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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1-8 < 나라를 위한 기도 >
디모데전서 2:1-8 < 나라를 위한 기도 >
○ 청와대의 대통령을 아무 때나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대단한 특권으로 여길 텐데,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드릴 수 있고, 무엇이든 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특권입니다. 기도를 말하면 부담스럽고, 의무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아름다운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평강을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의 심령 속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민족도 기도를 통하여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새롭게 된 결과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요한1서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제자들이 큰 무리에 둘러싸여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으시자 무리 중 한 사람이 나와 하소연합니다. “선생님, 귀신 들린 제 아들을 데려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쫓아내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아이를 데려오게 하는데. 아이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며 나 뒹굽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며 명령하십니다. “말 못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썩 나와서 다시는 들어가지 말거라!”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에게서 나가고, 아이는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집니다. 모두 아이가 죽은 줄 알고 웅성거릴 때,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키시니 일어납니다. “저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마가복음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일까?” , “내가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은 자신 뜻대로 하시는 분이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해진 것, 사람이 바꾸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기를 원하십니다.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심,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 현재 한국에는 굿을 문화라 하고, 무속 춤을 배우는 사람, 점집을 찾아가는 청년들이 넘쳐납니다. 돌과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사람들, 멋지다 말하는 사람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귀신이 들어갑니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귀신들리는 겁니다. 어둠의 영에 지배당하는 겁니다.
○ 요즈음 TV를 보면 가관입니다. 지식인이라 하는 사람이 동성애자를 성소수자라 하여 차별금지법을 만들려 합니다. 이들도 똑같이 목사가 될 수 있고, 반대하는 설교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거부하면 잡아갑니다.
○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 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 신앙과 우상숭배가 다 떠나고, 정직한 사람이 사는 나라, 더러움이 무엇이고 정결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딤전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레바논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갔습니다. 세계금융업의 중심지로 경제적으로도 큰 힘을 가지고 있었죠. 많은 이들의 자녀가 사립학교에 다니며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아름다운 카페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나라도 시간이 지나며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어요. 레바논은 국경을 개방해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웃 나라와 좋은 관계, 경제를 위해, 무슬림 학생들이 레바논으로 유학을 오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마친 후, 무슬림은 현지에 정착해 일하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인구 구성에 점차 변화가 나타났어요. 기독교 가정은 대체로 1~3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무슬림 가정은 자녀 수가 훨씬 많았어요. 무슬림 가정의 자녀 급증하면서 인구 비율이 바뀌었고, 1970년대에 원래 기독교인 인구가 60%에 이르던 레바논은 기독교 국가로서 인도주의적 선의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과 이슬람 난민들을 받아들였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옳다는 기독교적 신념으로… 이를 우리는 사회주의 pc 운동이라 해요. 말로는 “옳음을 말하고 실천한다.” 하지만 자신을 지키지 않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지요.
결과는 사람의 생각과 달랐어요. 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의 무슬림들과 손을 잡고 기독교 공동체를 부정하였고, 마침내 무장 충돌까지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은 기독교인들이 예배 중이었는데 무장한 이들이 교회로 들어와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날 많은 이들이 다치고 몇몇은 목숨을 잃었죠. 이 사건을 계기로 레바논에는 내전이 발발했고 레바논 사회는 혼란에 휩싸였어요. 이 내전에 다른 나라에서 온 무슬림 전투원들도 가세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죠. 내전 중에 많은 기독교인은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레바논은 다양한 종파를 인정하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교가 다수인 사회가 되었어요.
지금의 영국도 똑같은 상황입니다. “난민을 돕는다. 문화적 다양성을 이룬다.” 말하지만 지금 성경책을 거리에서 전하면 잡아갑니다. 교회는 텅텅 비어 있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해요. 무엇이 옳음이고 무엇이 그름인지 알아야 해요.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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