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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4:1-14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리라>
여호수아 24:1-14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리라>
1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제 가나안 정복 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상기함으로써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왜 그러한 언약을 다짐하는 장소를 회막이 있는 실로가 아닌 ‘세겜’으로 선택한 것일까요? 그것은 ‘세겜’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역사적인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즉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첫 제단을 쌓고 정착한 곳이었습니다.(창 12:6,7) 또한 하란에서 돌아온 야곱이 제단을 쌓고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이름했고,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그의 자녀들을 모아 집안 식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방 신상과 장신구들을 땅에 묻고 옷을 갈아입게 한 곳이 ‘세겜’이었습니다(창 35:1-5). 그리고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포한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생활이 처음 시작된 곳이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언제나 이처럼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개혁의 자리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죄악된 본성과 연약함 때문에 쉽사리 나태해지고 신앙의 본분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삶과 신앙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하는 갱신의 자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대회를 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리고(삼상 7:3-6).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아 지난 날 이방인들과 통혼하며 그들의 풍습을 따랐던 죄를 통회하고, 이방여인들을 내어보내기로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과거의 나태해지고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우리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계시록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세월이 지나며 개인과 교회는 안일해지고, 열정은 사라지고 정형화 되었습니다. 이런 나태해진 신앙습관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늘 거듭났던 처음 신앙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초심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 [2~13절]까지 보면 여호수아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기억을 새롭게 하는 사실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한순간도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 하란 땅에서 우상숭배를 하는 데서 아브라함을 이끌어내셨습니다. 또 그에게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이삭을 주시고, ② 애굽까지 내려간 그들이 큰 백성을 이루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때 애굽 그들을 놓아주지 않자 애굽땅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마병을 끌고 쫓아오는 애굽의 군대를 구름기둥의 흑암으로 막아주시고 마침내 그들을 홍해 바다에 수장하셨습니다. ③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을 대적하는 아모리 족속을 이기시고 멸절시키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발람의 저주를 막아주셨습니다.
④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섰을 때는 가나안 일곱족속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12)절 ‘왕벌을 보내어’ 아모리의 두 왕을 쫓아내신 것처럼 하신다. 했는데 이는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3: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신명기 7: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 왕벌은 팔레스틴 지역의 숲이나 덤불에서 서식하며 행인이나 군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공포의 ‘말벌’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이는 수사적인 표현으로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하여 갖는 공포를 상징한 말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서편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여리고 성 주민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 즉, 홍해 건넌 사건이나 요단 동편의 두 왕을 패배시킨 일을 듣고 이미 간담이 다 녹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대적을 물리치실 때 비록 자신의 백성이 군대를 이루어 칼과 창으로 싸운다 하더라도 그 전쟁의 배후에서 역사(役事)하시어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성도가 이 세상에서 싸우는 싸움은 어떤 물질적인 수단과 도구를 사용한 싸움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기는 영적싸움인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약할 때나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신명기 8:3,4] ”너를 낮추시더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 바울은 다매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그렇다면 세상사람과 우리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똑같이 고통을 당하고 똑같이 수고하여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물며 세상의 사람들은 더 세상에 지혜롭고 부요하고 즐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 저들과 하나님의 백성의 차이는 인생의 가장 큰 보장이 되시는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 실제로 한국의 5060세대는 고난의 세대이기도 하지만 축복받은 세대입니다. 고난 속에서 강인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힘써서 노력하면 노력한 댓가를 얻고, 집을 장만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육체적으로 땀흘리는 수고를 감내하는 시대도 아니고, 갈수록 고용의 기회가 줄어들어, 반듯한 직장을 갖기도 힘듭니다. 경제가 발전하였고, 풍족한 시대라 하지만 노동의 댓가에 비하여 갖추어야 할 것, 쓸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모든 일에 상대적인 평가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간단히 말해 이 시대는 소수의 가진 사람은 누리며 살기 좋은 세상이지만, 대다수는 지난 세대보다 더 정신적으로 짓눌리어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5060세대를 축복의 세대가 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저들 중에 하나님을 찾는 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처음부터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까닭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까지는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레 18: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 400년 후 가나안 족속의 땅이 더러워져서 토해낼 만큼 성적(性的) 악행이 극에 달하고, 악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을 그 후손에게 주시면서 가나안의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점차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성적인 부패와 마약이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정결하게 하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믿는 믿음입니다.
[여호수아 24: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 전쟁의 승리가 칼과 창에 속한 것이 아니듯이 한 나라와 한 사람의 인생이 꽃이 피고 생명을 얻고 평강을 얻는 것은 내가 흘린 피와 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에 속한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권고는 지금 이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권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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