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3:4-13  <지혜를 구하는 자>    2013. 12. 29

옛날 한 마을에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많은 종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종이 바보였습니다. 하는 짓도 어수룩하고, 말도 어눌하고, 그리고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서 다른 종들에게 놀림도 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마음 착한 주인은 보다 못해 그 종을 불러 막대기 하나를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보다 더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보이면 이 막대기를 주어라" 주인 생각에 이렇게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자신을 돌아보면 바보짓을 좀 덜할까 생각했던 것이죠. 긴 세월이 흐른 뒤에 부자는 그만 큰 병을 얻고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자를 찾아와 위로와 격려를 하는데, 그 바보 종도 주인 곁으로 왔습니다. 주인이 그 바보 종을 향해 말합니다. "내가 좀 먼 길을 갈 것 같다." 주인의 말에 종이 묻습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하루 정도면 다시 돌아오십니까?" "아니다, 하루보다 더 오래 걸린다." 종이 다시 묻습니다. "일주일이면 돌아오십니까? 아님 한 달, 아님 일 년?" 그러자 주인이 대답합니다.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아마 다시 너를 영영 보지 못할 것이다. " 종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정말 먼 길을 떠나시는군요. 그럼 주인님 길 떠날 준비는 해놓으셨나요?" 그러자 주인은 길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질 못했다." 그러자 바보 종이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인님 그렇게 먼 길을 떠나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셨다니요? 주인님처럼 바보 같은 사람은 처음 봅니다. 아무래도 이 바보 지팡이는 주인님이 가지셔야겠네요."

 

◯ 장성택이 졸지에 처형되어진 것 ◯ 박광철 駐스웨덴 북한대사 부부가 27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서 건장한 두 사람의 호송을 받으며 고려항공 JS152편으로 귀국했습니다. 불쌍한 인간이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어리석은 인간이라 생각했습니다.

◯ 지식은 내가 배우고 얻는 경험이나 교육입니다. ◯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일종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지혜는 누구나 부족합니다. 나면서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구해야 한다.

출31:6]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 스데반 외 일곱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 요셉은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나 애굽 땅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 [눅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3. 지혜는 구하여야 얻는다.

[욥 12: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약1:5] 너희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넘치도록 주시리라

[단 1: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느부갓네살 왕의 말도 되지 않는 “내가 꾼 꿈을 내게 알리고 해석하라.” 왕의 억지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단 공무원 다니엘을 단번에 높여 나라의 모든 지혜자들 가운데 최고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바로 그가 구하므로 얻은 것입니다.

● 솔로몬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이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까? 바로 구하므로 얻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 일천번제가 예배와 기도입니다. ◯ 오늘날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솔로몬이 드렸던 예배를 부러워하거나 솔로몬이 드렸던 기도를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지혜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1. 먼저 솔로몬은 겸손의 사람,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밧세바라는 불륜으로 맺어진 여인을 통해 얻은 다윗의 열 번째 아들입니다. 정상적으로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부왕 다윗은 솔로몬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후계자로 정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줍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은혜일 수밖에 없다. ◯ 자신의 부족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왕상 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출입도 제대로 못하는 '작은 아이'라고 합니다. 그가 모든 면에서 위대한 다윗 왕과 비교하면 왕위를 감당하기에 한없이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기에는 아주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될 대로 되어라 ⓵ 자포자기한 사람이거나 ⓶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제 힘으로 하고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포자기와 교만, 이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고 믿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의 자기표현 방식은 오직 기도뿐입니다.

[잠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 28: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 솔로몬은 지속적인 인내와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상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다시 한 번 일천번제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솔로몬을 지혜롭게 만든 것은 일천번제입니다.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이는 수십 일을 쉼 없이 드려야 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일천 번제"란 단어에는 ◯ 정성과 믿음 헌신과 인내가 들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한 두 번 하다가 집어치우는 끈기 없는 사람이 아니고, 지속적인 인내와 결단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믿음을 보여드렸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소망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부도 계속하면 충성이 되지만 충성도 하다가 그만 두면 아부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 예배, 전도, 봉사, 충성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피 흘리며 나가 싸우는데 먼 산에 불구경 하듯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3. 섬기는 사람으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왕상 3:8-9]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이고 이기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이타적인 섬김의 지혜입니다. 그가 구한 지혜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장수하는 것도 구하지 않았고 부자가 되는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남을 위한 기도였고 수고와 희생이었습니다. 지혜가 남을 위한 섬길 때에 하나님은 더 크고, 놀랍고, 많은 지혜를 쏟아 부어 주십니다.

① 아담이 구한 지혜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

인류가 구한 첫 번째 지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 지혜를 얻으면 자신에게 최선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얻어낸 지혜는,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치감을 느끼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만들어 입어야 했고, 부끄러움으로 숨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지혜는 무익하고, 파멸로 이끄는 세상의 지혜였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가 아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지혜와 지식을 구한 것입니다.

②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자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뜻에 맞았고 기뻐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에 감격하신 하느님은, 그에게 그가 구한 지혜는 물론, ◯ 장수와 부귀영화의 복까지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강한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유혹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으로 그의 지혜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세속 인간의 지혜입니다.

③ 참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참 지혜는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맡길 때 그 분이 이루는 것입니다.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0-21]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눅 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 우리 주 예수님은 기꺼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대속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참 지혜는 주님 앞에 나의 유익도 만족도 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기만을 바라며 주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 성탄절에 어린아이는 산타를 기다립니다. 실상 산타가 좋아서 산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세상을 구원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 좋습니다. 나를 위하여 구하는 것도 세상을 위하여 구하는 것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딤전 1:12-20 <은혜와 긍휼을 입은 자>             2013. 12. 22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초대 교회를 멸하고자 했던 핍박자였습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충성되이 여김을 받았다. 말합니다. 그의 무엇이 하나님에게 충성되이 여김을 받았다는 말일까요? ◯ 그가 사도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안디옥에서 전도자로 세움을 받고 배 타고 이방으로 출발하면서 부터였습니다. ◯ 그가 뭇사람의 사도로 인정받기 전에 어떤 공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 [갈라디아서]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거듭나고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 일을 유할 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가 다메섹의 성문 앞에서 주님을 본 후에 사도들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만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도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주목받지 못했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고, 산헤드린의 공회원이고, 가말리엘의 문하로서 상당한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 이전에 알던 권세를 가진 어떤 사람도 찾지 않았고, 이전의 지위에 대하여도 조금도 미련이 없었습니다. ◯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고 난 후, 바로 전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3년을 지내고 그 이후에도 안디옥으로 돌아와 그 교회에서 10년 이상 바나바의 부름에 따라 묵묵히 교사로 봉사하였습니다. ◯ 이 기간의 삶이 하나님에게‘충성되이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태동하고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 교사로 작은 일에 충성하여 살았습니다.


◎ 중국에 젊고 유능한 자매가 있습니다. 자신은 대안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매에게는 시간이 부족하였고 교회의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자신의 학교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좋은 학교, 더 많은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싶은 충동이 있어 저에게 문의를 하였습니다. ◯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는 교회를 떠나 자신이 경영하는 학교 중심으로 ◯단독 예배도 드리고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고 싶다. 괜찮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일언지하에 반대했습니다. ◯ 그녀가 기독교 학교 사역을 하고 싶다는 것은 교장으로써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나의 공로를 나타낼 만 하였습니다. 반면에 교회의 일은 이름이 나지 않고 많은 반대와 의견 조율이 필요한 곳입니다.

제가 반대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 당신의 학교가 큰 선교기관이 되어 많은 사람을 배출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어디를 가든 그것으로 당신의 명함을 내지 마라. ◯당신은 교회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되어 이름 없는 봉사자가 되어라. 그리고 당신이 어디를 가든 “나는 어느 교회에 속한 사람입니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자매는 저의 말을 받아들여 이름 없는 봉사자가 되어 교회에서 가장 작은 자로 돕는 자가 되어 지금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 없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 [빛이고 소금이] 되기를 힘쓰고, ◯ 선을 행하고 봉사하는데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빛이고 소금이 아닌 모든 행위는 위선일 뿐입니다. ◯ 자신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자신이 빛이고 소금이 될 때 자동적으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요 ◯ 주인은 그 빛을 등경 위에 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되이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충성되이 여김은 ⓵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작은 일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충성되이 여김은 ⓶ 변함없이 수고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 때문에 그 열심이 부침하는 사람은 충성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딤전 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

◯ 19절에 충성되지 못한 사람의 예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의하면 에베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종착지로서 복음이 왕성하였던 곳입니다. 그 곳에서 3년 사역을 하였는데 그 막바지에 때에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 기독교를 반대하는 소요가 온 성에 크게 일어났습니다. 무리들은 연극장으로 몰려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외치기를 2 시간이나 계속했다 했는데 ◯ 그 자리에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고발하여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알렉산더]입니다. 이 사람은 처음에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열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종국에는 기독교를 떠났고 에베소의 연극장에서 소요가 있을 때 기독교를 비난하는 증인으로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왜 알렉산더는 기독교를 배교하고 떠난 것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그는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구한 사람입니다. ◯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중단하고, 약해지고,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뜻, 내가 생각하는 응답, 내가 생각하는 축복,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실망하고 분해하는 것입니다.

[삼하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왜 다윗은 점점 흥왕하여 간 것입니까?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교회는 이름 없이 충성하는 사람이 있어 평안하고 강성하여지는 것입니다.

[딤전 1:15-16]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사도 바울은 먼저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합니다. 립서비스인가? 좀 심한 표현으로 들려집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긍휼을 입은 자> 라고 말합니다.

● 사도 바울은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왕족인 베냐민 지파였으며, 가말리아 문하에서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대해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행 9:1) 유대 뿐 아니라 인근 다른 나라까지 가서 기독교회의 뿌리 뽑으려 하였습니다. 스데반을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일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 그는 매우 강한 어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갈 1:9]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2차 전도여행에서는 [행15]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칠고 고집스럽고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과 부딪쳤고 그를 공격하는 대적자들이 많았습니다.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고후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사뭇 다른 어조를 보게 됩니다. [디모데 전후서]를 우리는 로마 감옥에서 사도바울 말년의 편지로 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13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리고 [15절]에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 ‘긍휼을 입은 자’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말년에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딛후4:11]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는 마가 요한을 찾고 있습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신 까닭”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한 신앙에 이르기까지 일절 오래 참으시는 주이십니다.

제가 중국에 갈 때는 그래도 대만에서 1년간 열심히 언어연수를 하였고 졸업하자마자 아내는 도시를 좋아하고 결혼하면 서울로 전근 신청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는 중국의 대다수 인민이 농민이므로 농민, 농촌을 경험하기 위하여 농촌으로 갔습니다. 그 때 저의 신대원 동기들은 모두 도시에 남아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중국 땅을 밟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준비된 선교사이므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중국에 이르러 발견한 것은 저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언어중국에 대한 이해, 선교를 위한 모든 계획 이 모든 것을 중국에서 새롭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전에 경험하고 배운 제자 훈련교재도 새로 중국어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10여년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좋은 학생도 변변하게 있지도 않고, 제자도 하나 양육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하나도 없었지만 수많은 위기 속에서 어려운 때마다 보호해 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중국에서의 삶은 제 입에 늘 떠나지 않는 말이 ‘은혜로 산다.’였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우리는 모두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려 힘쓰고, 부끄럼 없는 신자가 되고자 힘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쓰시기에 한참 자격이 미달되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돈과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실로 우리 중에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였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게으름뱅이들입니다. ◯ 우리는 자주 우리의 입으로 정의와 진리를 말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고, 살아간다 말하지만 여전히 불의하고 불의에 방관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 우리는 경건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경건한 양 포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실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왜 제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왜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저는 그저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군이 되기에 충분히 완전하고,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은 죄인 괴수인 자신을 택하여 거룩한 직임을 맡기신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 게다가 그 직임을 잘 수행하도록 [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라고 말하고 있는데 주님이 사도 바울에게 주신 ‘능’을 무엇일까요?

◯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말하기를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바울도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제사 드리려 하자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그를 능하게 하신‘능’이라고 하는 것은 병 고치는‘능’도 아니고 귀신을 쫓는‘능’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는데 그것을 혹자는 [안질]이라고 하고 혹자는 [간질]이라고도 말합니다. (고후 11:6)에서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 편지을 보면 그는 말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말하는‘능’이란 주님이 그와 함께 하여 도우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어느 한 사람의 달란트나 노력, 특별한 프로젝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없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충성되이 여김]을 받은 자를 쓰실 것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살전 5:16-18 <신앙인의 삶>

◯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 첫 번째 답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즉, 그리스도인으로의 소명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목숨 명(命)’이란 한자를 쓰는데, 그 의미는 왕의 부르심에 ‘명’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입니다. 왜 전도를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사명으로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그러나 이 일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그 분의 삶의 자취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욕심과 욕망을 다 버리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나를 버린다. 나의 욕망을 포기한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산다. 참 어려운 요구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도우심을 알지 못한다면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하십니다.

