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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2-26 <주여 원하시면>
누가복음 5:12-26 <주여 원하시면> 2013. 8.25
○ 이 사람은 온몸에 문둥병 들렸다 했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문둥병을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로 생각하였습니다. 문둥병 환자들은 사람들과 떨어져 고립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문둥병 환자들을 피해 다녔고 문둥병 환자들은 사람을 피해 다녔습니다. 저들이 도시에 들어와 거리에 다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들을 향해 돌을 던져서 내 쫓았습니다. 온갖 병자들이 다 예수님께 나와 고침을 받았지만 문둥병 환자만은 나올 수 없는 자리입니다.
● 그는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신 분이요. 무슨 병이든 고치시는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주님이 한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이 사람은 위험 속에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무릎 쓰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서 주님께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이라고 말합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표현입니다. 마땅히 나를 고쳐주십시오. 주님 밖에 없습니다.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원하시면 고쳐주시고 원치 않으시면 고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이런 말인가요? 이렇게 말하려고 마을 안까지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온 것입니까? ○ 어떤 이름 있는 목사님은 "이런 의사표현은 믿음의 부족이고,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의 부족이다."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가 "주여 원하시면" 이 말을 잘 살펴보면, 그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한 것도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 기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분수를 넘어 실수하는 것이,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하며, 주님을 설득하려 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 중에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주님! 들어보세요. 주님이 일하셔야 할 때입니다. 주님!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고쳐주세요. 주님 왜 지체하십니까? 왜 머뭇거리십니까?” 많은 기도들이 매우 독단적이고 힘과 권세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 생각해 보세요. 기도는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하는 것도, 내가 자격이 있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 이 문둥병자가 "주여 원하시면" 이라고 말할 때 그는 "주님! 어찌 제가 주님께 무엇을 구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저를 고치시고 안 고치시고는 주님의 처분에 달렸습니다. 저는 당신이 죽으라 하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일 뿐입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닌 미물에 불과합니다. 다만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해야 할 어떤 말도 없었습니다. ○ 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그는 자신이 너무도 약한 존재였습니다. ○ 우리도 친구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영예를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 마가복음에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 저가 26살 때 즈음에 단돈 500원을 가지고 배낭을 메고 전국 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잠자리가 없을 때 시골 교회목사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번은 여수지역에 갔는데 목사님이 아침에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고 전라도 쪽으로 간다고 말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여기까지 와서 손양원 목사님이 계셨던 애양원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제도 중간쯤에 있는 애양원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의 찬송과 기도로 교회가 무너지는 듯 하였습니다. 마치고 나오는데 검은 안경을 한 장로님이 악수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자고 해서 콜라와 떡을 내오는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망치듯 나와 목욕을 하고 옷을 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내가 너를 안다. 말하는 것 같습니다. ○ 사람들이 네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너는 가족과 친구를 보고 싶으나 볼 수 없구나! 세상 어디도 도와 줄이 없는 사람. 사람들에게 돌 던짐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욕을 먹어야 하는 한 가련한 한 생명이로다. ○ 지금 네가 ‘나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소망입니다.’하며 내 앞에 무릎 꿇고 있구나! ○ 주님은 그를 향하여 ‘네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 네가 이 자리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느냐?’ 주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그 사람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구약성경 말씀대로 제사장에 가서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① 주님은 구약의 율법으로 얻을 수 없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② 주님은 제사장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고친 문둥병자에게 이제 제사장에 가서 확인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이 사람이 제사장에게 정결하다 판정을 받고 사회에 복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구한 것 이상으로 더 좋은 갑절의 은혜를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한없는 절망으로 연약함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에 혼자 있어 누워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픔도 간절함을 기억하십니다.
○ 여기 또 다른 이적의 사건이 있습니다. 한 중풍병자가 실려 왔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네 명의 친구가 데리고 나왔다.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아마 마가복음에서는 침상의 네 귀퉁이를 네 사람이 잡았으니 네 사람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그를 돕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작은 방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저히 예수님께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18절)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사람들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어떡하나’친구들은 난감했습니다. 친구를 메고 오긴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보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네. 다음에 일찍 다시 오세”하고 돌아갔을 수도 있는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주위를 살피다가 친구를 침상 째 메고 지붕 위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유대인의 집은 지붕이 평평하였으며, 특별히 집안을 거치지 않고 밖에서 지붕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옥외계단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계단을 이용하여 지붕 위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겨내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유대사회에서는 기와를 쓰지 않았습니다. 누가 복음이 헬라 사회에서 기록한 것이기에 헬라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와라고 쓴 것 같습니다. 그들은 침상 네 구석에 줄을 매달아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지금 집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숨을 죽이고 듣는 중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지붕에서 흙먼지가 떨어지고 천정에 구멍이 나고 하늘이 보이는 것입니다. 방안에는 주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남의 집을 파손했으니 변상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친구들에게 중요한 것은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야단쳤을 것입니다.
