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4:1-6    <아비의 마음으로>

나 만군의 주 여호와가 말한다. 용광로의 불같은 심판의 날이 옵니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를 지푸라기같이 태워 버리는 날입니다. 그 날이 오면, 불이 그들을 살라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김없이 태울 것이다. 그 근원을 드러내고 완전히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소멸할 것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공의가 드러나는 날입니다.

[신명기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에게는 이 날이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는 날, 치료의 광선이 비추는 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노는 것처럼 즐거운 날이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날은 기쁨과 고통이 동시적으로 인간들에게 임하는 날,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폭풍이 지나고 나면 숨겨진 것이 드러나고, 깊은 암흑 속에서 빛이 제 역할을 하듯이 진리가 힘을 얻을 것입니다. 참과 거짓이 구분 됩니다.

 

말라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암흑기를 지내게 됩니다. 악인이 만연한 세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어려운 시대로 암흑의 시기, 바사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이의 지배가 있었고, 다시 헬라제국의 지배 아래서 성전에는 우상을 세우고, 제단에는 돼지고기로 제사를 드리게 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광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 모두를 평탄케 하실 것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한 사자를 먼저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여기서 언급된 엘리야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B.C. 9세기 북이스라엘의 제7대 왕인 아합의 통치시기에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사역을 다 마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이스라엘 가운데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시었는데, 이 엘리야가 누구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에 대하여 여기에서 에언 한 선지자 엘리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7:10-13) (변화산에서 선지자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 앞에 나타 나 대화한 사건을 목격한 이후에, 제자들이 엘리야의 강림에 대한 예언의 의미를 물었을 때에, 에 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임의로 대우했다고 대답하셨다. 그러고 그 때에야 제 자들은 그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을 지칭하는 표현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 자신은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한은 왜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입니까? 이는 말라기에서 말한 엘리야는 특정한 인물을 가리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17) 그 선지자가 이행할 사명과 관련하여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라에 게 그의 탄생에 대해 고지한 가브리엘 천사는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누가복음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선지자 엘리야란 문자적으로 누구를 특정한 엘리야가 아니라 한 선지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선지자를 칭한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을 준비하는 때에 다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들이 준비되어야 될 때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에 아합왕의 시대처럼 물질 만능사상과 우상숭배로 더럽혀졌을 때에 이스라엘에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선지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령은 어떤 심령입니까? 엘리야의 열심입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아비의 마음을 알게 하여, 아비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외지로 떠나갔던 자녀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돌아오게 하려는 열심입니다 이로써 가정의 회복입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회복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자기 백성 간에 관계가 회복된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말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일에는 아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없이 대통령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저주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없이 선생님이 되면 그것이 저주입니다.

아버지 마음이 없이 사장님이 되면 그것이 저주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없이 목사가 되면 그것이 저주입니다.

[요일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일찍이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모든 아이는 어른들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왔던 삶의 스타일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 대로 살아간다는 거지요. 그가 어릴 때 자라면서 어떤 말을 들었느냐 하는 것이 그 인생의 미래를 열어 가더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삶의 영향력은 어른이 되더라도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유년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자녀들은 성인이 된 다음에 자기 자녀를 학대할 확율이 3배가 더 높다고 합니다. 알콜중독, 약물중독, 섹스중독 등 중독증에 걸려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중독증에 시달릴 확률이 2배나 더 높다고 합니다.

영적인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보고 배울 것입니다. 허영이 문제입니다. 과거를 팔아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6개월, 1년 장관한 아버지가 평생 장관의 명칭을 달고 자랑하고, 한 때 교수생활 한 사람이 평생 교수명칭을 자랑하며 사는 허영에 젖어 살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아버지, 성경을 읽는 아버지, 책을 읽는 아버지, 담대하고 약하지 아니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늘 근면하고 힘쓰고 노력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이는 자기 백성이 얼마나 자기 백성이 심한 고난 속에 지내 왔는가를 말해 줍니다. 아버지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의 과거에 잘못에 매이지 않습니다. 먼저 과거를 치유해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길은 과거에서 탈피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치료 받고, 약한 것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야 합니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은 자식을 통해 얻으려 하고 자식을 내 원하는 모습으로 조형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변호사, 의사가 되야 한다. 너는 이런 대학에 가야 한다요즈음 자식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만 딴에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 입니다. 자식을 아예 비틀어 버립니다. 진정한 관계의 회복은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아들일 때만이 그것이 사랑이요, 진정한 관계는 서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다. 나는 너 때문에 행복하다. "나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행복하고 하나님의 내 가정에 너를 보내주신 것이 그 자체가 행복이다. 나는 행복하다."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를 귀중히 여깁니다. 자녀 앞에서 겸손 합시다. ,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아주 낮추어서 "너는 나보다 낫다. 나는 너만큼 그렇게 하지 못했느니라. " 자녀에게 힘을 주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야 나는 안 그랬다." 무시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아주 겸손하게 낮추어서 "이렇게 해 주겠니? 네 생각은 어떠냐?" 이것이 존중입니다.

 

아비의 마음은 기다림입니다. 곧 시간을 주는 것이올시다. 탕자를 기다린 아버지처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비에게 그의 의사를 존중하였습니다.

또한, 마음이란 곧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어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현재를 믿습니다. 내가 너의 정직함과 진실을 믿는다. 그들의 장래를 또 믿어주어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믿지 않을 때에도 어머니는 나를 믿어 주었습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을 때 어머니는 나를 믿었다고.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이 믿음 때문에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곧 믿음입니다. 믿어줍니다. 끝까지 믿습니다.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비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참 아버지의 상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참 아버지 되심을 알고, 친밀한 교제와 삶을 누려야 합니다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보는 것이 즐거워 기뻐하시며 노래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뻐하다 못해 춤을 추시는 분이십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비가 해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자식을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 시장 )

2. 자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법정 ) 예수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품는 것입니다.

3. 자식을 가정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 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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