,他成为了一名世界级的学者,并被邀请参加为留学生举行的聚会。在演讲前祷告时,他眼前仿佛放映着幻灯片,显现出他小时候照料那位老人的情景。接着,他听到了主的声音。 “那是我。你不知道我当时有多冷多饿。因为你给我食物,所以我负责你吃的;因为你给我衣服穿,所以我负责你穿的。” 他说,他能进入恩典的海洋,是因为 “有母亲流泪的祷告”。我们必须知道是祝福和恩典都是从天上来的。 在他读高中时,正值学业繁忙、对各种事物都充满好奇的年纪,但他却始终喜爱祷告和阅读圣经。在67年初冬的一天,他在教会祷告时,半睡半醒中听到一个清晰洪亮的声音说:“钟洙啊,你想要什么?” 他大吃一惊,在恍惚之中,心想这个声音就是神。 当时家庭经济非常困难,他曾想向神祈求金钱,但想到所罗门求智慧的故事,便向神求了智慧。那时,他曾抱着一颗孩子的心,期待神的回应会给他带来一些身体上的变化,但结果一点也没有。那时,他的学校成绩在480名同级生中,大约是第350名 他每天参加彻夜祈祷和晨祷,还因加入乐队而浪费了时间,身体也不好,经常生病。有一天,班主任对他说:“你是单亲母亲的独生子,成绩怎么是这样?你打算怎么办?” 老师的这句话深深震撼了他,元钟洙意识到,神的儿女学习好才是荣耀神。从那时起,他便全身心投入到学业中。 此后,他在短短几个月内,全校排名从第350名跃升到第5名。那时他明白了,是神赐予了他智慧。当时,他在路上行走时,读过的《圣经·罗马书》清晰地呈现在眼前;他学习过的书本和笔记,只要闭上眼睛,就清晰地浮现在脑海里。他以全校第一名的成绩高中毕业,考入首尔醫科大學,并以优异的成绩从首尔医科大学毕业,最终在美国成为了一位世界级的癌症权威

○ 进入恩典的深河,是人甘愿献自己时才能得到的。这需要决心和勇气。领受神恩典的人会以喜乐的心将自己献给神。神不喜欢我们在他面前勉强行事。

在《哥林多后书》9章7节中说:“各人要随本心所酌定的,不要作难,不要勉强...” 神所要的是 “甘心乐意的内心”。人们通常在意别人的眼光,想保全自己的面子,但这都是无益且虚妄的行为。 凡是只顾及人的人,必然跌倒

大卫完成神圣殿的建造时,明白了一切都是 “恩典”。“恩典” 不是通过我的劳苦得来的。那是别人赐予我的。

大卫如此告白:

[14절] 我算什么,我的民算什么,竟能如此乐意奉献。因为万物都从你而来,我们把从你而得的献给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丰富尊荣都从你而来,你也治理万物。在你手里有大能大力,使人尊大强盛都出于你。

这件事实谁能知道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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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16-2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爱里没有惧怕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미국 하버드 대학 총장 이야기가 있습니다. 빛바랜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와 낡은 정장을 한 할아버지가 보스톤 역에 내려 하버드 대학의 총장실로 찾아갔습니다. 비서는 촌스러운 노인 부부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노부부는 비서에게 "총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말하였습니다. 비서는 외모를 보고 총장에게 묻지도 않고 대답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바쁘셔서 만날 수 없습니다.” 하자 노부부는 비서에게 “그럼 기다리죠.” 하고 긴 의자에 앉아 마냥 기다리는 것입니다. 비서는 노부부가 돌아가겠거니 하고, 자기 일만 하는데, 네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총장에게 이야기하니 총장은 “바쁜데…” 짜증을 내며 만나기로 했습니다. 연로하고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저희에겐 하버드에 1년을 다닌 아들이 하나 있었지요. 그 애는 하버드를 아주 사랑했어요. 그리고 아주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희는 캠퍼스 내에 그 애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총장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하버드를 다니다가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면 이곳은 공동묘지가 되겠죠." "그게 아닙니다. 총장님! 동상을 세우고 싶은 것이 아니예요. 건물 하나를 기증할까 해요." 총장은 낡은 옷을 입은 부부에게 비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건물이라고요. 건물 하나를 짓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 하버드의 건물을 모두 짓는데 750만 달러가 넘게 들었다고요!" 그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대학을 세울 수 있나 보죠? 그냥 우리가 하나 만들면 어때요?” 하면서 부인은 남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노신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갔습니다. 총장은 “미친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릴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딴 스탠포드 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 사람은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세대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 높아지려 힘쓰는 시대입니다. 좋은 자동차를 타면서, 명품 가방을 사고,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드러내려 합니다. 지금 시대는 존중받기를 바라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화내는 시대입니다. 이는 겸손의 마음가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알기 때문에 늘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며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지닌 사람입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여기서 ‘두려움’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환난과 고난으로 인한 두려움,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뜻합니다. 성령과 하나님의 내주하심, 임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라는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진리가 있습니다. ○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낸다 했습니다. 두려움(Fear)은 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본능입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또는 '얼어붙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다가오는 재난에 대란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실패하거나 타인으로부터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온전한 사랑’을 소유하였을 때,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얼마든지 내어주는 힘과 용기 결기가 있어서 두려움을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랑이 두려움의 감정을 덮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위기가 다가올 때, 사랑은 두려움보다 더 큰 동기 즉, 용기, 헌신, 관용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까닭은 위기의 때에 자신이 입을 손실에 중점을 두는 까닭입니다.

