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가복음 7:24-30 <이 말을 하였으니>
마가복음 7:24-30 <이 말을 하였으니>
[마가복음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인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이는 구원의 순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셋째의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연히 이스라엘 땅에서 시작해서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救贖史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고, 온 인류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 유대인만을 구원의 대상 삼으신 것이 아닌,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창세기 12:1-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출애굽기 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9:6] “그가 이르시되…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시편 67:1-2]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 주 예수님은 자신의 흘리신 십자가 보혈을 통한 구원의 소식이 만민에게 이를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표면적으로는 이방 여인을 무시하는 투로 말씀하고 계시지만 실제로는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에 구원이 이를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구원이 유대인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이방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경멸하여 ‘개들’로 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주님’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 지역에서 이방 여인에게 ‘주’라 존칭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모욕을 주십니다. 이에, 놀랍게도 여인은 ‘옳소이다 마는’ 주님의 경멸조의 말을 들은 여인은 오히려 자신을 개라고 인정하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달라 말합니다.
[마가복음 7: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어떻게 자신 민족이 가장 미워하는 유대인 앞에서 “나를 개라고 불러도 좋으니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나요. “내 더러워서~ 당신이 이스라엘의 구세주입니까?” , “당신이 이웃 사랑을 말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존심도 없는, 비굴하고 굴종적인 여인이었을까요?
이 여인은 예수님의 모욕적인 말에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침착했습니다.
무엇이 여인에게 담대함과 침착함, 믿음을 가지게 한 것일까요? ○ 이 여인의 남편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여인은 분명 남편을 잃고 어린 딸만을 데리고 살아가는 의지할 데 없는 과부로 보입니다. 이 여인에게 유일한 희망은 오직 어린 딸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딸마저 흉악한 귀신에 들린 것입니다. 이 여인의 충격과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마 15:22)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인이 본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능히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딸을 고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개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이 사랑하는 딸 때문입니다.
○ 불행과 위기는 그 자체로 보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배부르고 부족함이 없고 만족할 때는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가 고난과 위기에 처했을 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과 위기가 인간적 측면에서 본다면 불행이요 비극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고난과 위기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통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 하나님이 나의 간구를 거절하시는가? 생각될 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주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결과 그 여인의 딸은 치유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녀는 성경에 정통하지도,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의와 공로를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자녀의 구원을 위해 엎드려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새로운 심령을 주어 그들로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기독교적인 교육은 할 수 있어도 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아는 일을 심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쉬지 않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유산이나 좋은 대학에 보내는 일은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유익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지옥의 자식이 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죄악입니다.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기도하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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