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누가복음 9:10–17 <벳새다에서 가버나움까지>
누가복음 9:10–17 「벳새다에서 가버나움까지」
우리는 오병이어 사건의 장소가 벳새다이고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의 요단강 동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加利利海
[누가복음 9:9,10]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으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로 갔고, 거기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의 기록만을 보면 벳새다가 요단강 서쪽에 이었는지 요단강 건너 동쪽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의 기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에 의하면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제자들이 배 타고 게네사렛으로 건너갔으니 오병이어의 기적은 요단강 동편에서 일어났음이 분명합니다.
[마가복음 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누가가 말하는 ‘벳새다’는 요단강 동쪽을 말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를 난해하게 하는 구절은 마가복음에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기록한 것입니다. 이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아니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 곳이 요단강 동쪽의 벳새다 아닌가?” ‘건너편 벳새다’는 어디인가? 혹시 마가는 ‘벳새다’를 요단강 서쪽으로 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마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장소는 요단강 동쪽 땅이었지만 벳새다를 요단강 서쪽 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역시 베드로를 두고 갈릴리 벳새다 사람이라 말합니다. 베드로는 가버나움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마가와 요한은 모두 갈릴리 바다의 요단강 서쪽을 벳새다로 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는 요단강 동편을 벳새다 땅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10]에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으나…”
○ 이는 마가도 누가도 틀린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벳새다의 지역적 변화에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주후 30년경에 헤롯 빌립이 게네사렛 호숫가의 벳새다라는 마을을 도시로 승격시키고 새롭게 건축하여 율리아스(Julia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오늘날 성경 지도에 나타나는 “벳새다”가 이곳입니다. 이후에 ‘율리아스’ 도시가 있는 요단강 동쪽이 벳새다의 중심 도시가 된 것입니다. 마가가 알던 벳새다는 요단강 서쪽이었으나, 이미 시간이 흘러,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하던 시기에는 요단강 동쪽에 도시가 건축되어 그 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그때의 사람들에게는 요단강 동쪽을 벳새다라 부른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가 얼마나 역사의 기록을 사실에 맞게 기록하려 힘썼는지, 그리고 시대의 사람들이 바르게 이해하도록 힘썼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날마다, 언제나 근심 없이 떡을 제공할 사람이나 방법이나 길을 찾는데 골몰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시작하든, 사람들은 우선 이 사람과 이 일이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늘 묻습니다. “교회 나가면 떡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나의 경제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 묻습니다. 사람들이 왜 교회에서 멀어지는지 아십니까? 돈 때문에 부담이 되고,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나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준다면 공산주의도 좋다 나의 자유가 억압받아도 좋다. 대통령이 전과가 있느냐 없느냐도 관계없다. 다 용서할 수 있다” 말합니다.
[요한복음 6:15]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자신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홀로 산으로 떠나가셨다.” 했고 [마가복음 6:45]에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 했습니다. 예수께서 서둘러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무리와 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저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대하는 잘못된 요구에 선을 그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떡 주기를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떡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못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육신의 떡에서 생명의 떡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 그러면 예수님은 군중의 요구를 거절하신 뒤, 왜 가버나움으로 가셨을까요? 그래도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모인 곳이 가버나움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 복음의 중심지, 복음의 발원지가 될 수 있는 곳이 가버나움입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가버나움은 그들의 ‘도착 장소’이면서 ‘말씀이 선포될 장소’입니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오병이어의 이적에 뒤이어 이곳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전하신 ‘생명의 떡’ 설교를 기록합니다.
[요 6:17]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 요한은 예수님을 작별하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벳새다로 향할 때 그들의 목적지를 분명하게 “가버나움으로 가려 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탄 배가 한밤중에 바다 가운데에서 풍랑으로 인하여 조금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인해 풍랑은 잦아들고 그들이 가려던 목적지,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6:21) 말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6:53]은 그들이 ‘게네사렛’ 땅에 배를 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한 도착지와 마가가 말한 도착지가 다르지만 사실, 두 지역은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의 환경은 아주 달랐습니다. 게네사렛이 가버나움 남쪽 평야로 가버나움에 가까운 지역이었지만, 게네사렛은 하나의 도시가 아닌, 넓은 비옥한 평야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그곳에는 여러 마을과 농경지가 있었습니다.