● 그러나 주님은 (20절)에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저들은 병자를 침상 째 메고 나왔습니다. 욕을 먹으며 지붕을 뜯어서 병상을 네 귀에 줄로 묶어 내렸습니다. 예수님께 보여드린 저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의 믿음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 첫째 이들은 예수님은 능히 병을 고치실 것이라는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었더라면 아마 남의 집에 지붕까지 뚫어가며 사람을 내리는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②그리고 그들은 생각한 바를 실천하는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친구를 위하여 여러 가지를 권고를 하며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③그들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고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의지를 관철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먹을 것 다 먹고, 마실 것 다 마시고, 갈 데 안갈 데 다 가고, 내 볼 일 다 하면서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한다면 칭친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친구들이 있습니까? 그래도 이 본문의 이 중풍병자는 인간관계에는 성공한 사람인 듯싶습니다.
● 저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돌아와 목회를 하는데 잠시 잠깐 보러온 사람들도 있고, 몇 푼 쥐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교회가 얼마나 힘드냐? 내 너를 위하여 1년이라도 가서 도와줄께 하는 친구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관망하고 살펴보는 것이 싫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좋은 신앙의 친구가 있습니까? 술친구도 필요할 때가 있고 사업상 동료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나와 함께 진리의 탐구하고, 구원의 길을 함께하는, 그리고 나를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는 신앙의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친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친구를 소홀하게 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지금 나의 옆에 신앙의 친구들은 천국까지 같이 가야하고, 내가 약할 때 나의 믿음을 붙들어 주는 고귀한 친구입니다.
●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병자를 데리고 온 것은 중풍 병을 치유해 달라고 온 것인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가 뭡니까?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인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습니다. “이런 신성 모독이 있나!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할 수 있는데, 감히 사람이 죄를 용서한다니 말이 되는가!”
(23)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 어느 말이 쉽겠습니까?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어려운 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예수님에게는 어느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일도 죄사하는 일도 예수님의 권능으로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렵기로 하면 병 고치는 일보다 죄 사함을 선포하는 일은 더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병이나 고치시지 왜 이런 쓸데없이 골치 아프게 죄사함을 선포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죄사함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병이야 고치고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죄사함의 기회는 다시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 중풍병자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 중풍병을 당한 대다수의 사람의 사람을 보면‥ 그 마음에 분노와 화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 홀로 짐 지고, 속을 끓이며, 긴장해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건강을 회복하여 집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참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되심을 알아야 하고,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알고 모든 축복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 우리 모두는 건강을 원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원합니다. 누구도 사람들 앞에 자신의 추한 몰골을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지금 서산에 사시는데 연세가 84세이십니다. 2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 제가 잠시 10天 중국에서 시간을 내서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 침상에서 왼손 왼발을 꼼짝 못하고 누워계시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더 살아서 무엇 하냐?” 저는 그 마음을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평생을 남의 짐이 되어서 사는 것도, 남에게 추한 꼴을 보이는 것도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인생에 죄가 많아 그런 거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다니시면 밭도 일구시고, 지금은 과거보다 더 큰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십니다.
이상의 두 사건 즉, '나병환자의 나옴'과 '중풍병자의 나옴' 의 사건을 통해 나올 수 없는 형편에서 온갖 방해와 난관을 무릎쓰고 나온 병인을 봅니다. 어찌하든 주님 앞에 나와야 하고, 어찌하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치료가 있습니다.
○ 나의 현상을 바라보고 부끄러움에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시험에 든다.’ 함은 어려움을 당하면 약해져서 기도가 멀어지고, 교회가 멀어지고, 마음에 평강을 잃어버리고, 낙담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련 속에 여전히 강한 사람으로 주님 안에 소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이 중풍 병 환자가 바로 나요. 이 문둥병 걸린 자가 바로 나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 주님은 나의 아픔을 아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내게 갑절의 은혜로 더하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메말라 죽은 나의 영혼도 살리시고,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비틀어지고 얼키고 설킨 나의 삶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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