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1:12-25   <열매 맺는 신앙>

[막 11:12-13]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이 기사는 [14절]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20절]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서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13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무화과 때가 아닙니다. 아니~ 무화과나무 때도 아닌데 어찌 기대한 열매가 없다고 해서 나무에게 다시는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저주하셨다. 말이나 됩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잘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인 무화과나무의 추수기는 6~7월경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3~4월경에 열리는 이른 무화과가 있는데 우리는 이를‘파게’라 합니다. 예루살렘 가까이 벳바게(무화과의 집)란 동네가 있지요? 그런데 이‘파게’라는 이른 무화과는 상품성이 떨어지므로 일일이 따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후에 무화과가 제대로 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의 주인은 자신이 일일이 파게를 따는 수고를 하는 대신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것을 공짜로 따 먹도록 허락합니다. 또 구약의 율법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를 위하여 밭이나 과원에서 모든 열매를 다 따지 않고 남겨 놓아야 하는 규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는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를 선뜻 내 주었던 나귀 주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주인과 나귀새끼는 구세주의 가시는 길을 예비하여 하나님의 기쁘심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었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대속 제물로 예비 된 자로 오셨듯이‥ 우리도 예비된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인적 없는 들판에 한 송이 야생화도  하얀빛, 분홍빛, 빨간빛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 자신을 지켜 나가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살아있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이 남과 북으로 갈리는데도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고, 이 시대에 박근혜 대통령을 세우신 데에도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습니다. ○ 여러분은 교회가 능멸과 멸시를 받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를 친구교회로 부르신 부르심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주님이 부르시는 시간에 그 자리에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멋져 보일지라도,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이 자신에 취하여 하나님의 참 뜻과 부르심을 모르고 산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을 받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다시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저주하시니 다음날 뿌리 채 말랐더라했습니다.

1.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거룩한 하나님의 거하시는 전> 이 되라 하십니다.

[14절]과 [20절]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성전청결의 사건입니다.

[막 11:15-17]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리러 오면 제사 제물을 사야 했습니다. 제물을 사는 과정에 있어서 제사장과 상인들은 흠 없는 제물을 사도록 권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였습니다. 또 심지어는 외국에서 오는 유태인들에게 외국돈으로 성전에 드리면 안 된다하여. 돈을 바꾸게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이방의 뜰에는 환전소가 있었는데, 환전과정에서 제사장과 상인들은 또 막대한 이익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밤낮 제사를 집행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돈과 이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연예인들도 간증을 위해 큰 교회를 찾아가야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인원수를 늘리기 위하여 큰 비용을 들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연말 전도 상으로 고급 자전거나 심지어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건 교회가 있다고 하고, ○ 노인급식과 경노학교를 위하여 최고급의 대접을 한다고 지나치게 재정지출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의 전도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전도를 돈의 힘을 빌려 최대한의 효과를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작은 교회는 어쩌란 말입니까? 그런데 ○ 교회 재정의 여유가 있다 할지라도 쌓아놓을망정 결코 경제적으로 힘든 교회 이웃교회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 돈으로 세상을 얻으려 하고, 돈으로 사람을 사고, 돈으로 예수님을 사려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 요즈음 새신者들은 작은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건물이 웅장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 있고,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 새신者들이 어찌 작은 교회의 좋은 점을 알겠습니까? 새신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멋진 교회에서 예배 하는 者가 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문화적인 크리스천’이라고 말합니다.  러나 진실한 믿음은 프로그램에 있지도 않고, 웅장한 교회에서 예배하는데 있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물질로써 채우고, 세상의 온간 잡다한 것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수가성의 여인에게 5남편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5남편이 자신에게 인생의 성공과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늘 우리에게 그렇게 유혹합니다. 세상만물을 너에게 주겠노라. 대신 너의 마음을 나에게 팔아라. 그러나 결국 여인에게 돌아온 것은 수치와 경멸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찾아온 메시아 주님을 만났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담대하게 동리에 들어가 “와보라 내가 본 사람이 구세주가 아닌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영혼의 남편을 만난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집은「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나는「만민이 기도하는 집」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실 정결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성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2. <능력 있는 기도의 삶>을 위하여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용서는 기도하기 전에 전제조건입니다. 용서가 없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움을 버리고 용서할 때,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막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돌아온 탕자에 대한 비유,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탕감 받은 일,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죄를 묻지 않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 이 하나 하나가 모두 예수님의 관용과 너그러움에 관한 강론입니다. 한 번만 받아들이고, 이번만 이해해주고, 오늘만 용서해주는 것으로 용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 나에게 잘못해야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 또 나에게 잘못을 사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용서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늘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 용서는 미래에 있을 가능한 실수에 대하여도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만물도 √사람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바랍니다. 과거에는 저는 [엉겅퀴]를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식물이고 이름도 참 못났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사람이 부인병과 관절염에 특효약으로 엉겅퀴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귀한 식물이 되었습니다. 모든 만물이 있는 그대로 귀하고, 내게 주신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용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시었는데 이는 인간존중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존중은 용서하고 수용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내가 못났으면 못 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고 있고, 인정받고 있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 용서한다 함은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중요하고 나의 뜻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용서란 그의 생각이 나와 다름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용서는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용서는 화해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 내가 살아있고, ○ 내가 인정받고, ○ 내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지배하고 차지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 중국인에게 배울만한 좋은 점이 있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당나라가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모든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늘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의 어느 나라도 쇄국정책을 해서 나 혼자 자급하고 경제발전을 힘쓴다고 해서 번영하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나와 다른 모든 것을 귀히 여기고 존중할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 회장이 정부 부채 해소를 위해 부자 증세를 주장하였고, 로레알 등 프랑스 기업 대표와 임원들은 주간지 기고문에 "자본 흐름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도록 '특별 기금'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우리는 조국 프랑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어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가사회가 현재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 스스로 그것에 대해서 부담과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가난한 자들의 땀과 수고를 인정한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공동체로 살아간다 함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는‘문’과도 같습니다. 용서 없이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자연만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것은 용서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서로를 살게 하는 생명입니다. 


[마가복음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무화과나무가 뿌리 채 마른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제자들에게 믿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을 성결하게 한 사람, 용서하므로 모든 사람, 만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신과도 같습니다

[요 10:34-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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