 

◎ 1912년 영국을 떠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영상으로 담은 20세기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타닉J 이라는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한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잭과 로즈는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던 도중 만나서,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들이 탔던 배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였습니다. 바다에 빠진 그들은 배의 잔해 한 조각을 의지해 구조대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잭은 차디찬 물속에서 로즈를 파편 조각 위로 올려,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그런데 물속에 있는 잭의 몸은 점점 굳어졌고,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힘까지 잃은 잭은 로즈에게 끝까지 살아남을 것을 부탁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단 며칠을 만난 사람일지라도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였기에 잭은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를 떠나사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통하여 갈릴리에서 유대 땅으로 갈 수 있었지만, 주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멀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오래된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했습니다. 물바가지가 없어 예수께서 길에서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아 계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정오입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갔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오니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하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대인 남자가 이방인 여자에게, 그것도 우물가에서 말을 거는 것은 사회적 풍속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게다가 이 여인은 이미 남편이 5명이나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이방 여인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 ‘이방인과 대화하면 안 된다.’ 율법을 생각했더라면 말을 걸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했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물을 마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여인의 ‘존귀한 한 생명’을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녀가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나를 존귀하게 생각하십니다.

○ 주님은 장차 제자가 된 마태의 집에 모든 이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집에 들어가 먹고 마셨습니다. 저는 저보다 더 돈 있고, 지식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 교회에 찾아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시에 ‘매국노’라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 ‘죄인’이라 멀리하는 마태를 찾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사람의 형체를 입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어 치욕적인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단번에라는 말은, 행동에는 어떤 주저함이나 아까움이 없이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6-2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爱里没有惧怕

◎ 有一个关于美国哈佛大学校长以貌取人的故事。一位穿着褪色条纹连衣裙的老奶奶和一位穿着旧西装的老爷爷,在波士顿火车站下车后,来到了哈佛大学的校长办公室。秘书看到这对土里土气的老夫妇,皱起了眉头。老夫妇对秘书说:“我们是来见校长的。” 秘书一看他们的外貌,没问校长就回答了:“校长很忙,不能见您们” 老夫妇听了,对秘书说:“那我们等吧” 于是坐在长凳上,漫无目的地等着。秘书以为老夫妇会自己回去,就只顾着做自己的事情,可他们足足等了四个小时。秘书没办法,只好跟校长报告,校长听了,不耐烦地说:“我这么忙……” 但最后还是决定接见他们。 年老且衣着朴素的老奶奶开口说道:“我们有一个儿子,他曾在哈佛读了一年。他非常热爱哈佛,在这里过得非常快乐。可是,他在一年前因为事故去世了。我们想在校园里为他建一座纪念物。” 校长毫不客气地说道:“老奶奶!我们不能为每一个在哈佛就读后去世的人都立一座雕像。那样的话,这里就变成公墓了。” “不是的,校长!我们不是想建雕像。我们想捐赠一栋教学楼。” 校长嘲笑着这对衣着破旧的夫妇,大声说道:“建楼?你们知道建一栋楼要花多少钱吗?这座哈佛所有的建筑加起来,总共花费了七百五十多万美元呢!” 老奶奶听了,看向老伴,说道:“亲爱的,这么少的钱就能建一所大学吗?不如我们自己建一个怎么样?” 妻子对丈夫说道。这位老先生点了点头,他们离开了。校长心想:“真是两个疯子。” 回到加州的利兰·斯坦福 (Leland Stanford) 夫妇,用儿子的名字创立了斯坦福大学。

 

人们应该具备尊重他人的姿态,现在是仅仅专注于如何提升和展示自己的时代,“他们开着好车,买着名牌包,努力显露自己的地位和身份。现在的时代人是渴望获得尊重,并因感觉自己没有被尊重而感到愤怒的时代。”  “我认为这不是一种谦逊的心态。谦逊的人,因为知道自己的不足,所以总是保持开放的心态和学习的态度。他们尊重对方,并采取放低自己的姿态。