1.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때로는 비오는 날도 있고 때로는 폭우도 만납니다. 우리네 삶이 순탄한 길만 계속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이세상의 삶이란 조금만 수입이 좋아지면 하하 웃다가, 조금만 일이 풀려지지 않으면 오만상이 찌그러지는 삶, 무의미한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항상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웃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것들은 잠시잠간 후에 다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살후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렵다 할지라도 ⓵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있습니다. ⓶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지금 어떤 고난의 순간에도 나를 버려두시지 않겠다 말하십니다.

 

● 주 안에 거하므로 기뻐하십시오. ◯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세요. 위로부터의 도우심을 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 아내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고, 남편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고, 세상환경이 나를 돕지 않는 것 같더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주님이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나의 필요를 아십니다. ◯ 내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우리의 눈과 귀는 항상 예수님께 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만 바라 봐야 합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계 21:2-3]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 거한다 함은 장막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장막 안에 있을 때 참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안에 거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육의 장막이 우리의 육체와 가정이라고 한다면 이 땅에서 영의 장막은 교회입니다.  주를 믿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주님과 결혼하여 사는 것입니다. 영적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가 자기 마음대로 자기를 주장하여 살 수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죽도록 사랑해야 하고 아내도 남편을 죽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의 마음은 항상 아내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마음은 항상 남편에게 있어야 합니다. ◯ 거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고 힘을 주고 인도하도록 하기 위하여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의 양식도 하루 배 터져라 먹고 일주일 굶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주 안에서의 쉼이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사람은 운전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사람 사람이 만나서 대화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가 있을까요? 여기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의미는 기도생활을 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는 사람은 그것을 그치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일마다 때마다 묵상하며 기도하며 마음이 항상 주님을 향해 있으라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일마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감사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⓵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⓶ 이 땅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 부흥사 고원룡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백령도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선편이 좋지 않아서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배는 작은데 탈 사람이 정원보다 배나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승선하려다가 아수라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경찰들이 나서서 곤봉을 가지고 타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 목사님도 늦게 갔기 때문에 끌려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다에 가방을 든 채 풍덩 빠지게 되었습니다. 부흥회 인도차 가던 목사가 바다에 빠졌으니 말이 아닙니다. 경찰관은 물에 빠진 목사님을 건져서 여인숙을 소개해 주고 다른 배를 기다리도록 주선하여 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날 밤 내의는 벗어 불에 말리고, 양복은 세탁소에 맡기고, 신발은 부뚜막 위에 올려놓고 고생스러운 밤을 보내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세요?" "경찰관입니다." 문을 열어보니 아침에 자기를 물에 빠뜨린 자였습니다. "이 밤에 왜 왔소?" "목사님 제게 원망하지 마십시오." "원망 안 하게 되었소!" 그때 경찰관이 말하기를 "목사님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왜 감사를 못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경찰관은 예수 믿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당신이 나를 배에 태워주었더라면 오늘 저녁부터 부흥회를 인도할 수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감사하란 말이요?" 그때 경찰관은 "목사님 그 배 못 타신 것 감사하십시오. 그 배가 해주 앞 바다에서 파선되어 침몰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이 바다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고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를 물속에 빠지도록 하여 그 배를 타지 못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구나'하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은 늘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 유치원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면서 물었습니다. “어른이 선물이나 먹을 것을 주시면 뭐라고 하면서 받아야 하지요? 다섯 글자로 대답해 보세요.” 그러자 한 아이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뭘 이런 걸 다” 부모들이 하는 말을 배운 것입니다. 감사하다는 말보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뭐 이런 걸 다 ! ” 감사하다는 말에 익숙치 않은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습관이 배어있지 않으면 잘 안됩니다. 맛있는 식사를 배부르게 먹고 나서도 “아유~ 너무 먹어서 배불러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 좋으면 그냥 좋으면 되지 왜 “좋아 죽겠다.” 하는지? 


◯ 많이 가지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있어도 감사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불평, 불만으로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 은혜를 모르는 사람만큼이나 답답한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에 인간은 감사하는 마음에 반응보다 불평, 불만의 마음에 더 잘 반응합니다.

◯ 모든 불평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 불평하는 사람의 생각에 분명 뭔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 불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그럴 듯하기도 합니다. ◯ 그러나 불평은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 불평의 말을 자주하게 되면 이 불평불만은 그 안에 독성이 있어서 우리의 육신과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고 감사를 잊게 하고 기쁨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 불평의 말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불평하고 원망할 일을 더 많이 주시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 감사할 일을 더욱 주십니다. ◯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기도를 더 잘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4]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이 나오려거든 돌이키십시오.


영국의 문학가 [아이잭 월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사람의 심령이다.” ◯ 사람이 얼마나 감사하며 사느냐가 그 사람의 행복한 척도입니다. 감사의 지수가 곧 행복의 지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면 범사에 감사하여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 하나님이 나의 마음에 거하시면 나의 마음은 천국이 됩니다. 사람이 내게 어찌하겠습니까? ◯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 1494년 이태리의 한 영주가 이른 새벽에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원 한 구석에 뭔가 인기척이 있었습니다. 둘러보니까 한 젊은 정원사가 나무로 만들어진 화분에 열심히 조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이런 일을 한다고 누가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이른 새벽부터 왜 조각을 하는 건가?” “저는 이 정원을 아주 사랑합니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저의 직무이므로 보수와 상관없이 저는 기쁘게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영주는 그 청년의 대답에 감동을 받았고, 그의 소원인 미술 공부를 후원해 주었습니다. 후에 청년은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의 최고의 미술가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미켈란젤로(1475∼1564)입니다.


감사를 아는 마음을 가지면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감동이 메마르고 감사가 메마른 시대입니다. 감사가 없으니 감동이 없습니다. 감동이 없으니 인생이 삭막해집니다. 오아시스 인생이 되기 위한 지름길은 감사를 심는 것입니다. 감사를 심으면 인생사막길이 오아시스로 변화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삼상 6:1-12]  <돌아오신 하나님>   2013. 12. 8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던 시기입니다.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산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어렸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하였는데 이스라엘이 패하여 죽은 사람이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했습니다.

◯ 백성은 광야 길에서 언약궤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광야의 길을 행하는 동안 내내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들의 노정에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습니다.


[민 10:33-36]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강물이 끊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도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장섰습니다. ◯ 여호와의 언약궤가 함께 하는 곳에는 항상 승리가 따랐습니다. 그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전멸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 이때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들어오자 이스라엘 군사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환영하는데 땅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마음이 붕~ 떠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제 게임은 끝났다! 우리는 분명히 이긴다!" 그들에게는 큰 믿음과 소망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블레셋 군사들은 언약궤가 들어왔다는 말에 크게 낙심했습니다. ◯ 애굽인을 친 신이 진에 이르렀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독려하여‘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블레셋은 더욱 분발하여 싸웠고 결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싸웠으나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전쟁에서 참패하였습니다. ◯ 전에는 4천 명이 죽었으나 이번에는 삼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고 ◯ 홉니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 이 소식을 들은 엘리제사장도 놀라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 또한 이 모든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하여 아들을 낳으며 죽었는데 그 이름을‘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 했습니다. 차라리 언약궤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 10: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 궤 하나를 만들라.

●언약궤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돌판으로 된 십계명을 보관하기 위하여 만든 나무 궤입니다. 나중에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함께 담아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계명을 지키고 따르면 함께하겠다. 임재의 상징입니다.


▶ 왜 늘 언약궤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까? 

 언약궤에는 원래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있는가? 에 대한 성찰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수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 하나님 동행과 임재가 없는 언약궤는 단지 나무궤짝에 불과한 것입니다.

◯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니고, ◯ 자신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 앞에서는 외면과 명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했습니다. 

●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 그런데 이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소에서 강간과 도둑질을 행한 사람들입니다. ◯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언약궤가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때문에 승리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의 은혜는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고 그의 계명과 뜻을 행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찾지는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만족과 축복의 도구로써 하나님을 찾는 것 이것을 우리는 [기복주의 신앙]이라 말 합니다.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포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포장만 가진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5:1∼5]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이겼고 언약궤까지 빼앗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강하고, 자신의 신은 이스라엘의 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 속에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의 다곤 곁에 두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으로 잔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가보니 다곤이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아있는 것입니다. ◯다곤의 제사장들은 우연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세웠습니다. ◯다음날 다시 가보니, 다시 엎드러져 있었고, 이번에는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멀리 문지방에 가있고 몸둥이만 남아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곤의 제사장들은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 했습니다.

[5:6∼12]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언약궤를 가드로 옮기로 했습니다. 가드 사람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겁쟁이들 무슨 헛소리인가? 이번에는 가드에 더 큰 환난을 내려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시니 그들이 궤를 에그론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에그론 사람들은 재앙을 두려워하여, 블레셋 방백들의 회의를 거쳐 다시 원래의 곳으로 보내려 합니다.


●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이 살펴보아야 하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그 언약궤가 아무런 효험도 없었고, 하나님은 언약궤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알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숭배 하는 이방민족들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효험이 없다고 버린 언약궤 블레셋의 땅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아픔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살아있는 능력을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계명도 모르고 약속도 없는 이방인에게는 이 상징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이 언약궤가 이방 땅에서 놀라운 힘과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 상징물과 여전히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이 언약궤는‘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으셨습니다. 자신의 백성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삼상 6: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 있은지 7개월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잊혀져가는 물건에 불과하였습니다. 언약궤가 왜 그리 아무도 찾지 않는 천한 존재가 된 것입니까? 최근에 ◯이소룡을 상징하는 노란색 운동복이 1억 원에 팔렸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수의(壽衣)가 진짜라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금도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기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틴과의 알력은 그치지 않는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가 지금 있다면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아마 전 세계에 쟁탈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상징물을 아무도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을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여 여호와의 궤를 그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돌려보내되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두렵고 강한 신> 앞에 분노를 샀다고 생각하여 용서를 구하는 제사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독종의 형상 다섯 개와 땅을 해롭게 하는 쥐 모양 다섯 개를 금으로 만들어 언약궤와 함께 보내기로 합니다. 다섯 개를 만든 것은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블레셋 다섯 도시의 수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신께 영화를 돌리면 그가 혹 그 손을 너희와 너희 신들과 너희 땅에서 경하게 하실까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 언약궤를 돌려보내면서 그들은 이 재앙이 과연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일어난 것인지 최종적인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새 수레를 구했습니다. 거기에 언약궤를 싣고,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 수레를 메었습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이는 참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멍에를 처음 메는 소들은 그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날 뛸 것입니다. 게다가 어미 소는 젖 먹는 송아지를 떼놓고 떠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복술가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 정말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지 점검하고 싶었습니다.

젖 나는 소 둘에 메어 벧세메스를 향하는 길로 보닙니다. 그런데 암소가벧세메스 대로를 가는데 바로 행하여 갔다. 그리고 ⓶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그리고 ⓷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며 확인했습니다.


● 벧세메스 사람들이 밀을 베다가 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⓸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를 패어 땔나무를 하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그 두 마리 소는 제물이 되기 위하여 벧세메스를 향하여 곧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달려온 것입니다. 벧세메스의 사람들은 그 소를 번제물로 삼고 그 소가 스스로 지고 온 수레의 나무를 찍어 번제로 하나님 앞에 제사로 드립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제물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알지도 못할 때에 주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었습니다.

● 이스라엘에 소망이 없는 중에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준비하였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이 없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자신을 알기를 바라고 자신의 참 백성이 되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었을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신다. 하셨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불평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 지구가 날마다 변함없이 돌고 있듯이 하나님은 여전히 끊임없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시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에베소서 6:18-20    <기도는 특권>        2013. 12. 1

○ 기도는 특권입니다. 기도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부담감을 주고, 짐으로 생각하기 쉽고, 의무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입니다. ○ 청와대의 대통령을 아무 때나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대단한 특권으로 여길 텐데, 우리가 아무 때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드릴 수 있고 무엇이든 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 기도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마태복음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우리를 협력자로 쓰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목사나, 선교사나, 그 외의 사역자들과 더불어 그들의 복음사역에 동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영혼과 육신이 굶주린 수백수천만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고, 병원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의 이마에 손을 얹을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 채드윅」 "사단은 기도 외에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단의 중요한 관심은 성도들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단은 기도 없는 공부, 기도 없는 사역, 기도 없는 신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롱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사단은 두려워 떤다."


