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3-17  <대제사장의 기도>

[1절]에 보면 주님은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미 도래하였음을 나타내는 표현이자 이미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두 가지 앎으로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분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한 분은 구원의 주체가 되시고 한 분은 구원의 근거와 통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거센 배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유일한 통로가 예수라고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안다’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을 성경을 읽고 신학을 배움으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앎이란 삶과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믿음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철저히 복종시키셨습니다. 주님은 땅에 계시는 동안 어느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어느 것은 자기 뜻에 따르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전폭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나의 가는 길에 나의 만족과 성취를 위해 내가 취사 선택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종종 범하는 잘못은 무슨 일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요구에 밀려서 이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인 사울이 망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적인 요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비극으로 마치게 한 것입니다. (삼상15장)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나의 영광을 구하고, 나의 성취를 이루고,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일을 멈추고 후배와 후학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인계하는 것입니까? 이 시대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 지금 106세이신 김형석 교수가 회고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몇 살쯤 되어 철이 들었나 생각해 보니 “나이 60은 되어야겠다. 이 나이는 되어, 자신을 알고 자신에 확신하게 되었다. 나이 60이 인생의 출발이다.” 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나이 60이면 은퇴를 하고 일을 후세에 물려 주어야 하는 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몸과 마음이 쉼을 얻으려 세상 여행이나 하련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제 막 인생을 알고, 시대를 보고, 이정표를 갖는 때에 모든 일을 내려놓고 은퇴한다는 것은 큰 낭비입니다.

믿음이란 지금까지 자기 인생을 지배하던 ‘나’의 자리에 그분을 모셔 들이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1절]에는 주님이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적대적이고 성도를 향한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려면 생명을 걸어야 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상이 가하는 핍박이나 비난에 대해 우리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 14:30]에는 이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세상의 임금 된 자가 마귀라 했고, [요 17:14]에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라 했습니다.

○ 지금 세상은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풍조로 가득찬 세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윤리 의식이 상실되었고 도덕성 같은 것은 박물관에나 가야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륜과 부도덕, 몰염치, 비양심, 잔학함이 너무도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묵인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롯의 가족들이 소돔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떠난 두 천사가 저녁 시간 소돔 롯의 집에 방문하였을 때 그 지방의 사람들이 몰려와 요구합니다. “너의 집에 찾아온 사람을 내놓아라.” 그 땅은 심히 타락하여 동성애가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소돔과 고모라는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 우리는 폼페이의 한 집에서 나온 화산재에 화석이 된 유해의 사진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엉켜있는 유해들은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세상 죄악 된 세상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이러한 세상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호하셨으며, 이제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며 하나님께 보호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 특별히 간구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한 마음, 한 뜻, 한 목적으로 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유기적인 조직체와 같습니다(엡 4:16).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몸의 각 지체입니다(고전 12:27). 몸의 지체로서 우리는 크든 작든 우리 안에 분쟁을 일으킬 만한 소지를 철저히 없애고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많은 교회가 하나 됨을 위한 기도에 낙심하고, 좌절하며 포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대제사장의 기도는 단지 제자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교회 울타리 밖에 있는 양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7: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진리로써 거룩함을 얻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진리로’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입니다. 여기서 거룩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씀이 모순처럼 들립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본질상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기아조’(ἁγιάζω) 라는 용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기아조’ 라는 동사에는 ‘바치다’, ‘봉헌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에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담당함으로 친히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주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심은 우리만을 위함이 아니요,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불러 구원하기 위하여 거룩하게 하려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을 위하여 거룩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가식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나 될 때 세상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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