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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27-36 <그의 말을 들으라>
누가복음 9:27-36 <그의 말을 들으라>
◎ 장인이 백혈병 말기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백혈병은 병중에 가장 심한 고통을 주는 병으로 그 고통은 뼈에서 나옵니다. 연로하여 수술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신장, 폐, 편도선으로 전이 되어 소변을 볼 수 없었고 가래는 기도를 막아 숨쉬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의식은 정상적이어서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 올 때마다 진통제를 맞아야 했고 나중에는 가장 독한 진통제인 마약 진통제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마지막 밤을 고통 속에 지내며 얼마나 두려워했을까? 자식으로서 생각하면 두렵고 마음에 상처가 되어 남습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말로는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순간에 마귀가 찾아오든지 천사가 찾아와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서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덤덤하니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장례절차에 따라 장례 하는 것으로 일을 마칩니다. 아내 사모는 아버지를 보내면서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 두려움이 자신에게도 왔다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며 “아버지 천사를 따라 빛이 있는 곳으로 가세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아침에는 하나님이 아내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왜 변화산의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하려 한 것일까요? 무의미한 어쩌다가 산에 가서 일어난 일일까요? 제자들은 당시 무서워하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며 엉뚱한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장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잊고 신비한 영적 체험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그들의 무지만을 드러난 이 사건을 복음서에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를 보면 베드로는 이 사건을 평생 두고두고 기억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의 평생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광에 믿음을 더해준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 1:17,18]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후서 1:17]에 이 사건을 영광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말합니다. “그가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기록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아들의 죽음을 앞두고 큰 위로와 격려 힘을 주신 사건이며, 그리스도 구원 사역의 완성을 예고한 것입니다.
○ 그러면 왜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한 것인가요? 구약은 흔히 ‘율법과 선지자’로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날에 구원자로 오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 ‘율법과 선지자’입니다. 바로 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 되는 두 사람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록은 누가복음만이 말하고 있습니다. [31절]에 의하면 그들의 대화 내용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별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별세’라는 단어가 ‘떠난다.’라는 의미에서 예수의 죽음만을 생각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 ‘별세’라는 헬라어는 ‘엑소도스(ἔξοδος)’입니다. 이는 갇힌 곳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엑소도스(ἔξοδος)는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마음이 향한 것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변화산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소망의 완성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기독교는 소망을 말합니다. 기독교를 소망의 종교라 말하면, 기독교를 많은 종교 중의 하나라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온갖 재난이 닥쳐도 기독교는 소망을 말합니다. 단지 죽음에 위로가 아니고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35절]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기를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입니다. 왜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특별히 주신 말씀이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일까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동일하게 빼지 않고 말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모세도 신명기에서 말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신명기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① 우리가 구원으로 엑소도스(ἔξοδος) 하려면 누군가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대장 되어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망에서 사는 길은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물고기를 잡다가 곧 즉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을 버려두고, 주의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나의 하는 모든 일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② (마가복음 4:35-)에 보면 풍랑을 잠잠케 하신 분이십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 두려워할 때,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지금은 환란과 어둠의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이 길을 잃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붙드시는 대장 되심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나의 모든 고난과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③ 레위 세리(稅吏)로 자신의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며 아득바득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영원한 사망이 있음도, 자신이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④ 우리 각 사람은 모두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먹고 마시고 누리고 쌓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6:24)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고, 삶의 본이 되셨고,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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