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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23-33 <산 자의 하나님>
마태복음 22:23-33 <산 자의 하나님>
사두개인은 다윗시대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과 그들의 추종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부와 공적(公的)인 지위를 대대로 독차지하였고 헤롯가와 로마인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백성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모세오경의 법과 권위, 윤리에 관련된 것만 인정하고 영혼 불멸과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몸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천사의 존재나 영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를 통한 계시를 거부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당시의 종교제도 안에서 풍족한 삶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죄된 존재입니다.
[신명기 25:5.6]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들은 예수께 나와, 부활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신명기] 구절을 이용했습니다.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아내로 삼아 후사를 세울지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허락하신 기업이 후손이 끊겨 상속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보면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결혼하므로 엘리멜렉의 대를 잇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계대(继代) 결혼제도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지켜오던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신명기 25:6]의 계대(继代) 결혼제도를 구약 칠십인역(LXX)의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부활’과 연관시켜 엉뚱하게 해석합니다. 그들의 최대 관심과 현재의 축복과 땅의 제도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잇게 하라’ 는 말을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대(代)가 끊어진 가문에 대(代)를 잇는 것이 부활이다” 해석했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계대(继代) 결혼제도가 실제로 부활이 있다면 일어날 큰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말 부활이 있다면 천국에서 신성하게 보존되어야 할 가정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겠는가?” 말하며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일곱 형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두 명만을 언급해도 될터인데 왜 ‘7’이라는 수를 언급했을까요? 이는 ‘7’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무한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의도적으로 ‘7’ 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여 “세상에서는 빈번하게 계대결혼이 있고,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일이 다반사이니 세상에서 일곱 명의 남자가 한 여자를 취했으니… 부활하면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얼마나 난잡해 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는 자들을 조롱합니다. 그렇지만 사두개인들의 이런 해석은 세상의 윤리관을 가지고 자의적(恣意的)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 천국에서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자기 생각을 증명하려고 억지로 하는 해석을 우리는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평가와 이해, 자신의 이익에 근거하여 천국과 부활을 이해하려 합니다. ◯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먹고 사는 일, 인간 관계, 이름 내는 것을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관계와 먹고 마시는 일,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 그들의 명성이 천세 만세 계속 되기를 바랬습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눅 20:38]에는 더 상세하게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출 3:6]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모세가 장인의 양을 치다가 호렙산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알리는 말씀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분명히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안에서 현재 살아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 [30절]에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은 부활 후에 천사들과 같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는 천사와 같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장가가고 시집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 때에 삶은 더 이상 세상의 법과 제도, 육체에 매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이 땅의 결혼 제도는 더 이상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결혼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신으로 사는 보기에 좋지 않아서, 인류를 보존하고 번식시키기 위하여 만드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더 이상 외로움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종족 번식의 필요도 없는 곳으로 결혼 제도가 필요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은 천국을 지상 세계와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 물론 천국에서 우리는 아내나 남편, 자녀, 부모 형제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천국에서는 세상에서 있었던 인연과 관계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누구의 남편이나 아내가 아닙니다. 부활의 몸을 입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관계와 전혀 다른 관계 속에서 가장 복되고 이상적인 만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본향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출 3:6]절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이 구절은 사두개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구절입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정통하다’ 자랑하던 그들도 주님의 이런 해석은 처음 들어보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에는 그들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물질주의(物質主義)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 사람이 물질주의에 젖어 있고 탐심에 빠져 있으면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해석합니다. 이 땅의 향락에 젖어 있는 사람은 천국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성경을, 영혼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이는 스스로 지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들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 신앙이란 믿지 않는 자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사람들, 무모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눈으로 보고, 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검증 할 수 있어야 ‘믿겠다’ 말합니다. 과연 잘 설명하면 믿을까요?
◯ 어떤 신학자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안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평가하고, 설명하는 그 순간에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로 어찌 하나님을 판단할 수 있으며 증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 믿음은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얻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아무리 사실을 접하고, 이해하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선입견도 의심도 없이 믿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네가 믿지 않으면 너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했고ㅡ 안셀름은 “나는 알기 위하여 믿는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둘의 증거” 라 했습니다.
◯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살아 가는 자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의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중요한 일, 귀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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