우리가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하는 삶, 축복된 삶을 얻고자 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사단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갖출 것을 말하는데 싸우는 두 가지 무기를 말했는데  [엡 6: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기도 없는 말씀은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주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 어떠한 새로운 진리도 우리를 새롭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라했습니다.


1.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삼하 7:28-29]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인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세상의 청춘남녀가 악한 세상에서 가정파탄과 병으로 재산다툼으로 부정과 불법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 요즈음 가정이 말이 아닙니다. 결혼 못하는 자녀, 고학력에도 취직을 못하는 자녀,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녀,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고, 가출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기도하므로 우리의 가정에 질서와 평강이 찾아올 것입니다.   


삼하7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왕이 되었고 자신의 왕궁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성전 건축은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의 마음을 가상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축복을 주셔서 형통케 하시고 번창 하게 하시고, 대대 자자손손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북이스라엘은 수많은 왕조가 바뀌었지만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까지 다윗의 왕조를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여러분은 자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부모입니까?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하는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기도의 축복을 받은 자녀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머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위대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2. 사업(직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역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는 축복을 받기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 그것이 땅을 위한 기도, 재물을 위한 기도였다면 육체적인 탐욕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 야베스는 왜 자기 땅을 넓혀 달라 했을까요? 많은 땅을 가지고도 욕심을 냈을까요? 그는 땅 자체를 탐하여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에게 약속된 땅을 제대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기도했다고 봅니다. ○ 지금 우리에게는 빼앗기 땅이 있지 아니합니까?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좋은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신앙 간증입니다. 김용규 장로(토렌스 새창조교회)는 직원 780명을 두고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사인 나이키에 매달 100만 장의 티셔츠를 납품하는 의류회사의 회장입니다. 2000년 한인 상공인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경영자 상’을 수여했습니다. 태권도 8단인 김장로는 지난 79년 사우디 황실 경호원들을 지도하는 교관으로 해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범을 보이다 발목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교관직을 사임하고 멕시코로 옮겨 도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도장도 시원치 않아 85년 다시 LA로 이사, 봉제공장을 시작했습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회사는 처음엔 잘됐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당신은 부인(김은순 집사)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무슨 소리냐. 내가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교만한 대답을 했고 심지어 화까지 내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1997년 초 염직 부분에 큰 문제가 생겨 클레임이 걸리는 바람에 회사는 일거에 부도 위기까지 가게 되었고 그제야 김장로는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고,  완전히 자아가 깨어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김장로는 그동안 교만했던 자신을 회개하고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그 비운 곳에 기도와 말씀을 채웠습니다. 그는 말합니다.마음을 비우고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니 더 큰 은혜가 다가왔다. 내가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내가 일을 많이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셨다.” 그가 유대인 중심의 업계에서 납품을 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나이키에서 의류 납품권을 따냈고, 뿐만 아니라, 옷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서 매상이 오르고. 기적적으로 사업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니카라과 공장과 여기저기에 세운 다른 공장들이 선교를 위한 기지가 되고, 복음전파의 도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이 강하고 부해진 것은 하나님께서 재물 얻는 능을 주신 때문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 했습니다.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도 직장에서의 평강과 진급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3.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엡 6:19-20]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 주의 종의 말씀을 사모하고 귀히 여기는 성도가 은혜를 받습니다. 보통 자기 문제, 공장, 회사, 자녀들을 놓고는 기도를 잘 하는데, 주의 종이나 교회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의 은혜를 덜 받게 됩니다. ○ 성공적인 예배는 예배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 안에 거하고 변화하는 데 있습니다.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말씀을 위해 기도하십시요.


4.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딤전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의 정예부대 30만 명이 던커크 해안에서 독일군에게 완전포위 되었습니다. 만일 이 30만 명이 다 죽는다면 영국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군에 패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영국 수상 처어칠은 아침 일찍 웨스트민스트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 영국을 구원하옵소서!” 그의 기도는 저녁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저녁에 그는 교회를 나와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모든 교회들이여, 기도해 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여,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어린이로 시작하여 노인까지 심지어 안 믿는 사람들도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밤새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는 다음날 아침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는 폭풍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영국군이 고립되어 있는 던커크 해안만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영국군은 필사적인 탈출을 하였고 당시 독일군이 자랑하던 전차는 진흙에 빠져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아프리카로 피신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 방해하고 지연시키고 좌절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며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분열시킵니다. ● 요즈음 TV를 보면 가관입니다. 지식인이다. 진보다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이혼을 권장하고 동성애자를 성소수자로 차별금지법을 만들려 합니다. 이들도 똑같이 목사가 될 수 있고, 차별하는 설교를 법으로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현재 한국에는 점쟁이와 무당이 무려 20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올 1월 말 전국 역술학원에 등록된 수강인원은 2만∼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들은 무속인 전문 양성소에서 수강료를 내고 굿, 致誠, 기도법, 장구·바라, 징 무악기 연주법과 춤 등을 배우는 데 이들의 희망은 어엿한 점집을 차리는 것입니다. 학원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공부한 뒤 곧바로 역술원을 차리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매년 5만 여명이 점술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불신앙과 우상숭배가 다 떠나고, 정직한 사람이 사는 나라,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진리가 가득한 나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설정

트랙백

댓글

사사기 6:11-17   <너와 함께 계시도다.>       2013. 11. 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7년간 미디안 족속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7절)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시어 하시는 말씀이 (10절)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청종이 복입니다.

기드온은 지금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밀이라는 것을 타작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터에서 바람과 기구를 이용하여 작업을 해야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상수리 나무아래 포도주 틀에 들어가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삿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큰 용사여!”라는 말은 기드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입니다. 그는 농부입니다. 그는 싸움에 능한 사람도 아닙니다. 지금 그는 적이 겁나서 숨어서 곡식을 찧고 있습니다. 큰 용사라니요?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써서 큰 용사가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무식하고 급하고 약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보다도 더 잘 나를 아시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출 3:10-11]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렘 1:6-8]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예레미아]에게도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모세도 예레미아도 나은 무능한 자라 할 수 없다 하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 하시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겁쟁이 [기드온]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력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기드온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삿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지금 우리들 가운데도 혹시 이런 분 없나요? 이적기사는 성경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은 어디 있습니까? 왜 우리를 돕지 않으십니까? 원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가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3일 만에 성전에서 만나 말합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예수님을 책망을 했다 했습니다. ○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무찌르고 늘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을 치러간 군사는 대패하여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나의 편이고, 나를 도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큰 문제입니다.

▶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보이셨습니다.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의심하고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뿐입니다. 

[삿 6:14-15]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기드온은 자신에게는 그만한 힘의 배경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집은 제일 작고, 약한 집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혹시 이런 분 안 계십니까? 나는 불행하다. 왜 나의 부모님은 부자가 아닌가? 왜 누구는 부자집에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여행 다니고, 과외공부하고, 좋은 학교 들어가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데 ‥‥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생각하는 분 안 계십니까? 나도 독수리처럼 저 하늘 높이 창공을 나는 삶을 원하지만, 스스로 체념하여 자신의 재능 소유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시시콜콜 대답하지 않습니다.

▶ 하나님 여전히 동일한 말씀으로 분부하실 뿐입니다. (16)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과 존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경험으로 증명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동행하심의 체험만이 나에게 힘을 주고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 체험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 기드온은 무엇이든 확실히 알고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나와 말씀하시는 이가 주가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믿음을 가졌다 생각하는 것과 확신의 믿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은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보면 3년 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말씀을 배우고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3년 반 동안 따라 다니며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확실히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는 데까지 따라 가겠다고 고백도 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동산에서 그들은 다 예수님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어디 간 것입니까? 안 믿은 것 아닙니다. 믿기는 믿었는데 믿음이 허약했습니다. 생명을 바꿀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확신한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생활 교리」라는 책에 보면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지역의 크리스챤들이 여느 주일처럼 군인들의 눈을 피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기관총을 가진 두 명의 공산당이 들어와서 예배를 중지시키고 기관총을 내밀며 사람을 위협했습니다. 소리 질러 말하기를 “이 벌레 같은 놈들아, 너희들은 이 땅에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너희들을 다 쏴 죽이겠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믿음을 버리고 이 모인 장소에서 떠나가면 살려주겠거니와 끝까지 믿겠다고 버티고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모두 다 총살하겠다.”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가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몇 사람이 나가자마자 군인들이 문을 꽉 닫고 그 다음에 총을 내려놓더니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가짜들하고 같이 믿으면 반드시 고발할 테니까 가짜들을 먼저 쫓아내고 난 다음에 여러분과 함께 예배드리러 왔으니 이제 안심하고 예배를 드리십시다.”하더랍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셨습니까? 누가 내게 총부리를 겨눈다 하더라도.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주님만 사랑합니다. 말할 수 있습니까? 혹시 그렇게 말할지라도 실제 믿음은 주님께 시험하시고 인정받아야 할 줄 압니다.

▶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다면 더 축복된 일이나 믿기 힘이 든다면 이적과 기사를 보여 달라고 구하여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풍랑 중에 고물에 베게하고 주무시던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니 제자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요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결국 믿음은 또한 말씀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은사를 자랑하지 말고, 꿈과 경험을 말하지 맙시다. 말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이는 결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면 확신을 갖게 되고 믿음의 선언을 하게 되고 태산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난다고 했습니다. 이적과 기사는 한두 번으로 족합니다. 이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16년간을 섬긴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을 때,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사자의 공격으로 한쪽 팔을 못 쓰고 수도 없이 여러 번 열병으로 초췌해진 리빙스턴의 선교 이야기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리빙스턴이 청중에게 물었습니다. “나그네의 삶이 가져다 준 외로움과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나를 붙들어준 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강당에는 정막만 흘렀을 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리빙스턴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약속이었습니다. 가장 고결한 영광을 지니신 분이 말씀하신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입니다.

○ 이 말씀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열한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리빙스턴은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하인이 병들었을 때 주님 앞에 나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낫겠나이다.” 이는 아주 큰 믿음입니다. 눈앞에 기적이 없어도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 이것이 큰 믿음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이 계시다. 말하면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말하면 천국을 믿습니다. 함께 한다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무수한 혼잡한 지식과 의심, 세상의 온갖 염려를 가지고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은 때 묻은 어른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을 기뻐하십니다.

[삿 6: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기드온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해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무교전병을 반석 위에 놓고 국을 그 위에 쏟으라고 합니다. 그대로 하니 하나님의 사자가 지팡이를 그 끝을 댑니다. 그러자 반석에서 불이 나와서 그 제물을 다 태워버린 후 사라져 버렸습니다.

[삿 6:25-26]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파괴하라. 이는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명령을 받고 첫 번째 일입니다. 


◎ 제가 20년 전에 예천에서 목회할 때 농촌에는 집집마다 쌀을 담은 신주단지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 믿기로 결정하는 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그 집에 찾아가 신주단지를 깨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쌀이 아까운데 다른 사람을 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쌀은 보기도 싫어하시는데 말이지요. 

기드온에게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는 일은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생명을 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주저 없이 이를 실행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큰 용사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들은 대로 아는 대로 행하는 것‥

▶ 내가 주님의 쓰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주님의 임재가 나와 함께 하도록 하기 위하여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내 마음의 신주단지를 깨버리는 일입니다. 내 마음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내 집 안에 사랑하는 식구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하는 것 그것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삿 6: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성읍사람들이 기드온을 찾아 죽이고자 했을 때 오히려 이 모든 어려움에서 기드온을 지켜준 사람은 기드온의 아버지였습니다. 실제로는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설정

트랙백

댓글

여호수아15:13-19   <악사의 소원>      2013. 11. 17

추수 감사절은‘초막절’로도 불립니다.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땅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날입니다. 동시에 초막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광야를 인도하심을 상기하는 날입니다.

[레 23:34, 42-43]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42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온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광야의 삶을 마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죽기 직전에 자기의 열두 아들들에게 축복의 유언을 하고 나서 이 축복의 약속은 근 5백 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창세기49:8-10]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가나안 정복의 과정을 선도적으로 수행한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입니다. 축복은 약속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은 약속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이 앞서 나갈 때도 유다 지파는 늘 맨 앞에 있었습니다.