[요일 4:18] 爱里没有惧怕。爱既完全,就把惧怕除去。因为惧怕理含着刑罚。惧怕的人在爱里未得完全。

此处的 “惧怕” 是指人对近在眼前的患难与苦难、以及对审判的恐惧和畏惧。深知圣灵、上帝的内住与临在的人,在上帝的审判之日能够拥有坦然无惧。然而,约翰所说的 “爱里没有惧怕” 这一句,包含着超越 “认识上帝的爱,因此不惧怕” 这层意义,而更进一步的真理。 ○ 经文说,完全的爱能把惧怕驱除。惧怕(Fear)是保护我们自己免受危险的生存本能。当人面临危险时,会表现出 “战斗”、“逃跑”或 “僵住”的反应来保护自己。人会惧怕即将到来的灾难。人也会惧怕在社会上失败或被他人拒绝。 然而,当一个人拥有了 “完全的爱”时,尽管面临所有这些危险,他也会拥有力量、勇气和决心,将自己完全地献出去,从而代替了惧怕。这不仅仅意味着爱能遮盖惧怕的感受。当危机来临时,爱会带来比惧怕更大的动机,即勇气、献身和宽容的心。人之所以惧怕,是因为在危机时刻,他们过于关注自己将要遭受的损失。

 

◎ 拍摄于 1912 年英国启航的豪华客轮泰坦尼克号沉没事件的电影 《泰坦尼克号》,堪称 20 世纪的杰作。影片中有一幕非常美丽的场景:主人公杰克(Jack)和露丝(Rose)在乘坐游轮旅行途中相遇,尽管身份悬殊,他们依然彼此相爱。 他们所乘坐的船与冰山相撞,最终沉没。落入海中的两人,依靠着一块船的残骸碎片,等待着救援人员的到来。此时,杰克将露丝抬上了这块碎片,让她的体温不至于下降,而他自己则留在了冰冷的海水中。然而,在水中的杰克的身体渐渐僵硬,脸上的血色也开始消退。 最终,耗尽最后一丝力气的杰克嘱咐露丝一定要活下去,随后沉入了水中。○ 这就是爱的力量。即使是仅仅相识数日的人,因为彼此真心相爱,杰克连牺牲生命都不惧怕。

《约翰福音》第4章中,耶稣和门徒离开犹太,前往加利利时,是经过了撒马利亚。从犹太前往加利利地时,犹太人本来可以避开撒马利亚,但主却特意选择了撒马利亚的道路。主没有憎恨这些人,也没有远离他们。 在路上,他们来到了撒马利亚的一座名叫叙加(Sychar)的村庄。经文说,这里有古老的雅各的井。因为没有打水的器具,耶稣就因行路疲倦,坐在井边。“那时约莫是午正(六点钟)”,门徒们则进村子买食物去了。 那时,一个撒马利亚的妇人来打水,耶稣就对她说:“请你给我水喝” 在当时,犹太人将撒马利亚人视为外邦人,是不与他们来往的。特别是犹太男人向外邦女人搭话,而且是在井边,是违背社会习俗的行为。更何况,耶稣还知道这个妇人已经有过五个丈夫,而且被村里人排斥和孤立。 如果耶稣心中想着“不能和外邦女人说话”、“不能和外邦人交谈” 的律法,那么他就不会开口与她说话了。后来,门徒们回来后,“就诧异耶稣和妇人说话” 感到奇怪。主的关注点不在于喝水。主所想的是这位妇人 “尊贵的一条生命”。主渴望她能够得到救恩。像这样,主也看重我,将我视为尊贵。

○ 主将来在马太成为门徒的家里,不顾所有人的指指点点,进入了他的家,与他一同吃喝。我可能会觉得,如果那些比我更有钱、更有知识、更有地位的人能来到我们的教会,那该多好啊。然而,主寻找并呼召的,却是当时被指责为 “卖国贼”、被众人当作 “罪人” 而远离的马太。○ 先爱我们的上帝,为了拯救人类,自愿取了人的形体,以奴仆的样式来到世上。为了拯救我们,他将自己献出,被钉在了屈辱的十字架上。

[히브리서 10:10] 我们凭这旨意,靠耶稣基督只一次献上他的身体,就得以成圣。

“一次性地”(단번에)这个词,意味着他的行动是没有丝毫犹豫和吝惜地将自己献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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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9:6-20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앗수르의 왕 사르곤 2세가 기원전 722년에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 산헤립의 1차 남유다 침공은 B.C. 701년의 일입니다. 오늘 [열왕기하 18]에 앗수르왕 산헤립의 유다 2차 침공은 B,C 699에 있었습니다. 이는 남유다의 계속된 반 앗수르 정책이 그 원인이라고 여겨집니다.

