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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22-35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요한복음 6:22~35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2013. 9. 15
I. 예수님 앞에 떡을 먹기 위해서 나온 무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 일도 이게 긴가민가할 때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분명히 자기들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었습니다. 배가 불렀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 꿈은 아닌데 마치 꿈처럼만 느껴집니다. 무리들은 <다시 한 번> 이 기적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다시 한 번>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하고 그 기적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들의 왕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다시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몰려듭니다. 그런데 분명 어제 저녁 제자들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다른 배는 없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디에도 예수님이 계시지를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배들을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 보니 놀랍게도 예수님은 바로 그곳 바다 건너편에 와 계셨습니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에 오셨습니까?” 물으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말씀하십니다.
● 먹고 사는 문제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먹는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참 곤란합니다. 가난한 시절을 살아온 사람은 배고픈 설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압니다. 배고픈 시절에는「보릿고개」「초근목피」또는「조반석죽」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노심초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찾아 나온 무리들의 배고픔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배불리 먹는 오병이어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칼 막스(K. Marx)」는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 하며‘생산도구를 인민에게’를 주창하였습니다. ○ 그렇게 하면 세상에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 우리는 또 이 사람들을 유물론자라고 말합니다. ○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이었고 물질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편협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는 물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 모든 인간에게는 그들 나름의 욕구가 있고, 다양성도 있고, 창의성도 발휘 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명백하게 실패하여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 그러나 신기하게도 오늘날도 세상나라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심지어 예술이나 문화까지도 그 추구하는 것이 모든 것이 물질로 귀결됩니다. ○ 청년 고용의 문제가 심각하고, 일용직 해소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풍요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풍요하고 차고 넘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말하기를‥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 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물질이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풍성한 물질도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은 잘되는 것이 육이 잘되는 비결입니다. ○ 사도 바울은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책망하였습니다.
○ 한번은 광야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마 11:7).
○ 그 당시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근처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실 때도 오천 명이 넘는 장정들과 많은 부녀자와 아이들이 몰려왔습니다. ○ 이들은 혹시나 어디에 희망과 도움이 있을까? 마음을 둘 데 없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들은 어떤 비전도 목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군중이 예수님을 임금 삼자고 들떠 외치다가도(요 6:15), 잠시 후에는 썰물 빠지듯이 모두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요 6:66). ○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① 이런 사람은 목적지도 없이 나침반도 없이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②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에게 진정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배부름이 삶의 전부인 사람에게 “무엇을 위하여 나왔느냐?” 물을지라도 대답할 말이 있을 리 없습니다.
Ⅱ. 표적을 보기 위하여 나온 무리가 있습니다. 보기 위하여 나온 무리입니다.
[요한복음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 예수께서 움직이시는 곳에는 언제나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었습니다. ○ 많은 사람은 주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기이히 여겼으며 ○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이적을 보고자 했습니다. ○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병 고침을 받고자 소원하였습니다. 사실 이적과 표적은 중요한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표적들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 믿었습니다. 또 초대교회는 사도들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표적들도 그것을 통하여 힘을 얻고 성장했습니다. 교회에는 많은 표적이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적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이적이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0-21]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고전 1:22-23]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평소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표적을 보이셨던 곳의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였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표적과 이적을 많이 본다 할지라도 그것이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광야에 나온 수많은 무리들은 ○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 육신의 양식인 떡도 먹었고 ○ 신비로운 표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광야에 나온 이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서 먹고 본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땅의 것을 원했습니다. 먹고 마셨으면 감사를 알고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알고, 주님을 붙들어야만 했습니다.
●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표적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시대 저희 조상들의 역사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없이 표적을 원했고, 끝없이 의심하며, 알기를 원했습니다.
○ 수가성 여인은 우물가에서“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하시는 예수의 말 한 마디에 물동이를 내버리고 마을로 내려가서 만나는 사람에게“와 보라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며 선전하였습니다(요 4:29). ○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의 손에 억지로 끌려나왔지만 예수님이“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하시는 말 한 마디에“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요 1:46-51). 믿음은 그저 믿음일 뿐입니다. ○먹을 것을 풍족히 얻었다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요 ○ 표적을 많이 보았다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 한 마디로 족하고 한 번의 기적으로 족합니다.
[요한복음 6:27-29]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Ⅲ. 예수님이 참 떡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 치신 자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신다 했습니다. 모세가 준 떡으로는 참 만족을 얻을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소리를 듣고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사람이 먹어야 살지 교회가면 돈을 주냐 떡을 주냐!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돈을 주고 떡을 줍니다. ○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그 복을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내가 힘써 얻은 어떤 보물도 어느 날 주님이 찾으시면 나는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사람은 힘써서 육신의 떡을 얻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인간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의 살을 먹는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요한복음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② 어떤 이는 예수님을 그냥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①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고작 말하는 것이 그의 모친과 형제의 이름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예수를 보면 끝임 없는 의심과 염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했습니다.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한다 함이 무슨 뜻입니까? ○ 나의 작은 정성과 헌신이 하나님의 기쁘심을 이루어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 나의 수고를 통해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 나의 삶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 주님을 만나기 원하십니까? 온전한 제사가 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제사는 온전한 헌신과 순종에서 시작 되어집니다.
1. 전심 (렘 29:13), 믿음 (막 11:24), 회개 (대하7:14), 용서 (마 6:12), 순종 (삼상15:55)
2. 의로움 ( 잠 15:29 )
3. 연합 ( 출 33:11 )
<1 번>은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뜰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번제 단에서 제사와 물두멍에서 씻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것이 전심, 믿음, 회개, 용서, 순종입니다.
주의 제단 앞에 나오기 전에 ○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 회개라는 나의 모든 죄 꾸러미를 가지고 나와야 하고, ○ 용서의 보따리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뒤가 찝찝해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 순종의 보따리를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방해가 되었던 모든 것을 고치고자 하는 <내려놓음>이 있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여리고성 입구에서 만난 맹인 거지는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했습니다. 주님이 지나가실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님을 붙잡지 아니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와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본적도 없고 아는 바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외쳤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담대하게 주를 고백하며, 부를 수 있게 한 것입니까? 그는 더 이상 내려놓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그는 자신의 두르고 있는 겉옷까지도 내려놓았습니다. 내려놓을 것이 많은 사람은 주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기를 두려워합니다. 늘 연구하고 살펴 볼 것입니다. 주님은 늘 살펴보고 연구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헌신과 순종입니다.
○ 그 때 우리는 의롭다 함을 입고 성소에 들어가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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