●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들어와 땅을 분배 받는데 있어서 '1번' 순서를 받은 지파가 바로 유다 지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지형을 살펴 볼 때 이 지역은 바로 가나안 땅의 중심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 지파에게 배당된 지역은 가나안의 중심 지역으로 비옥한 목장들과 포도원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 지금 우리가 보는 유다 지파의 지역은 다른 지파에 비하여 유달리 큰 것을 봅니다. 무엇인가 공평하지 않은 땅 분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네게브라고 불리는 남쪽의 광야 지역이 유대 지파 땅의 60%에 이룬다는 것입니다. 유다지파가 에브라임 지파를 이기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된 데에는 바로 이 유대광야라는 넓은 땅이 있으므로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은 구리, 인산염, 각종 광물자원이 풍부한 중요한 지역입니다.


○ 앞의 14장에는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갈렙이 85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여호수아에게 청구하고 나아가 가나안의 강력한 부족인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헤브론 성"을 차지한 것은 바로입니다.

[여호수아15:13,1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이 또 다시 [15장:14절]에서는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라고 말합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두 사람이 새로운 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뉴욕 행을 가는 표를 샀고, 한 사람은 보스턴으로 가는 표를 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기차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뉴욕사람들은 인정이 메말라 길 가르쳐 주고도 돈을 받고 보스턴 사람은 거지한테도 인심이 후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뉴욕 행 표를 가진 사람은 거지한테도 인심이 후하다는 보스턴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보스턴 행 표를 가진 사람은 뉴욕에 가면 무엇을 해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표를 바꿨습니다. 뉴욕에 간 사람은 도시 사람들이 흙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 같아 시골 흙을 화분에 담아 팔아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백 명이 넘는 종업원까지 두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장은 어느 날 몸과 마음을 식히기 위하여 보스턴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보스턴 역전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바로 자신과 표를 바꾼 친구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어떤 사람을 닮아야겠습니까?


▶ 초막절에 너희는 함께 나누라 했습니다. 

[신 16:13-14]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고아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5060세대는 말하기를 ‘샌드위치 세대다’불행하다. 말합니다. 윗사람들을 열심히 모셨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른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대도 말하기를 자신들은 불행한 세대다 말을 합니다.

○ 대한민국에서 요즈음 30대 대기업의 신입사원 연봉은 4~5,000만 원 정도입니다. 이 나라에 이 정도의 수입을 받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중소기업은 어떻습니까?  2,500만 원 정도입니다. 대기업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 정도의 수입으로는 어떤 젊은 처자도 결혼대상으로 꺼리는 수준이고, 마음 놓고 소비생활을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선택된 소수에 불과합니다.

● 한편 호주 시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무상교육입니다. 출산하는 순간에 장려금 500만원이 나오고 양육보조비를 정부에서 지원해줍니다. 기저귀, 분유 값까지도 정부보조를 받는다 합니다. 호주에서는 일반 국립병원에서는 진료비를 받지 않습니다.

반값등록금 데모를 하고, 살아가야할 주택이 없어서 결혼을 미루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것을 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호주는 광활한 땅덩이에 비해 2,300만이라는 적은 인구의 나라이고, 국민소득이 6만 불에 이르는 부자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합니다.


● 그러면 2만 불이라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적어서 사람들마다 빈곤을 느끼고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날마다의 경쟁으로 불안하고 삶에 여유가 없고 중병에 걸려 사는 것입니까? ○ 우리나라에는 상대적 빈곤감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나날이 커져 국민소득이니, 경제성장이니 하는 말은 먼 다른 나라의 일로 여겨집니다. ● 연 2500만 원의 수입이 적은 수입인가요? 왜 이정도의 수입으로는 스스로 가난하다 생각해야 할까요. 왜 소망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10억은 있어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 왜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일류대학을 들어가기 위하여 머리를 싸매고 경쟁해야 합니까? 왜 모든 사람이 대학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 왜 여전히 모든 사람이 자신을 축복받지 못한 세대다. 자신을 Loser(패자)라고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까? ● 왜 이 나라가 세상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 되었고,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고 [살인과 강도] [사건사고]가 넘치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 어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회정의를 외치고 역사지식을 꿰뚫고 있음을 자랑하면서, 정치가와 정부를 비판하고, 왜곡된 현실과 소망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분노가 가득차서 말하였습니다. ○자신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말합니다. 자신은 성공한 사람이고 좋은 가장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무엇을 시도하였습니까? 소망은 있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단지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고 돈 잘 버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신의 자녀가 출세하고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소시민에 불과했습니다.


■ 사실 삼성과 같은 많은 대기업들이 대한민국에 많은 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비인간적인 사람과 사람의 차별을 확장시켰습니다. ○이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경영은 뒤 골목 상권까지 차지하면서 서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습니다. ○ 그들은 소수의 기득권자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을 일용직 노동자와 알바 인생으로 만들었습니다.

○ 대기업 안에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역시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일 뿐 아직도 그들 기업 안에는 수많은 일용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그들은 일자리를 나누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 이 사회 속에는 무수한 이권단체, 전문인 단체들이 자신만의 장막을 치고, 불평등의 사회 안에 그래도 자기 자신만은 상류층으로 남아 있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의 문제는 경제 저성장의 문제도 아니고, 낮은 국민소득의 문제도 아닙니다. 덩어리는 커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가난해졌고, 무정함으로 피폐해졌습니다.


[여호수아15:15-17]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여기서는 유다 자손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집안에 땅을 분배하는 중에 생긴 작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2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드빌", 원래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불리던 성읍을 점령할 때입니다. 이때 갈렙은 좀 색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바로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고 선언합니다. ○ 사실 갈렙은 헤브론을 순전히 자기 힘으로 차지했던 갈렙은 기럇 세벨 역시 스스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공개선언을 한 자기와 똑같은 전투적 신앙과 적극적 자세를 가진 사람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런 갈렙의 약속을 듣고 나선 사람이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입니다. 그 옷니엘이 드빌 거민을 무찌르고 기럇 세벨을 빼앗았습니다.

○ 갈렙이 약속한 대로 그의 딸을 자기 아내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니엘이 갈렙의 딸 악사와 드디어 결혼하게 되었을 때에 한 가지 작은 요구를 합니다.

[여호수아15:18-19]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딸 악사는 지금 더 넓은 지역에서 더 큰 꿈을 펼치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드빌 땅 남쪽으로 광활한 유대평지가 물이 흐르는 옥토로 바뀌게 될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녀는 남방 네겝 광야에 속해있는 샘물을 구했습니다. 이는 장차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확실한 보장을 얻고자 함이었던 것입니다. 갈렙은 두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소원대로 "윗샘과 아랫샘"까지 더 주었는데 옷니엘은 이 드빌 아래쪽의 넓은 네겝지방을 모두 차지합니다. 이 땅이 지금의 유대 광야입니다.

○ 그리고 나중에 옷니엘은 갈렙의 믿음과 용감한 자세를 그대로 물려받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첫 사사까지 되었습니다.

[사사기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 [수15:14]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 [수15: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유다지파는 매우 용감하였습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대적과 싸우며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앞장섰을 뿐 아니라 헤브론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들은 헤브론에 거하는 가나안의 용사들 중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헤브론의 강자들이었을 것이다. (세새는 태양을 뜻하고 아히만은 운명의 형제들이라는 뜻이며 달매는 가레로 땅을 일구는 자를 의미합니다.) 모두 다 우상과 관련 된 이름들입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기럇세벨도 쳤는데, 기럇세벨은 책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현재도 기럇세벨은 도서관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왜곡된 지식, 왜곡된 사상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는데 큰 대적입니다. 이 땅에는 우상숭배와 왜곡된 사상, 왜곡된 진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 가나안의 성읍과 산지들과 족속들을 하나하나 멸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 전통은 계승하는 것이고 악습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 이 땅에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서로가 나누고 서로가 돕고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은 ○ 주님이 이 땅의 주인이 되시고 주님이 이 땅을 축복하셔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주님의 가르치신 진리가 이 땅을 채울 때 가능한 것입니다.


○ 새 시대를 열어가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좋은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허옥남 집사님이 처음에는 늘 자녀를 위한 기도만을 했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되더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뜻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여호수아2:1-14   <라합의 선택>           2013. 11. 10 

○ 히11장에는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① 죽음을 보지 않은 에녹 ② 믿음으로 인내하여 방주를 지은 노아 ③ 100세에 득남한 아들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다. 아브라함 ④ 바로의 공주의 아들 됨을 거절한 모세 ○ 거기에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한 기생 라합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불순종한 악한 세대에서 악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히11:31)

○ 라합은 이방인입니다. 언약, 성전, 예배도 없는 아모리 사람이었습니다. ○ 부도덕, 음란하고, 우상 숭배한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습니다. ○ 기생(창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에 대해 들었을 때 절체절명의 운명의 시간에 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편에 속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살던 도시 여리고는 '종려나무의 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중해보다 250미터 낮은 아열대 기후로 오곡이 풍요하였고, 내륙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해 있었으며, 가나안에서 가장 오랜 강하고 큰 성읍입니다.

●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하기에 앞서 정탐꾼 두 명을 요단강 건너편으로 들여보내게 되었습니다. 정탐꾼들은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서 거기서 유숙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이를 엿보고 수상히 여겨 여리고 왕에게 고하자, 이들을 찾아내고자 수색대를 보내어 찾게 되었습니다. 라합은 지금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한 눈에 알았습니다. 정탐꾼들을 향하여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 말합니다.

[수 2:10-11]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천상천하에 하나님이시니라.


지금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민족의 종교 천도교를 말하고 전통적인 신앙 불교가 우리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지식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한자를 보십시다. 船(선)이라는 글자는 노아 홍수 때에 배 안에는 구원받은 노아의 8식구가 있었음을 말합니다. 義(의)는 나와 예수님이 합쳐질 때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중국은 고대로 농사를 짓는 농경문화를 가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를 지내는데 있어서 소를 사용하지 않고 羊을 사용해서 義(의)를 표현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漢字가 북방문화에서 흘러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한자의 기원은 중국의 한족보다 오래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의 기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이래로 인간에게 구원의 소식을 알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랍 나라에서 ○ 싸르한 압둘라는 3년 전 강간당한 여동생을 오빠가 정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총으로 쏴 죽이고 6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형무소에서 모든 사람들이 저를 반겼고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합니다. ○ 사나 다파디는 피자가게에서 청바지를 입고 일하고 서구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했고 ○ 파디네 사히달은 자유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노르 팔레 알마레키는 집안에 정해준 남자를 거부하고 다른 남자와 동거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해당하고 ○ 사라, 사미나 자매는 무슬림이 아닌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는 이유로 텍사스의 호텔 앞에서 둘 다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준 여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마태복음의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세상적으로 말해 부정한 여인 5명이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세워진 초대교회 이후로 기독교는 유일무이하게 일부일처제를 가르쳤고 여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는 외관상 좋은 종교인의 모습을 가지고 예배형식으로 미사를 행하고 있으나 참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 610년 경 마호메트가 알라의 계시를 받고 창시했다는 [이슬람교]는 구약의 기독교 진리를 짬뽕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을 가장 우매하고 미개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참 진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유일하신 神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 세상에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무시하며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비상한 머리로 힘과 권력을 추구하며 자랑하며 살고 있으나 죽음의 인생길에서 헛된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길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천하게 여김을 받는 한 여인, 라합은 비록 배운바 없고, 배경 없고, 가진 것 없는 비천한 기생의 신분이나 지금 하나님의 손이 어디 있는가를 알았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 라합은 믿기 어려운 환경에서 믿음의 눈을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믿을 때 믿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자기 백성과의 인연을 끊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랐다. 이것이 라합의 용기와 지혜입니다.

○ 믿는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드리지 않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2:25,26) 했습니다. ○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대접하는  일은 생명을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도박과도 같았습니다. 이 일이 탄로 된다면 라합의 집은 멸망지문이 될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믿음이 맞다면 다시없는 구원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이 구원을 이루기까지는 우리는 대담한 용기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 천국은 마치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진주를 발견하고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진주를 샀다고 했습니다.


○ 라합의 집에 사람들이 닥쳐서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그들을 돌려보내고 정탐꾼들을 지붕 위에다 숨기고 그들을 창문으로 달아나게 해서 살려줍니다. 라합은 정탐꾼에게 자기의 호의에 대하여 선대로 갚아 주기를 청합니다.

