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드로후서 1:1-11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베드로후서 1:1-11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사람은 욕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모든 욕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개정한글 성경에 말하기를 [빌립보서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我正在两难之间,情愿离世与基督同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욕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욕망이 세상에 속한 것, 무익한 것, 사라질 것에 대한 욕망이라면 귀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한 것이고 심판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욕망을 갖는데 헛된 욕망으로 세상은 썩고 부패하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헛된 욕망을 성경은 정욕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시편에서
[시편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인간의 내부에서 나오는 욕망은 끝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채울 수 없는 그릇과 같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자기 외에 다른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희생과 헌신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마치 불과 같습니다. 끝에는 욕망은 스스로를 신적 존재로 주장하며 모두의 우상이 되려합니다.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욕망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썩게 하고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한 여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묵직한 돌 하나씩 들고 간음한 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 예수님 앞에 끌고 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합니다. “율법에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 했는데 예수여! 이 여인을 돌로 치리이까 말리이까?” 예수님이 돌로 치라 하면 예수님은 무자비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돌로 치지 말라하면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잠잠히 계시다가 무리가 대답을 기다리며 시간이 흘렀을 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라”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모두 흩어져 돌아갔습니다. ○ 사람들은 다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끊이없이 두려워 하며, 자신을 감추려하고, 거짓말하고, 나태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사람은 다 마땅히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썩어 없어질 것을 좇는,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 인간의 헛된 욕망에 반대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고 나서 자신들의 벗었음을 알고 숨었을 때 [창세기 3:21]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했습니다.
○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누군가는 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 하고, 어떤 이는 얄팍한小算盘(儿) 처세술(处世之术)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어떤 이는 명예와 권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식은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성도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베드로후서 1:11] 너희가 낙심하여 물러가지 아니하면
[베드로후서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리고 그 날에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강림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 그러나 자녀가 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모습 이대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닌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의 성품을 가진 자’ 이 얼마나 위대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와 ‘동등한 모습을 가진 자’ ‘동지’ ‘친구’로써 대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일은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살아가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5-8절]은 성도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어 열매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5-8]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곧 믿음,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 우애,사랑의 덕목을 가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人若没有这几样,就是眼瞎,只看见近处的,忘了他旧日的罪已经得了洁净。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신의 성품’ 에 참여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인 것입니다.
○ [5절]에 ‘믿음에 덕을 공급하라’ 했는데 ‘덕’이란 다른 사람의 유익을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타인을 향한 ‘선’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죄의 습성을 가진 우리에게 ‘덕’을 말하고 ‘선’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하여 우리는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 안에 베어 있는 죄의 습성은 아주 뿌리가 깊은 것이어서 한 번에 청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경건을 향한 연습을 통해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 이 ‘덕’ 은 다시 ‘지식’ 에 의해 균형이 잡혀져야 합니다. 과거 페스트가 창궐할 때 여전히 교회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고 기도 집회를 가지곤 했었습니다.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지만,무지함이 낳은 결과였던 것입니다. 타인을 향한 ‘선한 마음’ 은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면 무모(轻率)한 것입니다.
◉ 원숭이 무리 안에 아주 충성된 사랑 받는 어린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대장 원숭이가 잠을 자는 시간에 보초를 서서 아무도 대장 원숭이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대장 원숭이가 단잠을 자고 있는데 파리 한 마리가 대장 원숭이의 이마(额头)에 붙어 괴롭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쫓으려 해도 어린 원숭이는 그 파리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옆에 있는 큰 돌을 던져 파리를 잡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돌을 들어 힘껏 내리쳤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어린 원숭이는 충성스런 원숭이 입니까?
‘덕’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내 의’를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받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특별히 [베드로전서 1:23]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교회는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고 예배를 등한시 하면서 인터넷 聊天群(단톡방)에서 열심히 성경읽기, 찬송, 간증 파일 (文件夹)를 올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베드로후서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인내에 경건을” 더하라 하였습니다. 지식에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아는대로 인간의 지식은 유한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때를 따라 우리를 푸른 초장 목초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단지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말씀에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고 힘쓰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놓지 않은 절제란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인내를 보십니다.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일에 자신이 행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목표를 가지고, 아무리 이상적인 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게으르고 방종의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의 꿈은 허망한 것입니다. ‘인내’를 이루라는 말씀은 그의 인내로써 자신의 마음의 진실성을 하나님 앞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국은 경건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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