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1-7 <착한 양심을 가지라>

[3:1]의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당시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추천서를 보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꼬투리로 잡아 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4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혼란 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던 사단의 일꾼들과 달리, 오직 진리를 나타내는 데 온전히 매진하는 자신을 말함으로 사도의 자격을 천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자신 ‘사도로서의 권위’를 말하는 데 “자신의 ‘진실성’으로 자신을 천거한다.” 말하는 것입니다.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개역 한글]

여기서 ‘궤휼’이란 부정적 의미로 ‘교활한’ ‘속이는’이란 뜻을 지닙니다. 이 단어는 사단이 하와를 속이는 데 사용한 방식으로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하여 어떤 술수나 속임수도 개의치 않는 자세’입니다.

[2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아니하고라 말에서 ‘혼잡하게’라는 말에는 ‘거짓으로 속이다.’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불순물을 섞어 순도가 떨어진 금이나 포도주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의 순결성에 흠집을 내지 않았음을 강조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거짓 행동을 싫어하십니다. 십계명의 제9계명은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하셨고, [요한 8:44]에서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과 궤휼’이란 철저히 거짓의 아비, 사단에게 속한 특징입니다.

○ 바울은 교활한 자들, 거짓을 행하는 자들에 대하여 [고후 11:13]에서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신은 이처럼 사단에게 속한 특징인 궤휼을 전혀 행하지 않았다.” 말하며 자신의 사도됨을 주장합니다.

○ 성경을 해석함에는 개인의 주장이나 탐심, 개인의 자랑이나 명성, 화려함이 섞이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 본연의 뜻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여야 합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의 주장을 위하여 성경의 구절을 끌어다 맞추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은 성경의 바른 이해가 주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 본연의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바울은 [4:2]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양심에 천거한다.” 말하였고, [5:11]에서는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너희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왜 양심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인가요?

 

사람 안에 양심(Conscience συνείδησις)은 사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나침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은 주로 ‘도덕적 윤리적 판단’을 하여, 어떤 행동 이전에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가?' 질문하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자신의 양심과 보통 사람이 말하는 ‘나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 말할 때 그 양심은 같은 양심일까요? 모든 사람의 양심이 도덕적 윤리적 판단기준에 적합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만한 것일까요? 양심에는 선한 양심이 있고 반복된 죄와 거짓으로 무뎌져 더이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화인 맞은 양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양심이 같지 않습니다.

(딤전 1:19)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권면하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 거리낌 없는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였다”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4]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지금 세상에 사람들의 마음이 혼미한 가운데 있습니다. ○ 미국의 어느 주에서는 한국인 목사가 동성애자의 결혼식 주례를 거부하였다 하여 파면을 당했습니다. ○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 안에는 중성애자를 위한 화장실을 따로 설치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차별금지법에 찬성합니다. ○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불교 천주교 이슬람 등등 각종 종교의 수장들과 대화와 화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당 안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자리 잡을 날도 가까운 듯합니다. 지금 세상은 이 세상의 신이 뭇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 것입니다.

◎ 바울은 한때 옳은 줄로 생각하고 행동하였으나 돌이켜보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방해한 자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잡아 가두는데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이는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행한 것입니다. 뒷날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생명의 길을 갔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디모데전서 1:13)

○ 이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에게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에도 자신의 사도로서의 진실성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린도 교회의 모든 성도가 바울의 진실성을 받아들이고 사도의 권위를 인정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의 많은 성도는 여전히 율법을 말하고, 행위를 말하는, 행위 구원이라는 또 다른 복음에 빠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4]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절] 끝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혼미해진 까닭은 마땅히 붙들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은 까닭입니다. ○ 성경을 성서라고 말하며, 세상의 많은 책 중의 하나로 여기고, 세상의 관습과 즐거움, 세상이 말하는 온갖 잡된 것들을 붙들기 때문에 양심이 혼미해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진 착한 양심을 소유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착한 양심‘이란 단순히 도덕적 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양심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라 말하면서 양심이 자신을 교훈한다 했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양심은 그의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시편 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 바울은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양심‘이란 사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착한 양심과 믿음이 함께 航行할 때, 신자는 사람과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형편에 따라 믿음 따로, 행동 따로인 사람, 양심을 저버린 사람을 ‘믿음에 파선하였다’ 했습니다. 착한 양심을 통하여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담대한 믿음을 얻으며, 신앙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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