[수2:12-13]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구세군 교회에 김희아 집사는 얼굴 한쪽에 큰 반점을 갖고 태어나서 부모에게 버려져 구세군의 보육원에서 살았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소풍을 가서든 식사시간이든‥  단 한사람의 친구도 얻지 못했다는 그녀는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그렇게 힘겨운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내가 너라면 죽었다] [밥맛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녀도 살아내기 위해서는 취업이라는 것을 해야 했는데 다행하게도 그녀의 보육원에서 보육교사 자리를 내주어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보육원측의 불행한 한 소녀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 그리고 꽃다운 그녀의 23살 나이에 한 남자를 소개 받아 작은 사랑을 키워 나가게 되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를 대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자 친구는 그녀를 받아주었고, 그녀에게 안면에 장애가 아닌 암이 찾아와서 오른쪽 얼굴의 뼈를 들어내야 했을 때도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병실에 찾아와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 시켜 주고 마침내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남자의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다가온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상처 받을 것이다.] [잘 키울 수 있겠느냐.]라는 말들을 들었을 때 그녀는 두려웠습니다. ○ 그러나 그녀는 딸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마음과 매사 긍정적이고, 감사하며, 남을 세심하는 마음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뛰어 놀다 넘어진 그녀의 아이에게 [넘어졌는데 이것 밖에 다치지 않았네?] 하고 말했습니다.

○ 딸아이가 6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그녀의 딸과 함께 역할 바꿈 소꿉장난을 했었답니다. 거기서 딸아이가 엄마가 되고 그녀는 딸이 되어 [엄마 배고파]라고 하자 그녀의 딸이 [우리아기 배고파? 엄마가 맘마 줄께 조금만 기다려]라는 말에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구나! - 다시 [엄마]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졌답니다. 또다시 [엄마 아파]라고 하자 그녀의 딸이 [엄마가 안 아플 때까지 옆에서 지켜 줄께!] 대답하더랍니다. 한 번도 엄마를 본적이 없어서 엄마의 마음을 잘 몰랐던 김희아씨 '아‥ 나도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마음이겠구나!' 그녀는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한 번도 본적 없는 엄마를 원망하기보다는 이제 엄마의 마음을 알고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눈물을 흘렸답니다.

○ 김희아씨는 아이의 초등학교 내내 매 학년 참관 수업을 가야했습니다. 아이의 참관 수업에 갈 때면 마스크를 쓰고 가야 했지만, 참관수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아이는 엄마를 안아주며 "엄마 와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말을 하는 딸 [이 말은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딸이 상심했을지도 모르는 엄마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엄마를 창피해 하지 않고 엄마에게 엄마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딸 이런 그녀의 딸이 너무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김희아씨 자신의 엄마를 찾기 위하여 담대하게 TV. 100℃에 강연에 나와의 대중과의 소통에도 성공하였습니다.


김희아씨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평생 남을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보육원의 교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가져라 나부터 믿음을 주는 사람, 진정한 친구가 되라." 는 말이있습니다. 요즘을 '불통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불통, 학교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불통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10명 중 3명이 가족 간에 대화를 하지 않고, 10명 중 8명이 직장에서 동료와 불화를 겪는다 합니다. 생각해보면 삶에서 모든 고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각박하고 외로운 시대에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지금까지 그녀의 가족들은 기생으로 사는 까닭에 그녀를 인간다운 삶에서 소외시켰을 것입니다. 그녀는 가족들의 눈 밖에 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자기가 정탐꾼들에게 보인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무슨 출세나 다른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만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해 달라고 청합니다. 멸시와 소외를 받던 한 사람이 부모와 형제 [아버지의 집에 속한 모든 사람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라합의 이러한 넓은 마음과 배려를 배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여 무정하고, 부모 형제 가족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배워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수 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 라합이 정탐꾼들을 선대하고, 그 보답으로 라합의 가족들을 구원하게 되는데, 그 표로 창가에 붉은 줄을 달아 맬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스라엘군대가 들어올 때, 이 붉은 줄을 보고 그 안에 있는 가족만은 구원하도록 약속한 것입니다. 이 붉은 줄은 너희들의 생명만은 보호하겠다는 약속의 표시며, 구원의 표시였습니다. 이 보다 앞서 출애굽할 때,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발라 붉게 표시게 된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은 유월절 야의 피 곧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 라합은 따듯함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리고 성의 멸망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구원해 내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라고 했습니다. 보아스의 어머니가 바로 라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다윗왕의 증조부가 아닙니까? 라합으로 인해 불명예스러운 한 사람 가정이 가장 명예스러운 가문이 되었습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신명기32:9-14   <너를 지키시는 자라>   2013.11. 3

일본의 아동문학가 노베찌는 "너의 둥지는 너무 낮았었다."라는 시를 써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어느 날 자기 집 뜰에 있는 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면서였다고 합니다. 새가 자기 집을 짓고 있는 것을 구경하던 그의 마음에  "둥지의 위치가 너무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의 습격을 받을 만큼 낮은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에게 충고할 방법도 없고 거의 완성된 둥지를 헐어버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얼마 후 둥지에 새끼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미새는 어디선가 부지런히 먹이를 구해다가 새끼들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노베찌는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예감했던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둥지를 비운 사이, 고양이가 새끼들을 습격하여 훔쳐간 것입니다. 먹이를 가지고 돌아온 어미새는 새끼를 찾을 길이 없어 오랫동안 그 둥지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서 시인 노베찌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너의 둥지는 너무 낮았었다."라는 제목의 시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원하고 노력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이 생각지도 않은 인생의 덧에 걸려 살아갑니다. 광야의 삶은 인생 역정을 말해주는 곳입니다. ○ 그곳은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습니다. 광야 길에는 구덩이가 있기도 하고, 낭떠러지가 있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광야에는 도처에 뱀과 전갈이 있고,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광야요 황무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역사 이래 끊이지 않는 전쟁과 질병, 크고 작은 재난, 요동치는 경제 속에 실패와 좌절. 단 한순간도 사람을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습니다.


[신명기 32:9-10]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주목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수한 무리들이 있었지만 주님의 최종적인 관심은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은 세상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최종적인 시선은 자신의 뜻을 따른 노아의 8식구에게 있었습니다. ○ 세상이 홍수로 산이 무너져 마을이 쓸려가고, 사라질지라도아니면 세상의 유력한 자가 세상의 모든 재물을 차지하여 부자가 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녀가 자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지 않으시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킨다. 하셨습니다. 눈은 아주 미세하고 예민한 신경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물질이 들어가면 금방 반응을 하기 때문에 눈동자에 위험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눈썹과 눈꺼풀과 눈물샘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눈동자를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그의 눈길이 따르십니다.


◎ 한 개구쟁이 어린이가 새를 잡기 위해 숲속으로 나갔답니다. 벼랑을 타고 올라 독수리의 알을 한 개 훔쳤어요. 그리고 그 알을 가져다 닭장에 가져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곳에 놓았데요. 사실 조금 컸지만 닭은 알을 잘 품었지요. 병아리들은 21일 만에 부화하여 나왔건만 이놈은 25일 만에 나온 것입니다. 엄마 닭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 다른 병아리들은 나오자마자 삐약 거리면서 잘도 돌아다니는데 나중에 나온 이놈은 잘 걷지도 못하잖아요. ○ 거기다 생기기도 참 못생겨서 머리가 몸통보다 더 큰 겁니다. 또 ○ 눈은 멀어서 모이를 잘 주어먹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닭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병아리들도 모두 이 머리만 큰 놈이라 놀려댔습니다. “이 바보야! 너는 언제나 병아리 될래?” 

○ 이 머리 큰 놈은 늘 다른 병아리들이 부러웠습니다. 자신도 다른 병아리처럼 멋진 병아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좇아다니고 열심히 삐약 거렸습니다. 어느 날 다른 병아리가 물었습니다. “너의 꿈은 무어냐?”응 나는 저 하늘 높은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될 거야!” “뭐라고? 잘 걷지도 못하는 놈이 하늘을 날아다니겠다고?” “야 주제를 알아라. 병아리 주제에‥ 우리 엄마 닭도 못 날거든~ 불쌍한 놈!” 병아리들은 늘 이 머리만 큰 새를 놀려주었어요. 

 어느 날 조용하고 따뜻한 초여름 엄마가 큰 소리고 부르는 거예요. “독수리 떴다. 병아리들아 빨리 숨어라”이 소리를 듣는 순간에 모든 병아리들은 재 빨리 곡식단 속으로, 엄마 품으로, 마루 밑으로 숨었어요. 그런데 이 머리 큰 놈은 마당 한 가운데서 하늘의 독수리를 보면서 “야 멋있다. 나도 저렇게 날아보았으면‥” 다른 병아리들이 외칩니다. “야! 빨리 숨어 너 죽고 싶어?” 그러나 이 머리 큰 놈은 다른 병아리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다가 쏜살처럼 내려온 독수리에게 잡혀가고 말았지요. 다른 병아리들은 서로 슬퍼하며 말했어요. “불쌍한 놈 우리말을 안 듣더니 결국 죽었구나!”

 어미 독수리는 아가독수리를 낚아채 올라가면서 말했습니다. “애야 너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엄마가 너를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아가독수리는 그제야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아가독수리를 데리고 독수리둥지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시가 많고, 닭장처럼 푹신하지도 않네?” 아가독수리는 날마다 엄마 독수리가 물어다 주는 고기를 먹으며 무럭무럭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독수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예야 이제 밖에 나가서 한 번 날아보아라.” “아니요! 엄마 나는 여기가 좋아요” 그러자 엄마독수리가 날개를 새끼 위에 너풀거립니다.


[신 32:11-12]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엄마 솔개가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새끼 위에 너풀거립니다. “알았어 알았어! 날아 볼께!” “아가야 힘껏 날아보아라 너는 할 수 있다.” 아가 독수리는 힘껏 날아 보려 했지만 얼마 날지 못하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집니다. 땅에 추락하기 직전 어느새 어미새가 날아와서 힘 있는 날개로 탁 받아서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거 봐 나는 날지 못한다고 했잖아!” “아가야 그래도 한 번 더 해 보거라!” 엄마독수리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가 아가 독수리를 떨어뜨립니다. “ 아 엄마가 나 죽인다.~~”  또다시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데리고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서 사정없이 땅바닥으로 떨어뜨립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합니다. 새끼가 제 힘으로 날 때까지 이런 훈련은 계속 됩니다. 이렇게 해서 독수리는 창공의 왕의 되는 겁니다. 


 우리들이 때로는 "이제는 다 죽었다. 다 틀렸다."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사람이 절망의 순간에, 더 이상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되지 않음을 선언할 때 하나님은 그때 새로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은 땅에 떨어진 모이나 주워 먹는 이나, 부둣가에 버려진 생선 조각에만 몰두하는 갈매기, 뒷골목 담장아래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아 날아다니는 참새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땅의 작은 일들에 올인 하지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작은 어려움에 무릎 꿇지 않고 당당히 극복하며 푸른 하늘 창공을 나는 독수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람 부는 인생, 그것도 거센 역풍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바람이 필요하다고 보실 때가 있습니다.


♥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로 192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34년을 프린스턴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영감과 권위≫와 같은 그의 책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다수는 1876년에 그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시 스물다섯이던 그는 애니와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맹렬한 풍랑 속에서 애니는 번개에 맞았고, 영구적 불구가 되었습니다. 워필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 동안 간호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결혼 생활 내내 두 시간 이상 집을 비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39년 동안 인내와 성실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워필드는 [로마서8:28]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그 분이 통치하시므로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로부터 오로지 선한 것들만을 수확해야 한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 상황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최선입니다. 여기서 나에게 복을 선택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안락한 곳, 편한 곳, 아무런 간섭이 없는 곳을 소원합니다. 누구도 나를 흔들어 깨우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과 고통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원했지만  이 땅에 그런 곳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세상이 싫어 수녀가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사람 만나지 않고 고요한 묵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으나 거기도 사람이 있었고, 문제가 있더랍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우리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어디에도 내 뜻을 이해해 주고, 맞추어주고, 받들어 주는 곳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금자리를 찾지 마세요.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고 세상을 극복해야 하고,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 산헤드린의 공회원으로 당대 최고의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의 보금자리를 헌신짝처럼 내 던졌습니다. ○ 베드로에게 그의 작은 배와 그물은 그리고 그의 고향은 그의 보금자리였습니다. ○ 모세에게 바로의 궁전에서의 부귀, 영화, 권세는 그의 보금자리였습니다. ○ 예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나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면, 자신의 보금자리를 고집하고 안주하려 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삶은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히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1)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창공을 나는 새입니다. 폭풍이 밀려올 때, 대부분의 새들은 대피하든가 움츠리지만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폭풍을 향해 난다고 합니다. 거센 폭풍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폭풍을 맛서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독수리는 사람이 갈 수 없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새입니다. 독수리는 상승기류를 이용할 줄 압니다. 이것이 독수리의 비행을 거의 무한대로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2m가 넘는 날개를 활짝 펴고, 상승기류를 타고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어떤 독수리는 6,000m 무중력 상태까지 날아 오른 답니다. 그리고 그 긴 비행시간 동안 거의 날갯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여 캄캄하고 비가 몰아쳐도 비행기를 타고 그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맑고 파란 하늘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면 우리 인간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창공을 날아 올라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신 32:13-14]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이 모든 복이 나의 복이 되기 위하여 그 분의 품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계명과 율례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를 결단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아름다운 일꾼으로 쓰실 것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로마서 1:1-17   <무슨 신령한 은사>           2013. 10. 27

바울은 온 세상의 중심인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소원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나중에 이러한 바울의 기도는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여행경비를 들이지 않고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 로마교회는 좋은 믿음의 소문을 가진 교회입니다. (8절)에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재정적인 능력이 있어서, 로마 각지의 교회들을 지원하고, 유대인 교인들을 돕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구약의 율법에 기초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행28장)에 로마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행 28:21-22]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바울은 그들에게 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자세히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11) 이 은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데, 과연 이 신령한 은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초대교회의 복음의 역사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시작하여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를 통한 성령강림의 체험은 이방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렀을 때, 그 곳 성도들은 아볼로에게 배운 그리스도인들이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는데, 바울이 기도하니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체험을 하고 나니 그 순간까지 그들이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달라져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우상숭배에 연관한 서적을 불태우는 사건이 있기까지 했습니다. 

