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16-2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爱里没有惧怕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미국 하버드 대학 총장 이야기가 있습니다. 빛바랜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와 낡은 정장을 한 할아버지가 보스톤 역에 내려 하버드 대학의 총장실로 찾아갔습니다. 비서는 촌스러운 노인 부부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노부부는 비서에게 "총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말하였습니다. 비서는 외모를 보고 총장에게 묻지도 않고 대답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바쁘셔서 만날 수 없습니다.” 하자 노부부는 비서에게 “그럼 기다리죠.” 하고 긴 의자에 앉아 마냥 기다리는 것입니다. 비서는 노부부가 돌아가겠거니 하고, 자기 일만 하는데, 네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총장에게 이야기하니 총장은 “바쁜데…” 짜증을 내며 만나기로 했습니다. 연로하고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저희에겐 하버드에 1년을 다닌 아들이 하나 있었지요. 그 애는 하버드를 아주 사랑했어요. 그리고 아주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희는 캠퍼스 내에 그 애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총장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하버드를 다니다가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면 이곳은 공동묘지가 되겠죠." "그게 아닙니다. 총장님! 동상을 세우고 싶은 것이 아니예요. 건물 하나를 기증할까 해요." 총장은 낡은 옷을 입은 부부에게 비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건물이라고요. 건물 하나를 짓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 하버드의 건물을 모두 짓는데 750만 달러가 넘게 들었다고요!" 그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대학을 세울 수 있나 보죠? 그냥 우리가 하나 만들면 어때요?” 하면서 부인은 남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노신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갔습니다. 총장은 “미친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릴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딴 스탠포드 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 사람은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세대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 높아지려 힘쓰는 시대입니다. 좋은 자동차를 타면서, 명품 가방을 사고,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드러내려 합니다. 지금 시대는 존중받기를 바라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화내는 시대입니다. 이는 겸손의 마음가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알기 때문에 늘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며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지닌 사람입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여기서 ‘두려움’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환난과 고난으로 인한 두려움,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뜻합니다. 성령과 하나님의 내주하심, 임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라는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진리가 있습니다. ○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낸다 했습니다. 두려움(Fear)은 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본능입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또는 '얼어붙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다가오는 재난에 대란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실패하거나 타인으로부터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온전한 사랑’을 소유하였을 때,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얼마든지 내어주는 힘과 용기 결기가 있어서 두려움을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랑이 두려움의 감정을 덮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위기가 다가올 때, 사랑은 두려움보다 더 큰 동기 즉, 용기, 헌신, 관용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까닭은 위기의 때에 자신이 입을 손실에 중점을 두는 까닭입니다.

 

◎ 1912년 영국을 떠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영상으로 담은 20세기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타닉J 이라는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한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잭과 로즈는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던 도중 만나서,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들이 탔던 배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였습니다. 바다에 빠진 그들은 배의 잔해 한 조각을 의지해 구조대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잭은 차디찬 물속에서 로즈를 파편 조각 위로 올려,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그런데 물속에 있는 잭의 몸은 점점 굳어졌고,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힘까지 잃은 잭은 로즈에게 끝까지 살아남을 것을 부탁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단 며칠을 만난 사람일지라도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였기에 잭은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를 떠나사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통하여 갈릴리에서 유대 땅으로 갈 수 있었지만, 주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멀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오래된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했습니다. 물바가지가 없어 예수께서 길에서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아 계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정오입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갔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오니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하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대인 남자가 이방인 여자에게, 그것도 우물가에서 말을 거는 것은 사회적 풍속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게다가 이 여인은 이미 남편이 5명이나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이방 여인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 ‘이방인과 대화하면 안 된다.’ 율법을 생각했더라면 말을 걸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했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물을 마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여인의 ‘존귀한 한 생명’을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녀가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나를 존귀하게 생각하십니다.

○ 주님은 장차 제자가 된 마태의 집에 모든 이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집에 들어가 먹고 마셨습니다. 저는 저보다 더 돈 있고, 지식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 교회에 찾아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시에 ‘매국노’라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 ‘죄인’이라 멀리하는 마태를 찾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사람의 형체를 입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어 치욕적인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단번에라는 말은, 행동에는 어떤 주저함이나 아까움이 없이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6-2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爱里没有惧怕

◎ 有一个关于美国哈佛大学校长以貌取人的故事。一位穿着褪色条纹连衣裙的老奶奶和一位穿着旧西装的老爷爷,在波士顿火车站下车后,来到了哈佛大学的校长办公室。秘书看到这对土里土气的老夫妇,皱起了眉头。老夫妇对秘书说:“我们是来见校长的。” 秘书一看他们的外貌,没问校长就回答了:“校长很忙,不能见您们” 老夫妇听了,对秘书说:“那我们等吧” 于是坐在长凳上,漫无目的地等着。秘书以为老夫妇会自己回去,就只顾着做自己的事情,可他们足足等了四个小时。秘书没办法,只好跟校长报告,校长听了,不耐烦地说:“我这么忙……” 但最后还是决定接见他们。 年老且衣着朴素的老奶奶开口说道:“我们有一个儿子,他曾在哈佛读了一年。他非常热爱哈佛,在这里过得非常快乐。可是,他在一年前因为事故去世了。我们想在校园里为他建一座纪念物。” 校长毫不客气地说道:“老奶奶!我们不能为每一个在哈佛就读后去世的人都立一座雕像。那样的话,这里就变成公墓了。” “不是的,校长!我们不是想建雕像。我们想捐赠一栋教学楼。” 校长嘲笑着这对衣着破旧的夫妇,大声说道:“建楼?你们知道建一栋楼要花多少钱吗?这座哈佛所有的建筑加起来,总共花费了七百五十多万美元呢!” 老奶奶听了,看向老伴,说道:“亲爱的,这么少的钱就能建一所大学吗?不如我们自己建一个怎么样?” 妻子对丈夫说道。这位老先生点了点头,他们离开了。校长心想:“真是两个疯子。” 回到加州的利兰·斯坦福 (Leland Stanford) 夫妇,用儿子的名字创立了斯坦福大学。

