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명기 6:1-9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 6:1-9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성경은 우리 하나님을 유일한 여호와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시며 우주 만물을 운행하게 하시고, 질서를 주시는 분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신론, 범신론, 샤마니즘의 자연신을 배격합니다. 또 철학 사상이 말하는 ‘절대 존재’, ‘절대 이데아’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관념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세상은 수많은 헛된 우상들을 만들지만, 세상에는 오직 한 분,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우상에게 절하고 구하는 것처럼 분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데 반하여, (5절)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라면, 본문 (5절)은 그 계시 된 하나님에 대한 각 개인의 인격적인 반응에 대한 촉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세상과 국가 민족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우리 각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우리에게 아버지처럼 연인처럼 친구처럼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6:5]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라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면 각 단어 ’마음‘ ’성품‘ ’힘‘ 앞에 ’모든‘이란 수식어가 생략된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각각의 단어 ’마음‘ ’성품‘ ’힘‘ 앞에 2인칭 남성 단수 ’너‘라는 말도 생략되어있음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신약의 마가복음에도 신명기 원문을 인용하지만 ’네‘라는 2인칭 남성 단수를 1번 쓰고 있을 뿐입니다.
[마가복음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우리는 각 단어 앞에 ’네‘라는 인칭대명사와 ’모든‘이란 수식어를 붙여, 신명기 본문을 다시 번역한다면 ’네 모든 마음을 다하고 네 모든 성품을 다하고 네 모든 힘을 다하여‘입니다.
즉, 우선 ’네 마음‘ ’네 성품‘ ’네 힘‘이란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기 위한 행동의 동기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랑이 다른 사람에 의해 요구되거나 다른 사람의 이목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마음’ ‘모든 성품’ ‘모든 힘’을 다하라는 것은 온 마음, 온 성품, 온 힘을 다하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자신이 가진 것들 가운데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 마태 마가 누가 세 공관 복음서는 하나같이 ‘목숨을 다하고’라는 말을 첨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①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이란 자신 생각과 감정 의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서 한 마디로 ‘(한 사람의)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의 진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성품을 다하고’에서 ‘성품’이란 단어의 국어사전 의미는 타고난 성질’로 타고난 인간의 성질인데 실제로 인간은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물든 인간의 성품을 가지고 ‘드린다’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말입니다. 따라서 ‘성품을 다하여’란 말에서 성품( ‘네페쉬’ נֶפֶש )이란 인간의 일반 성품이라기보다는 ‘영혼’을 말하는 것으로 ‘너의 온 영혼을 다해서’라는 말입니다.
③ 마지막으로 ‘힘’이란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다는 말은 관념적인 승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에, 이웃을 섬기는 일에, 수고하며 봉사하는 것입니다. (18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했습니다
○ 이상의 세 가지는 한 인간이 가진 모든 최상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릴 수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많은 부분을 하나님 앞에 감추고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말합니다.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몸을 가린 채 숨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 베드로는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었을 때 당당하게 자신의 입으로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자진이 주님 못 박히실 때 “나는 저 사람을 알지 못한다.” 부인하고 도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감출 것이 없어야 합니다. 벌거벗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자존심도 명예도 소용없습니다.
(6절) 이하에서는 구체적인 사랑의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먼저 그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는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소중하고 기쁨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 월남 이상재 선생은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의 사무관으로 1888년 한 해를 미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월남선생은 기술 문명이 발달 된 강대국의 모습을 목격하고는 강대국의 비결을 배워 조선을 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때 청국 공사관 관리가 "서구 문명은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말하면서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 한 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월남 선생은 한문 성경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은 군대는 어떻게 훈련시키고, 군함을 어떻게 건조하는지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그런 교범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몇 마리로 5천 명을 먹인 것이라든가, 사람의 몸이 부활한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월남 선생은 실망하여 성서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미국을 이토록 강한 나라로 만들게 한 근본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액면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될 요절이 정말 이 속에 있단 말인가?' 선생은 다시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군사육성법이나 무기 제조법 같은 비결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월남은 다시 책을 던졌다. 이처럼 월남 선생은 성경을 집었다 던졌다 하기를 몇 차례 거듭하다가 결국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성경의 진리를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옥중에서였습니다.
과연 성경 말씀은 나에게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고 생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나에게 지혜를 주고, 나의 새로운 인격을 만들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고난 속에서 유일한 나의 친구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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