○ 아마 바울이 로마서에서 ‘신령한 은사’라는 말을 쓸 때는, 이와 같은 성령의 강림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것입니다.

● 지금 이 시대에는 요한의 세례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일하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유사한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율법에 충실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정결하고 정숙하고, 경건하고, 선행을 베풀며 예배에 힘써 참여합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칭찬받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문화적인 그리스찬]이라고 합니다. (성령을 모르지만)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며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축복을 하신다. 생각합니다.


[롬 1:11-12]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 위 함을 얻으려 함이라

▶ 은사란 단어 헬라어 카리스마(χαρισμα)는 “성령에 의하여 부여된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 합니다 사전에는“신의 은총,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이라 했습니다. 영어로는 거저 주시는 선물(gift)입니다.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성도들에게 봉사생활을 감당하라고 성령께서 주시는 각양 선물입니다. ○ 은사는 자연적인 재능과 구분됩니다, 자연적인 재능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나면서 얻어지거나,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은사는 영적인 출생, 즉 예수를 믿어 거듭남과 동시에 성령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 주의 자녀는 마땅히 [성령충만], [은사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주님은 자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은사를 주시어 일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은사라고 하면 [고린도전서 12:8-10]의: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들의 분별, 방언, 방언 통역 9가지 은사를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같은 것들도 포함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과 같은 로마서에서도 몇 가지 은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6-8]: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함, 구제함, 다스림, 자비

[에베소서 4:11]: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 교사

이 외에도 성경에 확정되지 아니한 무수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신령한 은사’라는 말에서 바울은 (신비와 비 신비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다양한 영적인 능력들과 체험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의 삶에 성령이 주시는 남다른 카리스마(χαρισμα)인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신령한 은사를 소유하는 길은 복음을 믿는 데 있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롬1:2-4]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여기 “능력”(δυναμι)이라는 말의 원뜻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지녔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병 들린 자, 귀신 들린 자, 상처받은 자, 나병환자, 열두 해를 혈루증 앓은 여인, 부자 삭개오 이들 모두가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주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와 회복과 해방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어> 사람의 내면이 새롭게 되고, 미워하던 사람이 사랑스러워지고, 인생의 길이 분명해지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 받고, 우둔한 자가 지혜를 얻고, 사탄의 줄에 매인 자가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의 내용일 뿐입니다. 내용, 지식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들은바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여야 합니다. 이때 과연 복음이 복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시 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그러면 왜 어떤 사람에게 복음이 <능력의 복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복음을 믿기는 믿지만, 지식으로 받은 까닭입니다.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대상 16: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 우리는 늘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께 묻지 않고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힘이란 권력이나 재물, 인간의 지혜입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간이 자신의 힘만을 의지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나는 자수성가 했다. 나는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하며 아무의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아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 교회 세례교인이 되었어도 거듭남이 없이 다니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많은 사람이 내가 더 노력해서, 더 많은 재물을 얻고, 세상에 머리가 되고 나서,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쓰시는 자가 되겠노라 말합니다. ○ 많은 사람이 뭔가를 더 배워서 위대한 사람이 된 후에 하나님을 위해 귀한 일을 하겠노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복음이 최상의 가치(최고의 힘)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입니다. 


● 복음은 인류 최상의 가치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를 사용하시어 잘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재능이 많고 재물이 많다고 지식이 많다고 쓰시지 않습니다. ○ 위대한 사람이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고 쓰임 받는 사람이 쓰임 받는 사람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 말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모세는 입술이 둔한 자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학문과 배경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젊음과 학식과 교양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남의 것보다 좋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느낄 때 한없이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칭찬과 박수갈채를 받을 때 대단히 자랑스러워합니다. ○ 복음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 선생님은 복음을 들고 다님으로 해서 수많은 비난과 천대 멸시를 받았습니다. 고난과 방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바울 사도는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로마의 성도들도 일찍이 복음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들어 아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과는 무관한 사람을 살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몰랐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올 때까지 근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바울은

[롬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롬 1:13]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두 방면에서 열매를 맺기를 힘써야 합니다.

(1) 신앙의 열매 = 온전한 인격, 진실한 삶, 선한 일, 신앙의 성장의 결실입니다.

(2) 전도의 열매 =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빚 진 자라고 하였습니다(14). 우리 모두 빚진 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암살단을 조직하여 전쟁의 종지부를 찍겠다던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1943년에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1945년 미군의 독일 진입을 앞둔 4월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신학자가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이 진보적인 신학자였지만 복음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보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형제의 입술을 통해 선포된 육성의 복음이 다른 형제의 귀를 통해 전달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단지 나의 머릿속에 있는 한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선포될 때만 그것이 사람의 육성으로 선포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먼저 복음을 선포할 때 

① 나의 믿음이 공고해 지는 것이고, 

② 복음을 듣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은 선포 되어질 때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신명기 11:8-17   <여호와의 눈>       2013. 10. 20

 

[신 11:8-9]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그것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잘 설길 때에는 1)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2)너희가 건너가 얻기로 약속된 땅을 들어가서 차지할 것이요. 3)그들 후손에게 주리라한 땅에서 장구하리라. 하셨습니다.

 

▶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순종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모든 명령을 다 지키라 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만이 아닌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힘든 일도 순종함으로 인정받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흘러나오게 하는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 주님이 베드로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을 때 제자는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순종하는 가운데 능력이 임하고, 순종하면 축복이 임합니다. 주님이 왼편으로 가라고 하면 왼편으로 가고, 주님께서 깊은 곳으로 가라하면 깊은 곳으로 가고 얕은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얕은 곳으로 가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인류의 구원의 길이 여셨고, ○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았고, ○ 이삭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온전히 순종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남방 땅에서 돌아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자리를 다시 팠으나 그랄 사람들이 와서 메워버립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차례 그는 더 넓은 지역을 찾아가 더 이상 다투지 않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메마른 지역으로 나가서 또 다시 땅을 팠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우물물이 나오게 하십니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창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고 말합니다.

○자녀가 진정 복된 자녀가 되길 원하면 무엇보다 순종하는 자녀로 기르십시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교회에서도 순종하고 하나님께도 순종합니다. 자녀들이 순종할 때 부모가 가장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를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 본문은 오늘날(13절)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성경에는 오늘이라는 단어가 내일이라는 단어보다 3배 이상 나옵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믿음,  오늘의 순종, 오늘의 사랑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오는 날의 줄인 말입니다오는 날이란 내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게 순간순간 다가오는 시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잘 해보겠다! 노년이 되어 시간이 나면 잘 믿어보겠다! 말짱 다 거짓말입니다. 

어느 부자가 한 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죽은 뒤에 모든 재산을 불우이웃에게 기부하기로 했는데, 왜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구두쇠라고 합니까?" 이에 성인은 그 부자에게 돼지와 암소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신은 인기가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는 온순하고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사실 우유와 크림을 줄 뿐이잖아. 거기에 비하면 나는 많은 것을 준다고 할 수 있지 베이컨과 햄을 주고, 머리로 제사까지 지내고 다리 역시 좋은 요리가 되니 하나도 버릴 것이 없잖아.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암소는 잠시 생각하더니, "글쎄, 그건 아마도 나는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내 것을 사람들에게 주지만 너는 죽은 다음에야 주기 때문일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 병들고 늙어서 그때는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일 또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주님은 삭개오를 향하여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 오늘 내 안에 천국이 없는데 내일의 천국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오늘 씨를 뿌리는 자가 내일 양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지혜 있게 사는 자에게 내일의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허랑방탕하고 무의미하게 보내는 자에게 주님은 내일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신 11:10-12]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애굽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도 연일 흐르는 나일 강물이 있고, 수로 시설이 잘되어 물만 대면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은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 했는데 사실 모래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천수답 같은 지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 하나님이 내리시는 이른 비, 늦은 비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없다면 메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땅입니다. ○ 그러니 365일 항상 하나님의 눈이 항상 함께 하셔야 하는 땅입니다. ○ 하나님의 거룩하신 눈이  모든 인생의 날들을 살피고 계신다. ○ 이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요. 주님을 알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큰 두려움의 말씀입니다. ○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눈이 어두운 것이고 내가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일 뿐!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계십니다.

[시편 139:1]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나의 길과 눕는 것과 행위와 내 혀의 말도 아시나이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려는지 그 속셈을 아셨고, 함정을 파고 있다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 우리 예수님 제자들이 따르는 생각과 속셈을 다 아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보좌에 앉으시면 자신들도 한자리하려는 마음도,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 ○ 가룟 유다같은 경우는 예수님을 팔려는 악한 생각을 다 아시고도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셨습니다. ○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하나님을 참으로 존중히 여기는지, 사랑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신 11:13-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때를 따라 비와 이슬을 받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 살라는 말입니다. ○ 사람마다 제 힘을 의지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의를 말하고, 선행을 말하기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를 무지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 말합니다.

[롬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사람들은 자신이 의로운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을 자랑하지 마세요. 육체도 율법도 자랑하지 마세요. ○ 자신은 정직하고 자신은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고 자신은 남에게 빚진 적도 없다 생각하지만 ○ 이런 것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합니다.

▶ 살다보면 생각이 바뀌게 되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 나는 의롭다! 하던 사람이 나는 정말 회개할 것이 많은 죄인이구나! 생각이 들게 되고 ○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닌‘열심히 배우려는 사람’이고 ○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닌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고 ○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닌‘많이 나누는 사람’이고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만사에 형통한 사람’이 아닌‘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살다보면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한 유명 목사님이 방송에 나갔는데 그 방송을 들은 한센씨병 환자들이 ‘한센씨병’이라는 말 대신에 ‘문둥병’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그 목사 교회를 때려 부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 어떤 목사님은 시각 장애인 목사들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성경강해 중에‘소경’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세미나 후, 한 시각 장애인 목사 부인이 조용히 다가와 “목사님! 소경이란 말을 쓰면 그분들이 너무 마음 아파해요. 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야 해요. 하더랍니다.