○ 앗수르는 역사상 잔학하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앗수르인들이 섬겼던 신은 전쟁과 사랑의 신 이쉬타르(성경에서 아스다롯, 아세라)입니다. 그들은 일월성신을 신으로 받들고, 앗수르 왕은 신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자로 자신들의 종교를 유다에 강요하였습니다. 1차 침공 때에 히스기야는 물질 조공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16]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자 산헤립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주는데 여호와의 전과 왕궁에 보관하고 있던 은을 다 주었고, 심지어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줌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매우 비굴하게 대처하였음을 봅니다. ○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1차 침공에 비굴한 자세를 취함으로 위기는 모면하였으나 2년 만에 또다시 2차 침공의 위기를 부른 것입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의 금, 은, 보화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 사단은 우리가 세상과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면 평화가 주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짐승의 세력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완전히 삼키고, 복속시켜 노예로 만들기까지 절대로 중단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우상숭배 하게 하고 결국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열왕기하 18:21-25]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이런 랍사게의 능욕이 있자… 신하들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랍사게의 이 말을 전합니다.

[열왕기하 19: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의 신복들을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열왕기하 19: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20]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 하나님은 곤란 중에 있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 열왕기하 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지금도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십팔만 오천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죽었는지 모릅니다. ○ 히스기야가 1차 침공을 당했을 때도, 2차 침공을 당했을 때처럼 믿음으로 대처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고 다시금 환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혹자는 앗수르의 1차 침공 때 히스기야가 조공으로 화를 면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이는 믿음이 없는 약한 자의 변명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지키십니다. 이는 산헤립의 제2차 침공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911사건 이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전쟁을 하였고 사망한 미군 병력의 수는 약 2,448명이 죽었습니다. 미국이 전쟁에 패배하고 떠나자 아프가키스탄의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는 돈을 싸 들고 도망하였고,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또 러시아는 3일 만에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것을 기대하고 침공했지만 젤렌스키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을 천명할 때, 국민은 하나 되고, 온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도와 지원하므로 러시아는 지금 국가적인 재난에 처했습니다.

[역대하 20:15]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이스라엘은 1948년 5월에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의해 조국을 떠난 이래 처음으로 맞이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 아마 대한민국의 국민이 전 세계로 흩어지고 100년이 지난다면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조국을 잊고, 다시 찾을 가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이는 이스라엘이 멸망 이후에 회복할 것은 바울 사도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는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주 후 70년 이스라엘의 멸망과 흩어짐을 예언하시고,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예루살렘의 회복이 있을 것을 말한 것입니다.)

○ 처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고자 했을 때, 그 땅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이었고 그 지역의 이슬람인들은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유대인 대표들에게 식민지인 우간다를 권고했을 때도 유대인은 한마디로 "유대민족이 국가를 세울 땅은 오직 유대 땅뿐이다." 하며 거절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고난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있어 그 땅을 회복한 것입니다.

 

列王纪下 19章 6-20节  <上到耶和华的殿>

亚述王 萨尔贡二世 在公元前 722年 攻陷了撒马利亚,灭亡了北以色列。此外,西拿基立 对南犹大的第一次入侵 发生在公元前 701年。今天,《列王纪下 18 章》中记载的亚述王西拿基立对犹大的第二次入侵 发生在公元前 699年。这被认为是由于南犹大持续的反亚述政策所致。

亚述在历史上是以残暴著称的国家。亚述人所侍奉的神是战争与爱情之神伊什塔尔 (Yīshítǎ'ěr),在圣经中被称为亚斯他录 或亚舍拉。他们尊奉日月星辰为神,亚述王则以神之代理人的身份进行统治,并将其宗教强加给犹大。在第一次入侵时,希西家通过进贡财物解决了问题。

[열왕기하 18:16]  犹大王希西家将耶和华殿门上的金子和他自己包在柱上的金子都刮下来给了亚述王

当西拿基立 (Xīnàjīlì) 攻取了犹大所有坚固的城邑后,希西家就向西拿基立进贡了三百他连得银子和三十他连得金子。他为此献上了耶和华殿和王宫府库中所有积存的银子,甚至剥下(bō xià)了圣殿门扇和门柱上包着的金子,这才得以脱离危机。从中可见,希西家的处理方式是非常屈辱 (qūrǔ)的。 希西家 在亚述第一次入侵时采取了屈辱(qūrǔ)的态度,虽然暂时避免了危机,但仅仅两年后,就又招来了第二次入侵的危机。亚述王西拿基立(Xīnàjīlì)并没有满足于希西家王进贡的金银财宝。 撒但似乎会因为我们对世界采取妥协的态度而许诺和平,但事实并非如此。受邪恶之灵支配的 “兽”的势力绝不会停止,直到将神的儿女 完全吞噬(tūnshì),使其臣服 沦为奴隶为止。撒但让人崇拜偶像,最终会夺走 那个人的一切。