 

人们应该具备尊重他人的姿态,现在是仅仅专注于如何提升和展示自己的时代,“他们开着好车,买着名牌包,努力显露自己的地位和身份。现在的时代人是渴望获得尊重,并因感觉自己没有被尊重而感到愤怒的时代。”  “我认为这不是一种谦逊的心态。谦逊的人,因为知道自己的不足,所以总是保持开放的心态和学习的态度。他们尊重对方,并采取放低自己的姿态。

[요일 4:18] 爱里没有惧怕。爱既完全,就把惧怕除去。因为惧怕理含着刑罚。惧怕的人在爱里未得完全。

此处的 “惧怕” 是指人对近在眼前的患难与苦难、以及对审判的恐惧和畏惧。深知圣灵、上帝的内住与临在的人,在上帝的审判之日能够拥有坦然无惧。然而,约翰所说的 “爱里没有惧怕” 这一句,包含着超越 “认识上帝的爱,因此不惧怕” 这层意义,而更进一步的真理。 ○ 经文说,完全的爱能把惧怕驱除。惧怕(Fear)是保护我们自己免受危险的生存本能。当人面临危险时,会表现出 “战斗”、“逃跑”或 “僵住”的反应来保护自己。人会惧怕即将到来的灾难。人也会惧怕在社会上失败或被他人拒绝。 然而,当一个人拥有了 “完全的爱”时,尽管面临所有这些危险,他也会拥有力量、勇气和决心,将自己完全地献出去,从而代替了惧怕。这不仅仅意味着爱能遮盖惧怕的感受。当危机来临时,爱会带来比惧怕更大的动机,即勇气、献身和宽容的心。人之所以惧怕,是因为在危机时刻,他们过于关注自己将要遭受的损失。

 

◎ 拍摄于 1912 年英国启航的豪华客轮泰坦尼克号沉没事件的电影 《泰坦尼克号》,堪称 20 世纪的杰作。影片中有一幕非常美丽的场景:主人公杰克(Jack)和露丝(Rose)在乘坐游轮旅行途中相遇,尽管身份悬殊,他们依然彼此相爱。 他们所乘坐的船与冰山相撞,最终沉没。落入海中的两人,依靠着一块船的残骸碎片,等待着救援人员的到来。此时,杰克将露丝抬上了这块碎片,让她的体温不至于下降,而他自己则留在了冰冷的海水中。然而,在水中的杰克的身体渐渐僵硬,脸上的血色也开始消退。 最终,耗尽最后一丝力气的杰克嘱咐露丝一定要活下去,随后沉入了水中。○ 这就是爱的力量。即使是仅仅相识数日的人,因为彼此真心相爱,杰克连牺牲生命都不惧怕。

《约翰福音》第4章中,耶稣和门徒离开犹太,前往加利利时,是经过了撒马利亚。从犹太前往加利利地时,犹太人本来可以避开撒马利亚,但主却特意选择了撒马利亚的道路。主没有憎恨这些人,也没有远离他们。 在路上,他们来到了撒马利亚的一座名叫叙加(Sychar)的村庄。经文说,这里有古老的雅各的井。因为没有打水的器具,耶稣就因行路疲倦,坐在井边。“那时约莫是午正(六点钟)”,门徒们则进村子买食物去了。 那时,一个撒马利亚的妇人来打水,耶稣就对她说:“请你给我水喝” 在当时,犹太人将撒马利亚人视为外邦人,是不与他们来往的。特别是犹太男人向外邦女人搭话,而且是在井边,是违背社会习俗的行为。更何况,耶稣还知道这个妇人已经有过五个丈夫,而且被村里人排斥和孤立。 如果耶稣心中想着“不能和外邦女人说话”、“不能和外邦人交谈” 的律法,那么他就不会开口与她说话了。后来,门徒们回来后,“就诧异耶稣和妇人说话” 感到奇怪。主的关注点不在于喝水。主所想的是这位妇人 “尊贵的一条生命”。主渴望她能够得到救恩。像这样,主也看重我,将我视为尊贵。

○ 主将来在马太成为门徒的家里,不顾所有人的指指点点,进入了他的家,与他一同吃喝。我可能会觉得,如果那些比我更有钱、更有知识、更有地位的人能来到我们的教会,那该多好啊。然而,主寻找并呼召的,却是当时被指责为 “卖国贼”、被众人当作 “罪人” 而远离的马太。○ 先爱我们的上帝,为了拯救人类,自愿取了人的形体,以奴仆的样式来到世上。为了拯救我们,他将自己献出,被钉在了屈辱的十字架上。

[히브리서 10:10] 我们凭这旨意,靠耶稣基督只一次献上他的身体,就得以成圣。

“一次性地”(단번에)这个词,意味着他的行动是没有丝毫犹豫和吝惜地将自己献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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