● 사람은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짝이란 TV프로에서 천신만고 끝에 남녀가 데이트의 기회를 얻어 남자 ②호가 자신의 차에 여자 ⑤를 태우고 외식하러 나가는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남자 ②가 어디로 갈까요? 묻자 여자⑤가 순댓국을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거리를 보니 한 시간 거리였습니다. 남자 ②가 말합니다. 오며 가며 길에서 시간 다 버리니 가까운 데로 가서 더 많은 대화시간을 갖지! 그 시간부터 여인의 마음은 그 순간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최선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내 생각 내 주장을 덜 말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힘써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 11:16-17]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 왜 주님 주신 축복이 영원하고 변치 않는 축복이 되어야 하지, 속히 멸망할까 우려해야 합니까? ○ 성경에서의 축복은, 영생도 구원도 모두‘그리스도 안에서’조건의 축복입니다. ○ 사람이 재물을 얻고 일이 잘 되어지면 제가 한 것처럼 우쭐거리고 일이 잘 풀어지지 않으면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탓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평안하고 배부르면 게을러지고 딴 생각하기 쉽습니다. 죄악의 길로 달려갑니다.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 가운데 “코뚜레가 일을 한다.”는 동화가 있습니다. 어미 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송아지가 자라 어느덧 코뚜레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형 송아지가 농부한테 사정을 합니다. "저에게는 제발 코뚜레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농부가 대답합니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처럼 되고 말 텐데." "아닙니다, 주인님. 두고 보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곱절이나 일을 잘 할 테니까요" 농부는 형 송아지의 말을 받아들여, 동생 송아지에게만 코뚜레를 했습니다. 형 송아지는, 자신의 약속대로 코뚜레 없이도, 스스로 멍에도 매고 쟁기도 끌었습니다. 그 송아지들은 자라서 어느덧 어른 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코뚜레를 하지 않은 형 송아지는, 차츰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농부에게 뒷발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뚜레를 한 동생 송아지가 들에서 돌아와 보니 형 송아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행방을 묻는 동생 송아지에게 주인이 대답합니다. "일은 안 하고 꾀만 부려서, 할 수 없이 도축장에 팔았지" 여러분,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에게는 코뚜레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코뚜레를 꿰어야 합니다. 사람은 별 수 없습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바 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축복의 씨앗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자유의지’라는 복된 선물을 받았으나 그 자유의지를 주의 뜻과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드림으로써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지혜를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말과 행위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민수기 35:10-32   <도피성>    2013. 10. 13

[민수기 35:11-14]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하나님은 부지중 과실로 사람을 죽인 자가 보복자로부터 피난하여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피성 6개를 정하는데, 요단 동편 르우벤과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정착한 곳에 3개 처소 헤브론, 세겜, 갈릴리 게데스를, 요단 동편 가나안 땅에 3개 처소 바산 골란, 베셀, 길르앗 라못 모두 여섯 곳에 도피성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도피성을 정할 때에 아주 찾기 어렵고, 가기 힘들고, 거리가 멀곳에 만들지 않고, 누구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그 지역의 중앙에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크게 하고 도로변의 적절한 장소에 “도피성”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표지판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도피성의 제도는 누구든지 쉽게 구원받고 공평한 판결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민 35: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그 살인자들 가운데는 (1)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난 사람들, (2) 외국인과 (3)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보호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계 만민에게 동일하게 공평한 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지중에 살인하였다 함은 어떤 사람이 장작을 패다가 도끼의 머리가 손잡이에서 빠져 나가 사람을 죽게 하였든지, 새로 집을 지을 때 평평한 지붕에는 난간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경우, 수소를 단속하지 않아서 수소가 사람을 뿔로 받아 죽였을 경우입니다. 이 때 피 흘린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 22:8)

오늘날 과실치사라고 해서 관대한 처벌을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하겠습니다.

[민수 35:19] 여호와께서는 피해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살인자를 만났을 때 그를 죽일 권리가

[민 35:26-27]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스라엘에서 살인이 저질러졌을 경우, 가까운 가족과 친척은 피해자의 피에 대해 복수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설사 무심결에 살인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라.” “생명은 생명으로”라는 법은 남의 생명을 빼앗은 자의 마땅히 받을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원칙입니다. 그는 죽어야 합니다. 피의 보수자는 이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기까지 그의 생명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발적으로 혹은 무심결에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들을 위하여 도피성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가 도피성에 숨어 있을 때에 피의 보수자가 절대 손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부지중의 살인자에게 죽음을 면할 길을 주신 것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 죽임을 면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 살인자는 도피성 안에 혹은 성벽 밖으로 1000큐빗(약440미터) 거리 이내에 머물러 있어야 하였습니다.(민수 35:2-4) 그렇지만 살인자는 족쇄에 채워져 있거나 감옥에 감금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도피성 마련에서는, 수감자들의 빈번한 탈출 시도를 막기 위하여 벽으로 둘러싸이고 철창이 있는, 비용이 많이 드는 교도소를 짓고 유지하고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살인자는 “도피성”을 찾아와서 그 곳에 머무르며. 도피성의 거주자로서, 사회의 유용한 성원이 되어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날 살인자를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감금하여 다른 범죄자들과의 교제로 인해 종종 더 나쁜 범죄자가 되어지는 제도와는 아주 다른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도피성 안에서는 살인의 보수자를 만나더라도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심결에 살인한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볼수 있습니다.

● 우발적 살인자가 도피성에 갔다 하더라도, 일어난 일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피성의 성문에서 이스라엘 회중을 대표하는 장로들 앞에서 재판받아야 합니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이 고의적으로 살인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성읍 안에 장로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는 권세를 위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 자리 앞에 서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성읍의 장로들은 그가 행한 살인이 고의적인 살인이라면 판단했다면 그 사람을 피의 보수자에게 넘겨야 할 것이며, 그는 죽게 될 것입니다.

[민 35: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무심결에 살인한 사람은 얼마 동안 도피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였습니까? 아마도 자기의 남은 생애 동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대제사장의 죽는 날” 도피성에서 떠나 자유를 얻게 되어질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지도자 중 하나였습니다. 대사면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v부지중의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는 날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날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일 자격을 가지신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세상에 죄를 사하고 구원하실 분은 한분 주님뿐이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죄를 찾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신약의 성경은 형제를 향하여 미워하고 분노하고 욕하는 모든 사람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 우리는 부지중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 많습니다. 학생이 왕따를 당하여, 부실한 건축물이 무너져 많은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합니다. 무리한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갈 곳을 잃고 죽는 사람도 있고, 약간의 관심이 부족하여 이웃이 굶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든 모르든 주님은 우리들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의 살육자는 언제든지 우리가 주님의 품을 떠나 배회하는 틈을 찾고 있습니다.


▶ 주님은 환난을 당한 모든 이의 도피성입니다. 이 세상은 천재지변, 전쟁, 질병 등 환난이 끊임없이 이 세상에 그림자처럼 우리 인간에게 도전해옵니다.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끊 없는 두려움과 공포, 초조와 불안이 엄습해오기 때문에 마음의 불안으로 안정제를 복용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의 참 안식처가 어디고 피난처가 어디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 한국의 법으로 극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金賢嬉는 감옥에서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을 읽고 구원을 확신하고 받아들였습니다.

● 살인마의 高在峰도 金戴斗도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 주님은 십자가 오른쪽의 살인한 강도를 용서하시고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용서하시었습니다. 그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 고의적인 살인자였습니다. 율법은 고의적인 살인자는 물론이고 부지중의 살인자도 죽어 마땅한 사람임을 밝히고 있으나 주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가 되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오면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도피성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자의 피난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인의 도피성이 되어짐을 말씀했습니다.

[히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 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설정

트랙백

댓글

사도행전4:1-12    <성령충만을 위하여>          2013. 10. 6

[행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등 대제사장의 문중들과 관원들은 살기가 등등하여 베드로를 가운데 두고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런데 베드로가 권세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교육도 받지 못했던 어부 베드로와 요한이 얼마나 조리 있는 설교를 했던지 학식 있는 사람들이 놀랍니다. 성령충만 함으로 권세 있는 설교가 매일같이 수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했고, 수많은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성령충만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고, ○주님의 일이 나를 통하여 성취되어집니다. 여기 病人이라 함은 성전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행 3:]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모든 문제의 해결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이름의 비밀입니까?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 살리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6:14-15]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 모든 <권세와 능력> <은사와 생명>과 <건강>이 모두 주 예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실 때, 주님이 허락하실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의 권능을 알고, 주 예수의 사랑을 알고, 그의 위대하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 사탄의 최대 목적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알아도 붙잡지 못하고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못 깨닫고 놓치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위협하고 박해를 합니다.

● 바리새인들, 성전 맡은 자들, 관원들은 사도들이 백성에게 예수의 이름 기적이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부활을 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 예수를 믿을 수 없다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는데 어떻게 그가 그리스도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는 실패한 예수라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는 세상을 미혹한 자라고 말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조병수 집사님은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이 두 번째 생명의 은혜를 주신 분은 생명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 긴 잠에서 깨어난 조병수 집사님이 첫마디는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입니다. ○ 성령이 임하시는 목적은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하는 것이다. ○ 주님이 나에게 재물을 주시고 나에게 재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이유는 생명을 구원하는 데 있고 복음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열매인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나타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라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이 이루어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은 성령충만의 결과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풍성한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 육신에 속한 사람은 말씀과 기도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율법적인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의 고된 짐을 스스로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 성령충만의 생활이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삶,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시는 생활입니다.

[챨스 피니]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이 죄다.”그리스도인은 더 많은 빛을 소유하였으므로 죄인이 회개하지 않는 죄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충만 하지 않은 죄가 더욱 크다."고 말했습니다. 챨스 피니의 말은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은 날마다 죄를 더해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1. 성령충만은‘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와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가 한 자리에서 성령 받을 때까지 기도하며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주님의 제자로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마침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마리아는 목숨을 내놓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잉태했습니다. ○ 성경은 마리아를 향하여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순종하는 자가 <은혜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 같지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더 풍성케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행 5:32]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신28:2]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한다.

[사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는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 성령충만을 받고자 하면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제자와 사도들이 마가 다락방이 뭐했을까요? ○그들은 회개하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 이전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도망했고, 두려워했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주님의 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살기를 결심했을 것입니다.

리챠드 프렛(Richard L.Pratt Jr.)은 말하기를 ‘주님과 교제하는 방법’은 주님의 선한 마음을 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사람이 하나님을 피합니까? 왜냐하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먹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했듯이 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 피하고, 두려워 피하고, 자신의 것을 빼앗길까 피하고, 굴복하기 싫어 피하고,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 피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구하지 않은 것, ○순종하지 않은 것, ○내 마음대로 살아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생각나는 대로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를 단절시키는 근본 원인입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만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자유로울 때 성령충만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언 리즈가 쓴 '중국의 예수가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 교회, 예수가정의 지도자였던 칭 틴옌씨는 중국 개화기의 청년을 뿌리 깊은 유교 전통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그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버린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했던 그녀는 전족을 할 정도로 구식 여인이었습니다. 시대감각도 맞지 않고 평생 함께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려보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네 아내를 사랑하라"(엡 5:25)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아내가  이쁘거나 영리하거나 착할 경우'라는 단서가 없었습니다. 그는 무척 괴로워하다가 결국 복종합니다. "하나님,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시니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칭 형제는 아내의 집으로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집에 오려고 했으나 아내는 전족 때문에 20킬로가 넘는 길을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칭 형제의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했기에, 당시 중국인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을 했습니다. 아내를 업은 채 집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마침내 집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칭 형제와 그의 아내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1920년의 일입니다. 그 후 아내는 칭 형제의 훌륭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3. 성령충만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 누구나에게 성령충만이 주어지면 좋겠지만 없어도 관계없다 하는 사람에게 성령충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사모함이 아닙니다.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 마가다락방에 있는 제자와 사도들에게는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불처럼 임하시는 성령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 병든 자를 일으키고, 악한 자의 궤계에서 풀어주시는 성령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요. 부활, 그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구하고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 성령충만하려면 성령의 충만을 위해 단순한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이 있어야 하고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외치며 부르짖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나의 부흥을 태동시키는 힘은 배고픔에서 시작되어집니다. 부흥은 영적 배고픔, 영적 목마름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성령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십시오.


●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깝게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거하시기를 원하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 7:37-38]“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다윗은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화려하고 장엄한 왕궁에 살기보다  여호와의 집에서 평생토록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4. 성령충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갈 3:14]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눅 11:13]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아니하겠는냐?”

성령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사모함으로 구하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민11:1-9   <절망에서 소망으로>   2013. 9. 29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걷다가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진에 불이 붙었습니다. '다베라'라 불리었습니다. 다베라는 '불사름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민 11:4-6]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며 왜 미리 미리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불평하기 전에 고기도 주고 물도 주고 하면 안 돼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서 꼭 이렇게 돌부리 많고, 먼지 많은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가? 백성들이 불평하기 전에 미리미리 지름길로 좋은 길로 인도하시지 못하나요?

○ 처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선물 받았을 때 그들은 꿀맛이라고 감격해 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만나)하며 소리치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더 이상 만나는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만나만 복아 먹고, 끓여 먹고, 지져 먹고, 구어 먹고 질렸겠지요. 그러니 이제 고기 달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감사를 찾으면 감사가 넘치고 불만을 찾으면 불만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사람들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외에 잡족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 잡족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저들의 하나님이 아니니  노예생활 하던 때의 고기가 그리워하며 제일 먼저 불만을 터뜨려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며 소리내어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이 불평이 전염되었습니다. ● 누룩은 잘 퍼집니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세상 사람들이 있어 교회를 함부로 말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악한지라 나쁜 습관은 쉽게 배우고 좋은 습관은 배우기 힘든 것과 같습니다. ○ 시편에 죄인의 자리에 서지 말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했습니다. 내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심히 노하여 그토록 원하는 고기를 메추라기를 통해 하루아침에 몰아서 안겨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가 잇 사이에 아직 남아 있을 때, 고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렸던 사람들 전부를 죽이십니다. 그래서 그곳을 일컬어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 하나님 참 치졸하지요? 어린아이 같지요? 자신의 백성이 고기 좀 먹고 싶다 했다고 죽이기까지 합니까?  돈이 좀 더 있다면  좀 더 쇼핑을 하고, 좀 더 마음껏 먹고 마시고, 근심 없이 낙을 누리는 것이 삶이 좋은 것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 어머니들 같았으면 미안하다. 얼른 시장으로 달려 갈 건데요.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분노하십니다. 그러나 자비로 인내하십니다.