 

[열왕기하 18:21-25] 看哪你所倚靠的埃及是那压伤的苇杖人若靠这杖就必刺透他的手埃及王法老向一切倚靠他的人也是这样你们若对我说我们倚靠耶和华我们的神希西家 岂不是将神的邱坛和祭坛废去且对犹大和耶路撒冷的人说你们当在耶路撒冷这坛前敬拜麽现在你把当头给我主亚述王我给你二千匹马看你这一面骑马的人够不够若不然怎能打败我主臣仆中最小的军长呢你竟倚靠埃及的战车马兵麽现在我上来攻击毁灭这地岂没有耶和华的意思麽耶和华吩咐我说你上去攻击毁灭这地吧

“我劝你,现在就与我主亚述王打赌吧!你若能出骑马的人,我就给你两千匹马。你怎能抵挡我主臣仆中最微小的军长呢?你竟仰赖埃及的战车和骑兵!我这次上来攻击 毁灭这地,岂是没有耶和华的指示吗?耶和华曾对我说:‘你上去攻击毁灭这地吧!’” 拉伯沙基(Lābóshāgī)说出这样羞辱的话后,希西家的臣仆们便撕裂衣服,将拉伯沙基的这番话禀告 (bǐnggào) 给了希西家 )。

[열왕기하 19:1] 就撕裂衣服披上麻布进了耶和华的殿

希西家 在神面前祷告之后,便差遣他的臣仆们去见以赛亚。

[열왕기하 19:6] 以赛亚对他们说要这样对你们的主人说耶和华如此说你听见亚述王的仆人亵渎我的话不要惧怕

[20] 以赛亚派人去见希西家,说:“以色列的神耶和华如此说:‘你向我祷告 攻击亚述王西拿基立(Xīnàjīlì) 的事,我已听见了。” [21] “耶和华论到亚述王如此说:‘处女锡安的女儿藐视(miǎoshì)你,嗤笑(chīxiào)你;耶路撒冷的女儿向你摇头。你辱骂谁?亵渎谁?又向谁扬声,高举眼目呢?乃是向以色列的圣者!”

神垂听了在困境中的百姓的祷告。这是赐给以赛亚的话:[28] “因你向我发怒,又因你狂傲的话达到我耳中,我就要用钩子(gōuzi)穿你的鼻孔,把嚼环 (jiáohuán) 放在你口中,使你从你来的路转回去。” [34] “因我为自己和我仆人 大卫的缘故,必保护这城,拯救这城。”

[35] 当夜耶和华的使者出去在亚述营中杀了十八万五千人清早有人起来一看都是死尸了

直到今天,世上的历史学家们仍不知道十八万五千的军队是如何在一夜之间死亡的。

试想,如果希西家 在遭遇第一次入侵时,能像面对第二次入侵时那样,以信心来应对,结果又会如何呢?他当然会在神的帮助下取得胜利,并且不会再次遭受患难 。 或许有人会说,希西家在亚述的第一次入侵时,是靠进贡免除了灾祸,但这只是没有信心的软弱者的辩解 (biànjiě)。神会保护祂自己的儿女。这一点从西拿基立(Xīnàjīlì) 的第二次入侵时,神所施行的保护就可以得知。

  911事件之后美军在阿富汗进行了长达二十年的战争阵亡的美军士兵人数约为 2,448在美国战败撤离 (zhànbài chèlí) 之后阿富汗总统阿什拉夫·加尼(Āshénlāfū Jiāní)卷款 (juǎn kuǎn)逃离阿富汗落入 了塔利班(Tǎlìbān) 的控制之下此外,俄罗斯当初期望乌克兰(Wūkèlán) 在三天内投降 而发动了入侵,但当泽连斯基 (Zéliánsījī) 宣布准备以死抗争 时,国民团结一心,全世界也纷纷伸出援手支持乌克兰。

因此,俄罗斯目前正面临 国家性的灾难。

 

◎ 以色列于1948年5月 重获独立。这是两千年前 犹太人因罗马帝国而被迫离开祖国 以来,首次迎来的惊人事件。○ 也许,如果大韩民国的国民流散到全世界各地,经过 100年之后,他们可能会失去自己的语言,忘记自己的祖国,并且再无希望能够复国了。

[罗马书 11:25-26] 弟兄们,我不愿意你们不知道这奥秘,恐怕你们自以为聪明。就是以色列人有几分是硬心的,等到外邦人的数目添满了,于是以色列全家都要得救。如经上所记:‘必有拯救者从锡安出来,要消除雅各家的一切不敬虔。’

