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4:1-6 <기업 무를 자>

이스라엘 사람은 그 사람의 자손을 통하여 계승됩니다. 그래서 남자가 상속자가 없다는 것은 자손과 함께 그의 이름도 영원히 지워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계대결혼(繼代結婚)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 25:6) 명령하셨습니다. 자손의 끊어짐은 그 사람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했고 이것은 곧 저주와 파멸이었습니다. 반면에 이어지는 자손에 의해 그 이름이 영영히 존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以利米勒)과 두 아들은 모압 땅에서 죽었고, 늙은 아내 나오미와 죽은 아들의 아내 룻이 본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다행히도 엘리멜렉은 모압 땅으로 가기 전에 남겨둔 약간의 땅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후손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단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는 룻이 자식을 얻어 엘리멜렉의 이름을 계승하는 것 만이 가문을 잇는 것이므로 ‘기업 무를 자’를 찾습니다. 이것 만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 나오미는 보리밭에서 마음 놓고 이삭을 줍게 함으로 자신들의 생계를 도와주는 먼 친척, 착한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로 생각하고, 보아스를 통하여 후손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슬며시 야밤에 보아스가 잠자고 있는 들로 보냅니다. 밤에 들에 갑자기 찾아온 룻을 본 보아스는 깜짝 놀랍니다. 보아스는 모압 여인을 룻을 음란한 여인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이방 여인이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보아스는 적당히 룻을 들판에서 여인을 취하여, 아기를 낳게 하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보아스의 생각에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합법적인 절차를 걸쳐 구원받을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법적으로 장애가 있었습니다. 룻에게 자식을 얻게 할 사람 ‘기업 무를 자’는 보아스가 아니고, 가장 가까운 친척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많은 사람이 다니는 성문 앞에 필요한 증인으로서 장로들을 청했고, 많은 백성을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업 무를 자’는 형제나 친족이 어려움에 처하면, 그것을 해결해 주어야 할 구속자(救贖者)입니다. 기업을 무르는 사람은 친족이 내놓은 땅을 우선으로 살 권리가 있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손해를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땅만 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오미는 이미 늙은 여인으로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은 홀로 된 이방 여인입니다. 사람들은 모압 여인 룻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힘없고 불쌍한 이방 여인일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기업 무를 자’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차지한다는 생각에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계대결혼(繼代結婚)까지 하여야 한다는 말에 그의 친족은 ‘기업 무르는 일’을 포기합니다. 계대결혼까지 하여 자녀가 생길 경우, 그가 산 기업이 자신 이름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엘리멜렉의 친족은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행사하려 했다가 번복하여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기고 만 것입니다.

○ 여기서 ‘기업 무를 자’는 율법에 속한 자를 말합니다. 율법이 ‘의(義)’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義’라는 함은 羊의 희생을 통하여 나(我)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율법은 스스로 희생하기를 거부합니다. 법은 사람에게 자비를 행하지 않습니다. 법은 얼마든지 가진 자를 위해 유리하게 사용됩니다.

○ 힘없고 나약한 구원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보아스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자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밭과 롯을 사기 위하여 대가(代贖)를 치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때에 떡과 물로 이스라엘을 맞이하지 않았고, 이방 선지자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기 때문에(신 23:4)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여호와의 총회”는 이스라엘 공동체, 영적으로 말하면 구원받은 자의 반열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명기 23:3)에서 말하는 "영원히"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모압과 암몬 자손에 해당하는 지금의 아랍 이슬람 사람은 영원히 구원의 대상에서 버려진 존재들일까요? 우리는 이 단어가 민족과 국가, 인종을 결정하는 결정적 단어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룻기에 의하면 룻은 율법에서 운명적으로 버려진 “모압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자기 민족과 신들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1:16]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니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율법이 하나님의 자비를 가로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율법에 결정적인 규정에서 벗어나 화해와 용서로 구원의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 노아의 아들은 셈, 함, 야벳입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 아들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가서 떠들었습니다.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잔다”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냈습니다. 이에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저주하여 말하기를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가나안은 흑인의 조상인 함의 후손으로 노예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말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보아스를 통한 계대가 엘리멜렉의 집을 세우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고, 보아스가 다윗의 조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왜 다윗왕은 보아스의 계보로 기록된 것일까요? 엘리멜렉(以利米勒)이 아니고? 물론 엘리멜렉은 베들레헴 사람 에브랏(以法他) 사람이라 했습니다. (룻 1:1) 그도 유다의 후손이 틀림없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통하여 엘리멜렉의 가문을 세웠습니다.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말합니다. 동시에 [룻기 4장] 끝에서 놀랍게도 그 아이 오벳은 “나오미의 아들”이라 불리면서도 동시에 보아스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기 4:21-22]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보아스는 두 가문을 하나로 잇는 구속의 모형입니다. 보아스는 “율법적 요구”를 이룬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는 사랑과 은혜로 이방 여인 룻과 나오미를 구속하였습니다. 이로써 보아스라는 이름은 다윗의 계보에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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