● 자녀를 못된 자녀로 키우는 10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1.어려서 부터 원하는 것을 다 주는 것입니다.

2.나쁜 말을 할 때는 그냥 웃어넘기는 것입니다.

3.크면 제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4.나쁜 행동을 해도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5.자녀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부모가 정돈해주는 것입니다.

6.TV 프로그램을 무엇을 보든지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7.자녀들 보는 앞에서 자주 부부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8.용돈은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것입니다.

9.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게 해주는 것입니다.

10.다른 사람들과 싸울 때에는 언제나 자식의 편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찌하거나 내게 복 주시는 분,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 믿음의 백성, 감사를 아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시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우리가 은혜를 망각하는 순간 찬양의 자리는 원망의 자리가 됩니다. 탐욕이 무엇입니까? 지나친 욕심입니다. 사자는 사냥을 해도 먹을 만큼만 사냥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쌓아 놓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 사람마다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욕구도 있고 쓸데없는 추한 욕구도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욕구는 소망을 주고 삶의 활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한 목숨 잘 먹고 잘 마시기 위한 욕구, 남과 비교해서 더 잘살고 잘 먹고 누리기 위한 욕구라면 절제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천국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날마다 내 소원, 내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구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 하면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 인간의 탐심을 우상숭배라 했습니다. 우상이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할 때 가로막는 모든 것들입니다. ○ 탐심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더 추구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탐심에 빠진 자는 은혜와 감사를 알지 못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위하여 '좀 더 좀 더' 하는 사람이 마음에 감사가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은혜로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불만과 불평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겠습니까?


재미있는 풍자만화가 있습니다. 노아 홍수가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싹 쓸어버렸습니다. 방주에는 노아의 식구들과 둘씩 쌍을 이룬 짐승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한 1년 동안 배를 타고 다니다가 드디어 땅이 마르고 비가 그치자 방주 문을 열고 사람과 짐승이 나왔습니다. 두 마리의 기린이 두 마리의 코끼리 뒤를 따라 배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앞에 가던 코끼리 한 마리가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젠장, 계속해서 비만 왔잖아. 여행치곤 정말 형편없는 여행이야." “ 방주라곤! 정말 좁아 미칠 뻔 했어!”실로 불평불만은 습관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청각 장애자였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기차 안에서 신문을 팔면서 틈이 나는 대로 열차 한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실험을 하다가 기차의 진동으로 화학약품이 떨어져 불이 나서 소동이 일어나자 격분한 승무원이 에디슨을 기차에서 밀어 떨어뜨렸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고막이 파열되었습니다. 훗날 에디슨에게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실험과 연구에 불편함이 없었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실에 대해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 유대인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어요. " 아이의 입에서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익숙해지기 전에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 지금 우리가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이 '감사합니다.' 이 말입니다. ' 감사함이 입에서 익숙해지고 몸에 배어야 축복을 받습니다.

● 입으로 그리는 화가 김준호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하여 군복무 중에 부대 관물대 위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신체장애를 탓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한다. 둘째는, 군대에서 다쳤기 때문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셋째는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병원의 실습생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한다. 넷째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구필화가가 된 것을 감사한다. 그는 지금 인당이라는 화명으로 붓을 입에 물고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1981년도에는 세종문화회관 전시를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말합니다. 이 모든 축복은 감사하는 생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눅17:11- ] 열 명은 나병환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였습니다. 열 명 중 한 사람 즉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상대를 향한 최상의 경의와 존대를 표시합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열 명 중에서 이방인 한 사람만 감사하러 돌아온 것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시며 구원의 복도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구원의 은혜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이웃에게 늘 감사하다 말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천국 길은 믿음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희망이 있는 것이요 희망이 있음으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 지금 나아가고 있는 곳은 가나안입니다.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면 가나안에 도달할 것 아닙니까?  ○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신 하나님의 동행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당장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이 자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메마른 광야로 끌어들이실 때에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양식이 없다는 것, 물이 없다는 것,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 배고플 때는 얼마든지 먹일 수 있었고, 목마르면 마시게 할 수 있었고, 행여 만나가 질리면 고기라도 주실 준비까지 다 하고 계셨을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는 40년 내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질리도록 만나만 먹어라.” 하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고 하나님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 만나를 먹어 본 사람, 홍해를 건너본 사람이라면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하나님이 '내게 없는 것을 주실 것' 이라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 이찬수 목사는 10년 전에 교회 안에 고등학생 몇 명만이 있을 때 불평불만 했답니다. 지금의 결과를 생각했다면 신이 나서 일했을 것이라 했습니다.


[골 3:15-17]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을 우리는 믿는 자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 그리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 모든 신앙의 출발은 은혜와 감사를 아는 데서 출발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요 12:26-36 < 빛이 있을 동안에 > 2013. 9. 22

[요 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열매는 성공의 열매도 아니요. 재물의 열매도 아닙니다. 생명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알은 예수님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따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개중에는 병을 고치려고 사람,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사람,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의 신화를 쓰고 싶어 합니다.

■ 하루는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찬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리곤 “네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그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을 들었다 했습니다. ■

○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이렇게 유혹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 빈손으로 시작하여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의 성공신화, ○ 개천에서 용 난 것처럼 출세한 사람들의 성공신화, ○ 개척하여 믿음과 열심히 큰 교회를 이룬 성공신화를 보여주며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유혹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많은 교회의 위기가 바로 이 성공신화에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부흥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와 세상이 다르지 않은 모습이 있습니다. ■ 물론 하나님은 주를 믿는 자신의 백성이 잘 살고 건강하고 형통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내가 원해서 좋아서 내 뜻대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하나님 영광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 12:26-27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 본문은 예수님의 품으로 초청장입니다. ○우리는 보통 섬김을 말할 때, 약한 자, 가난한 자, 갇힌 자, 병든 자를 말하고 ○우리는 우리의 섬김의 장소에 주님이 거기에 계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①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②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땅에 오신 것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섬기려 오셨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주님을 섬기라 합니까?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섬김을 받기를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가르쳐 주기 원하셨습니다. 이 섬김은 결국 우리를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 섬긴다 함은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 그 분의 행하심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 섬긴다 함은 나의 많은 재물과 수고로 내가 힘써서 이루어야 하는 어떤 목표도 아닙니다. ○ 섬긴다 함은 주님의 기쁘심을 구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섬겨야할 대상 바로 주님이십니다. 일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귀하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주님을 따르면 존귀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존귀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하여 더 많은 지식과 힘을 가지려 합니다. ○ 세상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시험에 빠지고, 교회를 떠나는 많은 이유가 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해서, 존귀함을 받지 못해서, 자신이 살아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변화 되지 못하여 종종 남에게 섬김 받기 위해 힘쓰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주를 위하여> 무엇을 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주의 기쁘심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하셨습니다.

◉ 중국에는 많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보따리 장사도, 주재원도 모두 나름대로 한 가닥 하니 다 스스로 선교사입니다. 이들 중에는 전문인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너도 나도 다 똑같은 선교사입니다. 이들이 다 한결같이 선교사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전문인 사역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농사를 가르치고 의료행위를 하고 사회사업을 하지만 불행하게도 가장 핵심적인 성경을 가르치는 능력을 갖지 못해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들이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목회자 선교사는 국내에서 이미 목회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 선교사는 전문인으로의 장점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전문인들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서로 함께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한 한국인이 중의를 공부하며 장차 선교를 하고자 한다고 해서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인지라 중국인 성경공부 반에 와서 함께 공부하라 했습니다. 싫다 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몇 주 간에 열리는「평신도 훈련과정」이 있어, 이 사람이 또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니, 영적 훈련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 겸사겸사 말씀을 듣고 봉사도 하도록, 사진 담당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처음에는 잘 하더니 보수가 없다고 봉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만 두라 하였습니다. 그가 선교지로 떠날 즈음에는 미리미리 성경공부를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말하더군요. 그리고 이제 와서 자신의 사역을 알아 달라. 함께 해 달라 말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너무도 많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예배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대도 마음은 선교사입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선교사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다른 선교사 밑에서 보조자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주체가 되려합니다. 언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가르치는 능력도 안 되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람과 물질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말없이 돕는 자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부족한 사람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인정받고, 내가 존중받고, 내가 대장되고 이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존귀함을 받는 비결을 무엇입니까? ○ 주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아니요. 큰 목표를 가지고 업적을 내는 사람도 아닙니다. ○ 존귀함을 받는 사람은 내게 주어진 일이 크자 작다 말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주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때 존귀와 영광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님을 태운 나귀가 참 볼품없는 존재이지만 예수님을 등에 태웠다는 사실 때문에 예루살렘성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함으로 사랑을 받고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 12: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아픔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공생애 3년에‘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이 지나셨습니다.’○주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민족에게 미움을 받고,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고향사람들에게 적대시 당했습니다. 3년 반 동안 매일처럼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 제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체포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갔고, 목숨 바쳐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던 베드로는 새벽에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여종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잡아뗐습니다. ○ 주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기고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이 하나뿐인 독자가 철저하게 짓밟혀 죽는, 도무지 차마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 아비의 등을 본 것입니다.

● 십자가는 버림받은 자들의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자들, 기대했던 사람들, 의지했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나의 아픔이 주님의 아픔이라면 / 내가 당하고 있는 아픔이 골고다 언덕에서 / 당하신 주님의 아픔이라면 / 내가 당하고 있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주님이 / 당하신 고통이라면 아무 말 없이 내가 당하기 원합니다.

지금은 몰라도 먼 훗날 알게 되리니 내게 담으소서! / 내가 맛보고 있는 연단이 십자가 나무에서 / 맛보신 연단이라면 / 내가 맛보고 있는 견딜 수 없는 연단이 / 주님이 맛보신 연단이라면 내가 맛보기 원합니다. / 내게 영광이 되리니 내게 채우소서!

나의 당하고 있는 아픔이 채찍과 수치에서 / 주님이 당하신 아픔이라면 나의 당하고 있는 이길 수 없는 / 아픔이 주님이 당하신 아픔이라면 아무 말 없이 / 내가 당하기 원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자가 누구냐? 질문을 받고, 예수님께서 「인자의 특성」을 상징적인 단어로 간결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빛’입니다.

[요 12:36]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예수님은 빛으로 오신 분입니다. 빛을 믿으라 하십니다.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유명 안경점 직원을 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교회 출석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정규 4년 대학을 마칠 수 없었기에 자신에 삶에 성공을 위하여 힘썼습니다. ○ 교회를 그런데 웬만하면 빠지고, 가능하면 빠지고, 공부를 한다고 빠지고, 당직이라고 빠지고 한 동안 잘 나오다가 빠집니다. 그녀의 관심은 세상에서 성공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한 때 좋은 남편을 얻었다고 인사를 왔습니다. 조용하고 착한 성품이고 직장도 얌전한 젊은이였습니다. 앞으로 교회에 잘 다니겠다고 하는데 본교회가 멀다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남편을 붙들려면 다니던 교회에 열심을 다해서 남편을 붙들어야지 가깝다고 다른 교회에 가서 어느 날에 남편의 믿음을 세울꼬? 이 자매가 저 편하게 결정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 제가 생각한 대로 그 후에 그 부부가 계속 가까운 교회에 잘 나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자가 열심히 없는데 남자가 열심히 있겠습니까? ○ 그런데 어느 날 와서 울며 하는 말이 남편이 도박 때문에 집을 돌보지 않고 별거한지 수개월째라고 합니다. 이혼할 생각이라 합니다. 많은 시간을 달래어 함께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돌아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도 받았습니다. ○ 그동안 장만하기 어려운 집도 얻었고, 남편도 착실해졌습니다. 한동안 열심을 내어 만사를 제치고 교회에 나오더니 다시 멀어집니다. ○ 그런데 근 일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다시 도박을 시작했다 합니다. 그 충격으로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았고 지금 정상 분만도 문제가 생겨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 어둠이 깔린 세상에서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찾지 못하면 곧 절망하고 맙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채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러면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병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빛이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는다 함은 그 분의 뜻을 찾는 것이요.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둠, 저주, 절망, 좌절의 세력을 몰아내는 방법은 철학이나 논리도 아니고 학문이나 돈도 아니며, 명예나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둡고 암울하던 내 영혼에 생기가 찾아올 것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