这是 以色列在灭亡之后 将会复兴的事,是使徒保罗预言过的。

[누가복음 21:24] 他们要倒在刀下又被掳到各国去耶路撒冷要被外邦人践踏直到外邦人的日期满了

(这是主耶稣的预言。祂预言了主后70年 以色列的灭亡和流散,并提到外邦人的日期满了之后,耶路撒冷将会复兴)。

当初犹太人首次想要回归巴勒斯坦 (Bālèsītǎn)地区时,那片土地寸草不生,而且当地的穆斯林 强烈反对。当英国政府建议犹太人代表以殖民地 乌干达(Wūgàndá) 作为建国地点时,犹太人一口回绝,说:“犹太民族建立国家的土地唯有犹大地!” 犹太人是凭借着他们的苦难历史 和上帝的救赎应许,才得以恢复了那片土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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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8-17  <평강을 위하여>

여러분은 마음의 평강과 생활 속에 기쁨 중에 무엇이 귀하다고 생각하나요?

○ '평안'이나 '평화'와도 통하는 개념입니다. '평강(平康)'은 한자 그대로 '평평할 평(平)', '편안할 강(康)'을 사용하여 걱정이나 탈이 없이 무사히 잘 지내는 상태, 염려나 외적인 갈등, 분쟁이 없는, 내적으로 고요한 안정된 상태입니다. 이런 점에서 평안은 지속적인 것이며, 마음 내적인 성품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기쁨은 무엇일까요? 기쁨은 ‘외적인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슬픔의 반대 감정으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무언가를 성취함에서 오는 즐거운 마음입니다. 성취함으로 얻어진다는 점에서 외적인 요인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할 것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평강을 원하고, 또 순간순간의 기쁨, 이 두 가지를 다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기쁜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살다보면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늘 평강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저는 이웃 중에 작은 일에도 자주 불평하고 짜증 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게 다 그 습관이다” 짜증이 습관이 된 사람입니다. ○ 많은 사람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존재로 자라지 못합니다. 인간은 상처 입은 존재입니다. 상처 많은 존재입니다. 외적 환경을 사람이 스스로 개선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어찌 가난하고 부한 나라에서 태어나기를 스스로 선택하겠습니까? 사람이 어찌 좋은 가정, 좋은 부모 아래서 보호받고 자라기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 제가 보기에는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 고생만 하시다 가셨구나 지금 살아계신 95세의 아버지는 일생 참 어려울 때를 지나셨구나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이 풍파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제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 세상을 보면 참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인 보장이 없는 세상입니다. 전쟁과 기후 이변으로 인한 재난의 소식이 그치지 않습니다. 경제, 정치의 혼란, 질병의 만연. 다가올 미래의 상황은 결코 더 낫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사람이 마음의 평강을 이룰 수 있을까요? 지금 아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 한 사람만 생각하고 잊으면 될 것 같습니다. 나만의 평강을 구하면 평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부모 형제와 이웃이 있습니다.

○ 성경은 평강을 ‘샬롬’(שלום)이라 말합니다. 샬롬은 이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전하고 풍요로우며 평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전하고 풍요로운 평화, 살롬을 얻으려 고군분투(孤軍奮鬪)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모든 것이 완전하고 풍요로운 평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 결국, 우리가 구하는 평강, 진정한 샬롬은 외적인 환경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누리는, 내적 평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평강입니다. 진정한 평강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아래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또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16:4,6]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 감사한 것은 ‘내게는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님 아버지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평강은 환경이 좋고, 당장 기쁨이 넘치는 일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나를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열왕기하 6:8-17]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이는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 드는 자가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엘리사 선지가 말합니다.

[열왕기하 6:16,17]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큰 가뭄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하지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좋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 주일의 동기입니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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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4-14  <지혜를 구하는 자>   

◯ 제가 대만에 있을 때 대북교회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국민당을 따라 대륙에서 대만으로 들어와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 과부로 많은 재산을 모은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감히 돈을 쓰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여자아이를 入養해서 이제는 장성하였는데 집을 나가서,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늘 돈 떨어지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말 듣지 않고 양어머니를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어느 날 집사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었습니까?

◯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저는 1980년대에 집이 가난하여 고등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데 아무도 저를 지도할 사람도 없었고, 영양실조에 걸리고, 친구들은 떠나가고, 수학 영어 이런 과목을 어찌 공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평일에 아무도 없는 교회당을 찾아, 빈 교회당에서 기도하는데 눈물만 흘리다가 하나님에게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마음에는 지식을 구하고 싶었지만, 성경에 지혜를 구하라는 말은 많지만 지식을 구하라는 말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 지식을 구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었냐구요? 예, 하나님을 알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식은 내가 배우거나 경험하여 얻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일종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지혜는 누구나 부족합니다.