○ 주님은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광야에서 단순히 “예수님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라는 사건으로 끝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기까지 겪은 일들은 주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하였습니다.
○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가는 동안 한밤중에 바다 가운데서 풍랑을 만났고, 그들은 갈릴리 바다의 전문가이지만 그들이 목적한 가버나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을 인생의 주인이라고… 내 인생의 길은 내가 정하여 간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목적지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시기에 그들은 지나야 할 땅, 겪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게네사렛에도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막 6:54-55)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 이 두 사건, 한밤중 풍랑 이는 바다에서 주님이 찾아오심으로 제자들이 구원받은 일, 게네사렛 땅에서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이 찾아와 병 고침을 받은 일, 이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향하여 육신의 떡만을 구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더 귀한 생명, 더 놀라운 선물이 있습니다. 마침내 가버나움 회당에서 주님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요 6:26]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한복음 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떡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路加福音 9:10–17 「从伯赛大到迦百农」

加利利海
我们知道五饼二鱼的事件发生在伯赛大,伯赛大位于加利利海约旦河东边。
【路加福音 9:9–10】 “希律说:约翰我已经斩了头,这却是什么人?我竟听见他这样的事,就想要见他。使徒回来,将他们所作的一切事告诉耶稣,耶稣就带着他们暗暗地离开那里,往一座城去,那城名叫伯赛大。”
耶稣和门徒一起去了伯赛大,在那里行了五饼二鱼的神迹。但是只从路加的记载来看,我们无法知道伯赛大是在约旦河西边,还是在东边。然而,路加很熟悉最早的福音书《马可福音》。根据马可的记载,五饼二鱼的神迹之后,因为渡到了革尼撒勒,所以五饼二鱼的神迹显然是发生在约旦河东岸。
【马可福音 6:45】 “耶稣随即催门徒上船,先渡到那边伯赛大去,等他叫众人散开。”
那么怎么样呢?路加所说的 “伯赛大” 是指约旦河以东的地方。
○ 然而, 令我们感到困惑的经文是, 马可福音在记载五饼二鱼的神迹之后, 耶稣叫门徒 “往对岸伯赛大去”。看到这里, 我们不禁一个疑问:“ 发生五饼二鱼神迹的地方不就是约旦河东边的伯赛大吗? 那么 "对岸的伯赛大" 是指哪里呢?难道马可是把 “伯赛大” 看作是在约旦河西边吗?是的。马可分明说了, 五饼二鱼神迹的地方是约旦河东边, 但他想把伯赛地方是约旦河西边。约翰也提到彼得时, 说他是加利利伯赛大人。[约翰福音 1:44] “腓力是伯赛大人, 和安得烈、彼得同城。”
马可和约翰都看作把加利利海, 约旦河以西是伯赛大。相反, 路加现说把约旦河以东称说伯赛大。
