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1-18  <애매한 고난 중에>

[사도행전 11: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이제는 유대와 예루살렘의 성도들과 사도들이 이방지역에서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유대인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에 본래 이방인 무할례자들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할례자들은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돼지고기를 먹고 율법을 알지 못하는 부정한 자들이었습니다. 무할례자들은 여전히 구원에서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행 10장]에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는 이방인 고델료의 집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베푼 사실을 알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기독교인 할례자들이 그를 비난합니다. ○ 문제는 할례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으나 그들이 복음전파 과정에서 율법에 큰 훼손이 있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1:3]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많은 유대인은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을 죄로 여기고 멀리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고넬료의 집을 방문할 때, 말 한대로 당시에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위법’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행 10:28). 이는 베드로에게도 힘든 결정이었고 유대 사회로부터 배척받는 것까지도 각오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코셔(kosher 정결음식법)를 지키는 경우가 많아 아무나 집으로 불러 식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유대인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당신을 가족 같은 친구로 생각한다.”는 강한 유대감의 표시로 “우리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친구로 인정받았다는 중요한 신호라 합니다. 유대인에게 율법은 과연 지혜의 말씀이고 자랑할 만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를 지키기 원했습니다.

○ 예루살렘에 있던 동료들이 그를 비난합니다. 이 얼마나 서운한 순간입니까? 신앙생활을 함께 하고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료 신앙인들이 격려하고 이해하기보다는 그를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나와 뜻을 같이하고, 이해하며,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를 찾아가 그의 집에 세례를 베풀고 유대인과 동일하게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보기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에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었습니다. 가장 가깝고 힘이 되어야 할 그들이 당장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베드로는 그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율법도 지켜야 하리라” 말하는 할례자 기독교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도 구원을 받는다” 큰소리를 내며 자기의 옳음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억울한 말에 일체 감정적인 동요를 보이지 않습니다.

[벧전 2:19,20] “에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이에 베드로는 [4절]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시에서 기도할 때에 환상 중에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베드로 앞에 펼쳐지는데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더라” 했고,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8절]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말하니 [9절] 두 번째 소리 있어 이르기를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런 일 후에 고넬료가 가이사랴에서 보낸 사람이 문 앞에 와서 사람을 찾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11절]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는 성령의 명령에 따라 여섯 형제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 했습니다. 성령께서 명하시니 그 집에 들어가고 함께 먹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1:17]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렇게 마쳤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일어난 일에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섞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사건을 말하면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18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했습니다.

○ 한 교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너무도 다릅니다. 나이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경제 수준이 다르고,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요즈음 사람들은 애써 하나 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너의 신앙은 너의 신앙이고 너의 생활은 너의 생활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은 각자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한 주로 섬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 저와 사모는 중국에 가서 가능한 대로 그들이 먹는 모든 음식에 적응하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고수를 먹고, 냄새나는 두부도 먹고, 다 맛있었습니다. 제일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내몽고에서 누린내 나는 삶은 돼지고기였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음식으로 대접했지만 저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 되기 위하여 우리는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때가 많습니다.

 

◎ 우리는 모세가 그가 훌륭한 인격에도 불구하고 백성 앞에 혈기를 부림으로써 화를 자초했던 일을(민 20장) 기억해야 합니다. 백성은 물이 없으므로 [민 20: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민 20:5]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 문에 엎드렸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8절]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회중을 향하여 분을 발하여 [10,11절]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 나왔다” 했습니다. 모세의 생각에 백성은 늘 완악하고 불평불만 하는 무리였습니다.

○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넘어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며 반석을 2번 쳤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은 [12절]에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는 일을 완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성도는 항상 겸손과 친절의 말이 습관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다고 했습니다(잠 10:20). 반면에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합니다(잠 6:12). 미련한 자는 수욕을 참지 못하고 분노를 당장에 나타냅니다. (잠 12:16)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야고보서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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