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한복음 9:1-15 <실로암의 뜻>
요한복음 9:1-15 <실로암의 뜻>
[2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어느 날 예수 일행이 길을 가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만났고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불행과 고난 질병을 그 자신이나 부모 또는 조상의 죄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물론 사람이 죄를 짓고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까지 정죄하고 징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20:5]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러나 모든 질병과 고난이 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도 있습니다. ‘의로운 욥’ 그는 큰 불행을 당했으나 그 불행이 그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고 또 그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3절)
[4절]에 주님은 “때가 아직 낮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며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의 불행을 논하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일과 선행을 묵묵히 담당하라는 말씀입니다.
○ 주님은 “[요 9:6]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여기서 사람들은 주님의 이러한 치유방법에 대해 불결하다. 의학적으로 말도 안 된다. 말할 것입니다. 소경은 예수님이 침을 뱉어 만든 진흙으로 자신의 눈에 바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11절) 그리고 그에게 직접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실로암 못은 물이 있는 곳까지 계단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성가신 일입니까? 예수께서 굳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소경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놀라운 이적은 예수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당사자의 믿음과 순종, 열린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 일은 과거 구약성경 (왕하 5:10)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치료하고자 엘리사에게 왔을 때, 엘리사 선지자가 사환을 보내 말하기를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씻으라” 말하고 문밖에 나와 쳐다보지도 않은 것과 대조됩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요단강 물에 7번 몸을 담그라.” 했던 그 명령은 나아만을 분노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엘리사의 말을 따라 순종함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다행히도 오늘 본문의 소경 역시 순종함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는 눈이 뜨이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① [요 9: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무리 중에는 그가 예전에 구걸하던 소경 거지였다는 사실에 심증이 가면서도 지금 눈을 뜬 정상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그가 아니라 비슷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 서로 간에 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 사람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옛날에 엄마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 하면 크게 상심하여 그런 줄 아는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 사람들은 6.25 전쟁이 남쪽에서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듣고 그런 줄로 알로 있습니다.
이때 소경이었던 자는 “내가 그라”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 사람은 소경 거지였던 자신을 드러내는데 조금도 주저(犹豫)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증거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부끄러운 과거,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더라도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된 사람은 지난날이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② 그 사람이다. 혹은 아니다. 하던 논란이 끝나자, 이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9: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 소경이 눈을 뜬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일,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얻는 일, 광야에서 오병이어(마른 떡 5, 물고기 2)로 남자만 세어도 5000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은 일, 오늘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이 사람은 자신이 전혀 회복 불가능한 소경으로 난 것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하는데 일체의 더하거나 덜하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첨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출교당할 것도, 박해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③ [9:12] “그가 어디 있느냐”
모든 놀라운 사건과 이적, 축복의 최종적인 관심은 기적의 장본인이신 예수님에게로 옮겨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소경이 눈을 뜬 사실에 놀라면서도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가 어디 있느냐?” 질문한 까닭은 주님을 잡으려 한 것입니다. 후에 눈을 뜬 사람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만나 물으셨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가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 오늘날의 문제는 사람들이 놀라운 하나님의 병 고치심과 축복을 체험하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이었나?” 반신반의(半信半疑) 하며,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어디서 신앙 생활할까? 선택할 때 엄숙하고, 조용하고, 웅장한 예배당, 사람 많은 곳을 찾습니다. 무엇이 내게 도움이 되는가? 따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나를 어디로 보내시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실로암의 뜻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의미입니다. ○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 소경은 실로암으로 보냄을 받음으로써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보냄으로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어디로 보내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는 우연히 태어나서 우연 속에 살다가 무의미하게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내시며 세상을 구원하라 하십니다. 보냄을 받은 자의 길은 순탄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편한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길입니다. 그 문은 좁은 문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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