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세기 22:1-18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라>
창세기 22:1-18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라>
○ 아브라함은 자신이 거주하던 갈대아 우르나 밧단 아람의 하란은 국제 사회의 중심으로 문명이 번성하고 풍요한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모든 면에서 자신이 살던 고향 본토와 비교하여 한국 강원도만 한 좁은 땅, 문명은 뒤떨어지고 경제적으로 척박한 땅, 많은 이민족이 있어 외적의 침입과 충돌이 빈번한 곳, 멀고도 먼 곳으로 이주합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모든 기반과 기득권도 일거에 포기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고 가라 명하신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믿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역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 어디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땅이 나와 자자손손이 평생 안전하고 배부르고 즐거움을 누리는 곳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뜻과 기쁘심을 이루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곳일까요? 이 세상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가장 복된 땅입니다.
○ 아브라함은 그가 기근 때문에 애굽까지 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곧 돌아왔고, 그의 후손들 역시 기근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도움으로 애굽에 내려갔지만 400년 뒤에 출애굽 하였고, 시내 산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선민이 되리라는 언약을 체결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 이스라엘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들은 70년 만에 자신의 땅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잠시 나라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주 후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의 돌 위에 돌이 남지 않도록 완전히 파괴를 당하고 온 세상에 흩어졌습니다.
◎ 19세기 중엽에 어느 날, 오스트리아의 한 언론인이 프랑스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다가 프랑스 장교복을 입은 한 청년이 동네 사람들에게 매 맞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매 맞으며 외쳤습니다. "나의 조국은 프랑스입니다. 내 아버지의 조국도 프랑스이며, 나의 아들 조국 또한 프랑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야, 이 유대인 놈아, 너는 유대인이야, 네 몸에 유대인의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단 말이야! 하며 침을 뱉는 것이었습니다. 이 언론인은 오스트리아에 돌아와 글을 썼습니다. "유대인은 프랑스가 조국이 될 수 없고 영국이 조국이 될 수 없다. 유대인은 독일이 조국이 될 수 없고 그 어느 나라도 조국이 될 수 없다. 유대인의 조국은 오직 유대 나라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들의 시온주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 이는 하나님의 시작하신 일입니다. 시온이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산 이름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제물로 드린 장소가 바로 모리아 산으로 후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어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장소입니다.
○ 이스라엘은 1948년 5월에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의해 조국을 떠난 이래 처음으로 맞이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최초로 이스라엘에 돌아온 유대인은 러시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고자 했을 때, 그 땅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이었고 그 지역의 이슬람인들은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유대인 대표들에게 식민지인 우간다를 권고했을 때도 유대인은 한마디로 "유대민족이 국가를 세울 땅은 오직 유대 땅뿐이다." 하며 거절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고난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있는 땅을 택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 인류가 구원을 받을 장소로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구원의 사역을 위해 쓰시는 나라’ ,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껏 섬기는 땅’이 어디인가? 알아야 합니다. 물질의 풍요를 택하거나 잠시의 안전과 쾌락을 택한다면 이는 넓은 길, 멸망의 길일 뿐입니다.
○ ‘하나님이 아들을 바치게 하셨다’ 왜 뜬금없이 이런 일을 행하신 것일까요? 정의롭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할 때, 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라 했습니다. ‘그 일 후에’란 블레셋 땅에서 ‘이민족과 많은 갈등 후에’란 말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단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시험하신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형으로 ‘성숙한 신앙의 아브라함’을 만드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반으로 하여 믿음의 후손을 번성케 하시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명령은 이삭이 아브라함이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약속의 아들이었고, “사라의 시녀에게서 낳은 이스마엘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 스스로 깨는 일이었습니다. ○ 그리고 자녀를 제물로 번제를 하던 일은 종종 고대 근동의 종교와 가나안 사람이 그들의 신에게 하던 일로 (몰렉 숭배).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금하신 일입니다. 어떤 누구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고, 섬기는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많습니다. 참기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 이 일은 장차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 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자 아들을 내주어야 했던 아버지의 고통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당시의 이삭은 이미 장성한 청년으로 장작을 지고 산을 올랐습니다. 연로한 노인 아브라함이 억지로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창세기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어 칼을 들어 제물을 삼으려 할 때, 이삭은 순종하며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는 태도를 보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번제를 드리는 중에 이삭의 순종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39) 하며 십자가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 아브라함이 실제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리려는 찰나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을 제지하시며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제물 숫양을 보이셨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번제 제사를 마쳤습니다. 이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장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미리 보이신 것이기도 합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창 22: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이삭을 번제 제사로 드리게 하신 하나님의 시험은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 생애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의 신앙을 재확인하신 사건입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11:19]은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계약을 확인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조건에 합당하여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축복과 약속, 언약은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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