◎ 예루살렘 교회에서 7 집사를 세울 때, 스데반 외 일곱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 요셉은 단순한 사람이었으나 요셉이 애굽 땅에서 지낼 때 바로 왕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칭찬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성공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풍부한 지식, 다양한 지식을 구하지만, 행복을 얻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이 지식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 지혜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지혜는 나면서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므로 구해야 합니다. 지혜는 구하므로 얻는 것입니다.

[12: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5] 너희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넘치도록 주시리라

◯ 솔로몬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까? 바로 구하므로 얻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 일천 번제는 예배와 기도입니다.

◯ 오늘날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솔로몬과 같이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왜 지혜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⓵ 구하지 않는 이유는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될 대로 되어라.” 자포자기한 사람이거나 ⓶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고 제힘을 의지하고, 남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입니다. ◯ 자신의 부족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위대하심을 아는 사람이 축복 된 사람입니다.

[왕상 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출입도 제대로 못 하는 '작은 아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모든 면에서 위대한 다윗 왕과 비교하면 왕위를 감당하기에 한없이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스스로 왕이 되기에는 아주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 그러나 솔로몬은 겸손의 사람,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밧세바라는 불륜으로 맺어진 여인을 통해 얻은 다윗의 열 번째 아들입니다. 정상적으로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부왕 다윗은 솔로몬을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후계자로 정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솔로몬은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충성된 사람,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상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째를 드렸더니

◯ 솔로몬을 지혜롭게 만든 것은 일천 번제입니다. ‘일천 번제를 드린다.’ 이는 같은 수고를 일천 번 드려야 하는 엄청난 일입니다. ‘일천 번제’란 단어에는 믿음과 정성, 진심과 인내가 들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한두 번 하다가 집어치우는 끈기 없는 사람이 아니고, 지속적인 인내와 결단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믿음을 보여드렸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소망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도 하다가 그만두면 더 충성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 예배, 전도, 봉사, 충성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날까지 지속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3. 솔로몬은 섬기는 사람으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왕성 3:8-9]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위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 솔로몬은 이기적이고 자신만의 행복을 구한 사람이 아니고,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자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하느님의 뜻에 맞았고 기뻐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에 기뻐하신 하느님이 그에게 그가 구한 지혜는 물론, 장수와 부귀영화의 복까지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강한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 인류가 구한 첫 번째 지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 지혜를 얻으면 자신에게 최선의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구한 지혜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얻어낸 지혜는,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치감을 느끼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만들어 입어야 했고, 부끄러움으로 숨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지혜는 인간의 탐욕을 채우는, 파멸로 이끄는 세상의 지혜였습니다. 참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참 지혜는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맡길 때 그분이 이루는 것입니다.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列王记上  3:4-14  <지혜를 구하는 자> 

我在台湾的时候,曾在台北教会。那里有一位执事,她跟着国民党从大陆来到台湾,很早就失去了丈夫,守寡妇一生,积攒了很多财产。但她却不敢花钱过日子。这位执事收养了一个女孩(入养),现在她已经长大成人,但离家出走,音讯全无,只有没钱的时候才回家。她不听话,也没有照顾她的养母。可是,有一天,这位执事因为心肌梗塞(心脏病发作)去世了。请问,财产归谁所有了呢?

◯  有一个愚昧的财主,田产丰盛;自己心里思量说:‘我的出产没有地方收藏,怎么办呢?’ 又说:‘我要这样办:拆了我的仓房,另盖更大的,把我一切的粮食和财物都收藏在那里。’ 的灵魂说:‘灵魂哪,你积存了许多财物,够用多年的了,只管安安逸逸地吃喝快乐吧!’

[路加福音  12:20] 神却对他说无知的人哪今夜必要你的灵魂你所豫备的要归谁呢

◯   我在 80 年代,因为家里贫穷而从高中退学了。我在自习读书室里学习,但是没有人可以指导我,我营养不良得了病,朋友们也都离开了我,我不知道该如何学习数学、英语这类科目.  我在平日里寻找**空无一人的教堂,在空荡荡的教堂里祷告,泪流不止,向神祈求智慧。我心里其实想求**知识,但因为圣经里多处提到要祈求智慧,却很少提及祈求知识。 为了自己的成功而祈求**知识,让我感到羞愧。那么,我得到智慧了吗?是的,我得到了认识神、分辨**是非的智慧。直到现在,神都一直**在引导我。

◯   人必须拥有**智慧。知识是我通过学习或经验所获得的。而智慧则是一种能够正确地领悟**事物的道理或状况,并明智地加以应对的能力。它是一种‘生存的艺术’。每个人的智慧都有所不足。