[路加福音 9:10] “带着他们暗暗地离开, 到了一座城, 名叫伯赛大…”
○ 这并不是说马可或路加弄错了,而是源于历史上的伯赛大在地理名称的变更。根据约瑟夫斯的记载,公元30年左右,希律·腓力将位于革尼撒勒湖畔建一座城市升级了伯赛大村庄,赐名为 “朱利亚斯”(Julias)。这就是今天圣经地图上所标示的 “伯赛大”。那以后,拥有 “朱利亚斯” 城的约旦河东岸便成为伯赛大的中心区域。 马可所指的 ‘伯赛大’ 原本位于约旦河以西,但随着过时间,在路加撰写路加福音书的时期,一座新的城市在约旦河以东被建立起来,其中心也转移到了东岸,因此当时的人们便将约旦河以东称为伯赛大。由此我们可以看出,路加是多么努力地如实记环境的变化,致力于让那个时代的人准确地理解圣经。
○ 在旷野看五饼二鱼神迹的人们,认为耶稣 “正是那位要到世上来的先知”,并想要立他为王。人们所渴望的,是竭力地寻找一个能够每天、随时无忧无虑地提供饼的人、提供的方法或途径。不论遇见什么事,什么人, 首先考虑的是这个人或这件事在自己的经济上是否有帮助。是的。世上的人总是问:“去教会给钱吗?” “对我的经济上到底有没有帮助?” 知道人们为什么远离教会吗?因为在钱感到负担,因为觉得得不到经济上的利益,所以就不去了。如今的人们说:“只要能让我的生活富足,共产主义也无所谓,自由被剥夺也行。总统以前犯了什么罪也无关系,全都可以原谅。”
[约翰福音 6:15]记载:“耶稣知道众人要来强逼他作王,就独自又退到山上去了。” 而[马可福音 6:45]记载:“耶稣催门徒上船,先到对岸伯赛大去,等他叫众人散开。”
耶稣急切地, 意识地让门徒与人群分开,这是对他们向耶稣所提出的错误要求划清了界限。耶稣来并非为了满足人类肉体的需求,而是为了拯救灵魂来的。耶稣并不是拒绝给群众提供饼,而拒绝的是人们因为饼而对耶稣产生错误的认知。耶稣希望人们能将目光从肉体的饼转向生命的饼。
○ 那么,耶稣在拒绝了群众的要求之后,为什么去了迦百农呢?这是因为迦百农依然有可能性聚集 “有耳可听” 的人。在加利利,迦百农是有可能性, 成为福音中心的地方。约翰来说,迦百农既是他们的 “到达之地”,也是 “道讲之地”。约翰在五饼二鱼的神迹之后,记录了耶稣在迦百农所宣讲的关于 “生命之饼” 的讲道。○ 约翰记载了,当他们与耶稣告别、并与门徒一同乘船前往对面时,明确指出了他们的目的地是 “要往迦百农去”。然而,当他们乘坐的船在半夜因海上的风浪而无法前进一步, 那时耶稣来到,风浪便平息了。约翰记载了, 他们也到了 “立时到了他们所要去的地方”(6:21)。
然而,[马可福音 6:53]记载,他们把船靠了岸,停在 ‘革尼撒勒’。虽然约翰所说的到达地与马可所说的到达地不同,但实际上,由于这两个地方距离并不远,所以并没有太大的问题。然而,他们所到达地的环境却截然不同。革尼撒勒是位于迦百农以南的肥沃的平原地区,在那里分散了许多村庄, 但革尼撒勒并不是一座城市。
○ 主并不希望门徒们由于五饼二鱼的奇迹仅仅当作 “耶稣给饥饿的人提供了食物的” 耶稣希望结束这样单纯的想法。门徒们抵达迦百农之前所经历的一切,让他们看到了主全新的形象。
○ 门徒们在没有耶稣前行时,于半夜在海中央遭遇了风浪。虽然他们是加利利海的专家,却没能到达预定的目的地迦百农。这表明,人并不能成为自己人生的主人,人生的道路也并非由自己决定得到的。人生的道路是由神引导的。人们虽然有着自己渴望的人生目的地,但耶稣看来,他们有必须经过的土地,也有必须经历的事。主曾说:“在革尼撒勒也有我们需要去遇见的人。” 马可福音这样记载:
[马可福音 6:54-55] “一下船,众人立刻认出是耶稣,就跑遍那一带地方,听见耶稣在何处,就把有病的人连床抬到何处…”
○ 门徒们在半夜风浪汹涌的大海上因主的到来而得救,以及在革尼撒勒这片土地上该地区所有的人都赶来并得到医治— 这两事件都在告诉我们,不要向耶稣只求肉体的饼。在耶稣里,有更宝贵的生命和更惊人的恩赐。最终,在迦百农的会堂里,主向人们明确地宣讲道。
[约翰福音 6:26] “你们找我,并不是因见了神迹,乃是因吃饼得饱。”
[约翰福音 6:27] “不要为那必坏的食物劳力,要为那存到永生的食物劳力。”
[约翰福音 6:35] “我就是生命的粮。” 主不仅是賜给我们饼的那一位,主更是“赐给我们生命的那一位”。认识耶稣就是福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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