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20-21 , 18:15-17 <하나님의 나라>

[17:20]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습니다. 제자들도 바리새인들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시점이 궁금하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제자들이 기대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육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로마 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한 다윗 왕국의 실현이었습니다. 그는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밝히신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물질적인 의미로서의 어떤 나라나 영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는 영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과 동시에 이미 우리 안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① 주님은 (눅 10:9)에 칠십인 제자를 파송하실 때에도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하셨는데 이는 성령으로 행하는 자와 성령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알리신 말씀입니다. ② 주님은 (눅 11:20)에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며 무리들에게 “내가 만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말씀하셨는데, ‘앞서오다’ 라는 의미인 헬라어 ‘프다노’는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내 안에 역사하시고 운행하실 때, 나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하셨습니다. 여기서 “네가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리라” 이 말씀은 먼 장래의 보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지금 당장 보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 그러면 이 말씀이 영원한 천국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부정하신 말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안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9:27)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말씀하신 것은 장차 천국의 하나님 나라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반면에 불순종하는 자들, 완악한 마음으로 거역하는 자들, 교만과 탐심의 마음으로 땅의 것을 바라고, 땅의 것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의 마음은 그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라’ 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와 동일 내용인 마태와 마가복음 (마19장, 막10장)에서는 사용한 단어는 ‘어린아이’는 παιδίον(파이디온))입니다. 5세 전후의 아동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와 달리 누가는 본문에서 젖먹이 유아를 지칭하는 단어인 브레페(βρέφη)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먹는 갓난아기입니다. 이로써 누가는 마태나 마가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을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젖먹이 유아 브레페(βρέφη)에게서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천국 백성의 특징을 본 것입니다.

○ 제자들은 왜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은 것입니까? 제자들이 보기에 그래도 신앙을 고백하고 믿음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인격을 갖추려면 적어도 생각할 수 있는 나이, 스스로 선택, 결정하는 나이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신 것은 사람의 의지력, 이성과 판단능력, 장성한 자의 노력과 수고가 아닙니다. ○ 갓난아이는 겸손합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갓난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따릅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습니다. 갓난아기는 부모와 떨어지면 죽은 목숨입니다. 배고픈 아기에게 엄마가 젖을 물릴 때, 갓난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样子甚至很凄惨) 하나님의 나라는 갓난아기가 젖을 찾는 것처럼 간절하여야 합니다. 천국이 있어 가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다는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 사람이 조금만 커서 배웠다고 하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부모를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다고 말하는 어른, 판단능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습니다.

○ 오늘 본문[15-17절]은 [10-14절]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신 교훈에 이어 하신 말씀입니다. 이때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기도했고, 하나님 앞에 많은 헌금을 하며,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다 했습니다.

그때 주님 하신 말씀이~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누가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누구인가를 보인 것입니다.

 

○ [18장]의 앞부분 [1-8절]에서 우리는 원한에 사무친 과부의 끈질긴 기도를 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지할 데 없었습니다. 그녀가 그녀의 원통함을 불의한 세상에 호소하고, 무엇인가를 하려 힘을 쓸수록 그녀는 낙담하게 하고 그녀의 인생은 더 힘들어질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지신의 원한을 들어줄 것 같지 않은 재판관에게 밤낮으로 매달립니다. 하나님 앞에 이처럼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도움을 구할 이는 한 분,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하셨습니다. 사람이 내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겠습니까? 내 힘을 의지할 때, 일은 더 꼬이고, 어려움에 빠질 뿐입니다. 이들 셋은 모두 힘없고, 천대받고,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갓난아기는 엄마 젖을 먹고. 부모를 의지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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