◎ 耶路撒冷教会在选立 七位执事的时候,除了司提反,其他七位执事也都是被圣灵充满、大有智慧的人 ◎ 约瑟本是一个单纯的人,但当约瑟在埃及地时,法老王却称赞说:“神既将这事都指示你,那么,像你这样有聪明有智慧的人,再没有了。”这完全是因为**神与他同在。 在这个世上,人们为了获得成功而追求**丰富的知识、各种各样的知识,但是得到幸福的却是有智慧的人。人**单凭知识是无法获得幸福的。◯ 智慧是属于神的。智慧并非是人生来就拥有的,所以必须**祈求。智慧是通过祈求**而获得的。

[约伯记  12:13] 在神有智慧和能力他有谋略和知识

[雅各书  1:5] 你们中间若有缺少智慧的应当求那厚赐与众人也不斥责人的神主就必赐给他

所罗门是历史上**空前绝后的,最有智慧的人。所罗门是如何成为**这样有智慧的人呢?正是通过祈求而获得的。所罗门通过献一千燔祭,得到了**神的祝福。用今天的话来说,这一千燔祭就相当于**敬拜和祷告.  如今,羡慕所罗门的荣华富贵的人很多。羡慕所罗门的智慧的人也很多。然而,真正像所罗门那样去祈求智慧的人却不多。为什么大多数人不去祈求智慧呢?

1. 自暴自弃(자포자기) 不祈求的第一个原因是:“我生来**就是这样的,听天由命吧。” 这种自暴自弃的人。

2. 骄傲自大 (교만) 第二个原因是骄傲。这种人自认为**有智慧,只依靠**自己的力量,不需要别人的帮助。 ◯ 认识到自己的不足就是一种祝福。认识神的真实存在,并知道祂的伟大的人,是蒙福的人。

[列王记上  3:7]  耶和华我的神阿如今你使仆人接续我父亲大卫作王但我是幼童不知道应当怎样出入

所罗门称自己为“不能出入的小孩子”。他承认与各方面都很伟大的大卫王相比,自己担当这个王位远远不够。所罗门非常清楚地**知道自己远远**没有资格成为君王。

1. 然而,所罗门是一个谦卑的人,一个懂得感恩的人。所罗门是大卫与拔示巴 不伦关系所生的第十个儿子。按常理来说,他没有资格**继承王位。但是,他的父亲**大卫王却定意**立他为以色列这个统一王国的继承人,并把一切都传给了他。这是神的恩典。

2. 所罗门在登上王位时,是一个忠诚的人,一个有忍耐力的人。

[列王记上  3:4]  所罗门王上基遍去献祭因为在那里有极大的邱坛他在那坛上献一千牺牲作燔祭

使所罗门变得有智慧的,是一千燔祭。“献一千燔祭”是一件巨大的事情,这意味着**重复一千次的劳苦和付出。“一千燔祭” 这个词语蕴含着信心、虔诚 、真心和忍耐。 所罗门不是做了一两次就放弃的没有毅力的人,而是通过持续的忍耐和决心,向神展现了自己的信心。真正的信心和盼望是不会改变的。忠诚也不能**半途而废,否则就不算是忠诚了。我们的祷告、敬拜、传道、服事和忠诚,都是**要持续地行,直到蒙神悦纳的那一天。

3. 所罗门是以**仆人的身份,祈求能够审判**主的百姓的智慧。

[列王记上  3:8-9] 仆人住在你所拣选的民中这民多得不可胜数所以求你赐我智慧可以判断你的民能辨别是非不然谁能判断这众多的民呢

所罗门不是一个自私、只求**个人幸福的人,他祈求智慧是为了好好治理百姓。这个祷告合乎神的心意,神因此而感到喜悦。因所罗门的祷告**而感到喜悦的神,不仅赐给了他所祈求的智慧,还加添了长寿和**荣华富贵的福分。因此,他建立了一个强大的以色列**国家。

◯ 人类最早追求的智慧,是能**知善恶的智慧。他们认为,得到这种智慧会给自己带来最大的幸福。亚当和夏娃**所求的智慧,是为了自我满足。最终,亚当和夏娃吃了善恶树的果子后所得到的智慧,只是让他们发现了自己**赤身露体,并感到羞耻。他们为了遮盖羞耻,必须用无花果树叶编织裙子,并因羞愧而躲藏起来。他们所拥有的智慧是满足人类贪婪、导向**毁灭的世俗的智慧。真智慧是神的智慧。

◯  真智慧是当我们完全地相信并交托给天父时,由祂成就的事。

[哥林多前书  1:25]  因神的愚拙总比人智慧神的软弱总比人强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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