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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1-17 <의와 평강과 희락>
로마서 14:1-17 <의와 평강과 희락>
[로마서 14:13]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믿음이 연약한 형제로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행하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이는 작은 부분에까지 우리의 신앙을 감찰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형제를 실족게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 사실 작은 문제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은 거의 큰 바위 때문이 아니며 작은 돌뿌리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마태 25장에서 “천국은 마치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하시며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과 심판은 큰일의 성취에 따른 것이 아니고 작은 자를 섬기는 것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의 경험이 이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일까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나그네를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라 생각한 그들이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천사였던 것입니다.(히 13:2)
[로마서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바울은 자신이 아는 것과 확신이 단순한 이성적 사고에 의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주 예수 안에서 얻은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지식이기에 주 안에서 확신하는 것이라 했을까요? [14:14]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즉, 바울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체의 것들 가운데 본질상 부정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물건은 본래 도덕적 의미에서 선하거나 악하거나, 깨끗하거나 더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가치 중립적이기 때문입니다. ‘속되다’ ‘악하다’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물 자체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모든 음식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딤전 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그러나 당시 로마 교회 안에 많은 사람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부정한 음식에 대한 규례로 인하여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비롯하여 일부 음식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어떤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여전히 율법 조항에 얽매여 특정한 음식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는데, 바울은 이에 대하여 “다만 그것을 부정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 음식은 부정한 것이 된다.” 했습니다. 사실 어떤 음식이 부정한 것이 아닐지라도 어떤 신자가 마음에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그 음식을 먹는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바울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음식을 부정히 여겨 먹지 않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바울은 “모든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 성도의 행위가 다른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니…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하여 우리는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거나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말합니다.
[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 이러한 태도는 음식을 떠나 다른 면에도 적용됩니다. 유대인들은 음식 규례가 마치 경건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였고, 그 외에도 전통을 중시하여 음식을 먹기 전에 부지런히 손을 씻는 일, 안식일에 관한 여러 규례 등, 여러 가지 금기 사항들이 있어 이것을 마치 경건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본질적인 가르침과 전혀 무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자유가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일보다 우선되게 하지 말라” 바울은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자유, 내가 옳다고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상처를 입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에게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할지라도 내가 취한 어떤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는다면 이는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생각을 들어주고, 배려하는 것이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의인을 위해서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서 죽는 자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롬 5:7) 그리스도 주님은 의인으로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이것이 ‘아가페’ 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되 주님의 모범을 따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요 13:34,35)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① 성경에서 ‘의’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 상호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과 조화로운 관계 ‘의’를 말한 것은 성도가 하나님을 향하여 신의를 다하는 것처럼 동료 형제에 대하여도 신의를 다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우리가 죄인의 상태로 있었을 때 자신을 드리신 것처럼’ 형제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절제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알라 권고하는 것입니다.
② 둘째는 평강입니다. 평강 에이레네(εἰρήνη)는 외적 환경과 상관없이 내면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평강은 성령이 내주하실 때 성령 안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강은 평강을 위한 노력이 없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peace maker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이 있다.” 했습니다. 기도와 감사로 얻어집니다. 문제를 두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룬 줄로 믿고 감사하십시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세상의 모든 일이 내 생각,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고, 문제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이때 우리는 평강의 상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는 것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뜻 아래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했습니다.
③ 셋째는 희락입니다. 희락 ‘카라(χαρά)는 문자적으로 ‘기쁨’ ‘즐거움’을 뜻합니다. 바울은 그의 여러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슬픔과 고통, 근심 가운데서 있다 할지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증거합니다. [고후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이라는 말처럼… 이것은 참으로 역설적이기는 하나 그 기쁨은 성령 안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세상 만족과는 다른 것이며, 주 안에 있는 것으로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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