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1-9  <요단을 건너>

[여호수아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가 어떤 인물입니까?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바로 앞에서 그리고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행하던 자요. 이스라엘 역사상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얼마나 낙담 되고 슬픈 일입니까? 큰 위기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제 백성의 믿음이 준비되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향하여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라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이 말씀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하신 말씀과 같이 명령인 동시에 위로와 격려입니다. 낙심과 암울한 자리에서 하나님만 바라는 나의 백성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현실에 안주하여 소망 없이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2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요단을 건너'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단을 건너야 하기에 하신 말씀이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고전 10:1,2]에 보면 바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세례받음, 즉 중생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38년간 광야를 방황하다가 하나님 징계의 말씀대로 광야에서 다 죽고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할 출애굽 2세대들은 대부분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세례의 경험을 갖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옛사람을 물에 장사지내고 전혀 새로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6:3). 요단을 건넌다는 것은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지내는 경험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때,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초기 기독교의 교부인 어거스틴은 수사학 공부와 명예 추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배움보다는 세속적 성공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삶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많은 학문을 한 배운 사람이었지만 젊은 시절, 쾌락과 성적 방탕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는 “나는 스스로 타락을 기뻐하였다.”라는 표현할 정도로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3 그리고 그는 한때 마니교(Manichaeism)에 빠져 9년간이나 이단 사상을 따랐습니다. 그는 진리를 찾고자 했지만, 진리의 빛을 외면한 채 잘못된 길에 방황했던 것입니다. 그는 4. 죄를 죄로 알면서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명한 “배 훔친 사건” 고백에서, 그는 단순히 배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둑질 그 자체를 즐겼다고 말합니다.

○ 진리를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우리는 옛사람이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옛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여호수아 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라는 이 말은 ‘이미 약속한 대로’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성취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세월의 변화에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일을 시작하고 완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죽음과 관계없이 여전히 유효하며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즉,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나안을 이미 차지한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행하시며 또한 전능하셔서 못 이룰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이미 성취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어느 것 하나 성취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어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룬다." (55:11) 또한 자신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332). 라고 하셨습니다.

①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리라”(창 15:5). 그의 나이 100세가 되어 아들 이삭을 얻었고, 그 아들 야곱은 12지파의 아비가 되었으며, 또 그들이 가뭄으로 인해 애굽에 가서 수백 년간,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크게 번성(출 1:7)하였고, 오늘날 유대 민족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믿음의 후손이 전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②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인류가 죄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와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의 자손’으로 영원한 왕 메시아가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약속은 이사야 이후 700년 이상 지난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③ 예수님은 부활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성령 강림을 약속하셨습니다. [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주의 말씀대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④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을 때 그에게는 죽음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말씀대로 바울은 로마로 가서 심판을 받았는데, 이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로마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그는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성취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널 때의 나이가 80세 전후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여호수아는 약 38년 전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파송된 12명의 정탐꾼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함께 정탐을 나간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과의 전쟁을 두려워하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말하자 백성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여 울었습니다. 애굽의 따듯한 아궁이 앞에 있던 것을 부러워하고, 시키는 것만 하면서 살아간 것이 좋다 하였습니다. 여전히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38년이란 긴 세월의 고난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라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거듭난 하나님 백성의 수가 채워질 때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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