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로마서 1:1-17 <무슨 신령한 은사>
로마서 1:1-17 <무슨 신령한 은사> 2013. 10. 27
바울은 온 세상의 중심인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소원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나중에 이러한 바울의 기도는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여행경비를 들이지 않고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 로마교회는 좋은 믿음의 소문을 가진 교회입니다. (8절)에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재정적인 능력이 있어서, 로마 각지의 교회들을 지원하고, 유대인 교인들을 돕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구약의 율법에 기초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행28장)에 로마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행 28:21-22]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바울은 그들에게 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자세히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②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11) 이 은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데, 과연 이 신령한 은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초대교회의 복음의 역사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시작하여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를 통한 성령강림의 체험은 이방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렀을 때, 그 곳 성도들은 아볼로에게 배운 그리스도인들이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는데, 바울이 기도하니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체험을 하고 나니 그 순간까지 그들이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달라져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우상숭배에 연관한 서적을 불태우는 사건이 있기까지 했습니다.
○ 아마 바울이 로마서에서 ‘신령한 은사’라는 말을 쓸 때는, 이와 같은 성령의 강림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것입니다.
● 지금 이 시대에는 요한의 세례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일하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유사한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율법에 충실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정결하고 정숙하고, 경건하고, 선행을 베풀며 예배에 힘써 참여합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칭찬받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문화적인 그리스찬]이라고 합니다. (성령을 모르지만)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며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축복을 하신다. 생각합니다.
[롬 1:11-12]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 위 함을 얻으려 함이라
▶ 은사란 단어 헬라어 카리스마(χαρισμα)는 “성령에 의하여 부여된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 합니다” 사전에는“신의 은총,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이라 했습니다. 영어로는 거저 주시는 선물(gift)입니다.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성도들에게 봉사생활을 감당하라고 성령께서 주시는 각양 선물입니다. ○ 은사는 자연적인 재능과 구분됩니다, 자연적인 재능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나면서 얻어지거나,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은사는 영적인 출생, 즉 예수를 믿어 거듭남과 동시에 성령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 주의 자녀는 마땅히 [성령충만], [은사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주님은 자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은사를 주시어 일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은사라고 하면 [고린도전서 12:8-10]의: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들의 분별, 방언, 방언 통역 9가지 은사를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같은 것들도 포함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과 같은 로마서에서도 몇 가지 은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6-8]: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함, 구제함, 다스림, 자비
[에베소서 4:11]: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 교사
이 외에도 성경에 확정되지 아니한 무수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신령한 은사’라는 말에서 바울은 (신비와 비 신비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다양한 영적인 능력들과 체험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의 삶에 성령이 주시는 남다른 카리스마(χαρισμα)인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신령한 은사를 소유하는 길은 복음을 믿는 데 있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롬1:2-4]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여기 “능력”(δυναμι)이라는 말의 원뜻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지녔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병 들린 자, 귀신 들린 자, 상처받은 자, 나병환자, 열두 해를 혈루증 앓은 여인, 부자 삭개오 이들 모두가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주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와 회복과 해방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어> 사람의 내면이 새롭게 되고, 미워하던 사람이 사랑스러워지고, 인생의 길이 분명해지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 받고, 우둔한 자가 지혜를 얻고, 사탄의 줄에 매인 자가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의 내용일 뿐입니다. 내용, 지식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들은바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여야 합니다. 이때 과연 복음이 복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시 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그러면 왜 어떤 사람에게 복음이 <능력의 복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복음을 믿기는 믿지만, 지식으로 받은 까닭입니다.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대상 16: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 우리는 늘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령께 묻지 않고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힘이란 권력이나 재물, 인간의 지혜입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간이 자신의 힘만을 의지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나는 자수성가 했다. 나는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하며 아무의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아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 교회 세례교인이 되었어도 거듭남이 없이 다니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많은 사람이 내가 더 노력해서, 더 많은 재물을 얻고, 세상에 머리가 되고 나서,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쓰시는 자가 되겠노라 말합니다. ○ 많은 사람이 뭔가를 더 배워서 위대한 사람이 된 후에 하나님을 위해 귀한 일을 하겠노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복음이 최상의 가치(최고의 힘)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입니다.
● 복음은 인류 최상의 가치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를 사용하시어 잘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재능이 많고 재물이 많다고 지식이 많다고 쓰시지 않습니다. ○ 위대한 사람이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고 쓰임 받는 사람이 쓰임 받는 사람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 말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모세는 입술이 둔한 자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학문과 배경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젊음과 학식과 교양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남의 것보다 좋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느낄 때 한없이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칭찬과 박수갈채를 받을 때 대단히 자랑스러워합니다. ○ 복음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 선생님은 복음을 들고 다님으로 해서 수많은 비난과 천대 멸시를 받았습니다. 고난과 방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바울 사도는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로마의 성도들도 일찍이 복음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들어 아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과는 무관한 사람을 살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몰랐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올 때까지 근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바울은
[롬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롬 1:13]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두 방면에서 열매를 맺기를 힘써야 합니다.
(1) 신앙의 열매 = 온전한 인격, 진실한 삶, 선한 일, 신앙의 성장의 결실입니다.
(2) 전도의 열매 =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빚 진 자라고 하였습니다(14). 우리 모두 빚진 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암살단을 조직하여 전쟁의 종지부를 찍겠다던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1943년에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1945년 미군의 독일 진입을 앞둔 4월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신학자가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이 진보적인 신학자였지만 복음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보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형제의 입술을 통해 선포된 육성의 복음이 다른 형제의 귀를 통해 전달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단지 나의 머릿속에 있는 한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선포될 때만 그것이 사람의 육성으로 선포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먼저 복음을 선포할 때
① 나의 믿음이 공고해 지는 것이고,
② 복음을 듣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은 선포 되어질 때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설교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수아2:1-14 <라합의 선택> (0) | 2013.11.10 |
---|---|
신명기 32:9-14 <너를 지키시는 자라> (0) | 2013.11.03 |
신명기 11:8-17 <여호와의 눈> (0) | 2013.10.20 |
민수기 35:10-32 <도피성> (0) | 2013.10.15 |
사도행전4:1-12 <성령충만을 위하여> (0) | 2013.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